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행복할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행복할까?
  • 김민경 기자
  • 승인 2017.06.13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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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도시, 혁신 없는 외딴섬
[리포트] 공공기관 지방이전 혁신도시 지금

“주변을 좀비처럼 배회한다” 혁신도시로 이전한 공공기관 직원들은 퇴근 후 자신들의 모습을 좀비에 비유했다. 직장동료들과의 관계만 남은 혁신도시라는 삶의 공간 자체를 ‘외딴 섬’이라고도 표현한다. 혁신도시는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하고, 산·학·연을 긴밀히 연결해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조성하는 거점 도시다.

혁신도시는 2003년 참여정부가 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해 제안한 정책이다. 당시 공공기관 직원들은 수도권 집중화 문제에 공감하며, 정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수도권 소재의 공공기관이 전국 10곳의 혁신도시로 옮겨간 지 길게는 5년에서 짧게는 1년이 지났다. 2017년 현재 혁신도시 직원들은 ‘이럴 줄 알았으면 정부가 처음 정책을 결정할 때 못한다고 했을 것’이라고 한목소리를 낸다. 혁신도시, 처음 취지대로 자리를 잡고 있나.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행복할까.

 

압축성장의 그늘, 수도권 집중

전 국토의 12% 면적에 인구의 절반이 산다. 한국의 수도권 집중현상은 심각하다. 지난 5월 17일 한국거래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체 상장회사의 72%가 서울을 비롯한 인천과 경기도 등 수도권에 집중됐다.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보면 무려 86%에 달하는 집중도다. 인구도, 경제도 수도권으로 쏠린다.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완화되기는커녕 외려 심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한국은 수도권 중심의 발전 전략으로 압축성장을 해왔다. 그 결과 수도권 과밀과 지방의 침체라는 국토의 양극화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이는 수도권의 주거, 교통, 환경 문제를 심화시킨다. 불균형에 따른 수도권과 지역 간 갈등은 국가 성장을 저해하는 걸림돌이다. 더 이상 손을 놓고 있어선 안 되는 문제다.

수도권 집중 억제 방안은 이미 1969년에 나왔다. 1982년 수도권 정비 계획법이 제정됐고, 1994년 수도권 공장 총량제와 과밀 부담금 제도 등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이 과정에서 오히려 수도권과 지역 간의 갈등만 더 커졌다.

대한민국 헌법

제120조 ②국토와 자원은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국가는 그 균형 있는 개발과 이용을 위하여 필요한 계획을 수립한다.

제123조 ②국가는 지역 간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하여 지역경제를 육성할 의무를 진다.

성장 거점 통한 국토 균형 발전

국토 균형 발전, 헌법으로 정한 국가의 의무이다. 헌법 제120조 2항과 제123조 2항에 관련 내용이 명시돼 있다. 수도권 집중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참여정부가 새로운 발상을 했다.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필요한 요소를 정부가 주도해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바로 혁신도시 조성이다. 당시 정부는 공공기관 지방 이전과 함께 지역특화산업을 연계하고, 기업과 대학, 연구소를 유치해 혁신 여건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전 공공기관의 직원과 관련 인구를 지역으로 분산시킴으로써 수도권도 양적 성장에서 질적 발전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도권에 있어야만 하는 기관을 제외한 모든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보낸다는 큰 틀이 잡혔다. 중앙행정기관을 포함한 공공기관은 전국에 409개, 이 중 85%인 345개가 수도권에 있었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175개 기관을 이전대상기관으로 선정했다. 수도권을 관할구역으로 하는 기관 수도권 안의 낙후지역과 폐기물 매립지에 소재한 기관 수도권 안에 소재한 문화유적지, 묘지, 공항 등을 관리하는 기관 등 수도권에 불가피하게 있어야한다고 인정되는 기관은 이전대상에서 제외됐다.

이후 농촌진흥청과 관세국경관리연수원 등 5개 기관이 추가로 이전 대상에 포함됐고, 공기업 선진화 방안의 통폐합 조치에 따라 최종 154개(혁신도시 115개, 개별이전 19개, 세종시 20개) 기관이 최종 선정됐다. 혁신도시는 수도권과 대전청사·대덕연구단지가 있는 대전을 제외하고, 12개 광역시·도를 형평성의 원칙에 따라 분석해 10곳의 혁신도시를 정했다. 구체적으로 부산, 대구, 광주·전남, 울산, 강원, 충북, 전북, 경북, 경남, 제주 혁신도시이다.

“정부, 공공기관 옮긴 후 방치”

“지금 상황처럼 될 줄 알았으면 공공기관 지방이전을 결정할 때부터 못한다고 했을 것.”

