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악한 현실 바꿀 ‘산별노조’
열악한 현실 바꿀 ‘산별노조’
  • 김민경 기자
  • 승인 2017.06.13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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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 3사 노조, 오는 11월 마트산업노조 출범
[리포트] 마트산업노조 올해 출범

기업별 노동조합과 산업별 노동조합. 노동조합은 조직형태에 따라 둘로 나뉜다. 전자는 기업 단위의 노동자들이, 후자는 동일 산업의 노동자들이 모여 만든다. 두 노조는 각 노조 영향력이 기업 내에 머무느냐, 산업 전체에 도달하느냐의 차이로도 구별할 수 있다.

“기업별 노조의 한계가 드러났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산별노조가 절실하다.” 민주노총 소속 대형마트 노동자들은 작년부터 ‘마트산업노동조합’의 필요성을 본격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해 3월 준비위원회를 꾸렸다. 이들은 올해 11월 본 조직 출범을 목표로 잡고 결의를 다지고 있다.

한국유통산업 주도하는 대형마트 3사

한국사회에 대형마트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90년이다. 이전까지 한국 유통업계의 두 중심축은 재래시장과 백화점이었다. 가격파괴를 내건 대형마트는 소비자들을 공략하며 현재 한국유통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대형마트 시대를 연 건 이마트다. 이마트의 성공 이후 홈플러스와 롯데마트가 잇따라 생겼다. 2000년 163개였던 대형 마트 점포 수는 5년 만에 배로 늘었고, 2016년 기준 500여 개에 달한다. 이중 이마트가 150개, 홈플러스가 141개, 롯데마트가 109개의 점포를 보유하고 있다. 이 3곳의 대형마트의 매출액이 유통업체 전체의 80.3%를 차지한다.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3사는 한국 대형마트의 일명 ‘빅3’로 불린다.

대형마트 ‘도심의 공장’

한국의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전체 노동자 수는 50여만 명으로 추산된다. 2014년 유통업체 연감에 따르면 빅3사가 직접 고용한 노동자는 7만 6,000여 명이고, 협력업체와 파견업체 직원 등 비정규직노동자는 2.5배에 달하는 20만 명 규모이다.

김영주 민주롯데마트노동조합(이하 롯데마트노조) 위원장은 “대형마트는 도심의 공장이라 말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많은 노동자가 일하는 곳”이라며 “한국의 모든 고용형태가 망라돼 값싼 노동력으로 엄청난 이윤을 창출하는 대기업의 갑질 판”이라고 말했다. 흔히 마트에는 갑·을·병·정이 있다고 표현한다. 회사가 갑이고, 회사의 직영 직원이 을이다. 협력업체는 병, 협력업체 안에서도 파견직 노동자는 정이다. 같은 마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고용형태는 이처럼 제각각이다.

롯데마트를 예로 자세히 살펴보면, 현재 마트 안에는 ▲마트에 직고용된 3,000여 명의 정규직 노동자와 직고용된 무기계약직(일명 행복담당) 9,000여 명 ▲협력사에 직고용된 정규직과 비정규직 ▲인력업체에서 파견된 비정규직 ▲입점업체로 등록된 자영업자와 이들에게 고용된 비정규직 등이 있다. 롯데마트에 직고용된 노동자만을 가입대상으로 하고 있는 롯데마트노조는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개선하는데 초점을 맞춰 활동하고 있다.

전수찬 이마트노동조합(이하 이마트노조) 위원장은 “노조에 가입할 수 있고 노조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마트노동자는 대형마트 3사 직영노동자 7만 명 정도에 그쳐 기업별 노조가 마트현장에서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바꿔 나가기 어렵다”고 말했다. 노조로 조직된 마트노동자들이 파업을 해도, 업무 공백은 협력업체 직원들로 메워져 매장은 문제없이 정상 운영된다.

저임금·열악한 근무환경에 시달리는 마트노동자

대형 마트의 매장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직영비정규직,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공통적이다. 저임금 구조의 늪과 열악한 근무환경과 그것이다. 정민정 서비스연맹 교선국장은 “기본적으로 마트노동자들의 처지는 을이건 병이건 다 열악하다”며 “직영이든 협력이든, 사업장의 구분 없이 모든 마트노동자들이 겪는 어려움”이라고 말했다.

