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10명 중 9명이 중소기업에… 현주소는
노동자 10명 중 9명이 중소기업에… 현주소는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7.05.08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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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그들의 발목을 잡나?
[커버스토리] 2017 중소기업 리포트①

국내 중소기업의 수는 354만 개. 전체 노동자 10명 중 9명이 중소기업을 일터로 삼고 있다. 중소기업이 튼튼해지지 않는 한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삶이 나아질 수 없는 것이다. 역대 어느 정부를 막론하고 중소기업 육성을 강조해 왔지만, 현실은 냉랭하다. 납품단가 인하, 원자재비용 상승, 구인난, 체감경기 악화 등은 중소기업이 마주한 벽이다. 그러나 이 벽을 어떻게 넘어설지 방법을 찾은 일은 중소기업에게만 맡겨져서는 안 된다. 중소기업은 국민경제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결국 사회가 함께 길 찾기에 나서야 한다.

대선을 맞아 각 정당은 중소기업을 향해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사실 ‘중소기업 육성’은 선거철마다 공약집의 단골메뉴로 등장해 왔다. 그러나 갈수록 중소기업의 시름은 깊어만 간다. 선거가 끝나고 승자와 패자가 나뉘면, 이들이 내세웠던 공약은 공허한 메아리가 된다. 임금근로자 87.9%를 고용하고 있는 354만 개의 중소기업은 우리 경제를 지탱하는 뿌리다. 강한 중소기업 없이는 ‘경제대국’, ‘국민소득 3만 불’ 같은 영예도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중소기업을 ‘강소기업’으로 만들기 위한 논의는 계속돼 왔지만 성과가 잘 드러나지 않는 듯하다. ‘2017년 중소기업은 어디쯤 왔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숫자로 본 중소기업

3,542,000개

2014년 기준 중소기업 사업체의 수는 354만 2,000개다. 여기에는 고용규모로 봤을 때 1인 이상 9인 미만인 소기업과 10인 이상 300인 미만인 중기업이 모두 포함돼 있다. 이중에서도 1인 이상 5인 미만 기업은 ‘소상공인’에 해당한다. 다만 산업별로 기업을 분류하는 기준에는 차이가 있다. 광업·제조업·건설업·운수업 등의 경우 1인 이상 50인 미만이 소기업이고, 50인 이상 300인 미만이 중기업이다. 이들 산업에서 소상공인은 1인 이상 10인 미만 사업체를 가리킨다.

99.9% vs 0.1%

354만 개 중소기업 중에서도 중기업은 10만 2,000개(2.9%)에 불과하다. 소상공인을 제외한 소기업은 37만 8,000개(10.6%)다. 소상공인만 떼어서 보면 306만 3,000개(86.5%)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소상공인의 절반은 도소매 및 음식 숙박업과 개인서비스업에 속한다. 300인 이상 대기업은 3,100여 개로 전체 사업체 수에서 단 0.1%만을 차지한다. 우리나라 사업체의 99.9%는 중소기업이다.

87.9% vs 12.1%

종사자 수로 보면 대기업이 193만 5,000명(12.1%)을 고용하고 있다. 중기업은 400만 6,000명(25.1%)을, 소상공인을 제외한 소기업은 397만 5,000명(24.9%)을 고용하고 있다. 소상공인으로 분류되는 사업체에는 604만 6,000명(37.9%)이 일한다. 중소기업 전체로 보면 종사자 수는 1402만 7,000명, 비율로는 87.9%에 이른다.

294만 원 vs 485만 원

우리나라 임금근로자의 대부분이 중소기업에서 일하지만 이미 알려진 바대로 대기업 종사자의 비해 임금수준이 매우 낮다. 2015년 대기업 월 평균임금은 485만 원이었지만, 중소기업은 294만 원 수준이었다. 중소기업의 월 평균임금이 대기업보다 약 40% 가량 낮은 것이다.고용규모별로 세분화하면 그 격차는 더욱 여실히 드러난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정규직 노동자만 놓고 봤을 때 300인 이상 기업에 일하는 노동자가 100만 원을 받을 때 100인 이상 300인 미만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77만 9,000원을 받았다. 30인 이상 100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73만 3,000원을, 10인 이상 29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67만 원을 받았다. 그리고 5인 이상 9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58만 2,000원을 받았다. 대기업과의 임금격차가 가장 큰 곳은 1인 이상 5인 미만 사업장이었다. 여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받는 월 임금은 대기업 노동자의 52.4%에 불과했다.

