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마다 투표권 보장 외치는 건설노동자
선거철마다 투표권 보장 외치는 건설노동자
  • 김민경 기자
  • 승인 2017.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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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시간 연장선거일 유급휴일 촉구
[리포트] 건설노동자 투표권

“꼭 투표할 겁니다. 다행히 이번 대통령 선거는 오후 8시까지더라고요” 서울의 한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50대 건설노동자 A씨의 말이다.

오는 5월 9일 치러질 대선은 ‘보궐’선거다. 헌법재판소의 탄핵결정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5년 임기를 채우지 못해 예정보다 이른 대선을 치른다. 그가 ‘다행’이라고 한 까닭은 여기에 있다. 현행 선거는 오전 6시에서 오후 6시까지 진행되지만, 보궐선거는 예외다. 투표 종료시간을 2시간 연장한다.

건설현장에서는 휴일 구분 없이 작업이 진행된다. 건설노동자 대부분이 일당을 받고 일하는 비정규 일용직 노동자이다. 건설노동자가 안고 있는 이러한 특성 때문에 건설노동자가 선거당일 오후 6시라는 정해진 시간 안에 투표하기는 쉽지 않다. 건설노동자들이 선거기간마다 연례행사를 하듯 ‘투표할 권리를 보장하라’고 촉구하는 이유다. 흩어져 있던 건설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조직되기 시작한 2000년대부터 지금까지 이들은 꾸준히 ‘투표시간 연장’과 ‘선거일 유급휴일 지정’을 요구하고 있다.

투표권 배제되는 가난한 건설노동자

“한국에는 고용형태와 소득수준 등에 따라 구조적으로 투표권 행사에서 배제되는 이들이 많다. 건설노동자들이 대표적이다.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은 가난한 비정규직 건설노동자는 투표할 수 없다.” - 전재희 전국건설노동조합 교육선전실장

오전 7시가 채 안된 시각. 서울 도심의 주상복합 건설현장의 타워크레인이 운행 중이다. 타워크레인은 건축 공사 시 자재들을 정해둔 위치로 옮기는 장비다. 흔히 타워크레인 한 대에는 100명이 넘는 인력이 물려있다고 말한다. 타워크레인 작업에는 자재 인양을 돕는 인력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이곳의 노동자들은 적어도 6시 30분에 출근해 일을 시작한 셈이다. 한국의 기업건설 현장의 작업 시작은 오전 7시다.

작업에 앞서 10~15분 정도가 소요되는 ‘TBM( Tools box meeting)’ 시간이 정해져 있다. 간단한 체조를 하고 현장 소장으로부터 당일 업무와 할당량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일을 시작한다. 고된 노동을 하려면 아침식사도 거를 수 없다. 이 모든 것이 7시 전에 끝나야 한다. 인력송출업체를 통해 매일 일자리를 찾아다니는 건설노동자의 아침은 일찍 시작해야 하고 시간은 촉박하다. 당일 일을 배정받기 위해 새벽 5시 30분 전에 인력송출 사무실에 도착해야 한다.

오후 6시가 넘어 작업이 종료되던 10여 년 전과 달리, 요즘 건설 현장 작업은 대개 오후 5시를 전후해 끝난다. 하지만 건설현장에서 서류상 거주지까지 가는데 1시간 이상이 걸릴 경우 선거 당일 투표하기란 불가능하다. 200만 명으로 추정되는데 한국의 건설노동자들 중 절반정도는 거주지 주소와 멀리 떨어진 지역의 현장에서 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건설사가 선거일을 투표할 시간을 빼주거나 휴일로 정하지 않으면 선거 당일 건설노동자들이 투표권을 행사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노동부 “선거일은 관공서 휴일”

공휴일은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에 근거해 정해진다. 미리 날짜를 정해 둔 ‘법정공휴일’과 수시로 정부가 지정하는 ‘임시공휴일’로 구분된다. 공직선거법에 따라 선출된 공직자의 임기 만료에 따른 선거일은 ‘법정공휴일’이지만, 올해 대선은 정부가 공휴일로 지정하는 ‘임시공휴일’이다.

선거일의 휴일 여부는 노사가 체결하는 단체협약이나 회사에서 제정하는 취업규칙 등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야 한다. 노동부(현 고용노동부)는 ‘선거 등 공민권 행사를 위해 정부가 임시공휴일로 정하여 선포하였다 하더라도 이는 관공서가 휴무하는 날로서 단체협약, 취업규칙 등에 특별한 규정이 없다면 당연히 휴일로 되는 것은 아니다’는 해석을 내놓은 바 있다. 건설노동자들이 ‘누구를 위한 노동부인지’ 되묻는 대목이다.

노동부의 해석대로 하면 관공서 공무원들과 단협 등에서 휴일을 협상할 수 있는 정규직 노동자들 외에 비정규직 건설일용직 노동자들은 ‘임시휴일’에 쉬지 않아도 된다는 역해석이 가능하다. 기업이 선거일을 휴일로 규정하지 않았다면 선거일에 노동자들에게 일을 시켜도 한국에서 법 위반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건설노동자, 고용주에게 투표시간 청구하기 어려워

물론 ‘공직선거법 제6조의2(다른 자에게 고용된 사람의 투표시간 보장)’에서 유권자가 사업주에게 투표할 시간을 요구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고용된 사람이 사전투표기간 및 선거일에 모두 근무를 하는 경우’ 고용주에게 투표를 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을 청구할 수 있고, 고용주는 이를 ‘보장해야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해당 법에는 이를 거부한 고용주에게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했다.

그러나 건설노동자가 해당 법을 근거로 고용주에게 ‘투표할 시간을 달라’고 요구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건설노동자 대부분은 일당을 받고 일하는 일용직이다. 고용주의 심기를 거스르는 요구를 했다가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 현실에서 적용되지 못하는 노동자 투표권 보장에 대한 문제제기는 오래전부터 제기 돼 왔지만 여태 수정 보완되지 못했다.

충청남도에서 건설현장의 전기제어 공사를 하는 40대 건설노동자는 “영세한 작업장은 10년 전과 다를 바 없겠지만, 도심의 건설현장애서는 투표할 시간을 잠시라도 빼주는 곳이 많다”며 “빠듯하게 벌어먹고 사는 처지에 건설사가 선거일을 휴일로 보장해주는 것도 반갑지만은 않다. 한번 놓친 하루일당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투표 시간 연장과 선거일 유급휴일

건설 노동조합들은 2000년대 초반까지 ‘투표권 보장’을 위한 입법청원 운동을 벌여왔다. 하지만 국회에서 상정조차 되지 못하고 번번이 무산됐다. 이후 조직된 건설노동자들의 투표권을 지키기 위해 단체협약에 집중하고, 동시에 비조합원들의 열악한 투표권 보장 실태를 사회에 알리는 등 법 개정외의 우회적인 노력을 해오고 있다. 이들은 10여 년 전부터 2017년 현시점까지 ‘투표 시간 연장’과 ‘선거일 유급휴일’을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한편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작년 6월 선거일을 유급공휴일로 보장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의원의 안에는 보궐선거를 제외한 대선·총선·지방선거일을 유급휴일로 하고, 이를 위반한 사업장은 현행법이 정한 고용된 노동자 외에도 제3자가 감독기관에 신고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 법은 같은 해 11월 국회에서 상정됐지만 이후 법안소위에서 논의가 진행 못하고 계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