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도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전하는
하종오, 「신분」
이주노동자도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전하는
하종오, 「신분」
  • 이동희 기자
  • 승인 2017.05.08 11:55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를 통해 본 노동 이야기

시와 노동이 만났다. 시를 많이 보지 않는 요즘, 게다가 노동시라고 하면 더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노동에 관한 시를 쓰는 시인들이 있다. 우리 삶에서 시는 많이 멀어졌지만 노동은 여전히 가까이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번 <참여와혁신>에서는 독자들에게 이주노동자를 소재로 한 시를 한편 소개하고자 한다.

파파윈한 씨는 이주민이고
지한석 씨는 정주민이지만
같은 공장 같은 부서에
근무하는 노동자여서
손발도 맞고 호흡도 맞다

공장의 불문율에는
일하고 있는 동안엔
남녀 구분하지 않고
불법 체류 합법 체류 구분하지 않고
출신 국가 구분하지 않는다는 걸
그도 알고 그녀도 안다

세계의 어떤 법령에도
노동하는 인간의 신분을 따질 수 있다고
씌어 있진 않을 것이다

한국 청년 지한석 씨가 내는 숨소리에
미얀마 처녀 파파윈한 씨는 가만히 귀 기울인다

이 시는 하종오의 시집 『입국자들』(산지니, 2009)에 수록된 작품이다. 하종오 시인은 노동자나 농민, 다문화 구성원들의 현실을 다루어 그들과의 화합을 강조한 시들을 써왔다. 이 시도 그중 하나이다. 

시의 등장인물 파파윈한 씨와 지한석 씨는 성별도, 출신 국가도 다르지만 손발과 호흡을 맞춰 같이 일하는 동료이다. 시에서는 이 둘의 다름이 일하는데, 노동을 하는데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얘기한다. 한국현대문학대사전에 따르면 시인 하종오는 시 「신분」을 통해 국적, 신분, 성별과 관계없이 노동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평등한 인간으로 보아야 한다고 전한다. 그리고 그것이 ‘세계의 어떤 법령’에도 해당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하종오 시인이 이 시를 썼다는 것은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증명해주기도 한다. 한국에서 일하는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차별 받는 현실에 놓여있다.

이주 노동자들의 현실에 대해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이렇게 말한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주 노동자를 한국인과 똑 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차별과 배타만큼 동정을 앞세운 시선도 문제다. 가난한 나라에서 한국으로 일 하러 와서, 힘들게 돈 벌고 있으니 도와줘야겠다는 시선처럼 말이다. 사실 모든 종류의 차별은 다름 아닌 인식의 차이에서 온다. 굳이 나와 그가 ‘다름’을 구분하려는 무의식적인 태도는 대다수 한국인들에게 아주 일상적이다.

노동하는 ‘손발’만이 부지런히 현재를 증명하고 있는 일터에서는 사실, 나와 네가 다름이 부질없다. ‘같은 공장 같은 부서’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손발도 호흡도 맞아 들어가는 것이다. ‘한국 청년’인지 ‘미얀마 처녀’인지 더 이상 구분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들숨과 날숨을 함께하는 노동의 공간에서. 1960년대, 1970년대만 하더라도 한국은 대표적인 인력수출국이었다. 독일 광부, 간호사의 옛 이야기를 들추지 않더라도, 많은 이들이 ‘꿈’을 찾아 낯선 타국에서 묵묵히 인내해 왔다.

20년이 지난 지금, 지난해 기준 국내 외국인 이주노동자 수는 100만 명을 넘었다.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고용허가제에 등록된 나라는 모두 16개 국. 법으로 금지된 경제활동을 하는 이들까지 합하면 사실 그보다 더 많은 이들이 ‘타국’에서 일하고, 살고 있다.

사실 한국에 외국인 노동자가 들어오게 된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004년 8월부터 시행된 외국인 고용허가제는 국내 인력을 구하지 못한 사업주가 정부로부터 고용 허가를 받아 외국 인력을 고용하는 제도이다. 외국인 노동자에게 입국일로부터 3년간 취업활동 기간을 부여하고 사업주에게 재고용되어 취업활동을 연장하는 경우 추가로 1년 10개월을 연장할 수 있다. 연장을 할 경우 최장 4년 10개월 근무가 가능하다.

