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라서 안타까운, 어쩌면 우리들의 이야기 '카트'
실화라서 안타까운, 어쩌면 우리들의 이야기 '카트'
  • 이동희 기자
  • 승인 2017.06.15 09:59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를 통해 본 노동 이야기

영화 <카트>는 2007년 이랜드 그룹의 홈에버 비정규직 노동자 대량 해고 사태를 담아냈다. 한국 상업영화 최초로 비정규직 노동문제를 다뤄 화제가 됐으며 전태일 열사 44주기인 2014년 11월 13일에 개봉했다. 2017년인 지금 영화 모티브 사건으로부터 10년이 지났지만 비정규직 문제는 여전히 우리에게 큰 숙제로 남아있다. 시간이 지났음에도 영화 <카트>가 여전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참여와혁신>에서는 영화 <카트>와 함께 마트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만나볼까 한다.

 

카트 Cart
개요 ⅼ 드라마 ⅼ 한국 ⅼ 104분
개봉 ⅼ 2014.11.13.
감독 ⅼ 부지영
출연 ⅼ 염정아(선희), 문정희(혜미), 김영애(순례여사), 김강우(동준), 디오(태영), 천우희(미진), 황정민(옥순)


"회사가 잘 되면 저희도 잘 될 줄 알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해고되었습니다."

정규직 전환을 눈앞에 둔 선희를 비롯, 싱글맘 혜미, 청소원 순례, 순박한 아줌마 옥순, 88만 원 세대 미진은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 노조의 ‘노’자도 모르고 살았던 그녀들이 용기를 내어 서로 힘을 합치는데…

 

행복한 하루되십시오. 고객님

“고객은 왕이다. 고객 감동 서비스. 회사가 살아야 우리가 산다. 사랑합니다.”

대한민국 대표 마트 ‘더마트’의 오픈 전 미팅 시간, 영화는 더마트 직원들의 우렁찬 구호와 함께 시작된다. 손님의 컴플레인과 관리자들의 잔소리에도 언제나 웃는 얼굴로 고객 감동 서비스를 실천하는 것이 더마트 직원들의 일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날벼락과 같은 소식이 더마트 직원들에게 들이닥친다.

“근로계약 해지 통보서가 발송되었습니다. 직원 게시판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더마트에서 계산·판매·진열·청소를 맡고 있는 노동자들은 회사로부터 일방적인 해고 통지를 받게 된다. 정규직 전환을 앞두고 있던 선희, 싱글맘 혜미, 청소 여사님 순례, 88만 원 세대 미진은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 영문을 몰라 따져 묻는 직원들에게 더마트 관리자는 “한 달 후가 아니라 지금 당장 잘리고 싶어요?”라며 차갑게 응수한다.

처음에는 어쩔 줄 몰라 당황하던 직원들은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노동조합을 만든다. 대부분 노조의 ‘노’자도 모르고 살았던 평범한 아줌마들이지만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힘을 합치게 된다.

2007년, 이랜드 그룹의 홈에버 비정규직 노동자 대량 해고 사태가 발생했다. 사태의 발단은 2006년 11월 30일 ‘비정규직 보호법’이 통과되면서부터이다. 비정규직 보호법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2년 이상 고용할 경우 정규직으로 전환·고용해야 하는 법이다. 당시 이랜드 그룹은 비정규직 보호법 시행을 앞두고 계열사인 뉴코아와 홈에버 노동자 중 일부만을 정규직 전환하고 나머지 700여 명에게 해고 통보를 내렸다. 비정규직 ‘보호법’이 비정규직 ‘양산법’이 된 순간이었다. 일방적인 해고 통보에 노조는 반발하고 본격적인 투쟁에 들어가게 된다. 영화 <카트>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정신으로 노동조합을 만들었지만 더마트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협상의 대표인 선희, 혜미, 순례가 더마트와의 협상 자리를 만들었지만 더마트는 끝내 협상의 자리에 나타나지 않는다.

“본사에서 노조 인정 안 한다잖아. 거기 나가서 뭐 해? 직원들 맘대로 못 자르면 그게 회사야? 절차상 하자가 좀 있다고 결과 바뀔 거 아니잖아. 좀 있으면 지쳐 떨어지겠지. 아줌마들이 해봤자 지.”

경영진의 불통에 더마트노조는 ‘파업’이라는 카드를 선택하게 된다. 계산하려는 손님들로 가득한 오후 4시의 더마트, 조합원들은 근무복을 벗어던지고 파업에 돌입한다. 이에 질세라 회사는 알바 대체인력을 투입한다.

“서비스하는 사람들이 이래도 되는 거예요?”

“회사와 해결할 일로 왜 고객들이 피해를 봐야 해요?”

손님들의 컴플레인은 덤이다. 노조는 파업 중 대체인력 투입은 불법이라며 대체인력과 몸싸움을 벌이는 상황까지 가게 된다. 마지막에는 계산대에서 대체인력들을 몰아내고 점거 농성에 들어간다. 그런 노조의 움직임에 깜짝 놀란 더마트는 뒤늦게 협상의 자리를 마련하지만 양쪽 의견은 좁혀지지 않는다.

