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의 역할을 고민하다
노인들의 역할을 고민하다
  • 김민경 기자
  • 승인 2017.04.14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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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세대 위한 공적부조 확대, 모든 세대를 위한 일
[인터뷰] 김선태 노년유니온 위원장

‘어른다운 어른의 모습을 보이는 것’. 한국의 두 번째 세대별 노동조합인 노년유니온의 최종 목표이다. 노조로서 공식 활동을 시작한지 4년째 접어든 노년유니온은 이 때문에 노조활동에 도움이 되는 상급단체에도 가입하지 않고, 노년세대의 사회활동을 돕는 다양한 방법을 고민해 왔다. 이와 함께 노인세대를 위한 공적 부조 확대의 필요성을 알리는 활동을 노조설립 당시부터 지금까지 집중적으로 이어오고 있다.

세계에서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고령화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노인세대의 노동문제를 앞장서 말하는 김선태(75세) 노년유니온 위원장을 만났다.

▲ 김선태 노년유니온 위원장

노년유니온 소개를 부탁한다.

만 55세 이상이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세대별 노동조합이다. 설립 당시 조합원 수는 150여 명이었다. 현재는 정조합원 500명과 요양사분과 30명, 고물상연합 300명으로 830여 명이다. 조합원 대부분이 65세 이상으로, 기초연금을 받는 사람들이 많다.

기초연금은 국가가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 하위 70%에게 월 20만원을 주는 제도다. 평생 국가의 발전과 자녀들 양육에 헌신하느라 자신의 노후를 대비할 겨를이 없었던 노인들의 생활 안정에 도움을 주고자 마련됐다.

노년유니온 설립 계기는?

종로구의 노인일자리 사업을 위탁 운영하는 종로시니어클럽 관장이던 최자웅 신부님이 ‘시니어주니어유니온’을 조직하여 첫 기틀을 잡았다. 최 신부님이 노년세대를 위해 교섭권한을 가지는 단체를 만들 필요성을 느껴 설립논의가 시작됐다. 최 신부님의 위원장직 제안을 받고 고민 끝에 맡게 됐다. 퇴직나이 전까지 초등학교 교장이었다.

노동조합과 인연 없이 살았고, 국가에서 나오는 연금이 있어서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도 없었다. 그런데 가르치던 제자들 다수가 퇴직 후 소득절벽으로 ‘시니어보릿고개’를 겪는 것을 보고 걱정을 하던 시기와 맞물렸다. 다양한 노인 일자리 사업을 추진하고자 위원장을 맡았다.

시니어보릿고개’란?

6ㆍ25전쟁 이후에 태어나서 어린 시절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굶주리며 보릿고개를 경험한 세대가, 노후에 소득절벽으로 또 한 번의 보릿고개를 경험하는 현상을 표현한 단어다. 개인적으로 만든 말이다. 주로 베이비부머 세대가 여기에 해당된다. 소득은 절벽인데 자신들의 노후대비는커녕 자녀의 대학 등록금을 대고, 부모세대를 봉양하느라 경제적 어려움에 내몰린다. 제2의 보릿고개를 겪는 셈이다.

조합원들은 주로 어떤 일을 하고 있나?

노동시장에서 한번 떠밀려나온 이들이 다수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절실하게 일자리를 찾는 분들이 많다. 시·구청 또는 복지관에서 추진하는 노인일자리 사업을 통해 일한다. 노년유니온 안에 은평구 일대에서 요양사로 일하는 분들과 폐지를 모으는 고물상연합도 있다.

이는 현재 노년유니온 아래 분과로 볼 수 있는 집단이다. 요양사분과는 200명 정도 모집이 돼 있다. 그러나 실질적인 활동부분에 고민이 있어서 모두를 조합원으로 받지는 못했다. 고물상연합도 마찬가지다. 앞으로는 노년유니온 안에 분과를 확대해 나가려고 한다. 노년세대들이 하는 일에 따라 따로 개별 노동조합을 만들려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쉽지 않다. 노년유니온의 ‘○○분과’라는 이름으로 활동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보다 큰 조직의 이름으로 활동하면 소홀히 대하지 않는다. 실제로 노년유니온에 가입한 요양사들은 작년 12월 구청과 직접 교섭을 진행하기도 했다.

노년유니온 활동에 도움을 주는 상급단체를 따로 두지 않는 이유는?

특정 단체에 소속되는 것을 피한다. 최소한 어느 노인단체처럼 욕먹는 노인들이 되지 말자는 것이 노년유니온의 가장 큰 모토이다. ‘어른다운 어른’으로 살기 위해서 노년세대에 오롯이 집중하고, 자체적인 활동에 주력해왔다.

노년유니온 설립 초기에는 기존의 노동조합에서 활동했던 조합원들도 많았다. 조직을 강화하는데 큰 도움을 받았지만, 이내 문제가 생겼다.

그들이 노년유니온을 투쟁적인 직장노조의 운영방식으로 끌고 가려고 했기 때문이다. 노년유니온은 하나의 직장을 중심으로 결집하고 활동하는 기존의 보편화된 직장노조가 아니다. 세대별 노조인 노년유니온에 직장노조 개념을 적용하면 많은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몇 시까지 회의에 참여해야하고, 이를 몇 번 어길 시 제명하는 등의 규칙이 한 예이다.