정부에서는 고용허가제를 통해 사업주에게 허가권이 주어지면,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초과수요를 사전에 통제할 수 있으며, 그에 따라 내국인 노동자의 고용기회도 보장된다. 또한 고용을 허가하는 과정에서 고용하려는 외국인 노동자가 근로조건을 준수할 수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어 무자격 사업자의 외국인 노동자 고용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외국인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외국인 노동자의 입장은 다르다. 고용허가제는 사업주에게 ‘외국인을 고용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업자가 갑이 되고 외국인 노동자가 을이 될 수도 있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 중 많은 이들이 이른바 3D 업종에 종사한다. 경제가 발전하고, 산업화가 진행되어도 여전히 “힘들고 거칠며 더러운 일”은 존재한다.

한국의 경제가 급성장한 것만큼, 사회도 급변했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이주노동자를 받아들인 한국사회는 그만큼 학습비용도 컸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불편한 시선은 다름 아닌 성숙하지 못한 한국사회를 그대로 반영한다.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을 소개해달라.

이주노동자들의 최종 목표는 이주노동자들이 똑같은 사람으로 대접받고 그들의 권리를 찾아내는 것이다. 매년 한국 정부에서 필요한 이주노동자 수를 책정해서 한국으로 데려온다. 돈이 필요한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오고 노동자가 필요한 사업장에서 그들을 고용한다. 하지만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하는 것이, 한국 정부에서 먼저 이주노동자가 한국에 들어올 수 있게 허가를 해주고 필요에 의해 우리를 부른 것인데 ‘너희가 우리 일자리를 뺏고 있어’라는 잘못된 인식을 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이 일자리를 뺏은 것이 아니다. 보통 한국인 노동자를 구하지 못한 사업장에서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한다. 이러한 잘못된 인식을 바꾸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할 일 중 하나이다.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와서 겪는 차별에 대해서

모든 차별은 인식의 문제에서 온다. 많은 사람들이 이주노동자를 한국인과 똑같은 인간적 권리를 가지고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불쌍해서 혹은 동정의 시선으로 도와주는 일은 있지만 그들 중 이주노동자들을 자신과 똑같은 사람으로 여기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가난한 나라에서 와서 힘들게 돈 벌고 있으니까 도와줘야지’라는 시선이 많은 것 같다.
일터에서 겪는 차별은 더욱더 심하다.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려야 하고 무시하는 발언도 서슴없이 한다. 이런 차별에도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버티는 이유는 고향에 있는 가족들 때문이다. 내가 여기서 힘들지만 가족들의 경제상황은 나아질 수 있다는 것 하나만 바라면서 이 모든 것을 견딘다.

같은 사업장 안에서 이주노동자와 한국인 노동자들의 차별에 대해서

이주노동자가 받는 차별은 대부분 한국인 동료들에게 받는 것이다. 특히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폭력이나 폭행 문제는 한국인 동료들한테 당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같은 사람이 아닌 자기보다 못한 사람으로 보기 때문에 쉽게 일어나는 일이다.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이주노동자노동조합에 관련 상담 전화가 걸려온다. 한 번은 일하는 사업장에서 동료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이주노동자 상담 전화가 온 적이 있다. 맞은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자기한테 뭘 시켰는데 못 들어서 못 했더니 왜 날 무시하냐고 하면서 때렸다고 한다. 이외에도 업무 분장에 있어 한국인 노동자가 하는 일보다 더 강도 높은 일을 시키거나 자신의 일을 대신하게 시키는 일도 빈번하다. ‘사장 밑에 사장’ 이 말이 딱이다. 이주노동자들의 사장은 여러 명이다.

그런 차별을 받고 있음에도 그들을 보호할 장치가 없는가?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장에서 사업주나 한국인 동료들에게 차별을 당해도 참는 것은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변경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업주가 재고용을 허가하지 않으면 꼼짝없이 한국에서 나가야 하고 만약 이 과정에서 임금체불 등의 문제가 생기면 한국에서 떠나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불법체류자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업주에게 잘못 보이지 않으려고 불만이 있어도 참는 경우가 많다.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을 어쩔 수 없이 참아야 한다. 그리고 이를 이용하는 사업주들도 적지 않다. 지금 노조에서도 주장하는 게 이런 부당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사업자 위주의 ‘고용허가제’가 아닌 ‘노동허가제’를 만들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