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앞두고 전 직원 문자해고 날벼락
설 앞두고 전 직원 문자해고 날벼락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7.03.08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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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법 경영세습에 모태기업 제물로
[리포트] 동광기연 기습 폐업

설 연휴를 나흘 앞둔 지난 1월 23일, 경기 안산에 위치한 자동차부품 제조업체 동광기연의 노동자들에게 문자메시지 한 통이 날아들었다. 내용은 “해고 통보 / 대상자 : 문자 수신 대상자”로 시작됐다. 법인을 해산하고 폐업절차를 진행함에 따라 근로계약을 해지한다는 것이었다. 설을 맞아 고향으로 갈 생각에 잔뜩 기대에 부풀어있던 노동자들에게는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문자메시지 한 통에 수십 명의 노동자들이 농성장에서 설 연휴를 보내게 됐다.

1년 반 만에 3번 이사한 회사

동광기연은 한국GM을 비롯한 다수의 완성차 업체에 자동차 내장재를 납품하는 회사다. 1966년에 설립된 이후 성장을 거듭해 오며 국내외 11개 계열사를 거느린 동광그룹의 모태가 됐다. 동광그룹 계열사 전체 순이익은 2015년 기준으로 340억 원에 달한다. 이처럼 잘 나가던 회사에 먹구름이 드리운 때는 지난 2014년 무렵이다.

이전까지 동광기연은 인천 남동공단에 있었다. 회사는 뜬금없이 사업장을 전북 익산으로 옮길 계획이며 남동공단 부지는 처분할 것이라고 노동조합(금속노조 인천지부 동광기연지회, 지회장 김완섭)에 통보했다. 한국GM 부평공장으로부터 수주하는 물량이 줄어든다는 이유였다. 회사 측은 남동공단에 남아있을 경우 적자가 불가피하다고 노동자들에게 설명했다. 익산으로 이전하면 한국GM 군산공장의 물량과 더불어 쌍용자동차의 물량도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인천에서 가정을 이루고 생활하던 노동자들에게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의 이주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가족을 인천에 남겨둔 채 본인만 익산으로 가더라도 타지 생활에 따른 불편이 뒤따를 게 뻔했다. 공장 이전에 대한 노동자들의 불만이 이어지자 노동조합은 익산의 물량을 인천으로 가져오는 방안을 회사 측에 제시했다. 하지만 이미 익산에는 그룹 계열사인 SH글로벌이 한국GM 군산공장에 납품을 하고 있었다. 동광기연이 익산의 SH글로벌 물량을 받아올 경우 그곳 노동자들의 고용이 불안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노동조합은 익산으로 이전하자는 회사 측의 방안을 수용하는 대신, 공장 이전에 따른 노동자들의 불이익을 최소화할 것을 요구했다.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고용보장을 약속했고, 동광기연은 2014년 8월 SH글로벌이 위치한 익산으로 공장을 옮겼다. 이 과정에서 기혼 여성을 중심으로 익산으로의 이주가 어려웠던 30명의 노동자들이 희망퇴직을 신청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나자 한국GM 군산공장의 생산량 감소가 본격화하면서 그 여파가 동광기연에까지 미쳤다. 익산으로 이전할 당시 안정적인 물량 수주가 가능할 거라던 회사 측의 설명이 무색해졌다. 동광기연 노동자들은 첫 번째 공장 이전 후 1년 만인 2015년 9월, 다시 인천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회사는 이미 처분한 공장에 임대료를 내면서 두 번째 이전을 감행했다.

그러나 반년도 채 되지 않아 공장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났다. 한국GM에서 임대한 설비 이외에 대부분의 장비가 불에 탔다. 잿더미가 된 공장을 뒤로 하고 2016년 1월 동광기연은 세 번째 공장 이전에 나선다. 이번에는 경기 안산의 반월공단이었다. 1년 반 만에 무려 세 번씩이나 공장을 옮기게 되면서 동광기연에서 일하는 생산직 노동자의 수도 100여 명에서 60명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단협까지 어겨가며 ‘문자해고’

계속된 공장 이전으로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이러다 회사가 어떻게 되는 거 아니냐”는 불안감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이 때문에 매번 공장을 옮길 때마다 노동조합은 회사 측과 고용안정 확약서를 체결했다. 그리고 단체협약을 통해 이를 다시 한 번 못박았다. 회사를 매각하거나 분할, 합병하는 등 조합원들의 고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변동사항이 발생할 때에는 70일 전에 노동조합에 해당 내용을 통보하고, 노동조합과 협의해야 한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특히 2016년 4월 안산으로 공장을 옮기면서 노사가 맺은 확약서에는 회사가 매각·폐업될 경우 관계사로의 고용 및 단체협약 승계 조건이 포함돼 있었다.

