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활짝 열고, ‘현장 속으로’
귀를 활짝 열고, ‘현장 속으로’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7.06.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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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많은 것 바라지 않는다”
[인터뷰] 중소기업 CEO에게 듣다

제19대 대선에 출마한 후보들은 중소기업 육성을 한 목소리로 외쳤다. 차관급인 중소기업청을 장관급으로 격상하자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후보 시절 ‘중소벤처기업부’ 신설을 공약했다. 당시 문 후보는 구호에만 그쳤던 중소기업 육성을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중소벤처기업부를 주축으로 하여 이른바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고, 대-중소기업 간 임금격차를 좁히겠다는 구상이다.

중소기업계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않고 있다. 5월 17일 중소기업중앙회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중소기업 경영자 10명 중 9명이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기대감이 크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아가 중소벤처기업부 설치, 불공정거래 행위 근절 등의 공약을 차질 없이 국정에 반영해 달라고 주문했다.
앞서 <참여와혁신>은 155호 특집 기사 ‘2017 중소기업 리포트’를 통해 중소기업의 현실을 진단했다. 다시 한 번 원칙을 강조하면

‘0순위는 현장이다’라는 것이다. <참여와혁신>이 만난 중소기업 경영자들은 한결같이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또 정책으로 실현해 달라”는 바람을 나타냈다. 광주광역시 소재 중소기업 고려정밀(주)의 나용석 대표이사와, 윤성훈 (주)프리모 대표로부터 들을 수 있었던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고자 한다.

업체 소개를 부탁드린다.

고려정밀(주)
대표자 : 나용석
설립일 : 1997년 6월 28일
주요사업 : 프레스 금형
www.koreaprecision.co.kr

 

나용석 대표이사(이하 ‘나’) | 고려정밀은 자동차 금형 사업을 하고 있다. 전체 물량의 80% 이상을 미국 내 포드, BMW, 닛산, 혼다 등의 1차 협력업체에 납품하고 있다. 금형의 종류는 여러 가지인데, 크기나 제품 특성에 따라 다 다르다. 자동차의 경우 전장, 시트, 외관, 머플러 쪽까지 다 하고 있다. 금형분야가 한 가지만 해서는 먹고 살기 어렵다. 요즘에는 경쟁도 치열해졌다. 중국이나 대만, 미국 내 기업과 경쟁해야 한다. 특히 중국이 문제인데, 가격이 국내업체의 60~70% 수준 밖에 안 된다.

윤성훈 대표(이하 ‘윤’) | 프리모는 자동차 전장부품을 만드는 회사다. 전장부품도 금형처럼 여러 가지로 나뉘는데, 우리는 주로 LED조명을 만들고 있다. 전장부품 분야도 업체들끼리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광주에 기아자동차 공장이 있긴 하지만 거의 울산 현대자동차에 납품하고 있다. 쌍용자동차 같은 경우는 우리가 1차 협력업체이다. 주로 광주가 아닌 타 지역 중심으로 납품한다.

(주)프리모
대표자 : 윤성훈
설립일 : 2011년 1월 5일
주요사업 : 자동차램프 제조
www.tunfac.com

 

 

중소기업의 애로사항을 현실감 있게 듣기 위해 찾아뵙게 됐다. 중소기업 경영자로서 어떤 어려움이 있나?

나 | 문제는 고용이다. 청년일자리가 없다, 취업이 어렵다고 하는데 우리가 보면 남의 나라 일 같다. 우리는 사람이 없다. 입사를 해도 금방 퇴사해 버린다. 중소기업의 평군 근속년수가 5년도 안 될 텐데, 중소기업에 입사한 청년들이 오래 근무하게 하려면 이런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실업급여를 다르게 활용했으면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A라는 중소기업에 취업을 하고 1년이 지나면 실업급여 기금을 써서 이 사람한테 지원금을 주는 거다. 입사 2년이 되면 약간 더 주고, 3년이 되면 또 다시 약간 더 주는 식으로. 만약에 이 사람이 A기업을 그만두고 B기업으로 가면 다시 1년부터 지원금을 쌓게 하면 청년들이 중소기업에 오래 근무할 수 있을 것 같다.

