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 “직장협의회 결성 보장하라”
소방관 “직장협의회 결성 보장하라”
  • 김민경 기자
  • 승인 2017.04.14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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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우개선 위한 조직 내 의사소통 창구 절실
[리포트] 소방관 처우개선

 ‘두드림’. 2016년 국민안전처가 내놓은 소방관 소통 정책이다.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상대와 소통하기 위해 문을 두드린다’는 뜻을 담고 있다. 소방발전협의회에서 하위직(소방경 이하) 소방공무원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소통 창구를 설치해 달라고 건의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두드림’에 대한 일선소방관들의 평가는 냉담하다. 계급조직의 수직적 상하 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현장 목소리를 청취하고 바로 잡겠다는 취지도 무색해졌다. 하위직 소방관들이 어렵게 털어놓은 불만 사항이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박해근 전국소방발젼협의회(이하 소방발전협의회) 회장은 “두드림의 운영위원과 위원장을 주무부서에서 당연직으로 정해 정책을 추진하고 있어 하위직 소방관들의 의견이 무시되기 일쑤다”며 “이 같은 체제의 소통 창구는 ‘유명무실’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소방관 스스로 자신들의 근무환경 등 처우 개선을 협의할 수 있도록 직장협의회와 노동조합 설립이 반드시 허용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 소방직의 인력과 그에 따른 안전에 대한 문제제기를 위해 2014년 소방관들은 1인 시위를 진행했다. ⓒ 소방발전협의회

 ‘제복공무원’이라서 협의체 설립 불가

한국의 소방공무원은 ‘직장협의회’, ‘노동조합’ 등의 법적인 소통창구를 설립할 수 없다. ‘특정직 제복공무원’이라는 것이 이유다. 한국은 2006년부터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공무원노동조합의 설립과 활동을 허용했다. 그러나 공무원이라는 특성상 헌법에 보장된 국민기본권으로서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에 일정한 제약을 두고 있다.

직장협의회는 노동조합의 설립이 금지된 공무원들이 소속 기관장과 근무환경 개선과 고충처리 등을 협의할 수 있도록 각 기관별로 결성된 공무원 협의 단체를 일컫는 말이다. 1998년 제정된 ‘공무원 직장협의회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6급 이하의 하위직 공무원들이 만들 수 있다. 다만 소방공무원을 비롯한 경찰과 교원 등 특정직으로 분류되는 공무원들은 직장협의회 결성을 보장받지 못한다.

2015년 10월 임수경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정감사 과정에서 ‘소방공무원 직장협의회 가입 적절성 검토’를 요구한바 있다. 10년 넘는 기간 동안 직장협의회를 결성할 수 있도록 보장해 줄 것을 요구해온 소방공무원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하지만 국민안전처는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혔다. 당시 국민안전처가 임 의원에게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공익적 성격을 가진 소방공무원이 집단행동을 할 경우 국민들의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하위직 소방공무원의 대변단체인 직장협의회를 허용하면 상명하복에 의한 지휘체계에 혼란을 야기할 우려가 있다 ▲추후 노조 가입 허용 요구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어 군인 등 타 특정직공무원과의 형평성을 고려해야 한다 등이 주요 이유였다.

ILO “한국, 소방관 결사의 자유 보장해야”

한국의 전체 소방공무원은 4만 3,510명(2016년 12월 기준)이다. 소방공무원 중 소방경 이하는 전체 정원의 97%(4만 2,075명)로, 이들은 관련 현행법에서 협의체 및 노동조합 가입이 허용된 6급 이하 공무원이다. 소방관이라는 직업의 특성상 조직 내 협의체를 구성하지 못하는 것은 세계 보편적인 논리일까.