안정된 일자리에서 밀려난 한국사회의 노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활동의 최소 범위를 정하고 그에 따라 운영하겠다고 했더니, 노조 활동을 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나갔다. 그들로 부터 노조가 어떻게 움직이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하는지 많은 정보를 얻었지만 붙잡지 않았다. 현재 노년유니온의 대부분은 이전에 노조경험이 없는 이들이다.

양대 노총 아래에도 각각 노년세대가 있다. 이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던데?

노년세대를 모은 노조를 만든 건 우리가 최초이다. 이후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산하에 노후희망유니온과 시니어노조가 각각 생겼다. 두 노조는 주로 양대 노총에서 활동을 하다가 나이 때문에 나오게 된 사람들이 만들었다. 그들에게 세대별 노조는 ‘제2의 노조’다. 그들은 양대 노총의 정신을 유지하는 사람들이다. 두 노조 위원장의 이 취임식이 열리면 찾아가 축하해주지만, 노년유니온과 연합은 어렵다. 노인들이 겪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 목소리를 내는 경우에는 함께 활동하는 경우는 있다.

고물상연합에 속한 이들은 어떤 어려움 호소하나?

한국 사회에서 가장 많은 노년세대가 하는 일이 폐품, 폐지 수집이다. 그런데 동네 재활용품처리장이 폐기물 처리장으로 구분돼 문제다. 법적으로 분진을 낼 수 있는 혐오시설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교외나 주거지가 아닌 곳으로 옮겨 가야한다. 그러면 폐지를 모아 생계를 유지하는 노인들은 10~20km정도의 먼 곳까지 수레를 끌고 나가야하는 실정이다. 법적으로 폐기물 처리와 재활용 처리가 구분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년유니온은 고물상연합과 함께 정부세종청사의 관련 7개 부처를 돌아다니며 항의 시위를 했다. 아직까지 명확한 답변을 받지 못했다. 관련 법 개정 활동을 진행 중이다.

분과로 만들고 싶은, 관심을 두고 있는 쪽이 있다면?

학교 경비 일을 하는 분들을 품고 싶다. 교장으로 있으면서 경비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가까이서 봐왔다. 가장 큰 문제는 장시간 근무다. 한 경비원은 연휴가 5일이나 됐던 작년 추석연휴 학교에서 110시간을 넘게 머물며 학교를 지켰다. 그러나 임금은 법정근로시간에 따라 40시간(8시간* 5일)밖에 인정을 못 받는다. 이들의 근무환경도 열악하다. 학교 경비원 몇 분이 노년유니온 가입을 원했다. 하지만 환영할 수만은 없었다. 경비원과 학교 사이에 있는 인력송출회사가 있다.

회사가 노조가입을 문제 삼아 해고를 할 수 도 있는 상황이었다. 회사는 ‘당신 아니어도 할 사람은 많고 많다’는 식으로 갑질을 하고 있다.

학교 경비직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은?

적어도 두 사람을 고용해 적정시간마다 교대근무를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인력송출회사가 중간에서 수수료를 과다하게 떼어 가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그런데 낮은 처우 속에서도 일을 하려는 노인들이 줄을 섰다. 이런 현실에서 문제해결은 어렵다. 다만 학교 경비원들이 겪는 문제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형성되면,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논의가 시작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장시간 근무와 열악한 근무환경 등을 바꿔나가기 위한 제도가 마련되지 않겠나. 노년세대가 겪고 있는 다양한 노동현장의 문제를 떠드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그동안 어떤 활동을 했나?

노년세대의 공공부조를 확대하기 위한 활동을 중심으로 했다. 기초연금 대상에서 기초생활수급자(이하 수급자)가 제외되는 것을 문제 삼은 것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소득 하위 70%의 노인들을 위한 기초연금을 지급하면서 수급자는 제외했다. 이중지급이라는 이유였다. 가난한 노인을 위한 제도를 시행하면서 너무 가난하니까 대상이 안 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이 때문에 기초연금 대상에서 누락된 노인은 40만 명에 달한다.

기초연금이 발효될 때부터 ‘내가만든복지국가’,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세상을바꾸는복지사’ 등의 복지단체와 연대해 54개월 동안 문제를 제기했다. 길거리에서 서명운동을 하고 관련 토론회, 기자회견를 열었다. 해결의 기미도 보이지 않더니, 작년 총선을 기점으로 야당이 다수가 되니 변화가 생겼다. 현재 야 3당의 합의하에 국회에 수급자도 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제출된 상태다.

노인들의 빈곤율, 자살률 등의 통계 수치가 암울하다. 실제로 조합원들은 어떤 어려움을 호소하나?

