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한국 사회를 밝히다
촛불, 한국 사회를 밝히다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7.07.13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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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만 명 참여…새로운 나라에 대한 열망
[커버스토리] 대한민국 LEVEL UP! ①

아직은 무언가 결과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엔 이르다. 대한민국은 지금 참여의 힘이 만든 과정을 관람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해부터 사람들의 이목은 날마다 쏟아지는 경악스런 뉴스로 향했다. 시민들의 발길은 광화문 광장으로 모여들었고, 밤마다 촛불을 밝혔다. 대한민국의 가장 큰 권력이 철저하게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데 쓰였고, 가장 기본적인 절차마저 처참하게 유린되었던 현실에 분노하고 개탄했다.

아니, 어쩌면 우리의 ‘분노’는 ‘국정농단’만을 가리킨 게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의 일상은 치열하고 각박했다. 주머니 사정과 골목 경기에 대한 묘사와 전망은 암울하기 그지 없었다. 희망도 열정도 모두 소진하고, 주체적인 개인으로서 최소한의 자존감마저 잃어버린 대한민국의 오늘에 대한 이야기는 끝없이 되풀이되었다.

일각에서는 마치 정권 교체가, 국정농단에 대한 단죄가 변화 그 자체인 것처럼 이야기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시각은 오히려 더 큰 걱정거리를 불러온다. 자기가 상상했던 모습이 아닐 경우, 더 큰 분노와 적개심에 사로잡힐 수 있는 여지도 크다.

<참여와혁신>이 창간 13주년 기념호의 큰 주제로 삼은 ‘대한민국 LEVEL UP’이란 슬로건은 변화의 스칼라만이 아닌 벡터에 대한 고민이자 제언이다. 결과가 아닌, 과정을 목격하고 있음을 지속적으로 상기하기 위한 주제다. 변화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은 지난 겨울 수많은 촛불들이 수놓았던 풍경처럼, 시민들의 참여와 학습을 통해 이뤄진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게 나라냐?”는 자조섞인 외침은 다른 어떤 구호보다도 더 강렬하게 현실을 반영한 울림을 던지고 있다. 국정농단 사태로 불이 붙은 촛불 광장에서 자주 들을 수 있었던 목소리다. 전국 각지에서 20여 차례, 1,600만 명이 참여해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마치 축제의 한마당인 것처럼 평화적으로 진행되는 것에 대해 외신은 경탄을 금치 못했다.

집회에 대한 부정적 인식, 긍정으로 변화

2016년 10월 29일 이후 대한민국 전국 곳곳은 촛불을 밝혔다. 130일 넘게 20여 차례에 걸쳐 촛불집회가 열렸다. 여기에 참여한 인원은 주최측 추산으로 1,600만 명을 넘어섰다. 시장조사기업 엠브레인은 2월 21일부터 23일까지 전국의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촛불집회에 대한 이식을 조사해 발표한 바 있다. 응답자의 3명 중 1명 가량은(32.8%) 최근 열렸던 대규모 촛불집회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이 조사 결과가 신뢰할 만하다고 가정하면, 촛불집회 참가 인원은 주최측이 추산했던 규모와 유사하다. 2017년 통계청의 추계 인구는 5,144만 명. 촛불집회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32.8%를 계산하면 1,687만 명에 달한다.

‘촛불’이 아니더라도 대규모 집회가 그동안 없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집회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이 ‘촛불’에 이르러서는 분명히 달라지고 있다. 그동안 집회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 부분이 강했다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선회했다.

응답자의 74.5%는 집회에 대해 “국민으로서 의사를 표현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답했다. 촛불집회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은 여성(77.4%)이 남성(71.6%)보다 컸고, 연령별로는 40대가 79.2%로 가장 높았다. 20대와 30대 역시 76%, 75.2%로 전 연령대 평균치보다 높았지만, 50대 이상은 67.6%로 평균 이하를 보였다. 주목할 만한 응답은 “집회도 축제처럼 즐길 수 있는 일종의 문화”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69.2%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집회를 통해 자신의 의사가 국정에 반영될 수 있다고 응답한 이들도, 개별 정치성향을 떠나 평균 60.3%에 달했으며, 반면에 집회에 참여한다고 해도 특별히 변화하는 게 없을 거라는 부정적인 인식은 32.2%에 그쳤다.

