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륜차도 ‘먹튀’ 희생양 전락?
이륜차도 ‘먹튀’ 희생양 전락?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7.04.14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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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유일 700cc급 기술, 유출 우려
[리포트] KR모터스 기술먹튀 논란

우리나라에서 한 해 팔리는 이륜차량의 수는 10만 대 수준이다. 연간 판매량이 30만 대에 달했던 90년대 말에 비하면 급격히 시장규모가 줄어든 게 사실이다. 가뜩이나 수요가 줄어든 판에 국내 이륜차 제조사들은 수입 이륜차량에 시장을 내주고 있다. 국내에 단 두 곳뿐인 이륜차 제조사 중 KR모터스(주)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배기량 700cc급의 수준 높은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최근 3개월간의 휴업에 돌입하면서 이곳 노동자들은 고용불안에 직면해 있다.

▲ 경남 창원시 성산구 KR모터스 입구

독보적 기술로 무장한 강소기업

경남 창원에 위치한 KR모터스는 라오스계 기업 ‘코라오홀딩스’의 계열사다. 본사는 국내에 있지만 엄연히 외국기업이다. 물론 이륜차량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KR모터스나 코라오홀딩스라는 이름보다 ‘효성스즈끼’라는 브랜드가 더 익숙할 수도 있다. 옛 효성스즈끼(효성모터스)는 90년대 초중반까지 ‘대림혼다’와 더불어 국내 이륜차량 시장을 양분하던 브랜드였다.

효성모터스는 2003년 효성그룹으로부터 분리돼 2007년 S&T그룹에 인수되기까지 이륜차량을 독자 생산하며 명맥을 유지해 왔다. 효성모터스에서 S&T모터스로 변모하는 동안 기술개발이 이어졌다. 사업 초기에는 일본의 스즈키사에 엔진 제조기술을 의존했지만, 1987년 순수 독자 기술로 이륜차량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1995년 국내 최초로 배기량 125cc급 DOHC 엔진을 개발한 데 이어 2004년 배기량 650cc급 엔진을 개발했다. 2009년에는 배기량을 700cc까지 높였다.

20년 동안 이어진 기술개발의 역사에는 늘 국내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KR모터스를 제외하면 250cc급 이상 고배기량 이륜차량을 만들 수 있는 업체는 혼다(일본), BMW(독일), 푸조(프랑스), 할리데이비슨(미국) 정도가 꼽힌다.

기술 앞세우고도 만성적인 적자에 ‘휴업’

끊임없이 기술개발에 몰두해 왔지만 회사의 경영은 나아지지 않았다. 2014년 S&T모터스는 S&T그룹에서 떨어져 나가 코라오홀딩스를 새 주인으로 맞는다. KR모터스로 간판을 바꾼 뒤에도 회사의 경영은 빨간불이 계속됐다. 과거에 비해 국내 이륜차량 시장이 절반에 못 미칠 정도로 쪼그라든 데다 수출마저 크게 줄어든 탓이다. 실제로 KR모터스의 당기순이익은 2012년 61억 원의 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2015년에는 156억 원으로 적자폭이 늘어났다.

결국 회사는 지난해 12월부터 2월까지 세 달 동안 휴업에 들어갔다. 이 기간 동안 노동자들에게는 기본급의 70% 수준의 임금이 지급됐다. 문제는 휴업 두 달째에 발생했다. 창원시 성산구 완암로 일대 공장부지가 매물로 나온 것이다. 입지조건으로는 “창원중앙역에서 약 5km”, “경남 창원 국가산업단지 내 위치”, “완암로 대로에 접하고 있음”, “지식산업센터 개발 부지, 공장으로 추천” 등의 설명이 붙었다. 매물 설명에 첨부된 위성사진에 표시된 곳은 KR모터스 자리였다.

노동조합에 이 사실이 알려졌고, 지난 1월 23일 긴급하게 열린 노사협의회에서 공장부지 매각은 일단 유보됐다. 그러나 뒤이어 회사 측은 휴업이 끝나면 현 인원의 70~80% 수준을 감축해야 한다고 노조에 통보했다. 전체 직원 108명 중 30~40명 정도만을 남기겠다는 얘기다.

노동조합이 강하게 반발하자 3월 13일 회사는 경영정상화 방안을 노조에 제시했다. 4월 1일부터 ▲기능직 상여 400% 반납 ▲무급 순환휴직 시행 ▲임금피크제 실시 ▲2017-2018 임금 및 단체협약 전 조항 동결 ▲임원 급여 30% 삭감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노조가 경영정상화 방안을 수용할 경우 향후 2년 동안의 고용을 보장하겠다는 단서가 붙었다.