동광기연 대표이사 김 모 씨는 지난 1월 19일까지만 해도 “폐업은 없을 테니 안심하라”고 노동자들에게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미 공장은 (주)크레아안톨린에 매각된 뒤였다. 김 씨는 이 사실을 숨기고 있다가 나흘 뒤인 23일에야 노동자들에게 알렸다. 동광기연지회 조합원 A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23일)오전에 회사 대표이사가 설명회를 열었고, 그때 폐업 이야기가 처음 나왔다”고 전했다.

며칠 만에 180도 달라진 회사 측의 태도에 격분한 노동자들은 집단 퇴장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해고를 알리는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조합원 B씨는 “전날(22일) 밤에 ‘내일(23일) 오전에 설명회가 있다’는 문자메시지를 받았을 때 설마 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진짜로 해고될 줄은 생각도 못 했다”며 울분을 토했다. 문자메시지 한 통으로 세 차례의 고용보장 확약서와 단체협약은 휴지조각이 됐다.

문자메시지에는 “회사 존립을 위한 1년 이상의 자구안 동참 요구에도 불구하고, 2016년 11월 자구안 동참 최종 거부에 따른 계속 경영이 불가능하여 부득이한 조치”라는 내용이 담겼다. 또 2017년 1월 26일까지 퇴직위로금을 받는다고도 쓰여 있었다. 62명의 조합원 중 46명은 퇴직위로금 신청을 거부키로 하고 안산공장 점거농성에 들어갔다. 동광기연지회는 고용보장 확약서와 단체협약 이행을 요구했다.

그러나 회사 측은 단체협약 위반을 인정하면서도 노동조합에서 자구안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별다른 안을 내놓고 있지 않다. 동광기연지회 조합원들은 “회사 측이 내놓았던 자구안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라고 강조한다. 자구안에는 정규직 조합원들의 비정규직 전환과 더불어 기본급 10% 삭감, 상여금 350% 삭감, 학자금·건강검진 지원 등 복리후생 중단 등이 담긴 것으로 전해진다. 금속노조 인천지부 관계자는 “근속 20년차 노동자가 연봉 3,000만 원 조금 넘게 받았다”면서 “(자구안을)어떻게 노동자들이 받겠느냐”고 반문했다.

▲ 인천 계양구 SH글로벌 사옥

동광기연 고의 부실 의혹, “62명 밥줄 끊겼다”

동광기연지회는 회사 측이 단체협약 위반을 무릅쓰고 업체 매각과 폐업을 진행한 데에는 다른 의도가 있을 거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동광기연지회가 의혹을 제기하는 부분은 두 가지다. 하나는 동광그룹 경영진 일가의 3세 경영체제 구축에 따른 편법 상속이다. 유래형 회장은 아버지로부터 동광기연을 물려받아 지속적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유 회장은 최근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것으로 전해진다. 그에게는 아들이 세 명 있는데, 자식들에게 기업을 상속하면서 업무상배임을 저질렀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다.

동광그룹에 속한 국내 법인에는 그룹 모태인 동광기연을 비롯해 SH글로벌, SH-BP, SH-INT, SHN, 인피니티 등이 있다. 각 계열사의 지배구조를 살펴보면, 순환출자 형태를 띠고 있다. 유승훈 대표이사가 소유한 SH글로벌이 인피니티의 지분을 갖고, 인피니티는 동광기연의 지분을 갖는 식이다. 그러는 동시에 인피니티가 SH글로벌 지분을 갖고, 동광기연이 인피니티의 지분을 갖는 등 상호출자 형태도 관찰된다. 여기서 문제는 동광기연이 인피니티의 지분을 취득하는 과정이다.

