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지부장에서 CEO로, 이유 있는 변신
노조 지부장에서 CEO로, 이유 있는 변신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7.05.08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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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산한 회사 십시일반 살려낸 우림건설 노조
[인터뷰] 표연수 우림건설산업(주) 대표이사

중견 건설사였던 우림건설(주)은 PF 채무부담으로 지난 2009년 워크아웃에 들어가 지난해 8월 끝내 파산했다.

파산한 회사로부터 해고통보를 받은 노동자들이 퇴직연금을 갹출하고, 투자자를 찾아 나선 끝에 회사를 재건한 사례가 주목받고 있다. 표연수 건설기업노조 우림건설지부장과 조합원들이 이룬 쾌거다.

노조 지부장에서 경영자로 변신을 꾀한 표연수 우림건설산업(주) 대표이사를 만났다.

그는 “우림의 새로운 도약을 위하여 물심양면으로 응원해 주신 조합원을 비롯한 모든 임직원들께 감사하다”고 전했다.

파산한 회사를 떠나지 않고 다시 살려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었나?

 

우선 과정을 이야기하면, 우림건설이 2009년에 워크아웃에 들어가 작년 8월 12일에 법원으로부터 파산선고를 받았다. 서초구 사옥을 매각하고 인원 감축을 실시하며 자구노력을 했지만, 파산선고 한 달 뒤인 9월 16일에 전 직원이 해고통보를 받았다. 처음에는 M&A(인수합병)를 두 차례에 걸쳐 추진했는데 모두 실패했다. 결국 인수자를 찾지 못해 파산 절차를 밟게 됐다.

파산한 다른 건설사들도 그런 사례가 있었는데, 만약 ‘우림필유’ 브랜드를 직원들이 가져올 수 있다면 승산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자본 문제는 퇴직금을 활용하거나 투자자를 모으면 해결될 것 같았다. 옛날에 다니던 다른 건설사도 파산했을 때 아파트 브랜드만 남았다. 우림이라는 브랜드 가치는 충분하기 때문에 대안을 찾으려고 했다. 노동조합 지부장으로서 경영 악화로 인한 임금체불, 고용불안을 방기할 수 없었다.

직원들이 출자한 금액만으로는 부족했을 텐데, 어떻게 돌파구를 찾았나?

일단 투자자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새롭게 만들어질 회사는 직원들이 참여를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직원들이 각자 주인의식을 갖는, 1인 체제가 아닌 회사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해고통보를 받고 나서 우림필유 브랜드를 직원들이 갖겠다고 법원에 탄원을 했는데, 법원에서 특정인한테는 브랜드를 줄 수 없다고 했다. 결국 법원이 공매를 내놓게 됐다. 회사가 파산하기 1년 전인 2011년, 그러니까 워크아웃에 들어간 지 2년이 지나고서 만일을 대비해 우림건설산업이라는 상호를 경기도에 등록해 놓았었다.

회사가 파산하더라도 우림이라는 이름을 가져갈 생각을 했던 건데, 사업자등록증은 안 낸 상태였다. 공매에 참여하려면 사업자등록도 돼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자본이 있어야 하는데 상호만 잡아놓은 상태니까 법인 투자자를 찾기 시작했다. 수소문 끝에 건설·임대사업을 하던 김영환 회장을 만났고, 우림건설을 다시 설립하게 됐다. 종업원 지주회사인 우림건설산업은 정식으로 사업자등록증을 내고, 우림건설의 주주회사로 참여했다. 직원들이 십시일반으로 우림건설산업(주)을 설립하고, 우림건설산업(주)과 김영환 회장이 공동으로 출자해서 우림건설(주)를 설립한 것으로 과정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세 건의 사업을 수주했다고 들었는데, 이번 사례가 알려진 것이 계약 성사에도 영향을 주었나?

많은 도움이 됐다. OB라고 퇴사한 직원들이 있는데, 옛 우림건설 시절 직원이 800명까지도 됐다. 파산 후에 이 직원들이 곳곳에 다 가 있다. 타 건설사에도 가 있고, 신탁회사나 은행, 협력업체, 시공까지 건설업에 연관된 모든 업종에 다 들어가 있다. 그러다 보니까 우림건설 출신들의 네트워크가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브랜드 인지도는 두 번째이고,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인 것 같다. ‘사람이 미래다’라는 어느 기업의 문구를 예전에는 구호로만 느꼈는데, 요새는 굉장히 절실히 느끼고 있다.

우림필유 브랜드만 갖고 온다고 해서 성공할 수는 없다. 옛 우림건설 OB들의 규합, 이게 더해져야 브랜드가 힘을 발휘한다. 다른 건설사의 사례에서 종종 볼 수 있듯 사람 없이는 무조건 실패한다. 이번에 우림건설이 직원들의 힘으로 다시 일어섰다는 소식이 OB들에게도 알려지면서 다방면으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직원들이 우림건설 출신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히 크다.

힘든 과정을 겪었지만 이제는 회사를 이끌어가는 위치가 됐는데, 고민이나 바람이 있다면?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고민, 걱정 모두 많았다. 막상 시작하고 나니까 요즘에는 경영 관련해서는 큰 고민이 없다. 일이 저절로 풀린다. 결국 우림건설 출신 OB들의 역할, 사람이 재산인 것 같다. 단시간에 이 정도로 계약을 따낸 것도 개인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주위의 도움 때문에 된 거다. 다만 하나 바람이 있다면, 옛날에 눈물 흘리면서 나간 직원들이 돌아오고 싶어 한다. 100세 시대 아닌가. 건설사에서는 50세 이전에도 많이 퇴사하는데, 오래 다닐 수 있는 회사, 가족 같은 회사를 만들고 싶다.

건설업이 경기를 많이 탄다는 말이 있다. 옛 우림건설이 가장 성장을 한 때가 경기가 가장 안 좋을 때였다. 사실상의 종업원 지주회사라는 점이 큰 경쟁력을 갖게 되지 않을까. 경기변동이 있더라도 잘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이 발휘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