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사각지대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인권 사각지대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 김민경 기자
  • 승인 2017.05.08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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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도 노동도 아니다…보호 없는 저임금 단순노동자
[리포트] LG U+고객센터 실습생 자살사건

‘특정 분야의 인재와 전문 직업인 양성’, 특성화고등학교의 설립 목적이다. 특성화고는 학생들의 현장 직무능력과 적응력을 높이기 위해 교육과정의 일환으로 현장실습을 운영하고 있다. 직업교육이 중심이 되는 특성상 실습교육은 필요하다. 문제는 교육을 목적으로 현장으로 나간 실습생들이 ‘기간이 안정된 저임금 단순노동’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학생도 노동자도 아닌 회색인으로 법과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실습생들의 죽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성화고 현장실습을 교육중심으로 바꾸고, 실습생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를 강화해야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현장실습 5개월 만에 주검으로 온 딸

지난 1월 23일 전주시 우아동 아중저수지에서 특성화고 졸업을 앞둔 A양이 숨진 채 발견됐다. 타살의 흔적은 없었다. 경찰은 A양의 사인을 자살이라고 밝혔다. A양은 죽기 전날 친구에게 자살을 암시하는 내용의 문자를 남겼다. LG유플러스의 하청 협력업체 LB휴넷(전주고객센터)으로 현장실습을 나간 지 5개월 만이었다.


A양은 콜센터 내 ‘해지방어’ 부서에서 일했다. 상품 계약을 해지하려는 고객을 설득하고, 재계약을 유도하는 것이 주 업무였다. 서비스에 만족하지 못한 이들을 상대로 새로운 상품 가입을 권하고 실적도 쌓아야 했다. 고객들로부터 욕설을 듣는 것은 물론, 회사의 실적압박도 상당했다. 정해진 퇴근 시간은 오후 6시였지만, 콜 수를 채우지 못한 날의 퇴근은 여지없이 늦어졌다.

‘아빠 나 오늘도 콜 수 못 채웠어. 늦게 퇴근할 것 같아’ A양의 아버지는 회사 앞으로 자주 딸을 데리러 가곤 했다. 그는 지금도 밤이면 딸 아이 이름을 목이 터져라 부른다. A양이 주검으로 돌아온 추웠던 그날을 잊지 못한다는 그는 “딸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진상이 밝혀지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A양의 자살이 ‘특성화고 현장실습’에 따른 어려움에 기인했음이 드러나면서 한국사회에서 현장실습생들이 처한 열악한 현실이 재조명되고 있다.

문제 사업장 ‘LG유플러스 고객센터’

SK와 LG 등 대기업 콜센터에서 8년 동안 일했던 한 상담사는 “LG유플러스는 SK를 따라 잡아야한다는 경쟁의식이 강하다. 상담사들에게 심한 압박을 준다”며 “A양이 일한 ‘해지방어 부서’는 성인 근무자들도 기피하는 부서”라고 말했다. 실제로 콜센터상담사들 사이에서 해지방어 부서는 ‘욕받이 부서’로 통한다.

A양이 일했던 부서는 이미 사회적으로 문제가 됐던 곳이다. 지난 2014년 A양이 속한 부서에서 일했던 30대 상담사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회사의 부당한 노동착취를 고발하며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유서를 남겼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유서를 들고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넣고, 전주지청 지청장과 근로감독관에게 재발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책임을 회피하는 회사와 1년 5개월이 넘게 대립하며 고군분투 한 것은 자신의 아들과 같은 허망한 죽음이 반복돼선 안 된다는 일념 때문이었다. 그는 “고용노동부와 회사는 거대한 도둑놈 집단”이라며 “고용노동부는 LG유플러스에 근로감독 사실을 미리 알려주고, 회사는 증거를 감춰버린다. 서류상 아들의 근무태도도 바꿔버렸다”고 말했다. 이어 “아들의 죽음 이후 사업장의 근무 환경이 나아졌다고 해 위안을 삼았었는데, 또 다시 A양의 죽음이 발생했다”며 “악질자본 유플러스는 고인 앞에 사죄해야한다”고 비판했다.

지난 3월 ‘LG유플러스 실습생 사망사건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가 결성됐다. A양 자살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전국의 100여 개가 넘는 시민단체가 모였다. 이들은 “원청인 LG유플러스는 전주고객센터(LB휴넷)를 포함한 전국 5개 콜센터의 ‘해지방어율(고객의 해지를 막지 못한 비율)’을 매일 집계해 순위를 매기고, 다음날 아침 각 센터로 내려보냈다”며 “그 결과는 아침마다 각 센터에 게시됐다. 노동자들의 실적 경쟁에 직접적으로 개입한 LG유플러스와 LB휴넷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묻는 것이 우선돼야한다”고 지적했다.