부도덕한 권력에 대한 평화적 저항

촛불집회가 처음 한국사회에서 주목을 받은 것은 지난 2002년의 일이다. 경기도 양주에서 미군 장갑차에 치여 사망한 신효순, 심미선 양의 추모 촛불집회가 1,500여 명의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광화문에서 열렸다. 이후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사태, 2008년 이른바 ‘광우병 사태’에 대한 촛불집회는 사회적으로 전 국민의 관심사가 쏠리는 사건에서 시민들이 의지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과거의 촛불집회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평화적 시위라는 본래의 취지와 무색하게 매번 과격한 참여자와 이에 대응하는 공권력이 맞부딪쳤다. 광우병 촛불집회 1년 뒤 서울중앙지검이 펴낸 ‘미 쇠고기 수입반대 불법 폭력시위 사건 수사백서’에서는 106일간의 촛불집회 기간 동안 1,476명이 입건되고, 43명이 구속됐다고 밝힌다. ‘명박산성’이라고 조롱거리가 되었던 컨테이너 차벽이 광화문 대로를 온통 가로막는 일도 벌어졌으며, 집회 참여자의 ‘줄다리기’로 경찰 버스가 불태워지기도 했다.

검찰은 백서에서 “최초의 평화적 형태 시위가 도로점거, 쇠파이프 사용 등 폭력 시위로 변질돼 큰 피해를 야기했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백남기 씨 사망의 원인이 되었던 물대포가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의 ‘촛불’은 그 양상이 다르다. 이전의 집회와는 달리 시종 비폭력 집회로 이어졌으며, 수백만이 참여한 집회에도 불구하고 다음날에는 연행자가 없었다.

지인이나 가족들과 삼삼오오 축제에 나온 듯 집회에 참여한 이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는가 하면, 학생 참여자,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혼자 참여한 이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들이 촛불 광장에 나오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신율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과 국정농단 주역보다 도덕적 우위를 보여주자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박 대통령은 헌법을 위반했고, 실정법을 어긴 피의자 신분이며, 지금까지 나온 사실만으로도 정당성에서 청와대는 이미 완패했다. 민주주의의 근원적 가치와 절차를 훼손한 정부에 항거하는 방법은 합법적인 틀 안에서 이뤄지는 평화적 시위”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도 “매주 100만 명, 200만 명의 인원이 실제 집회 현장에 나온다는 것은 그보다 몇 배의 사람들이 생각을 공유한다는 것”이라며 “정말 바꿔야 한다는 절박함이 진영논리를 넘어 온 국민을 행동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촛불집회에 참여한 이들은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자들의 부도덕함에 대해 평화적으로 항거한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민들이 위임한 권력을 자기 멋대로 사용한 대통령에게 항의하려고 당당히 광장에 모인 것임으로, 폭력적이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말은 촛불집회의 성격을 정확히 보여준다. 이번 촛불집회가 보여준 양상은 기존과는 다른 강력한 힘이 있었다는 점은 정치권의 행보를 보면 뚜렷이 드러난다. 각자의 셈법과 당리당략에 따라 탄핵소추안을 앞에 두고 머뭇거리던 국회의원들은 촛불이 보여준 민의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12월 초 수도권과 6대 광역시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당시의 새누리당, 민주당, 국민의당 등 세 정당의 지지율은 하락세를 보였다. 해당 설문조사를 진행했던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야당은 국정농단 사태의 수습을 주도하지 못하고, 시민들이 주도한 촛불집회의 향방을 뒤따르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며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대한 분노가 일차적이지만 야당의 무능에 대한 실망도 상당하다”고 분석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