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 세력의 한국노총 길들이기
쿠데타 세력의 한국노총 길들이기
  • 오도엽 객원기자
  • 승인 2017.03.08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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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창당 등 시도…자주적 조직의 길은 요원
[왠 노동?] 다시 읽는 대한민국 노동조합의 발자취 ⑭

5.16 군사쿠데타 이후 한국노총의 출범에 맞선 김말룡 중심의 한국노련 저항이 좌절된 이야기를 지난 호에서 살폈다. 이규철 재건조직위원회 의장은 한국노총은 결성대회에서 개회사를 통해 “참신하고 민주적인 산업별조직체계 노동운동의 확립을 다짐”했다. 한국노총이 정말로 ‘참신’하고, ‘민주’적인 조직의 모습을 갖췄는지에 대해 1963년 민주노동당 창당 파동과 더불어 검토한다.

권력 앞에 재편된 노동조합
한국노총의 출범 선언을 보면 노동자의 자주적인 조직이 아님이 드러난다. 쿠데타 세력을 위해 노동조합을 동원하겠다는 의지가 분명하다. 쿠데타 세력에 대한 충성 서약이라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긴 설명 없이 선언문의 내용을 옮긴다.

 

백척간두에 놓인 국가의 운명을 바로잡고 심각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민족 대약진의 여명은 밝았다. 모든 부패와 구악을 일소하고 국가민족의 번영을 기약하는 군사혁명의 성스러운 봉화를 선두로 우리들 노동자는 견고한 단결과 피 끓는 동지애로서 민주주의 원칙하에 산업부흥의 주도성을 확보하고 국가재건에 전력을 다하여 근로대중의 복지사회건설을 이룩하고자 한다. 이 나라 온 국민의 주시와 관심 속에 우리들 노동자는 견고한 동지적 결합체인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을 결성하여 국가재건의 선두에서 사회정의 구현의 역사적 제 일보를 내디디며 정치적·경제적 민주화 실천을 기하고 영원한 국가번영과 노동조합 발전에 매진할 것을 엄숙히 선언한다. 
▶ 1961년 한국노총 결성 <선언>

한국노총 강령

우리들은 반공체제를 강화하고 자주경제 확립으로 민주적 국토통일을 기한다.

우리들은 공고한 단결로 노동자의 기본권리를 수호하고 생활수준의 향상을 기한다.

우리들은 정치적 중립과 조합재정의 자립으로 민주노동운동의 발전을 기한다.

우리들은 노동자의 교육과 문화향상의 강력한 실천을 기한다.

우리들은 건전한 근로정신으로 국가산업의 발전을 기한다.

탱크를 밀고 내려온 세력 앞에서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항변할 수 있다. 누군가는 노동자 대중의 권익을 지켜야 할 것 아니냐고 목청을 돋울 수도 있다. 이렇게 살아남은 한국노총이 이후 어떤 발자취를 남겼는지를 살핀다면 당시의 ‘어쩔 수 없음’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가 의심되는 부분이 너무나도 많다. 이는 1960년대 이후 한국노동운동의 진행 과정을 살피면 고스란히 드러난다. 강령과 결의문을 참조하면 한국노총의 성격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여긴다.
참고로 한국노총 홈페이지에 실린 현재의 ‘선언’을 소개한다.

우리 노동자는 생산의 직접적 담당자이고 경제발전의 원동력이다. 또한 우리는 사회정의 실현의 선구자이고 평화의 강력한 옹호자이며 전진적 문화 창조의 주역이다.

우리 노동자는 자신에게 지워진 이 같은 역사적 사명을 충실하게 이행하기 위하여 장구한 시일에 걸쳐 조직적 통일을 바탕으로 자유, 민주 노동운동의 발전을 위해 줄기차게 매진해 왔으며 앞으로도 계속 힘찬 전진을 수행해 나갈 것이다.

우리는 전진과 창조와 개혁의 의지를 가다듬어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민주세력으로서의 책무를 실현하고 노동자의 기본권리 및 노동운동의 자주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형태의 부당한 지배나 간섭도 이를 극복하고 배격해 나갈 것이다.