“반찬값 벌자고 나온 것 아니다” “못난 부모 한시름 덜어준다고 두세 개씩 알바를 하며 지쳐 있는 두 딸들에게 몸보신 좀 시켜주고 싶다” “안정적인 수입과 생활로 결혼도 하고 희만을 가지고 살 수 있으면 좋겠다” “부모님 약값 좀 부담 없이 갚고 싶다” “자식들에게 책값이라도 마음 편히 주고 싶다”

작년 저임금 실태 증언 대회에서 대형마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쏟아낸 말이다. 1년이 지났지만 문제 상황은 개선된 것이 없다.

마트산업노조 준비위의 2017년 자료에 따르면 빅3사 노동자들의 시급은 6,600원~6,800원이었다. 마트노동자들은 법정 최저임금수준의 저임금을 받고 있는 것이다. 다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적인 임금은 상여금과 복지 항목 등에서 나타났다. 롯데마트의 경우 정규직 상여금은 기준급(시급×7시간×근무일수)의 800%를 기준으로 인사고과에 따라 차등지급하는 반면 무기계약직의 경우 상여금 항목 자체가 없었다. 2013년 이후 빅3사에 노조가 생기면서 최근 개선되고 있지만, 병가제도나 상여물품 지급 등 복지혜택에서도 여전히 차별이 존재한다.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경우는 자신들이 처한 환경이나 임금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내고 개선을 요구할 통로조차 없다. 동원F&B와 같이 직접 고용으로 노동조합이 만들어질 수 있는 구조인 협력업체는 극소수이다.

▲ 지난 4월 25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대형마트 노동자들이 즉각적인 최저임금 1만 원 인상을 요구하며 릴리이 1인 시위에 돌입했다.

최저임금 1만원 투쟁 집중하는 이유

김기완 홈플러스노동조합(이하 홈플러스노조) 위원장은 “홈플러스노조는 서비스연맹 소속 대형마트 3사 중 교섭권을 가져 힘이 가장 세지만, 최저임금보다 몇 백 원 많은 수준의 마트 노동자 저임금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도 회사는 다른 타 대형유통기업의 핑계를 대며 담합하듯 임금인상을 제한하고 있다”며 “기업별 노조가 마트 노동자가 처한 저임금 구조를 바꾸는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마트 노동자들이 기업 노조의 임금교섭에 의지해 저임금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보다, 마트산업노조 준비위 차원에서 함께 대정부 최저임금 1만 원 투쟁에 집중하는 이유다. 후자가 오히려 마트 노동자들의 임금을 확실하게 올릴 수 있는 방안인 것이다.

실제로 준비위는 작년 출범 때부터 ‘최저임금 1만원’을 요구하는 활동을 지속적으로 이어오고 있다. 지난 조기대선 국면에서는 유력 대선후보들에게 ‘지금 당장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준비위는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시절 ‘최저임금을 2020년까지 1만원으로 올리겠다’고 공약한 것이 지켜지도록 노숙농성 등 이전보다 강도 높은 활동을 하기 위한 내부 논의를 하고 있다.

정 교선국장은 “통상적으로 월급은 하루 8시간을 기준으로 한 달에 209시간 일하는 것으로 계산하지만 마트 노동자들은 단시간 근무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노동자 스스로 단시간 근무를 택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은 필요한 시간에 최소한의 인력을 배치하려는 회사의 결정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마트에서 계산원으로 근무하는 노동자 대부분은 하루 5~6시간 근무를 한다. 주 40시간 일하는 다른 노동자와 비교했을 때 3분의 2 정도의 시간만 근무하며, 최저임금으로 정해진 최소한의 월급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실정이다.

대형마트의 일상적인 불법 파견

대형마트에는 일상적인 불법 파견이 만연하다. 마트의 협력업체 사원들 대다수는 ‘정’에 해당하는 파견직이다. 김종진 서비스연맹 법규부장은 “대형마트는 갑의 지위에서 을의 지위에 있는 협력업체에 불법 파견을 지시하고 있다”며 “마트 본사가 ‘협력사원 근무 의뢰서’를 꾸며 협력업체가 자발적으로 파견을 요청한 것처럼 한 후, 협력사 직원에게 파견목적 외의 업무를 시킨다”고 지적했다. 협력업체 직원들은 파견업체로부터 부여받은 자신의 업무 외 타사업무나 대형마트의 업무 지시를 거부할 수 없다. 마트 본사 현장관리자들의 눈 밖에 나면 매장에서 매대를 빼거나 일을 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 법규부장은 협력 업체의 파견이 불법인 이유에 대해 ▲사실상 근로자 파견 행위를 하였음에도, 파견에 대한 허가를 받지 않은 행위에 해당해 파견법 7조에 따른 무허가 파견이고 ▲파견업무가 종합소매판매원 업무이므로 파견법 5조에 따른 파견허용 업종에 해당하지도 않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파견기간이 2년을 초과함으로써 파견법 제6조에 따른 파견기간 위반에 해당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5조(근로자파견대상업무 등)
① 근로자파견사업은 제조업의 직접생산공정업무를 제외하고 전문지식·기술·경험 또는 업무의 성질 등을 고려하여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업무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업무를 대상으로 한다.