2014년 동광기연은 인천 남동공장을 330억 원에 매각하는데, 이듬해 매각대금의 일부로 인피니티의 지분 19%를 취득한다. 삼정회계법인의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거래금액은 174억 원으로 주당 약 230만 원이었다. 2014년 SH글로벌은 인피니티의 주식을 주당 187만 원에 매수하는데, 이에 비하면 동광기연은 인피니티의 주식을 주당 43만 원(23%) 가량 비싸게 산 셈이다. 1년이라는 시차를 감안하더라도 너무 큰 차이가 있다는 게 동광기연지회의 주장이다.

한편 같은 시기에 유래형 회장의 3남인 유승찬 씨가 인피니티 지분 24%를 취득하며 대표이사가 된다. 유승찬 씨는 2008년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의 OST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부른 가수이다. 유 씨는 지난 2013년 유래형 회장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경영에 관심 없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그런 그가 2015년 동광그룹 계열사 주주 명단에 이름을 올리면서 동광그룹 후계구도에 변화가 생기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동광기연지회는 유래형 회장 일가가 자식들에게 지분을 상속하는 과정이 규명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동광기연지회는 유승훈 대표이사가 최대주주로 있는 SH-INT와 SH-BP에 일감을 몰아줌으로써 동광기연의 매출 감소와 부실을 초래한 정황도 고발하고 나섰다. 동광기연지회는 세 회사가 매우 유사한 생산설비를 갖고 있었던 만큼 일감 몰아주기로 인해 동광기연의 손실이 2년 간 100억 원대에 달한 것으로 추정했다. 반면 SH-INT와 SH-BP는 급격한 성장세를 보여 대비를 이뤘다. 그룹의 모태인 동광기연을 제물 삼아 유래형 회장의 아들이 소유한 기업을 키웠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금속노조는 지난 1월 26일 유래형 동광그룹 회장과 유승훈 SH글로벌 대표이사, 김 모 동광기연 대표이사를 업무상배임 혐의로 인천지방검찰청에 고발했다. 동광기연지회는 2월 2일 기자회견을 열고 유래형 회장 일가를 구속 수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동광기연지회 조합원 D씨는 “익산으로, 인천으로, 안산으로 뺑뺑이 돌 때는 몰랐는데 이제 그 이유를 알 것 같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또 다른 조합원은 “자식들한테 회사 물려주려고 62명 밥줄 끊은 유래형 회장은 구속돼야 마땅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규직 없는 회사 원했을까

동광기연지회 조합원 46명은 지난 1월 31일 안산에서 인천 계양구 SH글로벌 본사 앞으로 장소를 옮겨 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이들은 “유래형 일가가 원한 것은 정규직 노동자가 없는 회사를 아들에게 물려주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금속노조 인천지부 관계자는 “동광기연을 제외한 동광그룹 계열사의 생산부문에는 관리자 몇 명을 제외하면 정규직 노동자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2014년 익산으로 공장을 이전한 지 1년 만에 다시 인천으로 돌아온 배경에 대해 “동광기연지회가 SH글로벌 익산공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화 한 사실도 무관치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당시 지회 차원에서 불법파견에 관한 증거를 수집하는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유래형 일가가 그 동안 어쩔 수 없이 동광기연지회와 교섭을 해왔지만 동광기연이 그룹에서 유일한 정규직 사업장이라는 사실을 거슬려했다는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 총 세 차례에 걸쳐 노사가 고용보장 확약서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업체 매각 후 회사 측이 정규직으로의 고용승계를 거부한 사실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설 연휴를 앞두고 전 직원에 대한 ‘문자해고’로 촉발된 동광기연 기습 폐업 사건은 해고통보 철회 여부를 넘어 동광그룹 소유주 일가의 배임 논란으로 번졌다. 김완섭 지회장은 2월 8일 경찰에 출석해 참고인 조사를 마친 뒤 “이제 막 고발장이 접수된 단계라 더 지켜봐야겠지만, 유 회장 일가의 혐의가 워낙 짙은 만큼 긍정적 결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업무상배임에 관한 구체적인 혐의는 향후 검찰 조사를 통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회사 측이 노동조합과 했던 고용보장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데 따른 비판을 면하기는 어렵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