노동조합은 회사가 제시한 경영정상화 방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S&T모터스일 때 고통분담 차원에서 5년 동안이나 임금을 동결했고, 최근까지도 3개월 휴업에 동참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으로서는 회사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이미 많은 불이익을 감내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로 KR모터스 노동자들은 창원국가산업단지 내 다른 사업장과 비교해 매우 낮은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다는 게 노조 측의 설명이다. 오히려 회사 측이 제시한 경영정상화 방안은 오로지 노동자들에게만 양보를 요구할 뿐, 공장 가동률을 높이기 위해 어떠한 대책을 마련해 놓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다고 비판한다.

중국법인 신설, 본질은 ‘먹튀’?

노동조합은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코라오홀딩스 측이 KR모터스의 기술을 빼가려고 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코라오홀딩스는 지난해 2월 중국 산둥성(山東省) 지난시(濟南市)에 법인을 신설해 이륜자동차 공장을 짓고 있다. 이와 함께 국내 생산부문 축소가 맞물리면서 이른바 ‘기술먹튀’ 논란이 불거졌다. 배기량 700cc급 엔진 제작기술은 S&T모터스 시절 국내에서 개발됐지만, 정작 제품은 국내가 아닌 중국 현지에서 생산될 계획으로 알려졌다. 코라오홀딩스가 중국에 공장을 짓는 이유는 중국시장의 막대한 잠재력 때문이다. 중국에서도 자가용 자동차 보급이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출퇴근용 125cc급 이륜차 수요가 꾸준하다. 경제성장이 한 동안 지속되면서 취미생활과 여가활동에 주로 사용되는 250cc급 이상 고배기량 이륜차 수요 또한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중국 현지 생산이 이루어지면, 국내에서 이륜차를 생산해 중국으로 수출할 때 붙은 48%의 관세 부담이 사라지는 것도 이점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250cc급 이상 고배기량 이륜차 생산이 국내공장에서는 중단될 계획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국내공장에서는 배달음식점이나 우체국과 같은 관공서 수요에만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중국 현지 공장이 가동에 들어가면 국내 생산설비와 공장부지를 처분한 후 주문자상표 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생산이 이루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중국법인 신설, 공장부지 매각 시도, 70% 인원감축 방안 발표 등이 순차적으로 진행되면서 노동자들의 회사에 대한 불신과 고용불안은 극으로 치닫고 있다.

만약 코라오홀딩스가 기술을 노리고 KR모터스를 인수한 게 아니라면 신규 수요를 창출하고 판매량을 높이기 위한 대책을 내놔야 한다는 지적이 따른다. 백차근 KR모터스노동조합 위원장은 “이륜자동차 시장은 특정 기종만 대박을 터뜨리면 지금까지 쌓인 적자까지도 다 메꿀 수 있다”면서 국내시장은 물론 유럽시장에서도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백 위원장은 KR모터스가 독보적인 기술력을 갖고도 부진을 면치 못하는 이유에 대해 소비자들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소비자들이 비슷한 배기량이라면 가격이 조금 비싸더라도 디자인이나 편의성이 뛰어난 수입산 제품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KR모터스가 시장 변화에 촉각을 세우고 소비자들의 기호와 성향을 정확히 파악한다면 중국공장과 국내공장 모두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게 백 위원장의 설명이다.

‘먹튀’ 논란, 끝낼 때도 안 됐나

외국계 기업에 의한 이른바 ‘먹튀’ 논란은 심심하면 터져 나오곤 한다.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헐값에 사들여 배당과 지분매각을 통해 천문학적인 차익을 챙겼다. 중국의 상하이자동차는 경기 평택의 쌍용자동차를 인수한 후 ‘기술먹튀’를 시도했고, 2009년 장기 파업의 비극을 초래했다. 대만의 이잉크(E-Ink)는 경기 이천의 하이디스로부터 ‘기술먹튀’를 일삼았다. 이번에는 경남 창원의 KR모터스에서 라오스계 기업에 의해 비슷한 논란이 재현되고 있다. 외국계 기업에 의한 각종 ‘먹튀’는 지역과 품목을 불문하고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나 정치권에서 이를 막을 대책은 사실상 전무하다. 중국이 자국 경제성장을 위해 해외 기업의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면서도 해당 기업에 대한 규제의 끈을 죄거나, 최근 트럼프 미 대통령이 자국민들의 고용을 보호하기 위해 글로벌 기업을 압박하는 사례와는 대비된다.

물론 이들 두 나라는 그럴 만 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한국과 다르다. 그리고 이들 국가들의 정책은 비판의 여지도 크다. 그러나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기업들이 ‘먹튀’의 희생양으로 전락해 다수가 피해를 입는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을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는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