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의 지난 투쟁이 빛을 발하다
노조의 지난 투쟁이 빛을 발하다
  • 이동희 기자
  • 승인 2017.06.14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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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브로드밴드, 하청 노동자 직접 고용 선언
[인터뷰] 이해조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 지부장

지난 5월 21일 SK그룹의 계열사인 SK브로드밴드가 하청 대리점 5,200여 명의 직원을 자회사 설립을 통해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하겠다고 밝혔다. SK브로드밴드는 곧바로 이사회를 열고 자본금 460억 원 규모의 자회사를 100% 지분 투자를 통해 설립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이 같은 결정은 대기업 계열사 중에서는 처음으로 이루어지는 정규직 전환이라는 점에서 많은 이들의 관심이 주목되고 있다. 이 같은 회사의 결정에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는 “SK브로드밴드의 직접 고용 방침을 환영한다”라며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과 고용불안 해소, 고객에게 질 좋은 서비스 제공을 위한 직접 고용은 이용자, 회사, 노동자 모두를 이롭게 하는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환영의 뜻을 보였다. 현재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만큼 기쁨과 부담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는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 이해조 지부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회사의 직접 고용 발표는 노조에게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지부장의 솔직한 심정이 궁금하다.

환영할 수밖에 없다. 76개의 하청 센터가 하나로 묶이고 직접 고용이 이루어지면 직원들의 고용불안이 해소될 수 있으니 이것이 가장 큰 기쁨이다. 조합원들의 반응도 처음 노조를 만들 때만큼이나 뜨겁다. 아직은 회사와 협의 중이라 구체적인 근로조건이나 처우에 대한 것들이 정해지지 않았다. 노조는 조합원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힘을 쓸 것이고 조합원들과 토론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직접 고용은 발표 전부터 노조와는 어느 정도 논의가 된 이야기였나?

2014년도에 노조를 만들고 나서 직접 고용은 노조에서 회사에 첫 번째로 요구하고 투쟁해왔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조 입장에서는 직접 고용이 하루아침에 뚝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노조에서 회사의 직접 고용에 대해 정확하게 인지하기 시작했던 시점은 올해 1월이었다. 이형희 SK브로드밴드 사장이 직접 고용에 대한 의지가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전해 들었고, 3월에 이형희 SK브로드밴드 사장과 만남을 가졌다. 현재 하청 센터 직원들의 정규직 전환을 검토하고 있는데 이게 지금 당장 외부로 이야기가 나가게 되면 센터장들의 반발도 있을 것이고 무산될 수 있으니 잠시 동안 보안을 유지해 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4월 말 경에 직접적으로 회사 실무라인과 함께 구체적인 논의를 시작했다. 조합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은 노조의 핵심 간부들뿐이었다. 이야기가 새어나가 일이 무산될 까봐 비공개로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SK브로드밴드가 그렇게 직접 고용을 선언한 이유가 새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 정책의 영향 때문인지?

영향이 아예 없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이형희 SK브로드밴드 사장의 의지와 지금까지 노조가 전개해 왔던 투쟁들, 거기에 더해 새 정부의 정책이 더해져 회사가 직접 고용을 더 과감하게 추질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회사 입장에서는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하청 센터에서는 회사에 늘 적자라고 하소연하면서 노동조합과 교섭하려면 돈이 필요하다고 돈을 요구하지만 그 돈이 노동자들에게는 돌아가지 않아 노동자는 여전히 힘들다고 아우성이고, 회사 입장에서는 답답함을 느꼈을 것이다. 돈은 해마다 몇 십억, 몇 백억씩 나가는데 노동자들은 계속 배고프다고 하니 답이 안 나오는 것 아니겠나. 차라리 직접 운영을 하자고 결정을 한 것이다.

하청 센터의 반응은 어떤가?

하청 센터에서는 자신들의 생존권을 뺏는 게 아니냐며 반발하고 있다.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그들이 지금까지 나 몰라라 했던 우리의 근로조건이 생각나 웃음이 날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는 하청 센터도 안타까운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원청에서는 각 하청 센터들의 매출 순위를 매겨서 수수료를 차등 지급하니 센터 입장에서는 실적 경쟁에 빠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실적 경쟁은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무조건으로 이어졌고 이 구조가 악순환처럼 돌아가니 하청 센터 입장에서는 억울할 점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노조를 처음 만들었을 때 하청 센터에 함께 싸우자고 제안했던 것도 이 때문 이였다. 당시 하청 센터에서는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겠냐며 거절했었다. 늘 자신들이 주장했던 것처럼 우리를 진정 가족으로 생각하고 위한다면 좋게 보내주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서로 위로받고 하면 좋을 텐데 직접 고용 발표 이후 시간 외 근로를 안 시키려고 하고 있다. 늘 저녁 8시, 늦으면 10시까지 시간 외 근로를 시켰었는데 직접 고용 발표 이후에는 하지 말라고 막고 있다. 이는 고객을 볼모로 원청을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저녁에 서비스를 원하는 고객들의 작업을 센터가 막아 버리면 기사들이 일을 할 수 없으니 고객들의 불만이 생기고 그렇게 원청을 압박하고 있는 것 아니겠나. 또한 급여를 조금이라도 덜 줘서 앞으로 나갈 퇴직금 산정에 영향을 주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자회사를 설립해 흡수하겠다고 발표했는데 그에 관련해서 우려되는 점은 없는지?

기대의 목소리만큼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자회사로 흡수한 뒤 정규직 전환된 사례 중 안 좋은 사례들이 없지 않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걱정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무기계약직 등의 방식은 노조에서도 반대한다. 자회사를 설립해 흡수되든, 원청에 직접 흡수되든 중요한 것은 고용 안정과 근로조건이기 때문에 그것만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자회사 설립에 의한 흡수여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회사 설립은 확실한 근로조건과 처우에 대한 약속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의견이다.

물론 너무 우리의 입장만 생각하게 되면 진척이 있을 수 없다. SK브로드밴드 직원들 숫자가 임원들까지 2,000명 정도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쪽은 5,000여 명이다. 더 숫자가 많은 조직이 들어가게 되는데 누가 반기겠나. 같은 회사의 정규직이 되어버리면 모든 근로조건을 똑같이 맞춰야하기 때문에 회사에서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입장은 자회사로 가도 좋다는 쪽이다. 원청 직원들과 똑같은 근로조건을 바라는 것이 아니고 현재로서는 근로조건이 너무 열악하니 단계적인 개선 약속만 있어도 충분하다. 이번 일을 계기로 직접 고용이 좀 더 확대돼서 동종 업계에도 같은 바람이 불었으면 좋겠다. 민간 기업으로는 첫 스타트를 끊은 SK브로드밴드와 노조가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내 진정으로 비정규직을 보듬어 안을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