380만 명 vs 32만 명

고용기여도는 어떨까. 중소기업중앙회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중소기업 종사자 수가 380만 명 증가했지만 대기업에는 32만 명만 증가했다. 전체 일자리 10개 중 9개가 중소기업에서 나온 것이다. 중소기업 일자리의 질이 강조되는 이유도 고용의 대부분이 중소기업에서 창출되기 때문이다.

1억 900만 원 vs 3억 3,600만 원

제조업을 기준으로 노동자 한 사람이 2014년 한 해 동안 만들어낸 부가가치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중소기업이 1억 900만 원, 대기업이 3억 3,600만 원이었다. 중소기업 노동자의 생산성은 대기업 노동자보다 무려 67.6%나 낮다.

종사자 수가 압도적으로 많으면서도 생산성이 낮다는 의미는 물건 하나를 만들 때 더 많은 품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훨씬 노동집약적이다. 반대로 대기업은 부가가치 창출에 노동력이 기여한 부분이 적기 때문에 기술집약적 또는 자본집약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임금격차를 설명하는 주요한 근거가 된다.

너무 많은 소상공인, 서비스업 촉진만이 대안일까

통계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중소기업으로 분류되는 사업체 중에서 5인 미만 사업장(광업·제조업·건설업·운수업은 10인 미만), 즉 소상공인의 수는 무려 306만 개다. 여기에는 대부분 도소매업과 음식·숙박업이 포함돼 있는데, 자영업자가 갈수록 증가하는 현실과 맞닿아있다. 이들 소상공인 사업체는 업주가 노동자를 고용하면서 자신도 노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아니면 가족이 함께 사업을 꾸려가는 형태거나, 노동자를 고용하지 않고 업주 혼자 일하는 형태다.

기업이 성장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가가치를 높여야 한다. 기업이 벌어들인 수입으로 토지 및 건물 임대료와 재료비, 인건비 등의 비용을 모두 충당하고도 남아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앞서 언급된 소상공인 그룹에 속하는 기업들은 현상 유지만으로도 벅차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 지원제도는 많지만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아니냐”는 자조가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점차 경쟁력을 잃어가는 제조업 대신 신산업인 서비스업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산업 고도화를 통해 경제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서비스업은 경제성장에 거의 기여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난 10년 동안 서비스업이 전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p 늘었지만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0.3%p 늘어다는 데 그쳤다. 몸집이 커졌음에도 체력은 더 약해진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된 국가들 중에서 한국의 서비스업 부가가치 순위는 뒤에서 두 번째다.

한 집 건너 있는 치킨집과 편의점, 카페, 식당 등은 우리나라 서비스업의 현 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리나라 서비스산업은 개인 소비자를 고객으로 한 소상공인, 자영업자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전문가들은 기업을 고객으로 하는 서비스업, 다시 말해 ‘B2B’ 서비스업으로의 개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연구개발, 디자인, 엔지니어링, 마케팅, 생산관리 등과 같이 제조업과 연계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 많아져야 한다는 뜻이다. 일부에서는 중소기업 육성의 한 축은 B2B’ 기반으로 형성돼야 한다는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중소기업이 말하는 중소기업

‘중소기업이 열악하다’는 말은 대기업과의 격차를 의미한다. 이에 대한 설명은 앞에서 나열된 여섯 가지 숫자만으로도 어느 정도 가능하다. 사업체 수나 종사자 수에서는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압도하지만 질적으로는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한참 못 미친다는 것, 이 때문에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대기업 노동자들에 비해 훨씬 낮은 임금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대·중소기업 간 격차를 줄여야 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중소기업 경영자들은 대기업과의 격차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중소기업중앙회가 올해 초 300개 중소기업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응답자의 54.3%가 ‘대기업에 유리한 경제구조 고착화’가 중소기업 성장의 걸림돌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중소기업 경영자들은 대기업과의 격차를 줄여달라고 요구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털어놓는 어려움은 상당히 구체적이다.