국제노동기구(이하 ILO)의 의견은 다르다. ILO는 한국 정부에 ▲2006년 3월 제295차 이사회 ▲2007년 6월 제346차 이사회 ▲2009년 9월 제304차 이사회 등 총 3차례에 걸쳐 소방관의 단결권을 보장하라고 권고했다. 한국은 1991년 ILO의 152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현재 국회에는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작년에 대표 발의 한 ‘공무원 직장협의회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법률안’이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심사를 앞두고 있다. 진 의원의 개정안의 핵심내용은 소방경 이하 소방공무원이 직장협의회 설립을 가능토록 한 것이다. 또 소방령 이하의 소방공무원에게 ‘단결권’을 허용해야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지난 1월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법률안’도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이 같은 분위기에 야권의 유력 대선 후보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힘을 실어줬다. 문 전 대표는 지난 1월 “소방 공무원과 경찰 공무원들을 노동자라고 주장하기는 조금 이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적어도 직장협의회 정도는 결성할 수 있어야 한다”며 대통령이 되면 소방공무원의 직장협의회 구성을 허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소방관의 안전은 바로 국민의 안전

소방관들의 건강이 위협받으면 국민들의 생명을 지킬 수 없다. 소방관의 안전이 곧 국민의 안전이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가 2015년 실시한 ‘소방공무원의 인권상황 실태 조사’에 따르면 소방공무원들은 수면장애, 우울·불안장애 등 심리질환과 청력문제에서 일반근로자집단에 비해 높은 유병률을 보이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5년 동안 소방관 27명이 순직하고, 336명이 업무 중 다쳤다.

더 심각한 문제는 같은 기간 자살한 소방공무원이 41명으로 순직자보다 많다는 것이다. 지난해 박남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소방공무원 4,360명을 대상으로 ‘소방공무원 외상후스트레스장애(이하 PTSD) 진단 현황 및 사업만족도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에 따르면, 화재나 구급출동 현장에서 심각한 외상사건을 목격한 경험이 있는 소방관은 76%를 차지했고, PTSD 판정을 받았거나 관련 증상을 보이는 소방관은 27%(1,151명)에 달했다. 반면 ‘소방공무원 심신건강관리 사업’을 이용자 중 도움이 안 됐다고 답한 소방관은 75%으로 사업의 효과에 의문이 제기됐다.

이에 박남춘 의원은 “트라우마를 견디고 다시 현장으로 출동해야하는 소방관들에게 PTSD 관리와 치유는 매우 중요한 일”이라며 “해당 사업에 대한 소방관들이 만족도가 아주 낮은 것으로 밝혀졌지만 사업을 실행하는 국민안전처는 대책 없이 참여만을 강요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안전처가 소방관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수요자 중심의 심신건강관리 사업을 운영해야한다는 지적이다.

소방관 78%가 원하는 ‘당-비-비’ 체제

소방기관은 24시간 대응체제를 갖춰야 한다. 때문에 대다수가 불가피하게 교대근무를 한다. 주기적으로 주간근로와 야간근로를 반복하는 교대근무는 생체리듬에 혼란을 줘 신체 기능을 떨뜨리는 원인이 된다. 수면장애, 호르몬 분비 이상과 사회적 관계 약화로 인한 우울증, 불안장애 등이 교대근무로 발생하는 대표적인 건강문제다.

박해근 소방발전협의회 회장은 “‘당-비-비(3조1교대, 당번-비번-비번)’ 전환은 예산도, 인력충원도 필요 없이 소방관들의 근무여건을 개선하는 방법”이라며 “국민안전처 소방본부는 작년 12월말까지 ‘당-비-비’로 근무체계 전환하겠다는 해놓고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국가직인 고위 소방본부장들이 인사권을 쥐고 있는 국민안전처 중앙소방본부의 눈치를 본는 실정이다”고 비판했다.

현장업무를 하는 소방교대근무자는 약 3만2,000명이다. 이중 4조교대제로 근무하는 중앙소방본부 소방상황센터를 제외한 대부분이 3조교대제로 일한다. 11개 시도는 21주기, 3개 시도는 9주기, 4개 시도는 6주기 등으 근무체계로 운영된다. 소방관의 78%가 원하는 근무 방식으로 조사된 것이 바로 ‘당-비-비’다. 이는 24시간 근무 후 48시간을 쉬는 근무방식이다. 단시간 근무 후 교대와 장비를 점검하는 등의 시간 낭비를 줄이고, 원거리 출퇴근 자의 경우 통근시간을 절약해 업무연속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이 소방관들이 선호하는 이유이다.