제6조(파견기간)
① 근로자파견의 기간은 제5조제2항의 규정에 해당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1년을 초과하지 못한다.
② 제1항의 규정에 불구하고 파견사업주·사용사업주·파견근로자간의 합의가 있는 경우에는 파견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이 경우 1회를 연장할 때에는 그 연장기간은 1년을 초과하지 못하며, 연장된 기간을 포함한 총파견기간은 2년을 초과하지 못한다.

제7조(근로자파견사업의 허가)
① 근로자파견사업을 하고자 하는 자는 고용노동부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고용노동부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허가받은 사항중 고용노동부령이 정하는 중요사항을 변경하는 경우에도 또한 같다.

‘마트산업노조준비위’와 ‘마트유통노조’ 결성

“마트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가 가입할 수 있는 노동조합이 전제돼야, 마트노동자들이 처한 어려운 현실을 개선할 제대로 된 투쟁을 할 수 있다.”

2016년 3월 ‘마트산업노동조합 준비위원회’가 출범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소속 대형마트 3사 노조가 중심이 됐다. 기업별 노조로서는 마트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한계가 있음을 경험한 뒤, 산업별 노동조합의 필요성에 공감한 결과물이었다. 전 위원장은 “마트산업노동조합이라는 안전한 울타리 속에서 모든 노동자들이 노동자 권리를 주장하고, 일한만큼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규직 노동자보다 협력업체 노동자가 많은 대형마트 현장의 특성을 감안해, 준비위 출범당시 ‘마트유통노동조합’을 함께 만든 것이 눈에 띈다. 현재 마트산업노조 준비위에는 ▲이마트노동조합 ▲홈플러스노동조합 ▲민주롯데마트노동조합 ▲마트유통노조, 총 4개의 노조가 있다. 마트유통노조에는 마트에 직접 고용되지 않은 노동자 누구라도 가입할 수 있다. 마트산업노조가 출범하기 위해서는 각 노조의 규약을 수정하는 등 충분한 논의를 통해 절차를 밟아야 했기 때문에 마련한 대안이었다. 현재 마트유통노조의 조합원은 많지 않다. 하지만 출범을 앞두고 있는 마트산업노조가 성공적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사전 작업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 2016년 3월 15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마트산업노동조합 준비위원회 출범식이 열렸다.

마트산업노조 성패 좌우할 조직률

마트산업노조 준비위는 성패가 협력업체와 파견업체 등에 고용된 노동자들을 얼마나 조직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고 본다. 애초에 준비위가 결성된 작년 11월 마트산업노조 본 조직을 출범시킬 계획이었지만, 목표 시점을 올해로 1년 늦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마트 노동자를 위한 산별노조의 필요성을 알리고, 전국에 있는 마트 현장에서 공감대를 형성해야 조직률이 높아진다. 이를 위해 그동안 준비위는 상급단체인 민주노총 지역본부 거점을 활용해 전국 마트 노동자에게 마트산업노조 홍보활동을 강화하고, 지역간부들을 모아 회의와 교육을 진행하면서 조직의 내실을 다지는데 집중해 왔다.

대형마트에서 벌어지는 불법 파견을 없애고 모든 노동자에게 정당한 임금과 고용안정을 보장하는 등 출범을 앞둔 산별노조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마트노동자를 하나로 만들고 최대한 조직률을 높이는 것이 핵심이다. 준비위는 마트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최저임금 인상, 감정노동자보호법 제정 등 전체 마트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활동을 단계별로 추진하고 있다. 현장 조합원을 중심으로 독점 대기업의 횡포와 위법 행위를 감시하고,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의 통해 노동자의 ‘건강권 보장’, 중소상인의 생존권과 영업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상생협력방안’ 등을 제도화하기 위한 준비도 진행 중이다.

이제 5개월 남짓 남았다. 마트노동자들은 오는 11월 성공적으로 마트산업노조를 출범시키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