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의 경쟁력, 어떻게 찾나?
중소기업의 경쟁력, 어떻게 찾나?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7.05.08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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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강소기업에서 배우다?
[커버스토리] 2017 중소기업 리포트 ④
국내 중소기업의 수는 354만 개. 전체 노동자 10명 중 9명이 중소기업을 일터로 삼고 있다. 중소기업이 튼튼해지지 않는 한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삶이 나아질 수 없는 것이다. 역대 어느 정부를 막론하고 중소기업 육성을 강조해 왔지만, 현실은 냉랭하다. 납품단가 인하, 원자재비용 상승, 구인난, 체감경기 악화 등은 중소기업이 마주한 벽이다. 그러나 이 벽을 어떻게 넘어설지 방법을 찾은 일은 중소기업에게만 맡겨져서는 안 된다. 중소기업은 국민경제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결국 사회가 함께 길 찾기에 나서야 한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국내 중소기업들이 마주하고 있는 상황은 녹록치 않다. 우선 내부적으로는 저성장, 저투자, 저고용 등 세 가지 악순환 고리가 덫처럼 중소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소비 및 수출 부진 등으로 성장률은 저하되고 있으며, 설비투자 부진으로 잠재성장률도 저하가 우려된다. 만성적인 청년실업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고용시장 역시 활기를 찾기 어렵다. 그동안 수출, 대기업 중심의 성장전략은 ‘낙수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점이 드러났다. 중소기업들뿐만 아니라 중소유통업, 재래시장 등 서민경기를 체감할 수 있는 곳 어디나 침체된 분위기는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중소기업을 둘러싼 환경은 계속 변화하고 있다. 산업 4.0, 노동 4.0을 앞세운 전통적 제조업 강국인 독일을 비롯해 선진국들은 제조업 혁신을 가속화하고 있다.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의 트랜드도 다양화되면서 유통 채널 역시 다각화되고 있다.

내 중소기업들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점은 앞서 꼭지에서 살펴본 것처럼 ‘부족 문제’로 정리할 수 있다. 자금과 인력, 그리고 R&D를 비롯한 혁신역량의 부족 등 ‘3부족 문제’가 그것이다.

독일 중소기업의 경쟁력

산업현장-교육 병행하는 직업교육시스템 갖춰져
직업훈련생 80% 수용으로 인력 수급 안정적으로 해결
독일식 직업훈련시스템 벤치마킹한 한국,
기업·도제생·교사 모두 만족도 높아

독일 중소기업은 361만 개로 전체 기업 수의 99.6%, 고용의 61.0%를 차지하고 있다. 수출 기업의 약 98%인 35만 개를 차지하고 있고, 직업훈련생 역시 83.2%를 소화하고 있다. 이처럼 강한 경쟁력을 갖고 있는 독일 중소기업은 이른바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으로 표현된다. 이는 헤르만 지몬 박사가 같은 이름의 저서에서 처음 사용한 표현이며, ▲전 세계에서 시장 점유율 기준 3위 안에 들거나 각 대륙에서 1위 ▲매출액이 50억 유로(약 6조 1천억 원) 이하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기업으로 정의된다.

2012년 기준 전 세계 히든 챔피언은 2,734개인데, 독일은 약 절반인 1,307개, 미국은 366개, 일본은 220개, 한국은 23개를 보유하고 있다. 독일의 히든 챔피언은 대부분 부품, 중간재 등을 생산하고 있으며, 따라서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1994년부터 2004년 동안 통계를 볼 때, 평균 매출 성장률이 8.4%로 독일 전체기업(2.7%)보다 훨씬 높다.

