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일자리의 질, 방법은 없나?
중소기업 일자리의 질, 방법은 없나?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7.05.08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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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구하기보다 하늘의 별따기가 쉽다?
[커버스토리] 2017 중소기업 리포트 ②

국내 중소기업의 수는 354만 개. 전체 노동자 10명 중 9명이 중소기업을 일터로 삼고 있다. 중소기업이 튼튼해지지 않는 한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삶이 나아질 수 없는 것이다. 역대 어느 정부를 막론하고 중소기업 육성을 강조해 왔지만, 현실은 냉랭하다. 납품단가 인하, 원자재비용 상승, 구인난, 체감경기 악화 등은 중소기업이 마주한 벽이다. 그러나 이 벽을 어떻게 넘어설지 방법을 찾은 일은 중소기업에게만 맡겨져서는 안 된다. 중소기업은 국민경제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결국 사회가 함께 길 찾기에 나서야 한다.

“청년일자리 문제는 결국 중소기업 문제다.”

4월 10일 한국노동경제학회가 주최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청년일자리 정책’ 토론회에서 고영선 고용노동부 차관이 한 말이다. 청년일자리 문제의 열쇠를 중소기업에서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한국의 노동시장이 기형적이라는 지적은 꽤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다. 구직자들은 대기업에 들어가지 못해 안달이고, 중소기업은 사람을 구하지 못해 안달이다. 손뼉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지만 구직자와 기업의 거리는 너무 멀다. 이른바 ‘노동시장 미스매치’로 대표되는 현상은 대기업에게는 과도한 채용비용을, 중소기업에게는 우수인력 확보의 어려움을 야기한다.

또한 구직자들에게는 그 자체로 고통이다. 중소기업 기피 현상의 책임을 청년들의 눈높이로 떠넘길 수 없다는 데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중소기업이 양질의 일자리로 변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에는 누구나 동의할 테지만, 막상 해법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중소기업의 구인난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손대야 할 부분이 많다.

한쪽은 ‘구직난’, 한쪽은 ‘구인난’

지난 16일 실시된 삼성그룹 직무적성검사(GSAT) 고사장은 북새통을 이뤘다. 삼성은 응시자 수를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그룹 차원에서 실시하는 마지막 공채인 탓에 경쟁률은 더 높아졌을 거라는 관측이 나온다. 해마다 진행됐던 GSAT는 ‘삼성고시’로 불릴 만큼 구직자들 사이에서는 넘기 어려운 벽으로 간주된다. ‘LG고시’, ‘SK고시’ 등 다른 대기업 공채시험도 마찬가지다. 대기업 정규직을 향한 구직자들의 몸부림은 끊일 줄을 모른다.
대기업 취업난은 생산직과 사무직을 가리지 않는다. 정해진 시간만큼만 일하면 각종 수당과 성과급이 붙은 두둑한 월급봉투를 받을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고용도 안정적이다. 그래서 대기업 생산직은 인기가 높다. 더 나은 일자리를 얻기 위한 행동은 종종 채용비리라는 극단적인 형태로 터져 나오기도 한다.

구직자들의 눈길은 공무원시험으로도 향한다. 대기업에 비해 다소 보수가 낮지만, 공무원증은 평생직장, 노후를 보장하는 연금의 수혜자임을 드러내는 징표다. 4월 8일 실시된 9급 공무원시험에는 무려 17만 2천 명이 응시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합격률은 고작 1.8%. 갈수록 높아지는 합격선에 0.1점이라도 더 받기 위해 ‘공시족’들은 오늘도 학원과 독서실, 고시원을 전전한다.

중소기업 경영자들에게는 이 같은 풍경이 그야말로 별천지다. 사업체 수의 99.9%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은 구직자들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져 있다. 대기업에 입사하거나 공무원이 되지 못한, 이른바 ‘내부노동시장’의 구성원 자격을 얻지 못한 사람들이 당장의 한 푼이 아쉬워서 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마지못해 중소기업에 취직하더라도 박봉과 장시간노동, 전망의 부재 등 갖가지 이유로 탈출을 감행한다.

특히 주력 산업인 제조업 부문의 경우 젊은 피를 수혈하지 못한 많은 중소기업이 고령화로 인한 문제를 겪고 있다. 고령화 자체로도 문제겠지만, 중소기업 경영자들은 무엇보다 기술을 이어받을 사람이 없다는 점을 걱정하고 있다.

