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 지켜주는 '똑똑한 횡단보도'
내 아이 지켜주는 '똑똑한 횡단보도'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7.06.14 08:40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ICT 융합 강소기업의 성공 비결은…
[리포트] 스타트업 돋보기

매년 70만 개에서 80만 개의 중소기업이 문을 열고 또 닫는다. 하루 2,000개 가까운 숫자인 셈. 누구나 창업의 꿈을 한 번씩 꾸지만, 일장춘몽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이들 기업이 폐업이라는 독배를 마시기까지는 길어야 5년 남짓에 불과하다. 그래서 중소기업계에서는 이 기간을 ‘데스밸리’, 즉 ‘죽음의 계곡’으로 부른다. 인천 남구의 (주)제브라앤시퀀스(대표 오동근)는 ICT 융합 기술로 치열한 생존게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오동근 대표는 횡단보도에 통신기술을 결합해 교통사고와 범죄 예방 역할까지, 단순 건널목 기능만 하던 횡단보도를 똑똑하게 탈바꿈시키고 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다

한때 잘 나가던 대기업의 세일즈맨으로 세계 곳곳을 누볐다. 국가발전을 위한다는 자부심 하나로 십 수 년 간 ‘대우맨’으로 살아왔다. 오동근 (주)제브라앤시퀀스 대표는 한때 (주)대우의 뉴욕지사와 런던지사를 두루 거친 유능한 직원이었다. 그러던 그가 회사를 나와 집에서 아이를 키우는 아빠가 됐다.

발 딛고 선 곳이 달라지면 보이는 풍경도 달라지는 법.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아이와 함께 보내면서 그 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오동근 대표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보행자를 아랑곳 않고 질주하는 자동차들, 때때로 신호까지 무시해 가며 보행자를 위협하는 운전자들이 막 걸음마를 뗀 아이를 둔 아빠에게는 늘 거슬렸다. 횡단보도는 사람들의 일상과 늘 함께하는 곳인 만큼 가장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는 곳이기도 하다.
오동근 대표의 관점은 뚜렷하다. 자동차가 사람을 치지, 사람이 자동차를 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중심으로 짜인 교통망은 운전자들에게는 편리했겠지만 보행자들에게는 늘 불편하고 위험했다. 올해 초 정용기 자유한국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자료를 받아 발표한 바에 따르면, 하루 1명 이상이 횡단보도에서 교통사고로 숨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횡단보도에서는 연간 400명이 숨지고, 1만 3,000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는다. 횡단보도는 보행자를 위한 곳이 아니었다.

세일즈맨의 DNA는 사라지지 않았고, 어린 아들이 안전하게 걸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스마트횡단보도’ 개발의 강력한 동기가 됐다. 2010년 오동근 대표는 자동차를 위한 횡단보도가 아닌 사람을 위한 횡단보도를 손수 만들기로 결심한다.

“저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는데 아주 장난꾸러기입니다. 이 녀석이 한 살 때, 횡단보도를 보고 나서 상당히 무질서하다고 느꼈습니다. 자동차들이 신호를 잘 지키지 않았습니다. 동네 사람들한테 왜 신호를 지키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일부러 지나간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대부분 ‘못 봤다’고 답했습니다. 건물 간판 찾다가 신호를 못 보고 그냥 가는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오동근 대표는 처음에는 자동차를 피해 사람을 멈추게 하는 방법을 생각했다. 횡단보도의 빨간불이 켜지면 보행자를 막았다가 다시 초록불이 켜지면 자동차를 막는 장치를 고안해 냈다. 낮은 봉에 달린 ‘STOP’ 팻말이 90도로 움직이는 형태였다. 취지는 좋았으나 효용성은 크게 떨어졌다. 고장이 잦고 파손의 위험이 컸다. 밤새 취객이 발로 차 부수거나, 어린 아이들이 장난감 다루듯 만지기도 했다.

첫 실험은 절반의 성공이었다. 원시적인 형태의 차단기는 부서진 채로 돌아왔으나, 오동근 대표에게 몇 가지 교훈을 남겼다. 우선 중요한 것은 제품의 내구성이다. 사회에 불만을 품거나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들, 그저 장난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함부로 파손하지 못하도록 해야 했다. 그리고 횡단보도에 대한 접근법을 달리 하자고 결심했다. 오동근 대표는 사람을 멈추게 하지 말고 자동차를 멈추게 하자고 생각했다.