독일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던 원천으로 꼽는 것 중 하나는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핵심부품 생산 등에 집중함으로써, 대기업들이 진입하지 않는 틈새시장에서 특화된 전문분야를 확보할 수 있었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비록 시장 규모는 작을지 몰라도 다른 기업들의 모방이 어려운 분야에 주력하는 동시에 가격, 물량 중심의 시장보다는 기술 중심의 시장에 집중하는 것이다. 또한 품질, 디자인 등 비가격적 요인이 중시되는 분야의 생산공장은 국내에 유지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러한 독일 중소기업들은 상당 수가 오랜 역사를 지닌 가족기업이며, 안정적인 기업지배구조는 중소기업이 오래 유지되는 데 기여하고 있다. 100년 이상 오랜 역사의 기업들이 많으며, 이런 기업들은 직원이나 지역사회 등 이해당사자들과도 높은 신뢰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전 세계의 200년 이상 장수기업은 모두 5,586개가 있는데, 이중 일본에 3,146개가 있으며, 독일에는 837개가 있다.

현장 중심의 인력양성, 선순환을 만들다

독일 중소기업의 경쟁력 중 하나는 우수한 전문 기술인력 양성을 위한 체계적인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는 점이다. 양질의 인력은 중소기업을 일터로 선택하고 있으며, 결국 이는 사회적으로 대기업-중소기업 간 임금격차를 해소하는 데도 도움을 주고 있다.

숙련인력 양성을 위한 도제제도, 현장실습 중심의 직업훈련제, 장인을 양성하는 마이스터 제도 등 산업현장과 교육을 병행하는(dual system) 직업교육시스템을 통해 우수한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독일 중소기업들은 직업훈련생의 80% 이상을 수용하고 있으며, 이들 훈련생 중에서 필요한 인력을 확보함으로써 인력 수급의 문제를 안정적으로 해결하고 있다. 또한 독일 중소기업의 평균임금은 대기업의 85~90% 수준으로 임금격차가 크지 않다. 특히 마이스터는 박사급에 준하는 경제적, 사회적 대우를 받기도 한다. 국내의 상황이 중소기업은 구인난에, 청년들은 구직난에 허덕이는 것과는 대조적인 양상이다.

한국에서도 이를 벤치마킹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산학일체형 도제학교는 지난 2014년 기계, 재료 분야 9개 학교가 선정된 것을 시작으로, 2015년에는 자동차정비, 화학, 전기전자 분야가 추가됐으며, 참여 학교도 57개로 확대됐다. 2017년에는 소프트웨어, 미용, 세무회계, 건설, 조리 등의 분야도 추가됐으며 참여 학교 수도 크게 확대되기도 했다.

참여 학생 수는 기존의 2,600여 명 규모에서 7,000여 명 규모로, 참여 기업 역시 800여 곳에서 2,500여 곳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특히 공업계 이외에 상업, 서비스 계열 고교생들도 참여가 가능하고, 부산, 울산, 충북, 전북, 제주 등에도 신규 학교가 선정되면서 지역의 학생들도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이와 같은 확대 추세는 제도에 대해 학생, 학교, 기업이 높은 만족도를 보이고, 가시적인 성과를 냈기 때문이라고 고용노동부는 말한다. 학생들은 학교와 기업을 오가며 현장맞춤형 교육을 받으며 취업을 보장 받고, 기업은 재교육비용 절감과 함께 우수한 기술 인력을 일찍 확보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현장의 만족도가 높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2015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참여기업과 학습근로자, 현장교사의 만족도는 5점 만점에 4.0점, 4.08점, 3.97점 수준이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올해 2월 졸업할 1기 도제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최종평가에서는 합격률이 78.8%에 달하고 있다.

정부 주도의 클러스터 정책, 시너지 만들다

영국의 경제학자 알프레드 마샬은 1920년에 다수의 기업이 한 지역에 밀집해 있는 산업단지라는 콘셉트로 ‘클러스터’란 개념어를 사용한다. 독일은 1990년대 중반부터 자국산업 장려 정책의 일환으로, 클러스터 개념을 활용하여 국가가 지원하고 다양한 규모의 기업들이 시너지를 이루는 독일형 클러스터 정책을 실현한다.

이는 특정 지역 내에서 동종 시장에 진출한 기업들이 서로의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경쟁 대신 협력을 선택해 생산자-공급회사-대학 등의 연구기관-디자이너나 엔지니어 등 전문기술자-기술인력과 협회 등과 연계해 시장에 참여하는 전략적 협력체로 존재한다. 유럽 클러스터 관측소에 등록된 독일 국적 클러스터는 100개 이상이라고 한다.