광주에서 금형업체를 운영하는 나용석 대표는 “중소기업에서 우수인력을 기대하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신입사원 한 사람이 아쉬울 정도이지만 대부분은 2년도 안 돼 그만둔다는 게 그의 전언이다. 나용석 대표는 “(신입사원을)2년 동안 열심히 가르쳐서 일이 어느 정도 숙달됐다고 생각하면 나가버린다”고 토로했다. 그가 운영하는 금형업체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해외 수출이 전체 물량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알짜기업’이지만, 그 역시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구인난을 꼽았다.

인력 유입 막는 저임금, 파이를 키워야

우리나라 임금근로자의 87.9%, 열 명 중 아홉 명이 일하는 곳이 중소기업이다. 구인난은 제조업의 중소기업에만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다. 고영선 고용노동부 차관의 말에서 알 수 있듯 중소기업이 겪고 있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중소기업 구인난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고질적인 저임금이 지목된다. 중소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 임금의 3분의 2에 불과하다. 임금 수준은 기업 규모와 비례한다.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노동자의 임금도 확연히 줄어든다. 노동자들이 소득의 대부분을 임금에 의존하는 만큼, 청년구직자들이 대기업으로 몰리는 상황은 오히려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다. 대·중소기업 간 복지수준의 격차도 주요인이다.

김주훈 한국개발연구원(KDI)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중소기업 구인난에 대해 구조적인 문제라고 진단한다. 갈수록 벌어지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가 청년구직자들의 중소기업 기피 성향을 더 단단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결국 대·중소기업 간 노동생산성, 즉 노동자 한 사람이 생산하는 부가가치의 차이로 설명된다. 김주훈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데이터를 보면, 우리나라만큼 노동생산성 격차가 큰 나라가 없다”면서 “(중소기업의)생산성이 낮기 때문에 임금을 지급할 여력이 부족해지고, 결국 기피 직장으로 전락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중소기업의 노동생산성이 떨어지는 이유에 대해 “사업체 한 곳당 주어지는 시장의 크기가 너무 작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중소기업은 전체 부가가치의 51.2%를 창출하고 있는데, 절반은 대기업이, 나머지 절반은 중소기업이 갖는 셈이다. 얼핏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파이를 균등하게 나눠먹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354만 개의 기업이 만들어낸 부가가치와 3,000개에 불과한 기업이 만들어낸 부가가치가 같으니, 기업 한 곳이 가져가는 몫의 차이는 당연히 크게 벌어진다.

김주훈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중소기업의 수를 줄임으로써 기업 한 곳이 가져가는 부가가치를 늘리는 해법을 제시했다. 자체적인 경쟁력을 갖지 못하고 정부의 정책자금 지원에만 의존한 채 마치 좀비처럼 연명하는 기업을 정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한계기업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한계기업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는 일종의 ‘연명중단’ 조치를 내리면 된다. 나아가 자생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중소기업이 한계기업을 인수·합병하도록 유도하면 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100명의 노동자를 100개의 기업이 한 명씩 고용할 때보다 10개의 기업이 노동자 10명씩을 고용하는 편이 유리하다. 기업 규모가 커짐에 따라 생산단가가 낮아질 뿐 아니라 각종 부대비용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만큼 늘어난 이윤은 노동자의 임금 상승으로, 설비 투자로, 기술 개발로 이어진다.

중기 규모화, 큰 틀에서 공감대… 한편으론 ‘신중론’