또한 우리는 노동자의 정치, 사회, 경제적 지위향상과 번영된 민주복지사회의 건설 및 참된 사회 정의 실현을 위해 적극적인 투쟁을 전개할 것이며, 강력한 정치·사회적 세력으로서의 역량을 확고히 구축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노동자의 안전한 작업환경과 국민일반의 건강하고 쾌적한 생활환경을 지속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국민경제의 균형된 발전을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경주할 것이며, 대등성과 자율성, 참여와 창의에 기초한 민주적 노사관계의 확립과 생산민주화, 경영민주화 및 산업민주화의 완전한 실현을 위해 지속적인 운동을 전개할 것이다. 이와 동시에 우리는 국내외 민주적인 타 대중운동과의 유대를 깊게 하고, 국제노동운동과의 연대를 강화하여 평화적인 민족통일과 세계평화의 달성을 위해 적극적으로 공헌할 것이다.

이원보는 『한국노동운동사 100년의 기록』을 통해 당시 한국노총 성격을 알기 쉽게 정리했다.

“군사정권은 쿠데타와 함께 4월 혁명 후 밑으로부터 고양되었던 노동운동을 단절시켰다가 23개월 만에 부활시켰습니다. 노조 간부를 지명하여 자신이 정한 기준에 따라 위로부터 아래로의 하향식 방식으로 노동조합을 재조직하도록 지시하였던 거죠. 그 결과로 산별노조와 한국노총 체제가 출범했지만 노동조합은 권력에 의해 기초가 놓여진, 자주성·민주성이 결여된 태생적 한계를 지니게 됐습니다. 활동과정에서 보여준 노동조합 운동기조도 반공주의와 친정부, 노사협조주의에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한국노총 출범 결의문

1. 5.16군사혁명을 전폭지지하며 혁명과업완수에 총력을 경주한다.

1. 경제 5개년 계획의 현실적인 재검토와 철저한 실천을 요청한다.

1. 기간산업의 공유화와 확대재생산을 위하여 과감한 재투자를 요구한다.

1. 정부는 노동자의 최저임금제와 사회보장제도를 조속히 실시하라.

1. 정부는 부녀자 및 연소노동자의 보호정책을 강력히 실시하라.

1. 노동자의 임금수준향상과 노동조건개선을 위한 평화로운 단체교섭 및 단체협약권을 재확립한다.

1. 임금체계 및 형태의 정비와 과학적 노동기준의 확립을 주장한다.

1. 정부는 노동쟁의금지령을 즉시 해제하라.

1. 노동쟁의의 평화적 해결로써 산업평화 유지에 노력한다. 이러한 노력의 방법으로 경영협의회제도의 법제화를 주장한다.

1. 노동조합운동의 재정자립과 정치적 엄정중립을 확립한다.

1. 우리는 참신한 국민생활의 진작을 기하여 신생활운동의 선봉이 된다.

1. 백림사태에 대한 국제자유노련의 성명서와 서방진영의 강경정책을 전폭 지지한다.

1. 반공체제를 강화하고 민주적 국토통일을 위하여 총력을 경주한다.

1. 국제자유노련과 연대를 강화하여 우방노동단체와의 유대를 증진한다.

1. 한미 행정협정의 조속한 체결을 한·미 양정부에 강력히 요구한다.

민정이양 발맞춰 정당 건설?

한국노총의 친군사정권 편향에 대한 저항도 있었다. 소위 ‘민주노동당’ 창당 파동이다.

1963년부터 민간인의 정치활동이 허용됐다. 민정이양을 앞두고 박정희 쿠데타 세력이 군복을 벗고 권력을 잡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한국노총 간부 가운데는 강령에서 밝힌 ‘정치적 중립’이 지켜지고 있는가에 의문을 갖은 세력들이 있었다. 군사정권과 밀착되어 있는 상황에서 한국노총의 정치적 중립이란 무의미한 말이자 노동자의 이해와는 상충된 결과를 나을 뿐이었다.

앞장 선 이는 김정원 광산노조 위원장이다. 정당활동이 허용되었으니 이 기회에 노동자 중심의 정당을 창설해 노동조합 지지자들을 국회로 내보내 노총을 대변하자는 주장을 펼쳤다.