“개념을 좀 바꿔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을 통제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사고의 원인은 자동차니까 자동차를 통제해 보자. 마침 보행권을 찾아주자는 운동이 그 무렵 있었습니다. 설령 보행자가 무단횡단을 한다고 해서 자동차가 그 사람을 치고 갈 수는 없으니까 운전자가 더 조심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이 와서 차를 들이받는 경우는 거의 없거든요.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횡단보도를 이용할 때 필요한 것들을 어떻게 충족시킬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짬짜면’에 숨은 융합의 원리?

대세는 ‘하이브리드’, 즉 융합이다. 짬뽕과 짜장면을 놓고 이른바 ‘선택장애’를 호소하는 이들에게 ‘짬짜면’이 가뭄의 단비가 됐듯, 횡단보도 역시 다른 물건들과 융합한다면 안전한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어 하는 부모들에게 크나큰 선물이 될 터. 어린 아들을 둔 아빠의 욕심은 횡단보도에 기능을 더하게끔 만들었다. 오동근 대표의 스마트횡단보도는 그렇게 탄생했다. 오동근 대표는 기존 보행자신호등에 카메라를 달고, LED 전광판을 달았다. 그리고 블루투스와 RFID 등 통신기능을 탑재시켰다.

스마트횡단보도에 장착되는 여러 부품은 그다지 혁신적인 것들이 아니다. CCTV는 이미 수많은 곳에 설치되었고, LED 전광판은 지나가는 시내버스에도 달려 있다. 블루투스가 세상에 이름을 알린 지는 10년도 더 됐다. RFID가 내장된 교통카드는 한 사람이 몇 장씩도 갖고 다닌다. 그러나 스마트횡단보도가 혁신적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이 모든 기술들이 한 가지 제품에 뒤섞여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오동근 대표는 보행자신호등에 몇 가지 기능을 추가함으로써 상당한 편익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부모들이 사회에 요구하는 걸 횡단보도에서 전부 만족시킬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교통사고 예방기능, 실종 예방기능, 지역 내 범죄예방, 실종 시 아이를 찾는 기능까지. 실제로 카메라를 이곳저곳에다 설치할 수도 없잖습니까? 결국 누구나 횡단보도를 다 지나갑니다. 그러면 범죄 유발요소가 굉장히 줄어드는 거죠.”

여기에 통신기능을 추가하면 더 똑똑한 횡단보도가 만들어진다. ‘비콘’이라는 칩을 가진 어린이가 횡단보도를 건너면 스마트횡단보도가 이를 인식하고, 어린이의 보행속도에 맞게 초록불이 켜진 시간을 늘릴 수 있다. 운전자는 횡단보도 측면의 LED 전광판을 통해 멀리서도 보행자가 길을 건너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오동근 대표는 비콘을 더 작게 개량해 사용 편의성을 높일 계획이다.

무엇보다 ‘스마트횡단보도’가 가장 필요한 곳은 어린이들의 통행이 잦은 학교 주변이다. 부산 해운대구의 한 초등학교 앞에는 타 업체에서 제작한 스마트횡단보도가 2015년에 설치된 바 있다. 오동근 대표가 개발한 스마트횡단보도의 경우 6월 중 김포공항 내에 첫 선을 보일 예정이다. 김포공항은 특별히 어린이들의 통행이 잦은 곳은 아니지만 스마트횡단보도를 시범 가동하기에는 적절한 장소다. 하반기 중에는 인천공항과 인천 송도신도시, 제주지역에 스마트횡단보도 설치가 예정돼 있다. 인천과 제주지역 시범 설치를 통해 개선점을 찾아 보완하고, 타 지역으로의 확산 및 해외 수출에도 들어간다는 게 오동근 대표의 구상이다.

