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은 본사가, 위험은 알바가?
이익은 본사가, 위험은 알바가?
  • 김민경 기자
  • 승인 2017.05.08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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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 CU 야간 알바노동자 죽음 그 후
[리포트] CU편의점 야간 알바 사망사건

‘사회적 책임’과 ‘상생경영’. BGF리테일의 홈페이지 기업정보 글에서 가장 눈에 띄는 단어들이다. BGF리테일은 종합유통 서비스 기업이다. 1994년 보광훼미리마트에서 시작해, 2012년 현재의 사명으로 바꾸고 한국의 최대 편의점 프랜차이즈 CU를 운영하고 있다. BGF리테일은 실제로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을 돕는 크고 작은 사업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그러나 최근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기업의 진정성이 의심받고 있다. 정작, 자신들이 운영하는 편의점의 아르바이트 노동자들로부터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라’는 질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이윤창출을 위해 일선에서 일하는 노동자로부터 비판 받는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운운할 수 있나.

함께 일하는 노동자들이 상생해야할 대상이 아니면, BGF리테일은 누구와 상생경영을 한다는 것인가.

살해당한 야간 알바노동자에 무심한 본사

작년 12월 14일 오전 3시30분. 경북 경산의 한 CU편의점에서 30대 야간 알바노동자가 살해당했다. 숙취해소 음료를 사러 온 손님과 20원짜리 봉투 값을 지불하는 문제로 실랑이가 벌어졌는데, 분을 이기지 못한 손님이 집에서 흉기를 가져와 알바노동자를 찌른 것이다.

사건 직후 알바노조는 서울시 강남구 BGF리테일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각종 위험에 노출된 편의점 알바 노동자의 실태를 고발했다. 당시 본사 측은 ‘유족 협의는 점주와 지속적 노력 중’이고 ‘안전대책 부분에 대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사건 발생 100일이 지나도록 유가족에게 한 차례의 연락도 하지 않은 것이다. 심지어 고인의 아버지가 자식의 장례식 날 가맹점주를 통해 본사에 연락을 취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

홍종기 노무사(노무법인 삶)는 “가맹본사가 가맹점의 영업을 전반적으로 지휘·감독하고 있기 때문에 가맹점의 안전 문제에 대해서도 책임질 의무가 있다”며 야간 알바 노동자의 죽음을 외면한 본사의 행태를 비판했다. BGF리테일은 지난 3월 알바노조가 사과와 보상, 안전대책을 요구하는 공문에 ‘가맹점주의 권한과 의무를 본사가 대신할 수는 없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알바노조의 공개 면담요청에도 비공개면담만 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접점을 찾지 못한 채 현재는 논의의 장 마련을 위한 소통도 단절된 상황이다. BGF리테일 측은 “유족들과의 대화는 언제든지 환영한다”는 기본입장만을 반복하고 있다.

사건이 발생한지 4개월이 넘었다. 여전히 고인의 아버지는 BGF리테일을 상대로 ▲유가족대면사과 ▲적절한 보상 ▲편의점 야간노동자들이 처한 열악한 환경문제 해결 등을 요구하고 있다. 유가족, 고인의 친구들, 알바노조, 알바노조 편의점모임, 알바노조 대구지부로 구성된 ‘경산CU편의점 알바노동자 살해사건 시민대책위(이하 시민대책위)’는 지난 4월부터 매주 비상대책회의를 열고 CU의 책임 있는 사과와, 편의점 알바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진정성 없는 홈페이지 팝업사과 논란

BGF리테일의 공식적인 첫 반응은 112일 만에 나왔다. 지난 4월 4일 회사의 홈페이지에 팝업창을 통해 박재구 대표이사 이름의 입장문이 게재됐다. ‘안전한 근무환경을 만들어나가겠습니다’로 시작한 이 사과문을 유가족과 시민대책위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사자와 아무런 협의 없이 일방적인 내용을 담았을 뿐만 아니라, CU 측이 잘못한 책임에 대한 인정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또 적시한 안전대책을 실시하기 위한 기한과 비용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시민대책위는 “무엇을 사과하는지, 어떤 책임이 있는지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진정성이 없는 사과는 당면한 사건을 무마하고 덮기 위한 술수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최승현 노동당 사무처장도 “안전대책 몇 가지가 다가 아니다. 대책을 현실성 있게 실천할 힘 있는 곳이 진정성을 가지고 나서는 것이 중요하다”며 “건설현장 등에서 원-하청의 연대책임을 묻듯이, 본사-가맹점이 함께 책임을 져야한다. 본사가 연대책임을 져야 노동자, 나아가 시민들의 안전이 강화 된다”고 말했다. 이어 야간에 살인사건이 발생하는 편의점에서는 일하는 알바노동자 뿐만 아니라 이용하는 시민들도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재탕 삼탕 안전 대책, 그 자체도 미흡