근로장려세제(EITC)를 말하는 것인가? 어떤 형태로 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을까?

나 | 근로장려세제는 근로자들이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현실에서 체감할 수 있는 지원제도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가령 보조금을 직접 준다든지, 여하간 눈에 보이는 혜택이 주어져야 한다. 기존에 월급도 받고, 거기에 연차별로 차등을 둬서 정부가 지원금을 얹어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한 직장에서 오래 근무하지 않겠나.

인력 계발은 어떻게 하고 있나?

나 | 중소기업에서 우수인력을 기대하는 건 말도 안 된다. 일단 채용을 하고 일을 가르쳐야 한다. 금형 같은 경우는 전문계고교 실습생을 받는다. 실습생들이 어느 정도 일이 손에 익으려면 2년 정도 걸린다. 그 동안 회사 입장에서는 투자를 하는 것이다. 문제는 실습생들이 그때까지 남아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습생들이 취업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단지 공부하기 싫어서 오는 게 아니냐는 생각마저 든다. 중소기업에서 정부시책에 따라 실습생을 받는다지만 결국은 기업이 고교생들 취업 교육기관처럼 돼버렸다. 덧붙이자면, 모든 사람들이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들어갈 수는 없다. 그런데 부모들도 자녀가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 공기업에 들어가길 원한다.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다.

윤 | 자동차 전장부품 분야는 임금이 높은 편이다. 박사학위 소지자이면서 경력이 있으면 4,000~5,000만 원대 연봉에서 시작한다. 자체적으로 내부 인력을 통해 R&D인력을 교육시키고 있다. 외부에 교육을 맡기더라도 전장부품 자체가 복잡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프리모는 청년창업기업이다. 요즘은 ‘스타트업’으로도 표현을 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면?

윤 | 우리처럼 청년창업으로 시작한 기업은 기술력과 아이템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광주지역은 나름대로 기술적인 지원을 해주는 유관기관이 많다. 하지만 청년들이 기술을 습득하고, 영업을 하기 위해서는 양산시스템이 필요하다. 설비투자를 해야 하는데, 그 단계까지 가는 것이 너무 힘들다. 결국 제조업은 재정적인 기반이 필요한데, 은행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아무리 좋은 아이템이어도 이를 검증하기까지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롭다. 창업 초기의 인큐베이터 시스템도 필요하지만, 그 이후의 재정지원이나 마케팅지원까지 이루어져야 한다. 이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인큐베이터에서 사업을 접게 되면 옛날에 문제가 됐던 연구소기업, 즉 자금만 빼돌리는 기업과 다르지 않게 된다. 인력 인프라, 마케팅 인프라가 절실하다.

자금조달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고려정밀도 처음에는 자금조달이 어려웠을 텐데?

 

나 | 지금은 그나마 낫다. 처음에는 지금보다 은행 문턱이 열 배는 높았다. 1994년 처음 사업을 시작했는데, 그때는 외환위기 전이다. 그때만 해도 은행 지점장과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느냐가 중요했다. 지금은 그런 게 없어졌다. 오히려 2015년 말에 정부와 정치권에서 좀비기업이라는 말이 나오면서 갑자기 대출이 어려워졌다. 해마다 정치권 말 한마디로 중소기업 경영여건이 바뀐다. 정부의 정책은 일관적으로 가야 한다.

자금조달 관련해서 좀 더 이야기하면, 지금 은행 금리가 2%대에서 3%대 수준이다. 그런데 신용보증기금이나 기술보증기금에서 보증서를 끊어줄 때 받는 수수료율이 1.2~1.5%까지 간다. 은행 금리는 떨어졌는데 수수료율은 그대로니까 그 부담이 상당히 크다. 보증서를 끊지 않고 은행의 신용대출을 받으려다 보니까 절차가 길어진다.