김정원은 1962년 말께부터 7개 산별노조 위원장들과 모임을 가지며 노동자 정당을 꾸리자는 데 뜻을 모았고, 그 결과로 ‘민주노동당 발기위원회’를 구성했다. 이들은 철도노조 출신인 이규철 한국노총 위원장에게도 노동자 정당의 필요성을 설득했다. 이규철은 이들의 제안을 완강히 거부했다. 그뿐만 아니라 발기위원들을 개별 설득하며 정당 결성 시도를 와해시키는 작업을 폈다. 군부의 주도로 설립한 한국노총이 공화당에 적극 결합하지 않고 또 다른 정당을 꾸린다는 것은 반역과 같았으리라.

민주노동당 추진 세력은 1963년 1월 11일 한국일보에 ‘가칭 민주노동당창당발기준비위원회' 취지문을 광고란에 발표하며 행보를 본격화했다. 안강수 운수노조, 이우복 연합노조, 조창화 전력노조, 남준현 금융노조, 조규동 체신노조, 박영성 화학노조, 최재준 해상노조 위원장이 김정원 광산노조 위원장과 함께 했다.

민주노동당 건설 추진은 한국노총 내부에서 서로 성명서를 주고 받으며 파동을 일으켰지만 사회적으로 큰 사건은 아니었다. 또한 진보와 보수, 혹은 좌우의 대립으로 보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당시 한국사회는 민정이양에 발맞춰 우후죽순처럼 정당 건설이 이루어졌다.

한국노총 민주노동당 창당, 군정당국에 파문

민주노동당 추진세력이 취지문을 통해 보면, ‘자유, 빵, 평화의 실현을 위하는 노동자의 집결체’가 민주노동당이며, ‘반공, 자유, 민주주의를 기초로 하는 사회정의의 구현과 복지국가의 건설’을 위해 창당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한국노총이 내세운 정치적 중립이 갖는 한계를 아래와 같이 지적했다.

한국노총이 정치적 중립을 견지하려 해도 자신의 정책과 요구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어느 당에 대한 충성을 반대급부로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엄연한 정치현실이라고 전제하고 정치구조 개혁에 있어서 “근로대중의 의사는 필연적으로 독립되고 그 주의 주장이 독자적으로 이루어 질 수 있는 체제로 바꾸어지는 것이 정도”라고 주장했다.

『한국노총 50년사』

민주노동당 창당에 나선 산별 위원장들은 한국노총이 군사정권이 잉태한 공화당을 통해 개인적 야욕을 채우려는 행태에 대해 반발했다. 당연한 반발일 것이다. 과거 자유당과 밀착했던 흑역사를 떠올릴 수밖에 없지 않는가. 김정원 광산노조 위원장의 주장을 좀 더 살피자. 한국노총이 군사정권과 얼마나 밀착되었는지를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유명무실·무명유실…… 난립한 단체

정치활동 허용 후 싹트기 시작한 정당·정치단체는 2.27 구 정치인 전면해제를 고비로 문자 그대로의 백가쟁명 - 벌써 난립의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비판을 받았던 정당법의 규제 속에서도 8일 현재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창당준위의 결성신고를 한 정당만도 13개 – 그중 민정·민주·공화당은 이미 법정요건인 44개를 훨씬 넘는 지구당준위를 결성 신고하였고 기독사회농민당 신흥당 등 무명(?)의 정당도 착착 지구당 결성을 서두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정당의 창당 준비는 30인 이상의 발기인만으로 가능하며 경남서부지방의 모 군내 사람들만으로 창당을 신고한 정당까지 있는 판.