“국가와 지자체는 혁신도시를 만들어만 놓고, 나 몰라라는 식이다.”

2015년 전북혁신도시와 경남혁신도시로 각각 이전한 공공기관 직원들의 말이다. 정부가 이전하기 전에는 아낌없이 모든 지원을 다 해줄 것처럼 말했지만, 이전 후에는 무관심하며 심지어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경진 전북 혁신도시노동조합협회(이하 혁노협) 의장(국민연금지부 위원장)은 “전북혁신도시로 내려온 지 3년이 됐지만, 공단 앞에 버스 하나도 지나가지 않는 실정”이라며 “혁신도시로 이전한 공공기관 직원들은 정부에 의해 삶을 통째로 옮겨가면서도 제대로 혜택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지자체는 인구가 늘어나면 버스와 교육시설 등 주변 생활여건이 자연히 구축될 것이라는 식으로 말한다”며 “이런 인식으로 혁신도시 문제를 다룬다면, 신도시와 다른점이 무엇인가”라고 반문했다.

부산, 대구, 울산 등 광역단위의 혁신도시 상황은 시단위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다. 하지만 기관의 특성, 직원 개개인의 가족 구성에 따라 여전히 고민해야할 지점은 많다. 김인우 울산 혁노협 의장(안전보건공단노조 위원장)은 “2014년 2월 공단 본사가 울산으로 이전했다”며 “하지만 3~4년 주기로 지사 순환근무를 하는 체제라서 선뜻 울산에 내려와 살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울산에서 계속 일을 한다는 보장이 있으면 정주(定住 : 일정한 곳에 자리를 잡고 삶)를 고려해볼 수 있지만, 지사로 발령이 날 것을 염두에 두면 가족들을 데리고 내려오기는 사실상 어렵다는 설명이다.

최경진 전북 혁노협 의장은 “지방정부가 혁신도시 직원의 정주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한다”며 “우리는 정주를 하지 않더라도 세종시 공무원들과 달리 수도권에서 출퇴근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주 5일 근무를 하며 지역에서 소비하며 살고 있으니, 주소지를 옮겨 정주하는 직원들에게 집중돼 지원제도 사각지대에 놓인 단기 이주 직원들을 위한 지원책을 강화해야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정부나 지자체의 입장은 무조건 혁신도시로 내려가 살라는 것”이라며 “이 때문에 지방자치단체는 이전 공공기관이 기숙사나 숙소를 짓는다고 하면 난색을 표하며 규모를 줄이기에 급급하다”고 덧붙였다. 최 의장이 일하는 국민연금공단은 전국에 120개 지사가 있다. 울산의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처럼 순환보직을 한다. 규모가 큰 공공기관 대부분은 지사 순환 근무가 보편적이다.

혁신도시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정승효 경남도청 주무관은 “정부에서 10개 혁신도시와 이전 공공기관 직원들에게 공통으로 지원하는 제도와 지방자치단체에서 별도로 마련하는 지원제도가 있다”며 “지방이전 취득세, 재산세 감면과 같은 세제 혜택, 이주정착금 지원은 보편적이다. 이전 기관들의 민원을 듣고, 정부가 한시적으로 제공하는 지원의 기간 연장을 해당 부처에 건의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현재 경남혁신도시에는 모든 공공기관 이전 완료됐다. 경남도의 경우, 공공기관 이전 직원이 도내 소재한 고등학교에 자녀를 보내면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혁신도시 내 많은 직원들이 가족과 함께 정주할 수 있도록 지원책을 고민하며 시행하고 있다.

혁신도시 3단계 중 고작 1단계 마무리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은 2012년 시작됐다. 중앙신체검사소(대구), 고용노동부고객상담센터(울산), 국토교통인재개발원(제주) 총 3곳이 그해 12월 지방으로 옮겨갔다. 2003년 혁신도시 지방이전에 대한 계획을 처음 밝힌 뒤 무려 9년이 지난 후이다. 정부는 법적인 근거를 마련하고 시도지사, 이전 공공기관 노동조합과 지속적으로 협의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신중한 준비 절차를 진행한 이후, 공공기관이 지역 안에 뿌리내리기 위한 정부의 후속조치가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에 대해 한동욱 국토부 지방이전추진단 과장은 “지금 후속정책 진행은 미미한 수준”이라며 “애초 정부 계획에 따른 혁신도시는 2030년에 끝나는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의 혁신도시 3단계 계획에 대해 설명했다. 3단계 계획은 ▲이전 공공기관 정착단계(2007~2012) ▲산·학·연 정착단계(2013~2020) ▲혁신확산 단계(2021~2030)로 구분된다.

