“우리의 노래가 한그릇 밥이면 좋겠네”
“우리의 노래가 한그릇 밥이면 좋겠네”
  • 백민호_파이뉴스 기자
  • 승인 2006.1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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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밴드 ‘희망을 노래하는 사람들’

‘희망을 노래하는 사람들’(희노)은 지능이 낮은 지체장애인들과 대인기피, 불안장애를 겪는 정신 장애인들이 모인 장애인밴드다. 4천원짜리 라운드 티 하나 걸치면 단원복이 되고, 변변한 영양식 한번 먹어본 적이 없지만 무대 위에 올라가면 다들 생기가 돋는다. 너나없이 ‘사랑받기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연주하고 노래 부른다.

희노는 어디든 찾아간다. 청소년학교, 시골교회, 호스피스센터, 노인요양원, 사회복지대학…, 청중이 한 사람이건 수천 명이건 상관없다. 30분이고 2시간이고 노래하며 장기를 선보인다. 청소년이나 장애인 캠프에 참가하면 2박3일 릴레이 합숙공연이 이어진다.

이동수단은 1톤 트럭과 승합차. 15년째 굴러가는 트럭은 폐차직전이다. 변변한 박스차량 없이 화물칸에 냉장고만한 스피커며 앰프 등 각종 음향기기와 드럼, 신디사이저, 베이스기타를 쌓아 올린다. 10여 명 멤버들은 문짝도, 의자도, 유리창 셔터까지 삐걱거리는 승합차에 옹기종기 살을 맞대도 늘 함박웃음이다.

 

서로를 버텨주고 기대주는 사람들
희노를 이끌어주는 이는 목회자인 문성하(42)씨다. 장애인자활공동체 ‘정읍 나눔의 집’을 만든 그는 아내 박춘아(34)원장과 태양이, 별이, 은총이 세 아이를 둔 아빠이기도 하다. 어린 아들 생일을 까먹어도 단원들 생일을 거른 적이 없는 그가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말이 있다. “우리 애들 참 예쁘죠”, “우리 애들 정말 잘하죠.” 손톱으로 팔뚝에 자해를 하는 발달장애아건 삶은 고구마를 통째로 좌변기에 버리는 치매노인이건 그에겐 모두 “우리 애들”이다. 모두 사랑스럽고 추켜세워 줘야 할 우리 아이인 것이다.

‘나눔의 집’ 살림꾼인 부인 박춘아 원장은 목숨을 끊기 위해 고향에 온 늙은 총각을 반려자로 맞아주었다. 사업부도로 자포자기상태였던 문성하 씨는 노숙자들을 만나면서 살아갈 이유를 발견했고, 자신의 사명을 함께 나눌 동반자가 필요했다. 그는 박 원장과 두 번째 만남에서 프러포즈했다. 두 사람을 묶어준 건 신앙이었고, 사명이었다.

당시 스물아홉의 아름다운 아가씨였던 박 원장은 집도 절도 없는 문씨를 ‘얼싸 좋다’며 받아주었다. 구두 앞 축이 너덜너덜 입을 벌리고, 500원짜리 재활용 바지를 입고 맞선을 나온 사람을 말이다. 그렇게 시골집 방 한칸, 버너 하나로 노숙인들과 함께 살기 시작한 부부는 노숙자들과 한솥밥을 먹으며 생활했고, 그 뿌리가 ‘나눔의 집’으로 이어져 장애인들의 음악치료를 위해 만든 지금의 ‘희망을 노래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희노 지도교사인 백정록(23)씨는 신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2002년 6월, 나눔의 집 식구들이 주거용 컨테이너에서 생활하던 시절, 그는 녹슨 철벽에 새겨진 아이들의 소망을 읽게 됐다. ‘노래를 잘 부르고 싶다’, ‘드럼을 치고 싶다’ 정록씨를 희노의 영원한 멤버로 남게 한 건 아이들의 삐뚤빼뚤한 글자, 그 속에 담긴 희망이었다.

장애, 아픔, 상처 보듬고 ‘세상에 뿌린 희망’
희노 멤버들의 연령은 20~30대 초반. ‘나눔의 집’에서 공동생활을 하는 이들은 한때 역전, 지하상가, 육교 아래서 생활했다. 노숙하며 구걸하기엔 너무 아름다운 나이였다. 교복을 입고 재잘거리는 여고생도 있었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부모가 버리고, 선생이 외면한 이들은 양부모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집을 뛰쳐나왔고, 큰집에서 더부살이하다 입던 옷차림으로 떠돌아 다녔다. 엄마가 여섯 번이나 바뀐 불행한 아이도 있다.

음악은 이들의 인생을 뒤바꿨다. 희노의 보컬을 맡은 은영(21)씨는 처음부터 말을 잘 한 건 아니다. ‘나눔의 집’ 입소 후 한 달여 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발그레한 볼이 예쁜 숙녀는 노래를 부르면서 자존감을 얻었고, 노래가 삶의 전부가 돼버렸다. 무대 위에서 소변을 지리거나 서있기만 했던 그런 아이였다.

스틱 하나만 있으면 행복한 현일(21)씨는 사고뭉치였다. 남의 속옷을 창문 밖으로 던지는 ‘취미’가 있었다. 오는 사람마다 반갑다고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니, 별명이 ‘국회의원’이다. 언제나 사르르 웃는 모습이 매력적인 희노의 ‘드러머’다. 베이스 기타를 치는 동안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람이 되는 병호(21)씨는 집에선 모범생 소릴 듣지만 밖에 나가면 말썽쟁이다. 연습하라고 준 색소폰을 팔고 가출을 한 적도 있다. 이제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공부에 맛을 들여 자격증까지 땄다.

“엄마에게 나쁜 짓 안하고 좋은 길로만 가겠다고 약속”한 장열(26)씨는 희노의 유일한 남자 싱어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 말이 어눌하고 행동이 굼뜨다. 소년원 출신이라는 딱지가 붙은 그는 노숙하면서 대인기피증이 생겼다. 이곳에서 한글을 배웠고 이제 남을 배려할 정도로 나아졌다.

삶 속에 뿌리내린 음악
단원들은 주 3회 1시간 반 동안 연습을 한다. 공연을 앞두고 서너 시간 맹훈이 이어진다. 누가 부추겨 하는 게 아니라 좋아서 한다. 똑같은 걸 수백 번 반복한다. 가사가, 악기가, 노래가 익숙해지고 어느덧 몸의 일부가 될 때까지 연습한다. 노래하고 연주하는 것조차 벅차지만 이제 반주에 맞춰 율동을 곁들인다.

“지난 상처 때문에 아이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찢어진다”는 문성하 씨는 “우리 애들은 노래를 부르며 장애의 벽을 뛰어 넘었고, 가슴 속에 멍울진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는 법을 터득해 간다”고 전했다. 중고로 구입한 음향기기를 내박치기도 수십 번. 악기를 들거나 둘이서 힘을 모아 드는 게 익숙하지 않아 발을 찢기 일쑤였던 이들은 공연 준비를 위해 개인연습을 하고 손수 스피커며 드럼을 나르며 무대설치까지 자신들의 힘으로 해나간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고, 아무것도 내세울 게 없는, 또한 아무것도 보여줄 게 없었던 정신지체 장애인들. 이들에게 음악은 삶의 단단한 뿌리가 되었고, 희망을 노래하는 사람들은 아픈 사람들이 쉴 수 있는 잎과 그늘을 만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