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버려 남을 행복하게 하는 사람들
나를 버려 남을 행복하게 하는 사람들
  • 김경아 기자
  • 승인 2006.1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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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룸메이드의 빛과 그림자

▲ ⓒ 김창기 기자 ckkim@laborplus.co.kr
제법 찬 기운이 느껴지는 10월의 저녁, 팔짱을 끼고 다니는 연인들이 드문드문 눈에 들어오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앞에 낯선 풍경이 펼쳐진다. 어둑어둑해지면서 호텔 앞 좁은 인도에 줄지어 앉아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내 거리에 작은 집회장이 마련되고 노래가 울려 퍼지면서 사람들은 삼삼오오 어깨동무를 한다.

이날 진행된 행사의 제목은 ‘롯데호텔 룸메이드 전원고용승계를 염원하는 거리문화제’. 시간이 지날수록 퇴근 후 삼삼오오 합류하는 ‘엄마’들이 늘어났다. “얼른 들어가서 밥하기도 바쁜데 우리가 왜 여기 이러고 있겠어요?”라는 한 룸메이드의 목 메인 항변이 이들의 절박함을 대변했다.

제대로 일하기 위해 노조 필요했다
2000년을 전후해 호텔업계에 경영 효율화라는 이름으로 아웃소싱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객실관리부의 하나인 룸메이드도 예외일 수 없었다. 잠실 롯데호텔의 경우 룸메이드 관리를 용역업체로 넘긴지 4년이 넘었다.

그전에도 물론 정규직은 아니었다. 롯데호텔이 직접 고용한 계약직 형태로 일했지만 복리후생비 명목으로 1년에 50만원 정도는 받을 수 있었고 OT(오버타임 형식의 야근) 수당을 정식으로 받아 좀 더 일하면 한 달에 100만원 가량은 거뜬히 벌 수 있었다.

하지만 룸메이드 업무가 용역업체로 아웃소싱 되면서 한 달에 받는 급여는 60~70만원까지 떨어졌다. 그나마 얼마 되지 않는 복리후생비조차 제대로 받을 수 없는 것은 물론 OT근무 또한 여의치 않아졌다. 매일 출근에서 퇴근까지 하는 업무는 조금도 변함이 없지만 급여는 점점 바닥을 치며 떨어지고 있었다. 잠실 롯데호텔 룸메이드로 일하다가 용역업체 변경에 따른 고용승계가 이뤄지지 않아 사실상 해고를 당한 허장휘(38)씨는 노조를 만들게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한달에 70만원 받아서 살 수가 있겠냐구요. 거기다가 예전에는 1년씩이라도 계약했지, 요즘은 3개월마다 재계약을 해야 한다고. 밥줄이 3개월마다 왔다 갔다 하는데 불안해서 살 수가 있겠어요? 룸메이드 중에는 여성 가장들이 유독 많거든요. 그러니 억울한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서 우릴 도와줄 사람을 찾았어요. 그리고 노조를 만들었죠.”

현재 잠실 롯데호텔에서 일하던 7명의 룸메이드는 사실상 해고상태이다.
지난 4년간 잠실 롯데호텔에서 아웃소싱 업체로 선정된 ‘골든캐슬’이 룸메이드를 고용, 관리해오다 노조 설립에 대해 책임지고 물러나면서 용역업체도 변경됐다. 이 과정에서 노조 활동에 적극적이었던 사람이나 간부 7명은 다른 업종으로 대기발령이 난 상태이다.

“저는 지금 골든캐슬이 관리하는 빌딩의 공공구역 청소로 대기발령이 난 상태예요. 그러니까 건물 청소하는 일이죠. 고의적인 면이 있겠죠. 하지만 단면만 보자면 호텔 룸메이드에 대한 전문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처사입니다. 회사는 룸메이드를 단순청소 업무로 보는 모양인데, 룸메이드는 그렇게 단순한 업무만이 아닙니다.”

매일 잠실 롯데호텔 앞에서 일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허 씨는 룸메이드 업무는 숙련이 필요한 전문직임을 강조했다.

