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노조의 정책적 능력이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결정한다”
인터뷰 - “노조의 정책적 능력이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결정한다”
  • 승인 2004.11.10 00:00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호주 금속노조 앤드류 자일스 교육실장

호주 금속노조의 비정규직 대책은 보호 강화와 숙련 향상


지난 10월 11일부터 2주간 호주 금속노조가 민주노총 금속산업연맹과의 국제 교류사업의 일환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산별노조 및 지회 간부와 사업장 대의원 8명으로 구성된 연수단은 방문 일정 중 이틀 동안 울산의 현대자동차노동조합을 방문해 비정규직, 연대기금, 한국 노조의 활동 상황 등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비정규직 문제에 관한 토론이 있던 10월 18일, 호주 금속노조의 앤드류 자일스 교육실장을 만나 호주의 비정규직 문제에 관해 들어봤다.


최근 한국에서 불법파견 문제가 크게 이슈화 되고 있다. 호주의 비정규 노동, 파견 노동의 실태는 어떤가?

 

▷ 호주에서도 1998년 이후 비정규직 노동자가 급속하게 늘어, 현재는 전 산업 고용인구의 4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과 달리 하청 노동자는 많지 않다. 비정규직은 대부분 계약직이나 임시직으로 회사에 직접 고용되는 형태이거나 파견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호주의 기업들도 파견 노동의 확산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사용자들이 파견노동을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산재보험 가입과 연금 부담이 파견업체에 있기 때문이고 두 번째로는 법정 최저임금만 주면 되기 때문이다.


 

호주에서도 파견노동자나 임시직, 계약직 등 비정규 노동자와 정규직 노동자 간의 차별이 문제가 되고 있나?

 

▷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호주에서도 차별은 있다. 예를 들어 파견노동자나 임시직 노동자는 연가나 병가가 허락되지 않는다. 대신 이들은 법정최저임금의 25% 할증을 적용받고 있다. 이 할증률은 2002년까지 20%였다가 2002년 들어 산별협약의 개선으로 25%까지 인상됐다.


또 2002년부터 직접고용 비정규 노동자가 한 사업장에서 6개월간 지속적으로 일했을 때는 회사에 공식적으로 정규직 전환을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이 생겼다. 이 때 사용자는 노동자의 요구를 수용해야 할 의무가 있다. 다만 사업상 지속적 채용이 어렵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으면 의무를 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로부터 또 6개월 후에서도 해당 노동자가 계속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면 회사에 다시 정규직화를 요청할 수 있고 회사는 이를 반드시 수용할 의무가 있다.

 

한국 노동계에서는 비정규직 고용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시정하는 데 힘써야 한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호주 금속노조의 비정규 노동자 관련 방침은 무엇인가?

 

▷보호 쪽에 초점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대부분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 노동자가 기피하는 일에 종사한다. 이들의 숙련이나 직무만족도는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대체로 떨어진다.

 

하지만 25%의 임금 할증률 때문에 자발적으로 비정규직을 택하는 노동자도 있다. 현재의 경제 시스템 하에서는 어차피 힘든 일도 누군가는 해야 한다. 또 비정규직을 계속해서 양산하는 제조업의 자동화와 외주화 추세는 늦출 수는 있지만 막을 수는 없다. 따라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만족도와 숙련을 높이면서 보호를 강화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호주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는 노동법, 산별협약, 개별 기업의 사업장 협약에 의해 중층적으로 보호받는다. 우리의 전략은 산별협약 차원의 보호 조항을 계속 강화하는 것과, 여력이 있는 기업을 중심으로 여건을 개선해 나가는 것이다. 산별협약에서는 6개월 후에 정규직화를 요청할 수 있도록 되어 있지만 사업장 차원의 협약에 따라 이 기간이 8주인 곳도 있다.

 

비정규 노동자들의 낮은 숙련이나 직무만족도를 언급했는데,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나 방안이 있나?

 

▷호주의 금속산업은 직무급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데, 비정규 노동자들의 경우 대부분 저숙련-단순기술자이기 때문에 임금이 낮다. 이는 단지 비정규직만의 문제는 아닌데, 정규직이라서 임금이 높고, 비정규직이라서 임금이 낮은 것이 아니라 저숙련 노동일수록 임금이 낮다. 호주의 노사정은 ‘숙련 모니터링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데 94년부터 금속노조도 이 시스템의 주체로 참여하고 있다.

 

이 시스템의 1단계는 노동자들의 직무를 분석하는 것이고, 2단계는 숙련을 평가하는 것이다. 숙련 평가가 끝나면 해당 노동자의 숙련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배치한다. 이렇게 하면 정규직 노동자든 비정규 노동자든 좀더 많은 임금과 나은 노동조건에서 일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된다.

 

최근 한국의 불법파견 및 비정규직 차별 관련 논쟁에 대한 생각이나 제안은?

 

▷호주의 경험으로 보면 노동 조건이 좋지 못한 일자리의 증가는 전체 일자리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호주에서 비정규직이 급격히 확산될 때처럼 한국에서도 당분간 이 문제가 노조의 주요 이슈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점은 현장과의 접점을 잘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의 유연화라는 세계경제와 현장의 흐름에 노조가 적극적인 개입과 통제 전략을 가져야 한다. 노조의 정책적 능력이 정규직, 비정규 조합원의 보호수준을 결정한다는 것이 우리의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