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약탈은 ‘은밀하게, 위대하게’
기업 약탈은 ‘은밀하게, 위대하게’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7.06.1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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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동안 두 번 당해… 책임 질 사람은 어디로?
[리포트] 기업사냥꾼에 잡힌 썬코어

기업을 사고팔아 시세차익을 남기고 재산을 불리는 사람들, 이들을 흔히 기업사냥꾼이라고 부른다. 기업사냥꾼들은 주식시장 곳곳을 헤집고 다니며 기업을 하나씩 먹어치운다. 회사의 주식이 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으려면 상당히 복잡하고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는 만큼, 상장기업은 그 나름대로 투자 가치가 있다고 인정받은 곳들이다. 즉 알맹이를 갖춘 기업들이다. 기업사냥꾼들은 주식시장에 상장된 기업에 침투해 알맹이를 빼먹고 쏙 빠져나간다. 껍데기만 남은 기업은 더 이상의 존속 가치를 잃게 된다. 그래서 기업사냥꾼을 ‘시장교란자’, ‘약탈자’라고 부른다. 건실하던 기업이 망가지는 건 한 순간이었다.

부품 국산화의 기수, 약탈자의 먹잇감 전락

(주)썬코어(옛 (주)루보)는 오일리스베어링(Oilless bearing)을 필두로 기계부품을 제조하는 기업이다. 1978년 회사 설립 당시에만 해도 국내 기업들은 오일리스베어링을 전량 일본으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다. 오일리스베어링은 말 그대로 기름 없는 베어링을 뜻한다. 루보의 전신인 한도정밀공업(주)는 1984년 국내 최초로 오일리스베어링 국산화에 성공한 후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왔다. 1987년에는 해당 부품을 도리어 일본으로 수출하는 성과를 이루기도 했다.

이를 바탕으로 2001년에는 코스닥증권시장에 상장됐다. 코스닥시장에 상당된 기업은 다양한 세제 혜택을 받을 뿐 아니라 비상장기업에 비해 자금을 조달하기도 유리하다. 이 때문에 코스닥시장에 상장하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외부 감사에서부터 주식 매매를 개시하기까지 4개월여가 소요된다. 코스닥 상장기업은 한국거래소로부터 투자가치를 인정받았다고 볼 수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루보는 견실한 중소기업이었다.

그러던 2006년 말 약탈자의 검은 손길이 루보를 덮쳤다. 2006년 10월 1,100원대에 불과한 루보의 주식가격은 이듬해 4월 50배로 불어났다. 2007년 4월 16일 루보의 주가는 5만 1,400원까지 치솟았다.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주가의 변동폭은 크지 않아야 했다. 2006년 당시 루보의 매출은 제자리걸음을 걸었고, 영업이익은 마이너스였다. 이른바 ‘작전세력’이 개입한 게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다.

검찰 수사결과 소문은 사실로 드러났다. 다단계 사기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제이유그룹의 부회장 김 모 씨는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주가조작에 동참할 사람들을 모집했다. 주가조작 공모자들은 기업 인수합병을 통해 제이유그룹 사업에 참여했던 회원들을 대상으로 손해를 만회하는 것은 물론, 추가로 고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꼬드겼다.

주가조작에 동원된 자금은 1,600억 원, 계좌 수는 무려 800개에 달했다. 피라미드형 조직망을 갖춘 주가조작 세력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한 명이 특정 가격에 주식을 사면 다른 한 명이 그보다 높은 가격에 그것을 사는 단순한 수법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꾸준히 주가의 상승세를 유지하면서도 작전이 드러나지 않도록 틈틈이 시세 조정에 들어가는 치밀함을 보였다. 정보력이 취약한 개미 투자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2007년 4월 루보의 주식이 최고가를 기록한 뒤 검찰이 본격적으로 수사에 돌입했다. 약탈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루보 주가조작 사건으로 김 씨를 비롯한 작전세력은 천억 원 가까운 이익을 챙겼다. 2007년 12월 서울중앙지법은 제이유그룹 부회장 김 모 씨에게 징역 7년에 벌금 70억 원을 선고했다.

10년도 안 돼 ‘제2의 주가조작’ 의혹

루보는 전례 없는 대규모 주가조작 사건을 겪으면서 거래처가 하나 둘 끊기고 매출이 감소했다. 납품 규모가 큰 몇몇 기업과의 거래를 통해 루보는 명맥을 이어나갔다. 어찌됐건 생산은 계속됐고, 노동자들은 꼬박꼬박 월급을 받았다. 최규선 씨가 루보를 표적으로 삼기 전까지는 그랬다.

