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생명 살리는 골든아워 사수
환자 생명 살리는 골든아워 사수
  • 이동희 기자
  • 승인 2017.04.14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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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현장 엿보기] 응급구조사의 노동 현장 엿보기

하루에도 수백 건, 전국 곳곳에서 사건, 사고가 발생한다. 하루 평균 250명의 사람들이 산업재해나 교통사고로 다치거나 죽는다. 사고 발생 직후 인명을 구조하기 위한 중요한 ‘1시간’. 이 ‘골든아워(golden hour)’를 지키기 위해 오늘도 밤낮없이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참여와혁신>에서 그들의 노동 현장을 살펴보았다.

ⓒ 분당서울대병원

1급 응급구조사 이강섭(가명) 의료기관에서 근무

응급구조사라는 직업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가?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부터 "응급구조사가 되어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고 싶다"라는 원대한 꿈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학에서 응급구조학과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응급구조사라는 직업이 있는지도 몰랐다.
학교에서 관련 수업을 듣고 선배들에게 많은 얘기를 듣게 되면서 응급구조사라는 직업에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공부가 쉽지 않더라. 시간은 흘러서 군대를 다녀오고 젊음을 즐기자는 마음으로 호주 워킹 홀리데이도 다녀왔다. 그렇게 한국에 돌아오니 내 나이 25살. 후회 없이 놀았으니 후회 없이 공부하자는 생각으로 1급 응급구조사 시험을 준비했다. 시험에 합격하고 지금은 당당히 응급구조사로 일하고 있다.

‘응급’에서 ‘구조’까지 긴급한 상황이 쉽게 떠오르는데 실제 일할 때도 그런가?

응급구조사의 주된 업무 중 하나가 심폐소생술인데, 심폐소생술을 할 때는 정말 의학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급박한 상황이 펼쳐진다. 심폐소생술 환자가 온다는 연락을 받으면 긴장된 상태로 환자를 기다린다. 환자가 도착하면 응급구조사와 간호사, 의사가 각자의 위치에서 맡은 역할을 하며 심폐소생술을 진행한다. 아직 경력은 얼마 되지 않지만 하루에도 기본 2~3명의 심폐소생술 환자가 있기에 이제는 숙달되어 있다.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들 때는 언제인가?

보통 병원에 가면 의사와 간호사만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응급구조사임을 밝히고 환자를 돌보면 “의사 데려와”, “간호사 데려와”하는 분들이 가끔 계신다. 그럴 때는 기운이 쏙 빠진다.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은 뒤지지 않는데 몰라주는 것 같아서 속상하다. 응급구조사라는 직업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할 때가 이때이다. 하지만 속상하다가도 환자들에게 “고맙습니다”라는 인사 한 마디면 서운한 마음이 싹 풀린다. 힘든 만큼 고맙다는 인사 한 마디가 너무나 큰 힘이 된다.

지금까지 일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첫 출근 날이다. 첫 출근이라 긴장한 것도 있지만, 우리의 작은 실수가 환자에게는 큰 위험이 될 수 있으니 실수하지 않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 와중에 한 환자가 병원으로 왔는데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10층에서 뛰어내린 환자였다. 안타깝게도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사망한 상태였고, 그때 해야 하는 일이 죽은 환자에 대한 외상 평가였다. 죽은 환자와 방에 단둘이 남아 죽은 환자를 직접 만져보면서 외상 평가를 해야 했는데 너무 무서웠던 기억이 난다.

ⓒ 정읍소방서

응급구조사가 되고 싶어 하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얼마 전에 모르는 사람에게서 SNS 메시지가 왔다. 확인해보니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이 되는 여학생이었다. SNS를 통해 내가 응급구조학과를 나온 응급구조사라는 걸 알고서 메시지를 보낸 것이었다. 응급구조사가 되기 위해 응급구조학과에 들어가고 싶은데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응급구조사가 많이 힘든 직업인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자세하게 묻더라. 나한테 이것저것 묻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면서 뭔가 알 수 없는 책임감과 사명감도 느껴지더라.

후배들에게 현실적으로 해주고 싶은 것은 체력관리를 열심히 하라고 조언해주고 싶다. 나름 운동으로 꾸준한 체력관리를 했음에도 막상 일을 시작하니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만큼 몸을 쓰는 직업이니 체력이 제일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어떤 응급구조사가 되고 싶은가?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응급구조사가 되고 싶다. 그게 내 직업이 가진 존재의 이유라고 생각한다. 지금 다니는 병원에 들어오기 위한 면접에서 면접관이 이런 질문을 했다. “인생에서 큰 고난과 역경을 겪었을 때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응급구조사 일을 해보니 왜 그 질문을 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그만큼 힘든 직업이니 이 일을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 나의 의지를 물어본 것 아니었을까.

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을 살리고 싶다는 생각과 의지는 여전하다. 이를 현실로 바꿀 수 있도록 많이 배우고 경험을 쌓고 싶다. 내가 있는 이 자리에서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의지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기 때문에 준비와 노력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