BGF리테일이 팝업으로 내놓은 안전대책 자체도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대책의 구체적인 내용은 ▲정기적인 안전사고 예방 점검 ▲전문가, 가맹점주 협의 통한 안전사고 예방 매장 개발 ▲대피가 용이한 안심카운터 도입 ▲실효성 있는 지원 대책 등이다. 하지만 현장의 알바 노동자들은 물론, 점주들도 앞서 수차례 이야기 나왔고 실제로 하고 있는 것들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실제로 전국의 매장을 대상으로 실시하겠고 밝힌 안전점검은 본사 직원들이 기존에 각 점포를 방문해 112 핫라인 신고 시스템과 CCTV해상도 등을 확인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마포구의 한 가맹점주는 “아르바이트생들이 보다 안전하게 일하기 위해 필요한 변화를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신규가맹점의 경우 개선된 안전대책을 적용해 가게를 조성하면 되지만, 기존의 점포는 장사를 중단하고 공사를 하라는 말인가. 그 비용은 또 각 점주들의 몫 아니냐”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예방 차원의 시스템 강화와 함께 편의점 내에서 사건사고 발생 시 실질적으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 보완돼야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CU의 경우 한국의 3대 편의점 중 유일하게 손해배상 보험을 들지 않고 있다. 이와 달리 GS와 세븐일레븐의 경우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면 의무적으로 본사가 상해보험을 들어준다. BGF리테일은 이에 대한 시민대책위의 질문에도 명확한 답을 하지 않았다.

실효성 있는 안전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본사의 부담이 필수적인데, 이같이 중요한 대목마다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은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라는 비판이 나온다. CU 점주들이나, 알바 노동자들도 본사의 이번 안전대책 마련이 여론에 떠밀려 체면치레로 급히 내놓았다는데 일견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야간 알바 노동자 살해 막을 수 있었다

“알바 노동자에게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하라” 시민대책위는 BGF리테일을 대상으로 살해당한 경산 CU편의점 알바노동자 사건의 책임을 묻고 있다. 30대 젊은 알바 노동자의 죽음은 단순히 술 취한 한 명의 우발적인 범행으로 발생한 안타까운 사고가 아니라,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 핵심이다. 사고가 발생한 원인을 정확히 알아야 대책도 명확히 나온다. 시민단체가 지적하는 문제는 크게 3가지다. ▲ㄷ자 형태의 계산대 ▲탈출구 및 비상문 부재 ▲야간 유도 영업 등이다.

최기원 알바노조 대변인은 “사건 발생 100일이 지난 시점에 알바노조 대구지부에서 해당 경산 CU편의점을 방문해 야간에 혼자 손님을 맞으며 일하던 알바노동자와 인터뷰를 하고 보내온 사진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며 알바노동자를 감싸고 있는 ‘계산대’를 문제라고 지적했다. CU편의점의 ㄷ자 형태로 양쪽 끝이 벽면에 붙어 있다. 계산대의 중간 부분을 위로 들어 올려야 나올 수 있는 구조인데. 범죄자가 이를 힘으로 누르고 흉기로 위협하는 상황에서 알바노동자는 꼼짝없이 갇힌 신세가 된다. 프랜차이즈 편의점의 경우, 조금씩 배치의 차이만 있을 뿐 기본적으로 유사한 구조의 인테리어로 꾸며진다. 경산 CU편의점을 포함한 모든 CU편의점의 구조는 알바 노동자의 앞에는 포스기가 있고, 옆쪽에는 많은 상품들이 잔뜩 쌓여 있다. 뒤편에는 담배 진열대가, 한쪽 옆면에는 유리창 또는 벽이다. 이 같은 구조에서는 나이가 많거나 여성 알바 노동자의 경우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더 큰 어려움에 처한다.

이에 대해 최 대변인은 “좀 더 효율적으로 물건을 쌓아 올려서 사람들에게 하나의 물건이라도 더 팔기 위해 고심한 끝에 나온 결과물이 알바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필요한 탈출구나 비상문이 없는 계산대다. 사람의 생명보다 돈을 우선하는 사고가 알바 노동자를 죽게 만든 원인”이라며 “ㄷ자 형태의 계산대를 ㅡ자 형태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CU편의점 계산대에서 세월호의 과적,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고객센터 현장실습생에게 가해진 콜 수의 압박을 봤다고 덧붙였다.

