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만의 노조 바람, 변화는 시작
36년만의 노조 바람, 변화는 시작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7.06.14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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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등급 직원 70% 임금삭감…짱돌이라도
[인터뷰] 정희성 동부증권지부 지부장

지난 3월 동부증권에 노동조합이 결성됐다.

회사 창립 36년만에 처음이다. 그룹 내에서 강력한 오너십을 유지해 오고 있었던 탓에 노조 설립의 배경에 이목이 집중됐다. 아니나다를까, 과도한 성과주의 제도 도입으로 내부의 반발이 심했다.

인사평가의 C등급을 맞을 경우 임금의 70%가 삭감되었다. 30%를 삭감해 70% 수준을 받는 것이 아니라, 70%를 깎는 것이다. 정희성 사무금융서비스노조 동부증권지부장을 만나 그동안의 사정을 들었다. 

 C등급 평가자는 임금 70% 삭감
희망퇴직조차 없는
사실상 상시 구조조정
노조 설립 이후
사측의 계속되는 부당노동행위

 C등급 평가자, 임금 70% 삭감?

동부그룹은 현재 동부화재 동부하이텍을 주축으로 금융과 전자 부문으로 재편됐다. 금융부문의 주요 계열사는 동부화재, 동부저축은행, 동부캐피탈, 동부증권 등이다. 동부증권의 복지 수준은 업계 최저 수준이다. 비정규직 전문직은 3개월마다, 정규직은 6개월마다 평가를 통해 급여를 삭감하는 임금 체제를 채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다른 증권사들이 짧게는 반년, 길게는 1년 단위로 평가하는 것과 비교할 때 지나치다는 지적이다.

정희성 지부장은 “BEP(손익분기점)를 맞추지 못해 일명 ‘생산성 개선 대상자’라는 명분의 C등급으로 낙인 찍히면 꼼짝없이 임금의 70%가 깎인다”면서 “C등급 직원의 복지 포인트는 해마다 줄어들고, 자녀 대학 학자금 지원제도마저 없애버렸다”고 토로했다. 2010년 입사해 8년차 차장인 정 지부장이 C등급 대상이었다, 월급은 130만 원 수준, 4인 가족이 생계를 꾸려가야 한다. 이같은 지적에 대해 동부증권측은 C등급 직원의 비율은 소규모인데다, 향후 회사가 합리적인 수준으로 인사 시스템을 개선 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사측 관계자는 “C등급 비율은 전체 직원의 1~2% 수준으로, 영업활동과 실적이 부진한 극소수의 직원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며 “복지포인트 등 복지제도는 2012년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1회 전직원에 대해 동일하게 기준을 하향 조정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일부 직원이 수혜를 받는 대학 학자금에 대해서만 대출금리를 하향했다”며 “ 휴양소 등의 확대 운용 등 수혜 대상을 전직원으로 확대하는 형태로 변경하는 차원이었다”고 덧붙였다.

희망퇴직조차 없는 상시적 구조조정

증권업계의 구조조정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과거에 전문직으로 이름을 날리던 ‘증권맨’들은 환경의 변화에 치이고 밀리며, 지금은 어느 회사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동부증권이 혹독한 성과주의 평가 제도를 도입한 배경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타 업체보다 심하다. 동부증권은 그동안 희망퇴직을 한 번도 시행하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잦은 평가를 통해 삭감 폭을 늘려가면서 사실상의 퇴출을 강요해 왔던 것이다. 희망퇴직금을 아끼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게 정 지부장의 설명이다.

3월 29일 노동조합이 설립된 이후, 회사는 즉시 사내 인트라넷의 전 직원 휴대폰 연락처와 이메일을 삭제했다. 또한 직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던 자유게시판을 폐쇄했으며, 노동조합이 SNS 단체 채팅방을 통해 소통을 계속해 나가자 관리자들이 채팅방 탈퇴를 종용하고 있다고 한다. 본부장과 지점장들은 직원 개별면담에 나서 노조 탈퇴를 강요했다. 지난 5월 8일에는 영남본부의 조합원 26명이 탈퇴 신청서를 보내왔다. 서류의 양식은 동일했다. 지부는 이를 사측의 부당노동행위로 보고 있다. 5월 초 인사발령으로 해당 지역본부 책임자로 내려온 이는 직전까지 서울 영업부에서 일했던 이. 그는 발령이 나기도 전에 지역을 찾아 “노조를 탈퇴하지 않으면 원격지로 발령을 내겠다”고 협박했다. 그밖에도 노조 탈퇴를 종용했다는 사례를 속속 접수되고 있다.

조용히 차곡차곡 쌓여왔던 노동자들의 목소리

C등급 생산성 개선 대상자가 되어 임금의 70%가 삭감되고, 적금도 깨고 펀드도 깨고, 급기야 퇴직금도 깨서 생활을 이어나가는 동안 정 지부장은 “참담한 심정이었다”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직원들이 평가에서 B- 이하를 받으며 월급이 깎이는 동안, 임원들은 형식적인 임금 자진반납조차 없었다. 또한 대표이사는 700억 원 대 부당 계열사 지원 등 배임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정 지부장은 “턱없이 부당한 대우에 대해 짱돌이라도 날려보자는 심정으로 노조 설립을 준비했다”고 말한다. 물론 막무가내의 심정으로 무작정 일을 벌였던 것은 아니다. 차라리 처우가 나은 다른 곳으로 직장을 옮기는 게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수 없이 고민했다.

“촛불시위와 대선정국을 보면서 마음을 굳혔지요. 바꿔야 하는 것을 바꿀 수 있다는 힘과 용기를 얻었습니다. 대통령 선거에서, 그래도 노동을 존중해 줄 수 있을 거 같은 후보가 당선에 가까워지면서 노조 설립 시기를 맞췄습니다.”

설립 초기, 노동조합은 그 기반을 다지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사측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지난 5월 11일 고용노동부 서울남부지청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또한 그 동안 무용지물이었던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으로 정 지부장이 출마해 당선되기도 했다. 정희성 지부장은 회사 설립 36년 만에 노조가 설립된 것을 언론 보도를 통해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 동안 부당한 일들이 왜 없었겠는가? “자진해서 총대를 멜” 사람들이 없었기에 악순환은 계속됐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