노인이 되면 ▲경제적인 어려움 ▲건강 문제 ▲외로움과 고독 ▲할 일 없는 무료함 등 4가지 괴로움이 있다. 집에 있으면 4고(苦)가 다 겹친다. 한국의 노년정책에서 국민연금과 기초노령연금 등을 포함한 공공부조 비율은 20% 미만이다. 너무 낮다. 때문에 당장 생활비를 걱정해야하는 노인들이 많다. 경제적인 부분의 최소한의 어려움이 해소되면 노년세대는 활발히 사회 활동을 할 것이다. 집을 나서면 경제적인 문제를 제외한 3가지 괴로움은 저절로 해소된다. 규칙적으로 나가면 건강해지고, 사람들을 만나니 고독하지 않고, 할 일이 있으니 무료하지 않다. 국가는 노년세대를 위한 복지를 강화하고, 사회활동을 장려, 지원해야 한다.

노년세대를 위한 사회적 공적부조 확대를 요구하면 늙은이들이 욕심을 차린다고 말해버린다. 그런데 이는 오히려 20대가 중심이 돼서 말해야할 문제다. 20대가 노인세대가 되는 40년 후에 고령화문제는 지금보다 더 심화된다. 2015년 기준으로 세대별 인구를 10년 단위로 보면 각 세대가 100만 명씩 줄어든다.

저출산 문제가 획기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인구절벽으로 인하여 노인인구비가 높아지고 생산인구는 줄어드는 문제가 앞으로 심화될 것이다. 지금부터 전세대가 공공부조 확대 등의 노령사회 대책 마련을 위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이는 노인들이 나만 잘살자고 하는 주장이 아니다.

공적 부조는 어느 정도까지 확대돼야 하나?

기본적으로 사람답게 생활하려면 한국도 40%는 돼야한다고 본다. 북유럽 쪽은 공적 부조가 차지하는 비중이 국민 기본 소득의 50%까지 된다.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논의를 시작하고 노년세대를 위한 복지 비중을 단계적으로 높여가야 한다. 국가가 지금처럼 노인문제에 무관심하면 훗날 노인자살률이 3~4배로 뛰는 등 문제가 손쓸 수 없는 지경이 될 것이다. 당장 부담이 되더라도 노년세대의 빈곤문제를 완화하고,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한 예산은 차츰 늘려나가야 옳다. 노인은 ‘사회적 자본’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젊은 시절 하던 일과 관련된 노인 일자리, 사회활동을 연계해주는 국가의 역할도 강화돼야 한다.

노년유니온 활동의 목표는?

‘젊은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어른들이 되지 말자’, ‘어른다운 모습을 보이는 단체가 되자’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노인들을 위한 일자리 사업으로 ▲폐지노인들의 쉼터 ▲국가 조달물품 폐기물처리 전담반 운영 ▲마을역사찾기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에다도 신청을 해 둔 사업이다. 각 마을의 역사찾기. 노인들은 옛날 이야기를 안다. 홍제동 80년, 이런 식으로. 마을이 형성되고, 어떤 문화를 갖고 있으며, 어떤 이야기 거리가 있는지, 관공서 기록에서는 달랑 한 줄로 나온다. 사회적 자본으로 보면 된다. 외국도 마찬가지다. 옛날 이야기를 속속들이 아는 어르신 한 분이 돌아가시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진다. 런 사업들은 노인과 젊은이들이 연대할 수 있는 장이다.

마을역사찾기사업이란?

서울시에 제안해 둔 노인 일자리 사업안이다. 노인들은 각 마을에 얽힌 옛 이야기를 많이 안다. 이는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는 정보지만 이분들이 돌아가시면 함께 사라지고 만다. 현재 한국에서 마을역사는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다. 서울 서대문구의 홍제동을 예로 들면, ‘서울 시사’나 ‘시민을 위한 서울시 이야기’ 등의 자료를 뒤져도 마을에 대한 역사적 정보가 한 두 줄에 그친다.

어르신들은 그 자체로 사회적 자본이다. 마을 당 열 명 정도의 어르신들을 뽑아, 매달 마을 이야기를 발굴하고 정리해 후대에 남기는 것이 사업의 핵심이다. 이 활동은 노인세대가 가장 잘 해 낼 수 있다. 세계적으로 전례 없는 멋진 역사책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정보를 취합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젊은 세대를 참여시켜 노인과 젊은이들의 연대 사업으로 확대할 수도 있다.

노년유니온 활동 중 아쉬웠던 일은?

정부의 노인일자리사업에 참여하면 한 달에 30시간 정도 일하고, 20만 원을 받는다. 생계비라고 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에 이 문제를 제기했더니, ‘노인사회활동지원사업’이라고 이름을 바꿔 버렸다. 먹고 살 수 없는 일자리 사업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한 편법이다.

그것도 좋다. 이름을 바꿨으면, 일 하고 싶은 노인 누구에게나 참여할 기회를 줘야한다. 그런데 1년 정도 시행을 하더니 안 되겠는지 작년부터는 기초연금을 받는 사람으로 노인사회활동지원사업의 지원자 범위를 줄였다. 이제 노인사회활동지원사업이라고 부르면서 사회활동을 하고자 하는 노인들의 참여 기회를 박탈하는 모순을 만든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노인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근본적인 해법을 내놓아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