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노동자들의 힘찬 발걸음
알바노동자들의 힘찬 발걸음
  • 이동희 기자
  • 승인 2017.05.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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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권리를 넘어 사회연대까지
[인터뷰] 이가현 아르바이트노조 위원장

2017년 대한민국 최저임금은 6,470원이다. 노동계에서 최저임금 1만 원을 주장하는 요즘, 훨씬 전부터 최저임금 1만 원을 외친 단체가 있었다. 바로 지금의 아르바이트노조(알바노조)의 모태인 아르바이트연대(알바연대)이다. 그리고 알바노조와 알바연대는 지금도 함께 최저임금 1만 원을 향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시급 1만 원으로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소득을 높이고 일하는 시간을 줄여나가자는 알바노조. 그 활동에 앞장서 있는 젊은 위원장, 이가현 위원장을 만났다.

먼저 알바노조 소개를 한다면?

2012년 18대 대선 때 청소노동자 김순자 후보가 아르바이트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홍대 중심으로 벌인 조사였는데, 대부분의 사업장이 근로기준법을 안 지키는 것은 물론이고, 당구장에서 일하는 알바 노동자가 10분 지각했다고 큐대로 10대를 맞았다는 등의 비상식적인 응답들도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김순자 후보는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의 문제를 제기하고 그들을 위한 공약을 내세웠다. 대선이 끝난 뒤 김순자 후보 선거운동에 참여했던 청년들이 이대로 끝내지 말로 계속 행동을 이어나가자고 만든 것이 ‘알바연대’였다. 2013년 1월 2일에 출범한 이 ‘알바연대’가 지금의 알바노조의 모태이다.

활동 당시 알바연대는 시민단체다 보니 당사자가 나서서 기업과 교섭을 맺는데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그 해 여름에 바로 노조를 만들어서 활동을 시작했다. 지금도 알바노조와 알바연대는 함께 활동하고 있다. 알바노조 조합원은 700명 정도이고 알바연대 회원은 600명 정도 있어서 합하면 1,300명 정도이다.

알바 노동자들의 권리를 찾는 것이 우리의 최종 목표이다. 법을 준수하도록 하는 것뿐만 아니라 법의 수준을 높이고 노동자 인권 수준을 높이는 사회를 꿈꾸고 있다.

위원장이 노조에서 활동하게 된 계기는?

출범할 당시 함께 했던 것은 아니고 2013년 10월에 알바노조에 가입했다. 그때 당시 맥도날드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아서 근로계약서를 요구하니 한 달이 지나고 나서야 작성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부당한 노동환경이 많았는데 내가 대학교 전공이 법학인데도 노동법에 대해 무지했다. 노동법 수업은 학년이 높아야 들을 수 있었고 필수과목이 아닌 선택과목이었다. 앞으로도 내가 계속 알바를 할 텐데 이 부분은 꼭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알바노조 교육과 강연을 나가면서 노조 활동을 시작했다. 2014년도에 미국에서 일하는 패스트푸드 노동자들 파업을 지지하는 기자회견을 했다가 계약을 해지당했다. 당시 집행부 사무국장님이 “내가 일하는 노동환경이 마음에 안 든다고 그만두고 다른 알바를 구하면 다른 곳에서도 똑같은 일이 반복될 뿐이다. 네가 있는 곳부터 바꿔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씀해주신 기억이 난다. 처음에는 매장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알바노조에서 활동한다고 말도 못 꺼냈다. 막상 활동을 시작하니 긍정적인 반응을 보내주고 응원의 말도 들을 수 있었다.

20대 중반에 노조 위원장 자리에 있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닌데 주변에서는 어떻게 보는지?

알바노조 내에서는 그런 시선이 없는데 외부 노조와 단체에서는 “나이도 어린 여자애가 똘망똘망하네, 기특하네” 이렇게 봐주신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동등한 사람, 동등한 위원장으로 봐주지 않는 것 같아 불쾌함을 느낄 때도 있다. 아마 노동에 관심을 갖는 또래 분들이 많지 않아서 그런 것도 있는 것 같다. 가족들 같은 경우 노조 활동을 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이 걱정을 많이 하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부모님도 예전에 노조 활동을 하신 적이 있는데 그때 노조에게 받은 상처가 있으셔서 혹시나 딸이 힘들어할까 걱정하신 것 같다. 부지런히 꾸준한 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시고서 지금은 많은 지지를 보내주신다. 친구들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응원을 해주고 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들에게 관련 상담도 많이 들어오고 있다. 친구의 아르바이트 임금 체불 문제를 해결한 적도 있다.

사람들의 ‘아르바이트’에 대한 인식은 어떤가?

요새는 알바노조가 계속 이야기를 해서 그런 시선이 좀 덜한데 한때 언론에서 주로 다뤘던 아르바이트 노동자 모습은 “돈이 없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는 불쌍한 우리 청년들” 딱 이거였다(웃음). 사실 알바노조는 세대별 노조가 아니다.