윤 | 은행도 어떻게 보면 하나의 중간 역할을 해주는 셈이다. 정치권에서 청년일자리를 키우고 기업을 지원하겠다고는 하지만 결국 본인들의 뜻대로만 움직인다. 특정 기업의 이야기만 참고할 뿐 중소기업 현장에 직접 와서 얘기를 듣지 않는다. 은행은 점포를 없애는 추세이고, 프로그램 데이터만 가지고 기업을 평가한다. 은행들도 나름의 사정이 있을 테고, 그렇다면 정부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

국내 중소기업 경영자들이 또 하나 힘들어하는 부분이 대기업, 고객사와의 관계 아닌가?

윤 | 어렵다. 예를 들어 1분에 하나씩 생산하던 걸 공정을 개선하거나 기술을 개발해서 50초에 하나씩 생산하게 되면, 시간이 줄어든 만큼을 납품단가에서 깎는다. 그러다 보니까 인건비를 낮출 수밖에 없다. 최근에 특성화고교, 전문계고교 출신 실습생들 문제가 불거진 것도 납품단가에 원인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어떻게 중소기업을 지원해야 할까?

윤 |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각각의 플랜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론적으로만 제시돼 왔고, 실무단계에서는 와 닿지 않았다. 위에서 볼 때 당장 숫자로 실적이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생존의 문제다. 요즘 세대는 열정도 크고 아이디어도 좋다. 현실에서 그것들을 발현할 분위기만 만들어준다면 중소기업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질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청년들이 대기업에 들어가서 성공하는 것만이 길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역량으로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을 거다.

나 | 시에서 해외 마케팅에 관심을 기울였으면 한다. 한때 광주시가 수출증가율 전국 1위를 기록한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주춤하다. 우리나라는 수출로 먹고 사는 구조 아닌가. 지방정부가 수출 지원정책에 좀 더 신경을 썼으면 한다.

현재 뜨거운 이슈는 최저임금 1만 원, 노동시간 단축, 비정규직 문제다.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고 있나?

나 | 정규직, 비정규직은 중소기업에서 크게 의미가 없다. 최저임금의 경우 근로자들 입장에서는 많이 받으면 좋을 거다. 물론 고객사에서 납품단가를 올려주면 상관없다. 현 상황에서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올리면 회사 문 닫아야 한다. 그리고 근로자들이 1만 원을 요구할 수 있는 근로자세가 돼있는지 의문이다. 직원들에게도 “근무시간이 8시간이면 그 동안은 일 열심히 하고 집에 가서 쉬어라”, “8시간 동안 압축적으로 일하지 않으니까 늦게까지 일하는 것 아니냐”, “일 열심히 해서 회사에 있는 시간을 줄여라”고 말하는데 잘 안 된다. 양만 늘리지 말고 질을 늘려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과도 연관이 있을 것 같다. 업무의 질만 높이면 노동시간을 충분히 줄일 수 있다고 본다. 일할 때는 확실히 일하고 쉴 때는 확실히 쉬고.

윤 | 최저임금이 올라가는 건 당연하지만, 대기업이 납품단가 문제를 풀어줘야 한다.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는 중소기업 다 무너지라는 소리 밖에 안 된다. 노동시간은 숙련도가 올라가면 하루 6시간만으로도 충분하다. 대한민국 정책에는 중소기업은 없고 대기업만 있다고 생각한다. 걸음마 막 떼려는데 쓰러뜨리는 거다.

마지막으로 국민들이나 사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나 | 지금까지 이야기한 내용들이 과연 얼마만큼 실현될까. 공허한 메아리로만 끝나지는 않을지 걱정도 돼서 한편으로 큰 기대를 않는 것도 사실이다. 중소기업이 바라는 점이 몇 가지 안 된다. 그런데 백날 얘기해봤자 돌아서면 끝난다. 우리의 목소리가 어느 정도 실현될 수 있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