“정말 안타깝습니다. 여사님들이 왜 이런 극단적인 행동을 하시게 됐는지….”

“그 이유야 회사가 더 잘 알겠죠.”

“반찬값이나 벌자고 나온 여사님들을 누가 꼬셔가지고 참.”

“저 생활비 벌러 나와요. 반찬값 아니고.”

더마트가 불법점거와 업무방해라며 노조를 다그치면서 협상은 결렬된다. 이후 상황은 노조의 점거 농성을 막기 위해 더마트가 경찰 인력까지 투입하는 지경까지 이른다.

실제로 이랜드 사측과 노조는 해고 통보 이후 4개월이 지난 2007년 7월 4일 노동부의 중재로 노사 간 첫 만남을 가졌다. 하지만 사측은 파업에 참가하고 있는 조합원들에게 현재의 파업 행위가 불법이라는 등의 협박성 내용의 문자를 발송하며 영화와 똑같은 모습을 보였다. 그 다음날에는 홈에버 대표와 뉴코아 대표는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외주화 결정을 되돌릴 수 없다며 노조에 농성 해제를 촉구했다.

잇따른 교섭 결렬에 노조는 점거 농성을 이어나갔고 사측은 점거 농성을 하고 있는 강남 킴스클럽의 6개 출입문 가운데 전경이 배치된 정문을 제외한 5개 출입문과 셔터문 등을 쇠파이프와 쇠사슬로 막은 뒤 용접을 하기도 했다. 당시 농성장 봉쇄가 인권침해 논란이 되었고 130여 개 시민 단체는 이랜드 불매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낙숫물로 바위 뚫기

경찰 인력 투입으로 한풀 꺾이는 듯 보였던 더마트 노조 투쟁은 더마트 정규직 노조와 힘을 합치면서 다시 시작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조합원들의 사기는 떨어져만 간다. 당장의 생활고가 먼저인 조합원들은 길어지는 투쟁에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 더마트는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용역 폭력까지 자행한다.

영화는 영영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노조의 투쟁을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로 채우며 지루하지 않게 이어가는데,주요 등장인물은 선희와 혜미이다.

선희는 입사 후 5년 동안 벌점 없이 일해 온 모범사원이다. 관리자의 무리한 연장근무에도 불평 없이 일한 그녀는 고등학생 아들과 초등학생 딸을 둔 평범한 엄마일 뿐이다. 혜미는 유치원생 아들을 혼자 키우는 싱글맘으로, 노조를 만드는 데 적극 앞장선다. 하지만 아들의 수술비에 어쩔 수 없이 다시 계산대로 돌아가는 모습도 보여준다.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내인 그들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처음에 소극적으로 노조 활동을 시작했던 선희도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선희의 외침과 함께 영화는 열린 결말로 끝이 난다.

“여러분 저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서 일했습니다. 결근 한번 안 하고 매일 연장근무하면서 바보같이 일했습니다. 그럼 회사도 잘되고 저도 잘 되는 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잘리고,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저기 저 계산대에서 바보같이 일만 했던 제가 이렇게 여러분 앞에 소리치고 있습니다. 저희가 바라는 건 대단한 게 아닙니다. 이렇게 외치는 저희를 좀 봐달라는 겁니다. 저희의 얘기를 들어달라는 겁니다. 저희를 투명인간 취급하지 말아달라는 거예요. 저희가 바라는 건 사람대접입니다.”

2007년에 시작된 이랜드 홈에버 사태는 500일이 넘도록 파업이 이어진 후 2008년에 종결되었다. 파업을 주도했던 노조 지도부들이 복직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나머지 조합원들은 일터로 돌아가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지도부의 희생으로 이룬 절반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선희가 외쳤던 말처럼 2007년 이랜드 홈에버 사태에서도, 영화 <카트>에서도 노동자들이 전하고자 하는 말을 하나였다. “우리는 투명인간이 아닙니다.” 이 한마디가 투명인간으로 투사되는 비정규직의 간절한 외침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뉴코아 노사 합의 내용

2008년 8월 26일 뉴코아 노사는 회사 쪽의 요구를 대부분 들어주는 조건으로 파업을 타결했다.

-사측은 외주화로 계약기간이 만료된 직원 36명을 재고용
-노동조합은 해고된 15명의 간부의 복직 요구를 완전히 포기
-노동조합은 2010년까지 무파업
-노조 간부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 철회
-자녀 학습 보조비 지급
-임신 여직원 수당 지급

이랜드 노사 합의 내용

2008년 11월 11일 이랜드 일반노조와 삼성테스코(홈플러스)는 지도부 해고 범위 등의 몇 가지 쟁점을 제외한 다른 부분에서 대부분 합의를 이끌어냈다.

-비정규직 노동자 정규직화 및 고용보장
-16개월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 노동자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
-추가적인 외주화 계획 취소
-파업 도중 해고된 28명 중 16명 복직
-노조와 조합원에게 걸려있는 민사소송과 형사고소를 모두 취하
-현재 재판 중인 사건에 대해서는 탄원서를 제출
-이랜드 노조 해산
-이랜드 노조 지도부 12명 자진사퇴
-임금교섭단체 구성권 사측에 위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