청년구직자들의 중소기업 기피 현상에 대해 중소기업계에서도 비슷하게 진단하고 있다. 한계기업, 다시 말해 좀비기업 솎아내기가 필요하다는 점에도 원칙적으로 공감하는 분위기다. 경쟁력이 떨어지면서도 정부에서 정책자금을 지원받아 사업을 지속하는 기업이 도리어 정상적인 기업을 시장에서 몰아내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결과를 막기 위해서라도 한계기업 구조조정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중소기업계는 다만 한계기업 구조조정이 보다 신중하게 진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원섭 중소기업중앙회 정책총괄실장은 “1년에 70만 개에서 80만 개에 달하는 중소기업이 퇴출과 진입을 반복한다”면서 “중소기업은 영업이익이 안 나거나 문제가 생기면 은행이 알아서 대출을 줄인다”고 설명했다. 중소기업의 구조조정은 상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15년 정부에서 한계기업 구조조정 방침을 내놓자 중소기업단체협의회는 성명을 통해 “모든 중소기업이 ‘좀비기업’으로 오해받지 않아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중소기업계는 ‘옥석 가리기’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원섭 실장은 “중소기업은 기본적으로 성장하는 기업인데, 2~3년 동안의 단기간에는 영업이익을 내지 못할 수도 있다”며 “획일적인 기준으로 판단하기보다는 성장 가능성이 있는 기업과 7~8년 이상 정체된 기업을 잘 구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계기업 구조조정이라는 목표 달성에만 매달리다 살아남을 기업을 퇴출시키고, 퇴출돼야 할 기업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옥석을 가릴 것인가’는 의문으로 남는다. 이에 대해 이원섭 실장은 “금융기법의 발전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대답을 내놨다. 그러기 위해서는 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등과 같은 국책은행의 역량이 강화돼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 국책은행의 역할을 중소기업 중심으로 재편하는 방안도 제시된다. 한계기업을 구별해 내는 역량을 강화하는 동시에 선택과 집중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계기업을 가려내는 일 못지않게 막 시장에 뛰어든 기업 중 성장 가능성이 있는 기업을 발굴해 내는 것 역시 중요하다. 2000년대 이른바 벤처 열풍이 몰아칠 당시 정부는 벤처기업 창업을 적극적으로 띄웠지만, 거품이 꺼지자 부작용이 속출했다. 사업성을 부풀려 투자자를 모은 다음 자금만 챙긴 채 잠적하거나, 정부 지원금만을 노린 채 무분별하게 창업을 했다 실패하는 등의 사례가 빈발했다. 그러면서 벤처기업을 바라보는 회의적 시각도 늘어났다.

최근에는 벤처기업이라는 용어보다 ‘스타트업’이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고 있다. 한계기업 구조조정이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하듯, 스타트업 기업에 대한 지원 역시 신중함이 요구된다.

다행스러운 점은 과거 ‘모럴헤저드’(도덕적 해이)를 겪으면서 스타트업 기업의 역량을 평가할 수 있는 경험적 데이터가 기술보증기금, 신용보증기금 등의 기관에 축적돼 있다는 사실이다. 이원섭 실장은 “벤처 열풍 당시 기술보증기금에서 사고가 많이 일어났는데, 지금은 스타트업 기업의 가망성을 판단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고 덧붙였다.

큰 그림 그리되 작은 부분 신경 써야

청년구직자 중소기업 기피 현상과 관련해 앞서 언급한 경제학계와 중소기업계의 처방전에서는 한 가지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다. 중소기업의 수는 줄이되 규모를 키움으로써 부가가치를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 수단으로 거론된 한계기업 구조조정을 바라보는 관점에는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크게 충돌하지 않는 듯하다. 구조조정의 강도 혹은 속도에서의 차이는 퇴출 대상 기업을 어떻게 정의하는지가 다르기 때문으로 보인다.

경제학에서는 물건 하나를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이 그것을 팔았을 때 받을 수 있는 금액보다 큰 기업, 쉽게 말해 ‘손해 보며 장사하는 기업’이 퇴출 대상이다. 또한 퇴출 대상 기업을 명확히 구별해 내려면 보다 정교한 기법이 동원돼야 한다는 게 중소기업계의 생각이다. 만약 옥석을 가리는 기준에 대해 합의할 수 있다면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올리는 관문 하나를 통과했다고 봐도 괜찮지 않을까.

물론 중소기업 규모화를 꾀하는 것은 구조를 뜯어고치는 일이다. 여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한 만큼 작은 부분으로의 접근이 함께 진행돼야 한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 가령 고용보험 기금을 활용해 중소기업 취업자의 임금 일부를 한시적으로 보전해 주는 방안이 중소기업계에서 거론되고 있다. 중소기업이 임금 인상을 억제할 빌미를 제공한다는 비판은 있지만, 한시적이기 때문에 우려는 크지 않다는 재반론도 있다.

김주훈 KDI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정부가 중소기업이 밀집한 산업단지에 다양한 복지시설을 제공하는 방식을 제안하기도 했다. ‘산업단지형 공동직장 공립어린이집’의 사례가 좋은 예이다. 고용노동부에서는 지역 산업단지 내에서 근무하는 유자녀 직장인들이 양질의 보육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산업단지형 공동직장 어린이집은 실제 어린 자녀를 둔 중소기업 직장인들에게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핵심은 중소기업 지원정책의 방향이 개별 기업 단위를 대상으로 하는 데에서 벗어나 중소기업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공공재 공급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개별 중소기업이 복지를 제공하기에는 여러 가지 한계가 있다. 정부가 중소기업 밀집 지역에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복지수준의 격차를 좁힘으로써 중소기업 일자리의 질을 한층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