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천만’ KTX 정비 외주화, 중단은 됐으나…
‘위험천만’ KTX 정비 외주화, 중단은 됐으나…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7.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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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0km/h 열차에서 수백kg짜리 부품이 떨어진다면?
[인터뷰] 김병주 철도노조 고양차량지부장

계절은 여름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최근까지도 철도 현장에는 농성 한파가 몰아쳤다. 한국철도공사 본사가 위치한 대전은 물론, 부산, 광주, 안산, 고양 등지에서 철도노동자들이 천막을 치고 ‘외주화 반대’를 외쳤다. 철도공사는 지난해 말부터 역대 최대 규모의 외주화를 추진해 왔다. 차량정비, 시설 유지보수, 역 구내 입환 등 그 영역도 방대했다. 특히 수도권철도차량정비단 KTX 차량정비 외주화는 철도 현장의 여러 부문들 중에서도 뜨거운 이슈로 급부상했다.

지난 5월 10일 KTX의 주행장치와 승강문 정비를 담당할 외주업체 공모가 마무리될 예정이었다. 김병주 전국철도노동조합 고양차량지부장은 “1,000명의 목숨을 한 번에 앗아갈 수도 있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인터뷰는 4월 말, 대통령 선거를 10여 일 앞둔 시점에 진행됐다.

5월 10일 임기를 시작한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철도산업의 외주화에 대해 반대 의견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 때문이었을까? 철도공사는 5월 17일 KTX 차량정비 외주화 계획 ‘중단’을 선언했다. 외주화 계획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철도노조 고양차량지부의 천막농성도 23일부로 종료됐다.

그러나 김병주 지부장은 추가로 이어진 인터뷰에서 “엄밀히 따지면 중단이라고 보기 어렵고 ‘유보’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언제라도 외주화는 다시 추진될 수 있다는 얘기다. 아울러 문재인 정부의 철도 정책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와 관심이 모이고 있다.

노조에서 파악하고 있는 외주화 계획은 어떻게 되나?

철도공사 전략기획실에서 작년 12월 28일에 작성한 문건을 노조에서 입수했다. 내용을 보고 기가 막혔다. 철도차량 정비는 크게 중정비와 경정비로 나뉘는데, 중정비는 15년마다 차량을 완전 분해하는 아주 큰 정비다. 경정비는 일정 주행거리마다, 또는 이상이 생겼을 때 한다. 문건에 따르면 외주화 대상은 경정비였다. 기가 막혔다고 한 이유는 외주화 대상 인원 때문이다. 철도공사는 현장 근무인력 270명 중에서 절반이 넘는 142명을 외주화 하겠다고 했다. 수도권철도차량정비단을 포함해서 호남, 부산까지 합하면 외주화 규모는 금액으로 1,260억 원에 달한다.

철도공사가 추진하는 KTX 주행장치 외주화에 반대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핵심은 승객들의 안전이다. 계획대로라면 당장 6월 1일부터 기존 수도권철도차량정비단 인양팀이 맡아오던 주행장치 정비 업무가 외주화 된다. 인양팀은 KTX의 바퀴 부분을 몸체에서 분리해 정비하고, 다시 결합하는 일을 한다. 크레인으로 몸체를 끌어올리기 때문에 인양팀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하는 업무가 굉장히 중요하다. 인양팀에서는 열차 바퀴를 통째로 교환하고, 모터감속기, 견인전동기, 트립포트, 에어백 같이 큼지막한 부품을 교환한다. 쉽게 말하면 열차 밑바닥에 붙은 부품들을 정비한다고 할 수 있다. 이들 부품의 무게는 수백kg에 달한다. 부품을 교환하고 조립할 때 볼트 하나라도 제대로 조이지 않으면 운행 중에 떨어져나갈 수도 있다.

자동차가 빠른 속도로 달릴 때 타이어가 펑크 나면 심각한 문제가 생기듯, KTX도 시속 300km로 달리다 주행장치에 이상이 생기면 대형사고로 이어진다. 사례를 보면, 철도 선진국으로 꼽히는 독일에서 1998년 대형사고가 일어났다. 독일이 고속열차 ICE가 시속 200km 구간에서 탈선한 사고인데, 탑승객 285명 중 101명이 죽고, 88명이 중상을 입었다. 독일은 평야가 많지만, 우리나라는 국토의 70%가 산지다. 그러다 보니까 터널과 교량이 많은데, 좌석 수 935석에 달하는 KTX가 주행장치에 손상이 생겨 탈선하면 단순 사고가 아니라 재앙이 된다.

철도공사가 무리하게 KTX 정비 외주화를 밀어붙이는 속내는 뭐라고 보나?

내가 봤을 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필수공익사업장이다 보니까 파업을 해도 인력을 남겨놔야 한다. 파업에 들어가게 되면 수도권철도차량정비단에서 근무하는 800명 중에 180명이 현장에 남는다. 620명은 파업에 들어간다는 얘기다. 그런데 부산철도차량정비단이나 호남철도차량정비단은 외주화 비율이 거의 50%에 달한다.

두 곳은 외주업체 직원들이 일을 하니까 파업을 해도 효과가 없다. 수도권철도차량정비단은 전체 인원 중에 20% 정도만 외주화가 됐다. 작년 성과연봉제 반대 파업을 하면서 필수인력 180명이 지방노동위원회 결정에 따른 업무만 하겠다고 하니까 철도공사가 이들 중 26명을 직위해제하고 17명에 대해서는 업무거부를 이유로 고소고발을 남발했다. 사측에서는 수도권철도차량정비단만 남겨서는 노조가 파업을 했을 때 힘들어지겠다고 판단한 것 같다. 수도권의 외주화 비율을 호남이나 부산처럼 올려야 파업을 해도 영향이 없을 거라고 본 것이다. 당장 6월 1일부터 시행하겠다는 외주화 인력이 58명이다. 이들이 속한 부서가 이번 파업 때 직위해제 당한 곳이라는 사실이 우연의 일치일까?

특히 노조는 외주화가 이른바 ‘양질의 일자리’를 없애는 주범이라는 주장을 제기한 것으로 아는데?

철도공사가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바는 일근제 확대를 통한 인건비 절감이다. 철도공사는 기획재정부로부터 총액인건비 제한을 받는다. 정비 업무를 외주화 하고 기존 인양팀 직원들을 일근제로 전환해 비용을 절감하면 경영을 효율화 할 수 있다는 논리다.

철도공사의 주장은 거짓말이다. 이미 수도권철도차량정비단에서는 146명이 외주업체 소속으로 일하고 있다. 철도공사는 1인당 인건비를 연 3,176만 원으로 책정했지만, 외주업체 직원들이 받는 금액은 연간 1,800만 원 수준밖에 안 된다. 나머지 천만 원 넘는 돈은 관리비용이다. 게다가 외주업체 사장들은 대부분 전직 국토부 관료이거나 철도공사 임원 출신이다. 결국 외주업체 노동자들은 낮은 임금을 받고, 소위 철피아(철도 마피아)들만 양산한 셈이다. 노조에서는 철도공사의 현 인원이 정원 대비 1,480명 정도 부족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런데도 새로 사람을 뽑기는커녕 외주화 비율만 높이고 있다. 문재인 캠프에서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을 공약으로 내걸지 않았나.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곳이 철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