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소비하세요 
무엇이든 소비하세요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7.05.08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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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씀씀이가 헤픈 편도 아니면서, 날마다 쌓이는 쓰레기의 양을 보면 놀랍습니다.

무얼 그렇게 많이 먹고 마시고, 사고 썼는지. 평소 씀씀이가 헤픈 편도 아니면서, 매달 급여는 간 데 없습니다. 촘촘히 빼곡한 카드 명세서를 보면서 장탄식은 꼭 제 모습만이 아니겠지요.

‘벌고 쓰고’의 쳇바퀴 속에 갇혀 있다고 암만 우는 소리를 해야 거기에서 벗어날 뾰족한 방법은 찾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앞 두 문장에서 굳이 반복한 것처럼, 딱히 소비하는 것에 매력이나 쾌감을 느끼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소비’란 얼마나 화려하고 달콤한지. 없던 환심도 순식간에 만들어내고, 바라보다 ‘결제’하는 것만으로도 그 아름다운 세계의 일원이 된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 요즈음이 소비사회 아니겠습니까? 지그문트 바우만 같은 사회학자는 ‘소비지상주의’라고도 표현했습니다.

그게 다가 아니지요. 우리는 가장 인간적인 본성에 가까운 부분 역시 소비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구성원들간의 유대감, 관계를 통해 오는 안도감,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다는 만족감 같은 것을 말입니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만이 소비의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훨씬 더 고매한(?) 영역도 소비합니다. 이를테면 예술이나 문화와 같은 지적인 콘텐츠를 말이지요.

가만 보면 오늘날을 사는 이들은 이러한 문화소비를 상당히 강요받습니다. 영화, 소설, 음악, 뮤지컬, 콘서트, 연극 등과 같은 콘텐츠들은 백화점이나 온라인 쇼핑몰의 상품들 못지않게 말쑥하게 포장되어 우리를 유혹합니다. 아니, 유혹보다 좀 더 강압적이지요. 마치, 적어도 이런 것을 소비해야 교양 있는 현대인으로 자격이 주어지는 것처럼 말이지요. 사실 ‘포장’ 자체야 뭐가 나쁘겠습니까. ‘문화소비’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은 이상, 사실 수요는 포장된 문화에서 발생한다고 봐야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이를 테면, 어떤 작품을 오롯이 향유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마주하고 있는 자신을 향유하고 있는 모습 같은 것은 꼴사납게 여깁니다. 좀 더 넓은 시각에서 보면 마찬가지로 쳇바퀴를 굴리고 있으면서도, 소비에 권위나 체면을 싣는 그런 모습에 불쾌해 합니다. 사실 근본적인 부분은 마주하기 어려워하면서, 말단부에 불편해 하는 거지요.

이런 식의 소시민적 분노가 다시 얼마나 소비사회를 공고하게 만드는지 고민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