3년차 까지 신입, “체력은 기본, 숙련은 필수”
객실 하나에 짧게는 40분, 길면 1시간 30분 소요, 하루 담당하는 객실은 12개. 룸메이드들의 카트에 들어가는 비품만 140여 가지. 물론 종류로만 세서 140여 가지이고 개수까지 헤아려 보면 더 어마어마하다.

자신이 맡은 객실을 일사분란하게 정리할 수 있는 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보통 룸메이드로 실전에 투입되기 전에 3개월가량의 집중교육이 필요할 뿐 아니라 6개월까지는 숙련된 룸메이드와 함께 다니며 일한다.

룸메이드는 객실 정리는 물론이고 객실에 투숙하면서 볼 수 있는 차 티백이며 비누 등 사소한 비품에서부터 가습기나 다리미 등 고객이 따로 주문한 내용까지도 모두 책임지고 담당해야 한다. 그렇다보니 룸메이드의 업무숙련도는 고스란히 고객에게 영향을 준다. 그러니 객실파악은 물론 호텔시스템까지 완벽히 파악할 때까지는 ‘선배 룸메이드’와 함께 일하도록 하는 조치는 당연한 일이다.

지난 19일 롯데호텔 앞에서 있었던 문화제에서 만난 룸메이드 김 모씨는 “우리는 3년까지는 신입이라고 얘기해요. 그 전에는 정신없거든. 보통 사람들이나 호텔관계자조차도 우리 일을 단순 업무 취급하는데, 그건 몰라서 하는 일이에요. 제대로 된 교육 없이 사람 투입하면 절대 못하거든. 우린 우리 일이 전문직이라고 생각해요.”라며 답답해했다.

“보통 서비스업이랑은 좀 달라요. 서울 중심가에 있는 호텔을 찾는 손님들은 대개 업무상 묵고 있는 외국 손님도 많고. 고객을 맞이하는 자세도 다르고. 간단한 영어회화 정도는 기본이고 호텔 내 시설이나 이용방법은 쫙 꾀고 있어야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있어요.”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일하고 있는 이 모씨의 말 속에서는 고단함보다 자부심이 먼저 배어나온다.

▲ ⓒ 김창기 기자 ckkim@laborplus.co.kr
나를 버려 고객을 행복하게 하는 사람들
감정노동을 하는 서비스직의 공통점이 있다면 스스로의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낼 수 없다는 것이다. 룸메이드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어느 손님을 만나느냐에 따라 하루가 달라진다. 일단 자신의 구역으로 올라가면 그때부터는 ‘나는 내가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룸메이드의 경우 직접 고객과 부딪히는 일이 거의 없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기도 하지만 고객이 객실에 있는 시간을 피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도 있다.

때로 센스 있게 잠시 자리를 피해주는 손님도 있지만 의자에 앉아 ‘발만 살짝 들어주는 센스’를 발휘하는 손님도 있다고 한다. 제일 곤혹스러울 때는 손님이 있는 객실의 욕실청소 할 때라고 허장휘 씨는 말한다.

“욕조 안을 닦으려면 어쩔 수 없이 허리를 숙여야 하는데, 우리끼리 가끔 허리 구부리면 치마가 어디까지 올라가나 봐주기도 해요. 이것저것 신경 쓰이는 게 많죠.”

고객의 가장 사적인 공간인 객실에서 일하다보면 가끔 여성으로서의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고, 고객과의 마찰에서 비롯되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체크아웃한 객실에 들어가 전 손님의 흔적을 깨끗이 지우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룸메이드의 일상은 가끔 고객카드에 적힌 ‘불편 없이 지내게 해줘 고맙다’는 메시지에 한결 가벼워지기도 한다.

▲ ⓒ 김창기 기자 ckkim@laborplus.co.kr

붉은 부황자국, 고단한 일상이 만든 도장
이들이 가장 힘들면서도 보람을 느낄 때는 ‘폭탄방’을 정리할 때다.
소위 ‘폭탄방’은 이보다 더 지저분할 순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어질러진 객실을 이른다. 이런 객실은 치우는 데 1시간 이상 소요되고 힘도 배 이상 든다. 그렇지만 폭탄방을 들어설 때의 ‘참담함’만큼이나 깨끗해진 객실을 돌아보고 가는 일은 마음이 깨끗해질 만큼 뿌듯함을 느끼게 한단다.