국민안전처는 지난 2월에서야 당-비-비 교대 근무에 대한 운영지침을 각 시·도에 전달했다. 1일 출동 건수 기준에 따라 당-비-비 운영이 가능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으로 나누고, 도입이 가능한 곳에 ▲출동건수와 피로도의 상관관계 ▲성별 선호도 ▲조직관리차원 등을 고려해 시ㆍ도 본부장이 근무 방식을 운영을 결정하도록 했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일선 소방관은 “소방공무원은 화재진압 외에도 119구조대와 구급대, 현장 지휘대, 화재 조사팀 등 다양한 분야로 나뉜다”며 “맡은 업무에 따라 당-비-비 도입을 원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 소방발전협의회 소속 소방관은 “당-비-비는 교대 후 장시간의 휴식이 보장돼 3조 교대제를 시행하는 선진국의 주된 근무방식”이라며 “소방본부가 소방관 다수가 요구하는 근무방식의 전면적 실시를 외면하고 시·도 본부장 개개인의 판단 문제로 떠넘겼다”고 말했다. 한편 현행 소방관의 근무 규칙에는 ‘3조2교대’가 ‘원칙’으로 명시돼 있어 당-비-비 운영이 더 적합한 곳에서도 본부장이 이를 방패삼아 시행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시·도별 제각각 예산에 만성 인력 부족

법정근로시간 또는 공무원정규근무시간은 주 40시간이다. 이에 준하는 교대근무는 4조교대제로 ‘주간-야간-비번-휴무’이다. 그러나 지방직 공무원으로 각 시도 별 예산과 운영지침에 따라 운영되는 소방직의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때문에 3조교대제가 주류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방관들은 2014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1인 시위를 했다. 방화복을 입었지만 손에는 소방호스 대신 피켓을 들고, 지방직인 소방관의 국가직 전환을 촉구했다. 화재현장에서 필수인 안전장갑이 충분히 지급되지 않는 것이 시위를 촉발한 사건이었지만, 핵심은 지방자치단체에 소속돼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소방직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소방관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참사 이후 논란 끝에 소방방재청은 해체됐다. 소방직은 국민안전처 산하로 편입돼 소방관의 국가직 전환은 무기한 연장됐다.

다행스러운 점은 이후 소방관들의 개인안전장비 등의 부족 문제는 개선됐다는 점이다. 담배값 인상과 함께 담배에 부과되는 개별소비세의 20%가 소방안전교부세로 신설된 것이 계기였다. 각 시도에 추가 예산이 배정돼 소방관 보호장비를 충분히 지급하는 문제는 해결됐다.

박 회장은 “소방관의 국가직 전환이 소방조직과 소방관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것처럼 화석화되어 가고 있지만 핵심은 예산이다”며 “실질적인 문제는 소방관의 신분(국가직, 지방직)이 아니나 예산이 제대로 지원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항상 안전하십시오” 하위직 소방관들이 평상시에 주고받는 인사말이다. 국가의 명을 받아 국민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소방관들은 자신들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 ‘두드림’같은 형식적인 소통정책이 아닌 직장협의회 설립 보장을 원하고 있다.

오영환 소방관은 3년 전 소방관들의 1인 시위를 회상하며 “소방관의 권리를 높이기 위함이 아니다, 국민 모두가 평등하게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소방공무원이 국가직으로 전환된다고 해서 급여가 올라가지 않는다. 소방관들이 스스로의 안위와 권리를 위해 시위에 나섰다면 그토록 당당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한편 문 전 대표는 “소방 공무원이 지방공무원으로 돼 있으니 처우가 지방 정부마다 제각각이고 소방 공무원 한 명당 감당할 주민 수도 다르다"며 지방직 소방관들을 국가직 공무원으로 전환하고 처우를 개선하겠다고 지난 1월 약속했다. 국민의 안전과 직결돼 있는 소방관들의 근무여건과 안전을 지켜줄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대책이 현실화될 수 있길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