청년뿐 아니라 60대까지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는데 언론에서는 주로 청년만 부각해서 불쌍하다는 인식을 심어놓은 것 같다. 관련해서 초창기 때부터 계속 얘기해온 것이 ‘아르바이트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아르바이트 노동자’라고 사용하는 것. 학생이라는 단어에 ‘생’이 들어가듯이 아직 배우고 있고, 완성되지 않은, 아직 노동을 제공하기에 완전하지 않다는 인식이 ‘아르바이트생’에 들어가 있는 것 같다. 좀 덜 챙겨주고 돈을 덜 줘도 된다는 잘못된 인식을 바꾸고 싶었다. 거기다가 아르바이트 자체를 정식 일자리를 갖기 전에 잠깐 하는 일이라고 여기고 정식적인 노동으로 여기지 않는 것 같다. 아르바이트 역시 똑같은 노동으로 인정받는 게 중요하다. 우리에게는 권리가 있고 불쌍한 존재가 아닌 당당하고 존엄이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리고 싶다.

현재 가장 중점을 둔 사안은?

알바노조가 처음 생겼을 때부터 계속 최저임금 1만 원 얘기를 해왔다. 지금은 최저임금 1만 원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많지만 그때만 해도 주변 노동계에서도 최저임금 1만 원 너무 과한 것 아니냐는 시선이 많았다. 지금은 노동계에서도 최저임금 1만 원을 주장하고 있고 국민적으로도 여론이 생겼으니 올해는 꼭 최저임금 1만 원의 결실을 맺어야 한다. 대부분의 대선 후보들이 ‘최저임금 1만 원’에는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달성 시기를 정하지 않거나 20년까지 하겠다, 22년까지 하겠다고 말하고 즉각적인 최저임금 1만 원 실행에는 동의하고 있지 않고 있다.

우리는 즉각적인 최저임금 1만 원을 요구한다. 지금까지 최저임금이 올라가는 비율을 보면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만 있어도 22년에는 자동으로 최저임금이 1만 원이 된다. 22년에 1만 원으로 올리겠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조합원들끼리는 우스갯소리로 그럴 거면 대선도 22년에 나오지 그랬냐고 농담을 한다(웃음). 아무래도 노동자들의 표를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영업자들의 표도 무시할 수 없어서 확답을 주지 않는 것 같다.

최저임금 1만 원만 된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최저임금 1만 원을 둘러싼 것들이 함께 변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임대료와 대기업 수수료를 낮추고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노동시간을 단축해서 일자리를나누고 이런 것들이 함께 해야 최저임금 1만 원이 비로소 그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작년에 아르바이트노조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가현이들>을 선보였다.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는?

신기하게도 알바노조 안에 가현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나를 포함해 3명이었다. 이 세 사람이 알바노조에서 많은 일들을 해왔으니 이 세 사람을 중심으로 알바노조를 설명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에서 영화를 만들게 됐다. 영화를 찍을 당시 진행했던 알바노조 활동도 영화에 담았고 “우리 모두가 가현이들이다”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 다른 알바 노조원의 이야기도 담고 활동할 때 어떤 고민들을 했는지도 영화에 담으려 했다.

정말 감사하게도 여러 영화제에 <가현이들>이 초청되어 상영됐다. 전국에 있는 알바노조 지부들에서도 <가현이들>을 상영하면서 관객과의 대화 시간도 가졌다. 알바노조 조합원들 경우에는 자신과 비슷한 이야기가 나올 때 우는 분들도 계시고 대부분 많은 공감을 주셨다. 조합원이 아닌 일반 시민들에게는 아르바이트 노조가 어떤 곳이고 어떤 활동을 하는구나 하고 알리는 계기가 됐다. 영화를 보고 자신의 노동환경을 상담하시는 분들도 계셨고 노조에 가입하신 분들도 꽤 있었다. 영화가 무겁고 슬프지만은 않다. 오히려 경쾌한 분위기에 가깝다. 알바 노동자가 불쌍한 존재가 아닌 당당한 존재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최저임금 1만 원’ 외에 다른 활동은?

아르바이트 문제와 함께 사회의제도 많이 다루려고 한다. 작년에는 여성주의를 알바노조 안에서 많이 얘기했었고 올해는 장애인 인권문제, 성 소수자 인권문제, 청소년 인권문제 등을 알바노조와 접점을 찾으려고 한다.

일례로 성 소수자 문제에 대해서는 노동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일이 많이 없다. 그런 부분을 알바노조에서 문제를 제기해 성 소수자들도 일터에서 똑같이 차별 없이 일할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행성인’이라는 성 소수자 단체 모임이 있는데 그 단체에서 <가현이들>을 초청해서 함께 영화를 봤다. 그 자리에서 성 소수자들도 노조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얻기도 했다. 알바노조 내부에서 모임도 갖고 점차 활동을 확장해서 이런 의제들을 사회적으로 알리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올해는 이런 의제들이 정착할 수 있게끔 관련 활동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