1단계는 물리적인 부분이다. 공공기관을 이전할 토지를 정비하고, 실질적으로 옮기는 것까지 해당된다. 처음 계획과 달리 올해 말이 돼야 1단계가 완료될 예정이다. 2단계는 산·학·연 클러스터 조성이다. 지역 특화 산업과 관련된 대학과 연구소, 기관 등을 연계해 지역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중심을 만드는 과정이다.

한 과장은 “혁신도시만을 가지고 산·학·연 클러스터를 구축하며 도심을 성장시키기에는 한계가 있다. 대부분의 공공기관은 전국에 사업장을 두고 대국민 서비스를 제공한다”며 “혁신도시 인근 지역의 산업으로 확대 연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경남혁신도시의 경우 인근 사천과 마산 등에 세라믹을 다루는 기업이 많다”며 “세라믹 기술에 초점을 맞춘 클러스터를 조성,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예를 들었다. 3단계는 혁신도시의 영향이 지역성장을 동반, 확산시켜 명품도시로 거듭나도록 관리한다.

김철운 공공운수노조 공공기관사업팀 팀장은 “혁신도시의 취지는 지역에 국가균형발전의 원동력을 만드는 것”이라며 “첫 단추를 끼운 참여정부는 의지를 가지고 추진했지만,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9년을 거치며 후속작업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혁신도시가 이행되기 전부터 양대 노총 대표 자격으로 정부와 관련 내용을 지속적으로 논의해 왔다.

‘사람 관계’ 대한 논의 절실

혁신도시와 관련된 논의가 물리적인 부분에만 국한돼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김 팀장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람 관계는 중요한 문제”라며 “가족은 공동체의 기본인데, 정부 정책에 반영이 안 돼 관계에 금이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주말부부가 고착화되고, 가족을 혁신도시로 데리고 내려왔다가 다시 보내는 일도 비일비재하다”며 “혁신도시에서 삶의 공간 자체가 외딴 섬이 됐다”고 강조했다.

김인우 의장도 공공기관 지방 이전으로 가장 힘든 점으로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하는 상황을 꼽았다. 그는 “업무에 치이고 상사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아도, 퇴근해 들어간 집에서 가족들의 고생했다는 말을 들으면 고단함이 녹아버리는데 이런 것이 없다”며 “자녀가 초등학생이냐, 중·고등학생이냐에 따라 교육환경도 정주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올해 대학에 들어간 딸 하나가 있다. 그는 울산혁신도시 내 숙소에서 생활하며 4시간 거리의 광명에 사는 가족과 떨어져 지내고 있다.

가족 관계 외에도 지역민과의 융화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제공돼야한다는 시각도 있다. 김진만 경남 혁노협 의장(한국토지주택공사노조 위원장)도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고 강조한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 정책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나, 지방자치단체 담당자들도 혁신도시의 ‘여건’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사람이 사는 문제인데 사람들 간의 관계를 간과한다”며 “대부분이 수도권 거주자인 이전 직원들이 가족과 친구들이 없는 낯선 지역에 정착하려면 그 지역에 대한 이질감을 없애야 한다. 지역민과 교우하고 친밀감을 쌓을 수 있도록 돕는 지원책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혁신도시 직원들이 지역에 스며들어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노조차원에서 예산을 마련해 혁신도시 주민들과 김장철에 김치를 담가 진주시 내 독거노인과 복지시설에 보내는 등의 교류활동을 해오고 있다.

혁노협, 올해 전국단위 모임 시작

공공기관이 지방으로 이전하기 전 양대 노총 이전기관노동조합협의회(이노협)가 있었다. 계획단계에서부터 정부와 지속적인 협의를 하기 위해 꾸려졌다. 공공기관이 지방으로 이전한 후에는 ‘혁신도시노동조합협의회(혁노협)’가 생겼다. 작년까지 10개의 혁신도시 중 제주를 제외한 9곳의 혁노협은 지역단위별로 현장의 문제에 대한 의견을 공유하며 활동해 왔다.

올해 혁노협들이 모여 전국단위 모임을 시작했다. 김진만 경남 의장이 전국혁신도시노동조합 협의회 의장을 맡았다. 그는 “혁신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아무도 하지 않는다”며 “정작 핵심 부분의 이야기는 하지 않고 그것을 담아내는 그릇에 대한 이야기만 한다. 사람에 대한 고민을 하고 정책에 반영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가족과 함께 내려간 사람들이든, 독신으로 간 사람이든 이전 직원들의 삶을 행복하게 하는 논의를 시작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또 혁신도시별로 이전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책 등이 다르지만, 전국단위의 혁노협 모임을 통해 각 지역의 잘된 점을 배우고 나쁜 점은 함께 없애는 정보 교류의 장으로써 전혁노협의 역할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