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운동노조·비정규직조직화 새 역사 쓰다
사회운동노조·비정규직조직화 새 역사 쓰다
  • 김민경 기자
  • 승인 2017.06.14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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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지 않은 길 개척하는 '희망연대노조'
[리포트] 기존 노조 틀 깨는 희망연대노조 

‘간부순환제’. 더불어사는희망연대노동조합(이하 희망연대노조) 운영의 핵심이다. 기존 노동조합의 방식에 익숙한 이들에겐 분명 낯선 용어다. 많은 노동조합 중에서 희망연대가 튀는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다. 생활문화연대, 희망씨, 더불어지부 등 시민사회단체에나 있을 법한 이름의 조직을 여럿 안고 있다.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방송통신업계의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에 성공한 사례도 유명하다. 여태껏 어떤 노동조합도 가지 않았던 길을 개척해 가고 있는 희망연대노조, 그 정체는 무엇인가.

▲ 더불어사는희망연대노동조합 깃발 ⓒ더불어사는희망연대노동조합

지역사회운동노조 지향

“지역사업을 수반하는 노조를 만들자”. 희망연대노조의 출발점이다. 쌍용차 사태를 목격하면서 노동운동이 노동자만의 운동이어선 더 이상의 발전과 미래는 없다는 위기의식이 그 배경이었다. 쌍용차 사태는 2009년 사측이 전체 노동자의 36%(2,646명)를 감축하는 계획을 밝히면서 이에 저항하는 노동자들과 회사의 갈등이 8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노동자들이 무너지려고 할 때마나 이들을 일으켜 세운 건 시민사회단체의 연대였다.

희망연대노조는 “자기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사람들이 나서서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이어선 안 된다”며 “지역민들에게 노조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마을의 미장원 옆에 있는 회사를 다니면서 동네를 위해 활동하는 이들로 함께해야한다는 인식이 안착될 수 있도록 고민했다”고 말했다. 희망연대 노조는 2009년 12월 설립된 시점부터 지역사회 속에서 존재하기 위해 ▲생활문화연대 ▲지역연대 ▲나눔연대를 두고 꾸준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최근에 하고 있는 대표적인 지역운동은 위기아동 발굴, 청소년 노동인권운동, 과일 나눔 사업 등이다. 가가호호를 방문하며 지역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식이다. 이는 전국에 퍼져 있는 방송통신업계 지부가 중심이 된 희망연대의 조직 특성과 시너지 효과를 내, 지역민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실제로 2014년 케이블 방송통신 3개 지부의 파업과 비정규 노동자들의 직장폐쇄, 계약 해지, 파업, 노숙농성 등으로 고난의 시기를 겪을 때, 조합원들의 농성장에는 수많은 지역과 시민단체들의 현수막이 걸렸다.

▲ 더불어사는희망연대노동조합 나눔연대 사업 모습 ⓒ더불어사는희망연대노동조합

방송통신계 비정규직 조직화 이끌다

희망연대노조는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안에 있는 또 하나의 ‘지역일반노조’이다. 이에 대해 출범 때 논란이 많았다. 일반노조 안에 또 새로운 노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냐는 지적도 잇따랐다. 그러면서도 지역일반노조를 고집한 이유는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을 목표로 삼았기 때문이다. 지역일반 노조에는 고용 기업과 형태, 직종, 업종, 산업에 관계없이 누구나 가입가능하다.

케이블방송 씨앤앰 정규직노동자들이 조직돼 2010년 ‘씨앤앰지부’가 생겼다. 희망연대노조의 첫 지부이다. 지역방송인 케이블방송사 노동자들은 지역민의 곁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데 유리하다. 희망연대노조가 이들을 적극 조직한 이유다. 2013년 케이블방송 씨앤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케이블방송 비정규직지부(이하 케비지부)’를 결성하는데, 앞서 꾸려진 씨앤앰지부의 역할이 컸다. 씨앤앰지부가 결성된 이후 조합원들은 협력사 노동자들에게도 노조의 역할과 중요성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는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던 노동자들을 조직화하는 구심점이 됐다. 씨앤앰 지부는 2012년 비공개로 ‘협력사 노동자 조직사업팀’을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다.

희망연대노조의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의 파급력은 케비지부가 조직된 해, 티브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티브로드지부(이하 케비티지부)’ 설립으로 이어졌다. 이후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지부와 LGU+ 비정규직지부가 잇따라 만들어졌다. 이 과정에서 희망연대노조는 ‘믿음’과 ‘신뢰’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최오수 희망연대 조직국장은 “치밀한 계획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며 “희망연대노조의 활동이 알려지면서 자연스럽게 조직이 확대됐고,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현재의 구조와 특성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태광그룹 계열사 노사갈등 해결 총력

지난 4월 한국케이블텔레콤(KCT) 정규직 노동자들이 KCT지부를 만들었다. 전체 직원 80명 중 28명이 조직됐다. 희망연대노조의 ‘최소한 과반수 원칙(과반수 이상 모이지 않으면 노조를 결성하지 않는다)’을 거스를 뿐만 아니라 내실을 강화하기 위해 ‘조직확대 유보’ 방침을 세운 시기와도 물렸지만, 외면할 수 없었다. 알뜰폰 판매와 기술 서비스, 인터넷 전화 지원을 하는 KCT는 태광그룹 계열사였기 때문이다.

희망연대 노조는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실형을 확정 받는 과정에서 회사가 전방위적인 비용절감을 위해 희망퇴직, 성과연봉제 등을 강행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2015년 휴일이 있는 삶을 요구하며 조직된 티브로드 정규직 노동자들, 업체 교체 과정에서 해고돼 8개월간의 힘든 싸움을 거쳐 복직한 티브로드 하청노동자들의 문제 뒤에도 태광그룹이 있었다. 희망연대노조는 “태광그룹이 노동자들을 쥐어짜며 성장해 온 나쁜 기업”이라며 KCT지부 노동자들의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저지 ▲성과연봉제 저지 ▲부당노동행위 근절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의 복리후생제도 개선 등을 목표로 임단협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간부 고착화돼선 안 된다

희망연대노조는 간부순환제를 조직운영의 원칙으로 정했다. 간부가 고착화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현장에서 일하는 평범한 조합원을 활동가로 양성하고, 노동조합 운영의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내며, 고정된 틀에 얽매이지 않는 노동조합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현재 7년차에 접어든 씨앤앰지부의 경우 대부분의 조합원들이 최소한 지회 간부 이상의 경험을 했다. 전임자 역시 임기가 끝나면 현장으로 돌아간다. 기존의 노동조합의 운영방식에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조합원의 주체적 참여가 강조되며 실질적으로 필요한 구조이다. 조합원의 교육은 토론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노조와 개인이 분리되는 어떤 것에도 동의하지 않는 희망연대 안에서 ‘노조가 알아서 다 해주겠지’라는 식은 통용되지 않는다. 조합원 개개인 모두가 구성원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함께 참여하는 것이 희망연대노조의 기풍이며, 매년 바뀌지 않는 중점사업이다. 희망연대노조가 사회운동노조, 비정규직 조직화 성공 등 노조의 새 역사를 쓸 수 있었던 저력도 바로 여기에 있다.

▲ 더불어사는희망연대노동조합 티브로드지부 투쟁 모습 ⓒ더불어사는희망연대노동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