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예술인들의 권리 찾기는 이제부터
공연예술인들의 권리 찾기는 이제부터
  • 이동희 기자
  • 승인 2017.05.08 14:31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도 노동자다” 공연예술인노동조합 출범
[리포트] 공연예술인노동조합

“가만히 있으라” 세월호 참사 당시 이준석 선장의 안내방송 내용이었다. 그리고 안내방송을 듣고 가만히 있었던 수많은 승객들은 세월호와 함께 바다에 가라앉았다. “가만히 있으라” 이 말은 3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가슴에 깊게 박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상처가 되었다. 이종승 공연예술인노동조합(공연예술인노조) 위원장은 세월호 참사를 보고 관행이란 이름 아래 정말로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 우리의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공연예술인노동조합의 첫 발걸음이었다.

사회 연대로부터 시작한 노조 출범

공연예술인노조는 세월호 참사 이후 “이 참사를 그냥 두고 볼 수 없다”라는 연극인들의 사회적 연대가 중심이 되어 탄생했다. 참사 이후 ‘연극미래행동 네트워크’ 모임이 만들어졌고 500명이 넘는 연극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공연예술인노조 초대위원장인 이종승 위원장은 “예술인들은 정치적인 발언을 자제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럼에도 ‘연극미래행동 네트워크’가 만들어지고 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사회활동을 이어 나갔다. 그러면서 우리가 가진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우리의 소리를 스스로 낼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라고 말했다. 이후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노조의 필요성을 고민한 끝에 준비 위원회를 거쳐 2017년 3월 27일 공연예술인노조가 출범했다.

공연예술인노조는 27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좋은공연 안내센터 다목적홀에서 창립식을 진행했다. 창립식에서는 3대 권리 운동을 주장하며 ▲예술인 최저임금제도 실시 운동 ▲기본소득법 실시 운동 ▲기초 공연 예술 진흥법 입법 운동을 선언했다. 조합원은 공연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배우, 제작자, 연출, 작가들로 이루어졌으며 출범과 함께 85명의 조합원이 함께했다.

조합원의 80% 이상이 연극인들이지만 ‘연극인노조’가 아닌 ‘공연예술인노조’인 이유는 비슷한 처우에 있는 공연예술인들을 한 명이라도 더 포함시키기 위한 노조의 노력과 고민이 들어있다. 이 위원장은 “공연예술 안에서도 소수이거나 정체성을 어디에 두어야 할 지 모르는 분들까지 포함할 수 있도록 했다. 나중에 분과를 시키더라도 지금은 함께 묶는 것에 의미를 두었다”라고 밝혔다.

시급한 임금 문제, 61.3% 월 50만 원 미만 받는다

공연예술인노조는 노조 창립에 앞서 SNS를 통해 ‘2017년 공연예술인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공연예술인 164명이 참여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 달 평균 공연 수입을 묻는 질문에 ‘50만 원 미만’ 응답자가 61.3%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50 이상 100만 원 미만’은 23.1%, ‘100 이상 150만 원 미만’은 10.6%를 차지했다.
이어서 현재 공연예술 활동에 있어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59.4%가 ‘낮은 임금’을 꼽았다. 영세한 극단의 경우 제작비의 반 이상이 극장 대관료로 나가게 된다. 그 다음에 세트, 무대, 조명 등의 비용이 계산되기 때문에 배우와 스태프의 임금은 제일 마지막에 계산된다. 또한 공연을 위한 연습시간을 근로시간으로 계산하지 않는 것도 저임금의 원인이다.

저임금을 당연히 여기는 관행도 문제이다. ‘너 아니어도 할 사람 많아’와 ‘공연하는 걸 감사히 생각해’ 식의 으름장에 공연예술인들이 저임금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 ‘예술 활동 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냐’는 물음에 80.5%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기초 생활도 누리기 힘든 심각한 저임금 문제에는 어제오늘이 아니다. 이들에게 아르바이트는 언젠가부터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버렸다.

이 위원장은 “노조에서 공연예술인 기초 생활 보장을 외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많은 공연예술인들이 최저시급도 안되는 임금을 받으며 이 일을 한다. 많은 공연예술인들이 이를 직업으로 여기고 자부심을 느끼기 위해서는 기초 생활 보장이라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실태조사에서도 공연예술인 노동조합에서 최우선으로 개선해야 할 점으로 ‘예술인 최저임금 제도 실시’가 63%로 1위를 차지했다. 이외에도 ▲지원 제도 개선 ▲기본 소득법 실시 ▲예술인 공공임대주택 확대 ▲예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 확대 ▲표준 계약서 도입 등을 개선해야 할 점으로 꼽았다.

이 위원장은 이러한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기초예술이 인정받고 예술을 하는 사람도 똑같이 보편적 복지와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라고 밝혔다.

공연예술인노동조합 창립선언문


"당신이 위태로우면 예술이 위태롭고 사회가 위태롭습니다."

우리는 공연예술인 노동조합 창립을 선언한다.
우리는 예술노동을 하는 노동자임을 선언한다.

예술인의 예술 활동은 작품을 통해 사회적 의식과 문화를 만드는 공공적인 창조활동이다. 예술인은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심지어 다음 세대를 위해서까지 노동한다. 즉, 예술인은 자신이 속한 사회와 고용관계를 맺고 그 사회 존립의 토대인 공공적 가치를 만드는 예술노동을 하는 노동자다. 하지만 우리가 속한 사회에서 예술인들의 현실은 어떠한가? 정의롭지 못한 작업환경에서 울분을 삭이며 일하고, 법적으로 명시된 최저임금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으며 장시간 연습과 공연을 하고, 예술 활동 외의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밥은 먹고 예술 하기'가 가능하다. 예술이 위태롭다. 공공적 가치 생산을 위협받고 있는 사회가 위태롭다.

지난겨울, 우리는 국가와 국민을 농락한 권력이 오로지 주권자 국민의 힘을 통해 무력화된 것을 목도했다. 다른 권력에게 기대지 않고 오직 국민 스스로의 단결된 힘으로 행동했을 때만 정의의 실현과 스스로의 권리 찾기가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에 우리는 위기에 빠져 있는 예술인들의 법적 지위의 확보와 보편적 복지를 통한 존립 자체를 인정받기 위해 공연예술인 노동조합 창립을 선언한다. 우리 공연예술인노조는 앞으로 사회적 재부를 생산하는 예술노동자의 단결을 통한 스스로의 권리 찾기를 시작할 것을 천명하며 아래와 같이 선언한다.

하나, 우리는 예술노동을 하는 모든 예술노동자의 권리를 찾기 위해 투쟁한다.

하나,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예술혼을 불태우고 있을 예술인의 보편적 복지와 위해 열악한 제작 환경 개선을 위해 투쟁한다.

하나, 우리는 예술노동자로서의 자긍심을 높이고 예술이 갖는 가치를 전 사회적으로 공유하기 위해 투쟁한다.

하나, 우리는 더 큰 변화를 위해 각각의 문화예술계 노조들과의 사회적 연대를 위해 앞장선다.

위 선언을 실현할 공연예술인노동조합 3대 권리운동을 펼치고자 한다.
① 예술인 최저 임금제도 운동
② 기본 소득법 실시 운동
③ 기초 공연예술 진흥법 입법 운동

춥고 어두웠던 겨울을 밀어내고 봄을 맞았지만 진정 푸른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우리의 푸른 봄을 예술노동자 스스로의 힘으로 맞을 것이다.

2017년 3월 27일
공연예술인노동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