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 최초의 간접 고용제도는 '위임 관리제'
조선업 최초의 간접 고용제도는 '위임 관리제'
  • 승인 2004.11.10 00:00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내하도급 도입에서 불법파견까지

조선업 최초의 간접 고용제도는


현재 사내 하도급의 사용 비중이 가장 높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 조선업 하도급 도입의 역사를 살펴보면 재밌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하도급→시정명령→합법도급화 또는 계약직화라는 오늘날의 행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 
지금 벌어지고 있는 불법파견 논란은 사내하도급 제도와 떨어져 있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사내하도급이라는 간접고용, 비정규직 채용 방식이 채택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조선업의 경우 1960년대부터 임시공, 사내하청공 등의 이름으로 비정규 노동자 사용이 있었지만 그 비율은 높지 않았다. 조선업에서 간접고용 방식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1973년경이다. 당시 국내 최대의 조선업체였던 현대중공업 홍보실이 발간한 ‘현대중공업사(史)’에 따르면 이 회사가 처음으로 간접고용방식을 도입한 것은 1973년 7월이다. 각 공정에서 뛰어난 조장들을 선발해 그들이 직접 노동자를 고용, 운영하도록 하고 ‘위임계약’(현재의 도급 계약에 해당)에 의해 보수를 지급하는 ‘위임관리제’가 이 때 처음으로 도입됐다.
이 제도에 의해 1974년 9월까지 용접, 조립 등 16개 분야에 있는 기능공들이 직접고용 노동자에서 사실상 하청 노동자로 전환됐다.


70년대에도 경기 위축 조절판
이 제도가 도입된 배경은 경기위축으로 인한 고용조정의 필요성에 있다. 현대중공업은 1974년 3월 일본 ‘재팬라인사’의 VLCC(초대형유조선) 2척을 끝으로 1974년 11월까지 단 한척의 선박도 수주하지 못했다. 8개월간의 ‘개점휴업’ 상태에서 회사는 임금부담을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위임관리제’는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모색됐다.

 

당시 노동부의 자료에 따르면 위임관리제 도입 이후 1974년 9월 24일 현재 현대조선소의 직영기능공은 4960명이었는데, 이 가운데 견습공은 1981명이었다. 이들 견습공은 위임관리제 도입으로 고용을 보장받을 수 없게 된데다 상여금, 퇴직금의 혜택도 없었다.


당시 이들 견습공은 형식상 일정 기간이 지나면 심사를 통해 정규직 노동자로의 재고용을 허용했는데, 한번에 심사를 통과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회사가 임금이 낮은 견습공 신분을 계속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 고의로 심사에서 탈락시켜 재교육 기간을 거치게 한다는 불만이 일었다. 결국 임금 및 복지 차별과 견습기간 등에 대한 불만이 공장점거와 생산거부라는 사태로 번졌다. 이 사건으로 노동자 20명이 구속됐다.


1974년 9월 25일 현대중공업은 주요 일간지 1면 하단에 견습공들의 공장점거 사태에 대한 해명 광고를 게재한다. <그림 참조>
이 광고에서 회사는 “위임관리제는 선진국형 인사관리제이며 인사관리상의 효율성 추구를 목적으로 추진되었다”는 입장을 밝힌다. 견습공들의 파업사태는 일단락되었지만 이로 인해 위임관리제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당시 신민당은 울산 현지로 내려가 실태조사를 벌여 국회에 보고서를 제출했고, 담당상임위인 보건사회위원회가 노동청장에게 위임관리제가 근로기준법 제8조의 ‘중간착취 금지 조항’을 위반한 것인지에 대해 질의했다.


노동청은 심사를 거쳐 현대중공업에 시정 명령을 내렸고, 이 일로 현대중공업에서 위임관리제도는 사라졌다. 1975년 이후 현대중공업은 위임관리 방식 대신 하도급업체를 설립해 노동자를 관리하는 방식을 선택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기존 일부 제조공정을 공장 외부에 있는 독립적 하도급 업체에 도급을 주던 외주하청과 구분하기 위해 내주하청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현재 조선업종에 널리 퍼져있는 사내하청제도는 이렇게 탄생했다.


위임관리→직영전환→사내하청 증가
1987년 노동자 대투쟁 과정에서 노동조합이 ‘사내하청 전원 직영화’를 요구하면서 일시적으로 사내하청 노동자가 사라졌다. 하지만 물량 수주량, 경기변동에 따라 우선적으로 해고의 대상이 되던 사내하청 노동자가 사라지자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이 위험에 처했다. 90년대 들어 경기의 부침 정도에 따라 조선업종에서도 노조와의 협의를 통해 사내하청 비율을 조금씩 늘려가기 시작했다.


한국조선공업협회의 집계에 따르면 1991년 주요조선소에서 정규직 노동자 대비 사내하청 노동자의 비중은 21.2%였다. 93년 이후 꾸준히 증가하던 사내하청노동자 비중은 2000년에는 71.7%에 달해서 10년 사이 세 배 이상 증가했다. IMF 경제 위기 상황 이후의 증가세는 더욱 뚜렷하다. 1999년 51.4%에서 2002년 71.7%로 1년 사이에 무려 20%나 뛰어 오른 것. <표>

 

이때 증가했던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경기 변동에 따라 인력 구조조정의 완충지대로 작용해 왔다.
조선업의 사내하도급 도입 역사를 살펴보면 1970년대부터 경기변동에 따른 고용의 유연성 확보 필요성이 제기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규모면에서 차이는 있지만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경기변동과 궤를 같이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