중소기업 경영자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임금과 복지에 민감한 청년구직자들이 중소기업 취업을 꺼린다는 것이다. 한 중소기업 경영자는 “청년일자리, 취업이 어쩌고 하는데 우리가 보면 남의 나라 일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들어오는 사람도 없고, 사람이 들어오더라도 모든 것을 새로 가르쳐야 하고, 오래 있지도 않는다. 그는 “전문계 고교에서 취업률을 높이려고 곳곳에 취업을 시키지만 정작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운 내용은 현장에 적용할 수 없다”고 털어놨다.

기술·자금·마케팅 등과 관련해 체계적인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점도 중소기업 경영자들이 지적하는 바다. 특히 청년 창업을 강조하는 정부의 정책 기조에도 불구하고 막 시장에 진입한 스타트업 기업이 살아남기란 어렵다. 중소기업의 73%는 창업 5년 이내에 망한다. 중소기업의 생존 경로를 ‘창업–R&D–사업화–성장–성숙’으로 본다면, 사업화 단계에서 문을 닫는 기업이 급격히 늘어난다. 이 시기를 ‘죽음의 계곡’으로 부르기도 한다.

한 스타트업 기업 경영자는 “기본적인 설비 하나를 갖추더라도 1~2억의 자금이 필요한데, 인큐베이터 시설에 설비가 잘 갖춰져 있다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인큐베이터 시설이 뛰어난 곳도 있지만 연구지원뿐만 아니라 시제품 생산, 마케팅으로 나아가는 것까지 관심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중소기업의 생존 경로에 맞춘 지원 정책이 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행여 연구개발 단계에서 실패를 경험하더라도 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 정부나 정책금융기관의 지원 기준이 단기 실적에만 국한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나타냈다. 중소기업 경영자들은 이와 같은 현장의 목소리에 정부와 정치권이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한다. 이들은 중소기업 육성을 위한다며 정부 정책이 나올 때마다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는다는 불신을 갖고 있다. 정책 입안자와 현장의 스킨십이 강조되는 이유다.

‘중소기업 강국’ 독일·일본, 비결은?

한편 독일과 일본은 강소기업 육성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된다. 중소기업의 기반이 탄탄한 만큼 대기업과의 임금격차도 70%대 중반으로 한국에 비해 훨씬 적다. 이 때문에 중소기업 육성을 강조하며 독일과 일본을 본받아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하지만 한국과 독일, 일본은 중소기업이 성장해 온 배경이 다르다.
독일의 경우 영국에 비해 뒤늦게 공업화를 이룬 나라였지만 대기업을 중심으로 기술력을 쌓아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을 일으킨 데 대한 반성이 이어졌다. 전쟁은 국가의 모든 자원을 총동원하게 만들고, 경기불황을 한 번에 타개할 수 있게 한다. 군수재벌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나치 정권과 손을 잡았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서독에서 총리와 경제 장관을 지낸 에르하르트는 전쟁 발발의 원인으로 군수재벌을 지목하고 중소기업 키우기에 나섰다.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우선 기술자들이 자리를 옮겨야 했다. 서독 정부는 대기업에 못 미치는 임금을 보조해 줌으로써 대기업에 고용된 우수한 엔지니어들이 중소기업으로 이동하는 유인을 제공했다. 기술자들이 본격적으로 성과를 내기 시작하면서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격차는 눈에 띄게 줄었고, 정부의 보조금 없이도 엔지니어들에게 적정한 보수를 지급할 여력을 갖추게 됐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양극화가 심해질 대로 심해진 한국에서 단순히 임금보조만으로 우수인력을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끄집어내기란 쉽지 않을 듯하다.

일본 역시 대기업에 비해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뒤떨어지지 않는다. 일본의 많은 중소기업들도 대기업 납품을 통해 수입을 얻는데, 일본의 대기업은 중소기업의 적정 이윤을 보장해준다. 한국의 대기업이 ‘단가 후려치기’를 통해 중소기업을 상대로 ‘갑질’을 일삼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과는 다르다. 일본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부터 얻은 이윤은 노동자의 임금으로, 기술개발 비용으로 재투자돼 성장의 씨앗이 된다. 기술자가 장인으로 존중받는 일본 특유의 문화도 영향이 크다. 독일과 일본 사례를 한국에 그대로 이식할 수는 없겠으나 충분히 참고할 만하다.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 경영자들이 겪고 있는 구인난, 기술개발, 마케팅, 불공정거래 등의 어려움의 원인과 해법을 폭넓게 검토해야 한다. 이 네 가지 요소는 마치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에 보다 구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