2015년 5월 26일 특수목적법인 (주)엘앤케이와 10명의 개인 및 법인 투자자들은 김봉교 전 루보 대표이사로부터 주식 500만 주를 주당 2,000원에 넘겨받는 양수도 계약을 체결한다. 한 달 뒤인 6월 30일 엘앤케이가 150만 주를 갖고, 나머지 투자자들이 350만 주를 나눠 갖게 되면서 김봉교 전 대표는 최대주주 지위를 상실했다. 엘앤케이는 루보의 지분 5.89%를 확보해 최대주주가 됐다.

최규선 씨는 7월 3일 열린 임시주주총회에서 박 모 씨와 함께 사내이사로 선임되고, 두 사람은 같은 날 열린 이사회에서 대표이사에 선임된다. 그런데 두 사람은 김봉교 전 대표와의 주식 양수도 계약에 참여하지 않았다. 루보의 주식을 단 한 주도 갖지 않은 이들이 하루 만에 임시주총과 이사회를 통해 대표이사에 선임된 배경을 놓고 의혹이 제기됐다. 최 씨가 배후에서 양수인들을 모집함으로써 계약에 관여하고, 이들의 지지를 통해 루보의 경영권을 획득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2015년 5월 초 1,600원 안팎을 오가던 주가는 주식 양수도 계약이 체결된 후 7,200원까지 치솟았다. 2007년 주가조작 사건 때에 비해서는 상승폭이 적었지만, 불과 한 달 만에 주가가 450%나 급등한 이유에 대해 루보 측은 이렇다 할 설명을 내놓지 않았었다. 한 언론은 ‘최규선 프리미엄’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으나, 증권가에서는 ‘제2의 주가조작 사건이 벌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 기간 한국거래소는 루보를 투자위험종목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사기꾼’ 지목된 회장님, 책임은 누가 지나

최규선 씨는 대표이사에 취임한 이후 사명을 ‘썬코어’로 바꿨다. 그는 기존의 오일리스베어링 및 금형부품 생산에서 전기차, 무인경비 사업으로 진출하겠다며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최 씨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왈리드 빈 탈랄 왕자와의 친분을 과시하며 사업에 대한 신뢰도를 높였다. 미국, 중국, 중동 등 여러 국가를 오가며 해외영업에 전념하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최씨의 광폭 행보는 이내 그 실체가 드러났다. 장밋빛 투자계획은 그야말로 계획에 지나지 않았고,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전기버스 한 대가 전부였다. 최규선 씨의 전기차 사업 홍보에는 ‘기후변화 대응’, ‘온실가스 감축’ 등의 수식어가 동원됐고, 최 씨는 2015년 8월 중국의 한 업체가 제작한 전기버스를 들여왔다. 정작 썬코어는 해당 차량의 개발 및 제작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

▲ 최규선 씨는 전기차 사업에 진출하겠다며 2015년 8월 중국의 한 업체가 제작한 전기버스를 들여왔다. 버스에는 썬코어 로고가 찍혀 있으나 썬코어는 차량 개발 및 제작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 썬코어노조는 이 차량을 구입하는 데 5억 원 가량이 사용됐다고 밝혔다.

최규선 씨가 해외 세일즈에 집중하는 동안 썬코어의 경영은 악화일로를 걸었다. 썬코어는 2015년 83억 5천만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는데, 2016년에는 그 규모가 351억 4천만 원으로 4배 넘게 불어났다. 지난해 기준 이 회사의 자본금은 175억 원이다. 급기야 올해 들어서는 공장 가동이 전면 중단됐다. 한국거래소는 올해 5월 2일 썬코어를 투자주의 환기종목으로 지정했는데, 그 사유는 기업이 부실위험 선정기준에 해당된다는 것이었다. 썬코어는 최규선 씨가 경영권을 잡은 지 1년 10개월 만에 부실기업으로 전락한 셈이다.

내부에서는 애초에 최규선 씨가 루보를 인수한 이유가 경영이 아니라 약탈이 아니냐며 최 씨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 산하 썬코어노동조합은 5월 16일 기자회견을 열어 “희대의 사기꾼 최규선을 엄벌하라”고 사법 당국에 촉구했다.

정작 최규선 씨는 구속 수감 중이다. 최 씨는 자신이 운영하던 유아이에너지와 현대피앤씨의 자금 416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돼 법원으로부터 징역 5년에 벌금 10억 원을 선고받았다. 책임져야 할 사람이 철창신세를 지느라 어디서부터 매듭을 풀어야 할지조차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