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소득주도성장론’, 결국 의지의 문제?
돌아온 ‘소득주도성장론’, 결국 의지의 문제?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7.06.13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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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최저임금 ‘1만 원’ 가나
[커버스토리] 깜깜이 최저임금 ①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했던가. 지금쯤이면 이듬해 시간당 최저임금이 얼마나 될지 점치는 뉴스가 넘쳐나야 했다. 경영계와 노동계는 서로가 제시한 금액 사이에서 신경전을 벌여야 했고, 사용자위원을 비판하는 노동계의 성명서가 속속 도착해야 했다.

오는 6월 29일, 최저임금 결정 시한은 다가오는데 최저임금위원회는 회의조차 열린 적이 없다. 대선 기간 동안 후보들이 외쳤던 ‘최저임금 1만 원’ 공약이 무색하다. 게다가 노동계는 최저임금위원회를 거부하고 있다. 내년 최저임금, 그리고 최저임금위원회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제19대 대선에 출마한 후보들은 하나 같이 시간당 최저임금 1만 원 달성을 공약했다. 그 시기는 2020년에서 2022년으로 차이는 있었으나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올려야 한다는 데 드러내놓고 반대한 후보는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을 달성하겠다는 공약으로 내놨다. 이를 위해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 대비 10% 이상 올리겠다고 약속했다. 주변부에서 맴돌던 ‘정치적 구호’가 이제는 어느 정도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듯하다.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밑그림은

5월 10일 임기를 시작한 문재인 대통령은 연일 파격 행보를 보이며 관심을 모았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는 뉴스가 됐다. 앞으로 발표될 새 정부의 정책에 기대를 거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에 대한 기대감도 덩달아 커지는 분위기다. 문 대통령이 ‘일자리 대통령’을 자임한 만큼 시간당 최저임금 역시 큰 폭으로 올라가지 않겠냐는 것이다. 공공부문 일자리 81만 개 창출 공약과 더불어 유권자들에게 각인된 것은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 달성 공약이다.

대선 당시 더불어민주당이 내놓은 정책 공약집에는 최저임금에 관한 내용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최저임금 1만 원 조기 달성은 ‘일자리 대통령 100일 플랜’의 13대 과제 중 하나로 들어가 있다. 문재인 정부는 당장 내년도 적용 최저임금을 현행 대비 10% 이상 올리는 방안을 제시했다. 인상률이 10%를 넘기려면 시급이 적어도 650원 이상 올라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한 발 더 나아가 최저임금 결정기준에 가구생계비를 포함시킴으로써 최저임금 인상폭을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더해 최저임금 1만 원 실현을 위한 세부과제로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에 대한 보상대책을 마련하고, 최저임금을 위반한 사업장 감독을 강화하는 계획이 제시됐다. 카드수수료를 인하하고, 부가가치세 경감 혜택은 확대한다. 특히 중소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납품단가와 최저임금 인상을 연동하는 방안도 내놨다. 이와 함께 문재인 캠프는 최저임금 준수 여부를 전담하는 근로감독관을 신설하고, 상습적이고 악의적으로 최저임금을 위반하는 사업주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의 밑바탕에는 가계소득 증가를 통해 내수를 활성화 하고, 내수 확대가 경제성장으로 이어질 거라는 믿음이 자리 잡고 있다.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면 소득에 비해 지출이 큰 저임금·저소득 가구의 소비 여력을 높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잠깐 논의되다 말았던 ‘소득주도성장론’이 되살아난 셈이다.

2020년이냐, 2022년이냐

미국과 일본이 소비 진작을 위해 최저임금 대폭 인상에 나섰던 것과 비교하면 한국은 한 발 늦은 감이 있다. 또한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으나 그 속도에 대해서는 이견이 존재한다. 지난 대선에는 최저임금 1만 원 달성 시기를 2020년으로 할 것이냐, 2022년으로 할 것이냐를 놓고 후보자들 사이에 입장이 갈렸다. 문재인·유승민·심상정 후보는 2020년을, 홍준표·안철수 후보는 2022년을 목표치로 설정했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 원대로 끌어올리려면 연 평균 15.7%씩 인상돼야 한다. 매년 같은 비율로 최저임금이 상승한다고 가정하면 올해 6,470원인 시간당 최저임금은 내년에는 7,490원이 돼야 한다. 이보다 속도를 늦춰 2022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을 달성하려면 매년 9.2%의 인상률을 보여야 한다. 이 경우 내년도 시간당 최저임금은 7,070원이 된다. 역대 정부의 연 평균 최저임금 인상률을 살펴보면 김대중 정부 9.0%, 노무현 정부 10.6%, 이명박 정부 5.2%, 박근혜 정부 7.4% 등으로 나타난다.

노무현 정부에서 최저임금이 가장 가파르게 올랐는데, 이보다 5.1%p 더 높은 인상률을 유지해야 2020년 최저임금 1만 원 달성이 가능하다. 반면 2022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을 달성하려면 김대중 정부 당시와 엇비슷한 속도를 유지하면 된다. 이 때문에 너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이 받는 충격을 더 크게 할 것이라는 주장과, 1만 원 도달 시기를 2022년으로 잡는 것은 저임금·저소득 문제 해소의 의지가 부족하다는 주장이 맞선다.

그런 가운데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최저임금 공약을 기존 2020년에서 임기 중 실현으로 수정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가 공개되기도 했다. 청와대에서는 아직까지 공약 수정을 검토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여당 내부에서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놓고 견해차를 보이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

복잡한 셈법 속 또 하나의 변수

만약 새 정부의 공약에 변함이 없다면, 최저임금위원회라는 틀 안에서 어떻게 합의를 이루어낼 것인지가 관건이다. 그러나 최임위는 사실상 불능 상태에 처해졌다. 지난해 7월 근로자위원들이 최저임금 심의·의결 과정에 문제를 제기하며 전원 사퇴 의사를 표명했기 때문이다. 최임위 복원이 하나의 변수로 떠오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