이들이 가장 힘들면서도 보람을 느낄 때는 ‘폭탄방’을 정리할 때다. 소위 ‘폭탄방’은 이보다 더 지저분할 순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어질러진 객실을 이른다. 이런 객실은 치우는 데 1시간 이상 소요되고 힘도 배 이상 든다. 그렇지만 폭탄방을 들어설 때의 ‘참담함’만큼이나 깨끗해진 객실을 돌아보고 가는 일은 마음이 깨끗해질 만큼 뿌듯함을 느끼게 한단다.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일하는 김 모씨는 “폭탄방을 들어설 때 답답함이야 말해 뭣하겠어요. 그래도 우리가 호텔에서 제일 중요한 일을 하고 있구나, 생각하니까 부지런히 또 일하는 거죠”라고 말하고 “호텔 관리직들이 ‘체험 삶의 현장’ 같은 것 좀 해봤으면 좋겠어요. 해보기 전에는 우리 일이 얼마나 힘든지, 또 중요한 일인지 모른다니까”라며 손사래를 친다.

“샤워할 때보면 다들 등에 시뻘겋게 부황 뜬 자국들이 있어요. 다들 보면서 깔깔거리고 웃고 말죠.” 잠실 롯데호텔에서 일했던 허장휘(38)씨는 “관절염은 기본이고 어깨며 손가락 안 아픈 사람이 없어요. 거기다가 우리가 늘 신는 실내화가 워낙 불편해서 새끼발가락 안 튀어나온 사람이 없을 지경”이라고 털어 놓는다.

무거운 침대 매트리스를 들었다 놨다 하는 것은 기본이요, 쪼그리고 앉아 욕실 정리하고 거울이며 유리창 얼룩을 지우느라 잔뜩 힘을 주고 닦다보면 저녁이면 온몸이 안 쑤시는 곳이 없다. ‘뼈가 녹는다’는 표현은 룸메이드의 일상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남자들이 하는 일이었으면 우리를 이 지경이 되도록 놔뒀겠냐”는 소공동 롯데호텔 룸메이드 윤금옥 씨의 말 속에 호텔 룸메이드의 꽉 막힌 일상이 비춰진다.

호텔 룸메이드 24시간, 그것이 궁금하다!

호텔 룸메이드의 하루는 점심시간 한 시간 챙길 여유도 없다. 담당 객실 고객의 주문사항을 처리하는 것은 물론 비상구, 복도 청소도 룸메이드의 몫이다.
8시에 출근해 사무실에 모여 그날의 지시사항이나 객실상황 등을 점검하고 각자 구역으로 올라가면 9시 가까이 된다. 이때부터 머릿속에는 ‘하루 지도’가 뜬다.

재실, 체크아웃방, 빈 객실 등 각 객실마다의 상황을 파악하고 일할 순서를 정한다. ‘○○○호 커튼은 어제 세탁했으니 또 다음엔 언제 해야 하고, ○○○호 스탠드갓은 오늘 세탁하면 되겠다’라는 등 각 객실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관리해야 온전한 호텔급 서비스를 제공하는 셈이다. 생각해보면 열두 집 살림살이를 맡아서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침대 시트를 갈고 엑스트라 베드(여분의 침대)를 찾아 집어넣는 등 강도 높은 노동이 힘든 것도 사실이지만 때로 ‘머리에서 김이 날 정도’로 머릿속이 복잡해질 때도 있다. 한 번 찾았던 고객이 다시 호텔을 찾게 되면 하다못해 수건 개수까지 전과 똑같이 세팅하는 것도 룸메이드의 몫. 거기다 VIP고객이 호텔을 찾으면 그야말로 머릿속은 전쟁터가 된다. 뿐만 아니다. 나날이 객실에 들어가는 비품 수는 늘어만 간다.

또 고객이 객실에 대해 ‘컴플레인’을 걸어오면 결국 모든 책임은 룸메이드가 져야 한다. 신경 곤두세우며 객실 하나하나를 정리하고 점검하는 일은 피곤한 일이긴 하지만 객실 서비스가 자신들의 손에서 나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데서 이들의 자부심은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