1997년에 설립된 ‘Bio M’은 바이에른 주의 바이오가스, 환경공학, 화학, IT, 제약 등의 400여 개 기업이 모여 협력하는 클러스터이다. 생명공학분야 신규기업들과 중소기업의 지원에도 한몫하고 있다. 같은 해 설립된 ‘Cyber Forum’은 ICT 분야 1천여 개 기업, 대학 및 연구기관의 연합체이며, IT보안, 게임, 소셜미디어, 소프트웨어 기업 등 다양한 회원이 참여하고 있다. 모바일 클라우드 컴퓨팅, 스마트 비즈니스, 인재 양성 등의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2005년 설립된 ‘Technology Mountains’는 마이크로산업 분야의 160여 개 기업과 연구기관이 R&D 협력을 통해 시너지를 창출하고 있으며, 2007년 설립된 ‘Electric Mobility South-West’는 전기자동차 개발, 수송수단 혁신, ICT와 수송수단 연구 등을 위한 클러스터로, 보쉬, 티센크룹, SAP, 포르셰 등 80여 개 회원사가 참여하고 있다. 독일의 클러스터 정책은 정부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연방정부는 우수한 클러스터를 관리하고 후원하는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운영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우수하고 경쟁력 있는 클러스터를 선별하는 공신력 있는 장치를 만들었으며, 지원을 지속하고 있다.

이러한 클러스터 정책은 중소기업을 위한 지원책으로써 기능할 수 있다. 자금력이나 노하우가 부족한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에는 경쟁력을 지원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서 활용되며, 새로운 비즈니스 접촉을 위한 발판으로써 쓰이기도 한다.

중소기업 혁신, 상황에 맞게

앞서 살펴본 클러스터 정책은 주로 이른바 고기술 산업 분야의 기업들에게 참여의 기회가 높다. 하지만 매출액의 3% 이하를 R&D 비용으로 지출하는 저기술 산업, 혹은 비연구집약적 산업의 경우엔 어떨까.

모든 중소기업이 여기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국내 중소기업의 대부분이 여기에 속한다. 국내 전체 중소기업의 99.8%, 종사자 수의 88%가 저기술 산업으로 간주된다. 선진국에서도 부가가치 창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줄어들지만, 여전히 고용의 관점에서 볼 때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저기술 산업 분야, 비연구집약적 기업 역시 혁신을 통한 생존전략의 모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들 기업의 혁신 유형을 독일의 산업전문 연구원인 히르쉬-크라인젠은 ▲제품의 개발전략 ▲고객지향적 판매전략 ▲새로운 공정기술전략 등으로 유형화한다.

우선 작지만 지속적으로 기존 제품을 개발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혁신유형을 꼽을 수 있다. 이러한 제품들은 기술적으로 어느 정도 완성된 상태로, 시리즈로 생산되고 있으며, 낮은 복잡성을 지닌다. 대기업의 하청업체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시장점유율을 지닌 제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이나, 자동차산업 등에서 특수 용도로 주형화된 제품이나 소결시킨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 등이 이와 같은 사례에 속한다.

고객지향적 판매전략 유형은 섬유나 의류, 가구, 피혁 제조업체처럼 유행을 겨냥하고 기존의 제품 생산라인의 지속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산업을 예로 꼽을 수 있다. 제품의 디자인, 유행의 재평가, 변화하는 고객욕구에 대한 적응, 틈새시장의 활용 등이 포함된다. 특히 고객과의 접촉면이 다양해진 요즈음에는 다수의 저기술 기업에서 공통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혁신유형이 되었다.

공정기술전략 유형은 제지나 식품업체처럼 기술적인 공정이 지속적으로 최적화되어야 하는 기업체가 해당된다.

앞서도 살펴본 것처럼 독일의 경우 높은 수준의 기술을 갖고 있는 기업 외에도 저기술 기업 역시 위와 같은 전략을 개발하고 작업장 혁신을 이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