새삼스럽게 노동조합의 정치적 중립의 전통을 확립하겠다고 분기한 것은 일시적인 감정이나 대내적인 파벌에서 연유한 것이 아니라 삼척동자도 아는 바와 같이 과거 집권당의 횡포 하에 발이 묶여 20만 조합원으로부터 수임 받은 임무를 저버리고 모당의 기간단체가 되어 허수아비 구실을 하였던 전철을 다시는 답습하지 말자 함이요, 둘째는 혁명 후 노동조합 체제의 이상이라고 할 수 있는 산업별노동조합제가 구현되어 겨우 기틀을 잡으려 하는 오늘 정당의 앞잡이가 되어 우왕좌왕하게 되면 모처럼 쌓아 올린 탑이 무너질 우려가 있으므로 노동운동의 독자성을 견지하자 함이요, 셋째는 의정단상에서 노동문제를 관철시킴에 있어서 어떤 정당과 정치적 흥정으로 결국 노동조합을 팔게 되는 의타적 추태를 배제하고 우리들의 문제는 우리들의 실력으로 해결하겠다는 노동운동의 자주성을 확립하자는 데 있다. [가운데 줄임] 정치욕에 눈이 먼 정객들 사이에는 아직도 노동조합을 건실하게 육성시킴으로써 우리나라 경제부문에 얼마나 이득을 가져오며 민주주의 실현에 얼마나 긴요하다는 것을 인식치 못하고 무조건 자기의 발이 되고 손이 되어 주기를 강요하는 어리석음이 정계를 만보하는 사례가 없지 않으니 가소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현 노총은 지금이라도 일실하지 말고 이러한 정객들과 손을 끊고 본연의 자세로 돌아와 단결을 유일한 생명으로 하며 실력으로 여기는 노동조합운동에 금이 안 가도록 개과해야 할 것이다.
▶ <한국노총의 정치적 중립성을 요구하는 성명서> 1963.2.1

민주노동당의 태동과 유산

김정원은 훗날 이 창당작업이 실패한 것은 계엄하에서 자라온 나이 어린 조직으로 자율성이 갖추어지지 못했으며 어떠한 압력이 가해질 경우라도 끝까지 강력히 관철해 나갈 수 있는 각자의 태세가 갖추어져 있는지에 대해 자체점검이 없이 서둘렀고 독자적인 정당을 유지해 나갈 수 있는 재정이 갖추어지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인재가 없었던 데 그 원인이 있다고 술회하였다.

한국노총 내 산별노조 위원장들의 민주노동당 결성 시도는 군정당국에 파문을 일으켰다. 자유당 시절처럼 행동대와 돌격대 노릇을 바랐던 한국노총이 새로운 정당이라니! 이규철 위원장은 민주노동당 추진 세력에 대해 회유와 협박을 했다. 결국 김정원을 제외한 산별위원장들은 민주노동당 창당에서 한 발 물러선다. 자신들이 내세웠던 발기 취지문도 부정했다. 이들은 김정원이 중심이 된 위의 <한국노총의 정치적 중립성을 요구하는 성명서>에 대한 반박 성명을 채택하고, “앞으로 몰지각한 분파행동자의 책동을 분쇄하고 노총 기빨 아래 강력히 단결하여 매진할 것”을 천명한다.

첫째, 해該성명서는 김정원동지의 개인적인 행위로서 본인 등은 하등 주지한 사실조차 없으며 따라서 이는 전국산별노동조합 위원장의 명의를 도용한 행위라고 규정하는 바이다.

둘째, ‘어떤 정당과 정치적 흥정으로 결국 노동조합을 팔게 되는……’ 운운한 해該 성명서의 내용은 전혀 사실무근 한 모략행위로서 이는 조직적인 분열을 책동하는 행위라고 단정하는 바이다.
셋째, 1963년 1월 5일자 노총중앙위원회의 결의와 1월 7일자 노총담화문으로서 이미 천명한 바와 같이 우리는 강령에 표방된 엄정중립주의에 입각하여 자주성을 견지하며 정당을 초월한 독자적인 위치에서 활동하려는 우리의 행동노선에는 하등의 변동이 없음을 재확인한다.
▶ <정치중립요구 성명에 대한 반박성명서> 1963.2.4

한국노총은 1963년 2월 16일 김정원에 대해 무기정권 처분을 내렸다. 결국 민주노동당 추진은 김정원 광산노조 위원장의 고립을 초래했고, 창당 활동도 흐지부지 마감하고 만다.

무기정권 처분을 받은 김정원은 1963년 9월 23일에 열린 광산노조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얻으며 위원장에 재선됐다. 한국노총의 징계가 무의미하게 된 것이다. 결국 한국노총은 김정원에 대한 무기정권을 해제할 수밖에 없었다.

김정원은 ‘민주노동당의 태동과 유산’이라는 글을 통해 당시 상황을 기록하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