특성화고 실습생 ‘자살’ 아닌 ‘사회적 타살’

“사회가 무참히 저지른 살인이다” 지난 3월 31일 오후 7시 서울 용산구 LG유플러스 본사 앞에서 A양의 추모문화제가 열렸다. 첫 추모 발언에 나선 특성화고 졸업생 백종현 씨는 A양의 죽음은 자살이 아닌 타살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A양과 같은 학교를 다니진 않았어도 그가 겪었을 어려움을 상상할 수 있다. 실습생이 자유롭게 현장실습을 그만둘 수 있다고 하지만, 학교는 그것을 두고 보지 않았을 것이다”며 “많은 학교가 실습생이 복교하면 반성문을 쓰게 하거나, 징계를 준다”고 증언했다. 이어 특성화고 실습생들이라면 누구나 불법 노동착취라는 위험한 상황에 노출돼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국사회에서 그동안 특성화고 현장실습생들의 죽음은 끊이지 않았다. 2011년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 일하던 현장실습생은 주 70시간 장시간 노동을 하다 뇌출혈로 쓰러졌다. 이후 해당 공장에서 연장근로 제한시간 위반, 수당 미지급 등 80여 건이 넘는 불법이 있었음이 밝혀졌다.

2012년 사고 위험이 높은 울산 신항만 공사현장에서 일하던 실습생 3명이 작업선 전복으로 사망했다. 2014년 현대차 부품회사 금영 ETS의 현장실습생이 금지된 야간시간에 일하다 공장 지붕 붕괴로 유명을 달리했다.

같은 해 CJ제일제당 진천공장에선 나이 많은 동료들의 폭행과 따돌림에 시달리던 현장실습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2016년 성남의 한 외식업체 실습생도 상사로부터 심한 스트레스를 받다가 자살했다.

안타까운 죽음은 올해도 이어졌다. A양의 죽음뿐만이 아니다. 지난 1월 여수산단 대림산업 협력업체에서 일하던 고3 학생도 죽음을 택했다. 가족과 친구들에 따르면 그는 평소 과중한 업무와 상사의 폭언 등으로 힘들어 했다고 한다. 현장실습 고등학생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불법 노동착취는 2017년이 된 지금까지 근절되지 않고 있다. 이들은 모두 19살이었다.

부당노동 착취 반복되는 현장실습

현장실습이라는 미명하에 실습생들이 경험하는 각종 현장은 표준 이하이다. 실습생들의 죽음은 서로 닮았다. 조기취업의 형태로 일을 시작했고, 동료나 상사의 폭언에 무방비로 노출됐다. 오직 실습생이라는 이유로 저임금, 장시간 노동, 잡다한 업무 강요 등 단순노동인력으로 노동현장에 방치돼 온 것이다.
특성화고 현장실습 산업체는 표준협약서에 따라 현장실습계약을 체결해야 하며, 현장실습 시간은 1일 7시간 1주일 35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유해위험 업무 지시, 임금 미지급, 부당한 대우 등이 없어야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A양이 일했던 LG유플러스 전주고객센터는 ▲표준협약서에 따른 현장실습계약보다 낮은 임금 지급 ▲고객사 프로모션 수당 지연지급 ▲초과 근무 임금 미지급 등의 불법을 저질렀다.

학교와 산업체, A양 3자가 맺은 표준협약서에 따르면 하루 7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월 160만 5,000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하지만 A양이 받은 실질금액은 120만 원 남짓에 불과했다. 현장실습계약은 직업교육훈련촉진법(이하 직촉법)이 정하는 표준협약서에 따라야 하지만, 전주고객 센터는 A양과 개별적인 이면 근로계약서를 맺고 그보다 낮은 임금을 지급한 것이다. 직업교육법에 따르면 표준협약서에서 임금을 정한 경우, 그보다 불리한 조건의 개별 근로계약은 무효가 된다. LB휴넷은 이 같은 명백한 임금체불 외에도 프로모션 실적을 다음 달 지급하고, 연장근무에 따른 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다.

현장실습 산업체의 이와 같은 불법은 이미 2015년 감사원 감사 결과 지적된 바 있다. 당시 감사원은 현장실습에 대해 ‘노동환경이 보장되지 않음’, ‘현장실습 계약과 다른 근로계약서 체결’ 등의 문제를 지적하며, 시·도 교육청이 현장실습을 관리 감독할 방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그러나 2년이 지나 발생한 A양의 사례에서 같은 문제가 그대로 반복됐다.