24시간 편의점 그 자체가 광고판

시민대책위는 본사의 야간영업을 유도하는 방침도 철회해야한다고 말한다. 이들은 “손님이 드문 새벽 2시에서 4시 사이, 편의점 야간 알바노동자는 멍하니 서서 위험을 감수해야한다”며 “24시간 영업을 하는 편의점은 그 자체로 훌륭한 광고판 역할을 한다. 소비자들의 이용 편의를 앞세워 본사가 위험 비용을 알바들에게 전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본사가 인센티브를 이용해 편의점의 24시간 근무를 조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19시간 영업을 하는 편의점에는 65%의 수익을 넘겨주지만, 24시간 영업을 하는 편의점의 경우 75%의 수익을 줄 수 있다고 유혹하거나 가맹점 계약 시 다양한 지원책을 통해 야간 영업을 독려한다는 것이다.

2015년 편의점에서 벌어진 범죄는 총 1만 1,047건으로 2014년(6,600여 건)과 비교해 80%나 증가했다. 이 중 폭력과 강력범죄가 3,500여 건으로 30%가 넘었다. 이는 경찰에 입건된 수치다. 신고 되지 않은 사건을 더하면 이보다 대 여섯 배는 많아질 것이라는 것이 현장 알바 노동자들의 증언이다. 작년 11월 9일부터 23일까지 2주간 알바노조가 전·현직 편의점 아르바이트 노동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폭언·폭행을 경험한 이들은 67.9%에 달했다. 폭언이 59.0%로 가장 많았고, 폭행과 폭언을 모두 겪었다는 응답은 6.3%, 폭행만 당했다는 응답은 2.7%로 나타났다. 근무 시간대별로는 야간에 폭언·폭행 피해가 컸다. 야간 근무자의 폭행 경험률(12.4%)이 주간 근무자(6.2%)보다 두 배 높았다. 경산 CU편의점에서 발생한 사고가 단순히 우발적인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취약한 안전 환경에 기인한 측면이 있으며, 이같은 사고를 막을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익은 본사 몫, 위험은 알바 몫

그러면서 시민대책위는 “본사는 알바노동자를 범죄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장기적으로 편의점 야간노동은 줄여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현재 편의점 노동현장에는 CCTV영상 촬영과 신고에 의한 경찰출동 외에는 안전대책이라고 할 만한 것이 갖춰져 있지 않다. CCTV영상은 범죄 발생 후, 범인을 잡기 위해서는 유용할지라도, 범죄를 예방하는 효과는 없다. 또 경찰이 신속하게 출동을 한다고 해도, 경산 CU사건과 같이 짧은 시간에 범죄상황이 전개된다면 알바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시민대책위는 앞서 지적한 3가지 문제를 해결할 것과 동시에 본사가 편의점 알바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한다고 요구한다. 알바노동자가 범죄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도록 아크릴 가림막을 설치하거나 내부잠금형 계산대를 설계하는 것 등 다양한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어 이 같은 대안이 현실화될 수 있도록 모든 비용을 가맹점주가 아닌 BGF리테일이 부담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또 편의점 24시간 영업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야간노동은 2급 발암물질로 분류될 정도로 노동자의 건강에 해를 끼치고 폭력·범죄를 당할 확률을 높인다”며 “야간영업이 불가피한 점포가 있다면 본사가 노동자의 근로조건과 안전을 책임지도록 직접 고용해야 하며, 야간시간대는 2인 이상 근무를 원칙으로 하는 등의 방안이 법으로 강제돼야한다”는 것이다.

이어 “BGF리테일 홍석조 회장은 지난 3년간 CU의 주가 상승으로 1조 원가량의 돈을 벌었다. 같은 기간 BGF리테일은 5,000억 원의 영업 이익을 냈다”며 “BGF리테일은 알바노동자들의 야간노동을 통해 돈을 벌면서 그 위험은 모두 알바노동자들과 가맹점주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BGF리테일은 “24시간 운영은 사업의 한 방식이며, 기본 영업방침은 19시간 영업”이라며 “가맹점주들이 문제를 제기한다면 다르지만, 시민대책위의 지적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가맹점주들이 편의점 운영시간에 따른 옵션을 선택하는 것이지 강요는 없다”고 말했다. 또 “본사가 안전하게 일하기 위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해나가야할 부분들에 대해 검토 중”이라며 “외부 기관, 전문과, 경찰 등이 참여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시민대책위는 ▲BGF리테일 홍석조 회장과 박재구 대표의 공개적인 사과 ▲유가족에게 합당한 보상 지급 ▲편의점 알바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대책 마련 ▲무리한 야간영업 중단 등을 촉구하고 있다. 또 지난 3월 말 서울시 강남구 BGF 본사 앞에서 시작한 1인 시위를 지속하고, 오마이뉴스에 경산 CU 알바노동자 살해사건의 피해당사자들이 직접 릴레이 기고해 해당 문제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확대해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한편 본사와의 협의 내용에 대한 법률적 검토를 끝내는 대로 본사와 대화하는 자리를 공식적으로 요청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