예정대로 6월 김포공항에 스마트횡단보도가 설치될 경우 최초 구상에서부터 상용화까지 꼬박 7년이 걸린 셈이 된다. 그만큼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는 뜻이다. 오동근 대표는 그 기간 동안 경찰서와 행정관청을 제 집 드나들 듯했다. 도로교통법과 신호등 설치기준을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제품 개발에 몰두했다. 여러 기기가 혼합된 탓에 통신 주파수를 맞추고, LED 전광판의 밝기를 조정해야 했다. 그가 처음 둥지를 틀었던 인천 남구 제물포스마트타운의 사무실은 늘 불이 켜져 있었다. 센터 관리사무소에서 “사장님 방이 제일 전기료가 많이 나와요”라고 말할 정도였다.

창업과 상용화의 중간 단계 필요해

처음 사업을 시작하면 온갖 벽을 마주하게 된다. 동네 구멍가게라 할지라도 점포가 필요하고, 마케팅 전략이 필요하다. 결국 문제는 종잣돈을 어떻게 마련하느냐다. 오동근 대표 역시 여느 스타트업 기업과 마찬가지로 자금조달의 고민을 안고 있었다. 신용보증기금이나 기술보증기금, 국책은행 등을 통한 정책자금 지원 대신, 그가 택한 방법은 공모전 입상이었다. 그는 지원금이 주어지는 공모전을 일일이 확인해 밤을 새워가며 각종 보고서와 서류를 작성했다. 중소기업청 산하 창업진흥원에서 주관하는 지원사업에도 참여했다. 연구와 시제품 제작을 위한 공간은 제물포스마트타운 입주로 해결했다.

제물포스마트타운에는 오동근 대표가 운영하는 (주)제브라앤시퀀스 외에도 수많은 기업이 입주해 있다. 이들 기업은 모두가 1~2인 창업 기업으로, 작게는 책상 하나가 사무실의 전부인 경우도 있다. 제물포스마트타운은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의 인큐베이터와 다르지 않다. 심사를 통해 사업성을 인정받으면 단독 사무실을 배정받을 수 있다. 오동근 대표 역시 책상 하나에서 시작해 지금은 5평 규모의 사무실과 3평 규모의 연구실을 사용하고 있다.

스타트업 기업이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창업자의 아이디어와 열정이 필수적인 동시에 그것이 뿌리내릴 수 있는 토양이 중요하다. 취업난 속에서 창업 열풍이 불고 있지만, 창업의 꿈은 죽음의 계곡에 떨어지고 만다. 오히려 제브라앤시퀀스의 사례는 매우 드물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제브라앤시퀀스의 스마트횡단보도가 상용화 단계에 접어든 것도 오동근 대표가 정부 지원금을 받기 위해 각별한 공을 들인 결과인지도 모른다.
오동근 대표는 자신이 거쳐 온 과정을 돌아보면서 스타트업 성장의 걸림돌로 공간과 비용의 문제를 꼽았다. 과거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전국 17개 지역에 18곳을 설치하여 스타트업 기업의 인큐베이터 공간으로 활용했다. 그 전부터 지자체별로 ‘벤처밸리’, ‘벤처타운’ 같은 시설을 마련해 왔다. 오동근 대표는 한 발 나아가 거대한 실험실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인큐베이터 시설에서 제품을 연구하고 개발한다면, 거대 실험실에서 그 제품을 시험하고 검증할 수 있어야 상품화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의미다.

“우리나라는 규제가 너무 잘 돼있는 나라입니다. 제도를 너무 잘 만들어서 아무 것도 못하게 해놨습니다. 규제가 없는 동네 하나 정도는 만들어야 합니다.”

다행히 제브라앤시퀀스의 스마트횡단보도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상용화 단계에까지 접어드는 데 성공했다. 제브라앤시퀀스는 제물포스마트센터 안에서도 모범 사례로 꼽힌다. 흔히 스타트업 육성 정책의 기본 원칙을 언급할 때 ‘고기 잡는 법을 알려줘야 한다’는 표현이 사용된다. 하지만 낚싯대도 없이 고기 잡는 법만 알려줘서는 맨손으로 허우적거리기만 하다 포기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오동근 대표는 후배 창업가들에게 낚싯대를 주자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제브라 Tag’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비콘’을 소지한 어린이의 위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앱은 현재 개발 막바지 단계에 있으며, 곧 출시를 앞두고 있다.ⓒ(주)제브라앤시퀀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