관리·감독해야할 학교·교육청·노동부의 직무유기

‘학생 건강 및 안전 사항에 특이점 없음, 근로시간 및 임금은 표준협약을 잘 이행하고 있음.’ A양의 담임교사가 두 차례 현장지도를 한 뒤 쓴 평가 내용이다. 교사는 실습현장의 안전사항, 실습생의 건강상태, 근로시간과 임금, 복지와 후생문제 등의 현장점검 항목에 대해 모두 ‘상’으로 평가했다. 교사의 마지막 현장지도는 A양이 사망하기 불과 10여일 전에 실시됐다. 교사의 현장지도가 소홀히 했음이 명백하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는 기존의 지침도 제대로 실시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한 교사는 “특성화고 교원의 학생 수가 일반고 보다 많지도 않은 상황에서, 학교에 남아 있는 학생들 교육과 현장실습을 나간 학생들의 현장지도를 꼼꼼히 하기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현장실습을 나가면 해당 학교 교사는 전체 기업을 2회 이상 직접 방문하고 점검한 뒤 보고서를 작성해야한다. 전라북도 교육청은 오는 7월까지 특성화고 현장실습 문제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를 실시하고, ‘정신건강 유해업체’ 실습을 금지하는 등의 중심으로 실습생을 보호하기 위한 방안을 강화한다는 입장이다.

지난 4월 10일, 노동현장의 불법을 관리 감독할 의무가 있는 고용노동부도 전주고객센터에 대한 사법처리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고용노동부 전주지청은 지난달 해당 산업체의 근로감독을 2주간 실시한 결과 A양에 대한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를 확인했다. 그러나 A양의 죽음이 사회적인 문제로 불거진 지난 3월에서야 조사에 착수해, 사실상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 3월 16일 교육부가 발표한 ‘2016학년 특성화고 현장실습 실태점검 결과’를 보면, ▲표준협약 미체결 238건 ▲근무시관 초과 95건 ▲부당대부 45건 ▲유해위험 업무 43건 ▲임금 미지급 27건 ▲성희롱 등 17건이 적발됐다. 이는 작년 11월 21일부터 12월 9일까지 교육부와 중소기업청, 근로감독관 등이 실시한 1차 점검과, 이후 12월 21일부터 올해 1월 20일까지 시도교육청과 학교에서 실시한 2차 점검한 최종 결과이다.

더 이상 말뿐인 대책이 반복돼선 안 된다. 오는 9월이면 약 10만 명의 특성화고 3학년 학생들 중 절반가량이 또다시 현장실습을 나간다.

 

 

 

 

근본적인 현장실습 정상화 방안 세워야

특성화고 현장실습을 왜 실시하며, 현재의 방식으로 그 교육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할 때이다. 해결의 실마리는 현장실습생들은 아직 배우는 과정에 있는 학생들이며, 이들을 위한 사회적 보호장치를 마련해야함 명확히 인식하는데 있다.

하인호 청소년인권네트워크 활동가는 “현재 고교현장 실습은 취업과 무관한 파견형 실습”이라고 말했다. 관리감독을 해야할 당국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하고, 학교는 학교평가와 중기청 예산과 연관되는 취업률에 매몰되는 상황에서 산업체는 실습생을 값싼 인력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지금의 현장실습생들은 교육의 관점이 사라진 채 ‘근무기간이 안정적인 저임금 단순노동자’로 전락했다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현장실습과 취업을 엄격히 구분해야한다”며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산업체에 현장실습생을 맡기고 단순 노동을 시킬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그는 현장실습산업체 선정과 현장 지도를 할 때, 점검단에 노동조합이나 교원단체 관계자들 포함시키자는 제안을 했다. 현재 직촉법에서는 현장실습산업체 선정과 현장지도 등에 관해 교육청의 심의와 학교의 관리 등 직업교육훈련기관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지만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청소년의 직업교육이 잘 마련됐다고 알려진 핀란드와 스웨덴의 경우,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현장실습의 계획부터 관리 등의 구조를 논의하고 함께 참여하고 있다.

또 그는 “학생들의 현장실습을 기업 차원이 아닌 건축협회, 기계공학협회 등 협회 차원에서 프로그램을 마련해 운영하고, 이에 대해 국가가 지원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전문 분야에 필요한 인력양성을 할 수 있다”며 “이 때 도공, 세공 등 직종에 따라 장시간 실습이 필요해 불가피하게 노동이 일어나는 부분은 철저하게 구분해 노동자로서의 권리와 임금 부분을 보장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고쳐 쓸 수 없다면 폐지가 답

공대위와 법률, 교육 전문가들 일부는 특성화고 현장실습 제도는 더 이상 고쳐 쓸 수 없는 지경이라고 본다. 오히려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대신 창업동아리 활동, 산업체 견학, 체험학습 등을 실습생의 권리가 보장되는 대안적인 직업교육계획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에 많은 이들이 공감했다.

이와 함께 특성화 고등학생들에게 현장실습보다 정작 더 절실한 것은 ‘노동인권 교육’과 ‘노동관계 교육’이라는 지적도 시사점이 크다. 현재 교육부는 특성화고 학생들과 교사들을 대상으로 사이버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이 한두 차례에 그치고, 단순히 교육영상물을 보는 것에 그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특성화고 학생들의 정규교과 과정에 노동인권교육을 포함시키고, 스스로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줘야 한다는 주장이 앞으로 교육현장에서 어떻게 반영될지도 주목해야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