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대, 새로운 대한민국, 노동의 길을 묻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대한민국, 노동의 길을 묻다
  • 하승립 기자
  • 승인 2017.07.13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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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의 협치를 넘어 노동과의 연정의 시대로
[제언] 새로운 시대의 노동

새로운 정부는 ‘나라다운 나라’를 내세웠다. 이 당연해서 당혹스럽기까지 한 선거 캠페인 슬로건은 우리가 처했던 현실의 반영이었다. 그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정부는 출범 두 달이 채 안 됐지만 거의 전폭적이다시피한 지지를 받고 있다. 제대로 된 꼴을 갖춘 나라, 그리고 정부를 원한 이들은 지난 겨울 거리를 가득 메운 ‘촛불들’이었다. 이들은 조직된 집단이라기보다는 시민의 합이었다. 하지만 이 시민의 무리에서조차 소외된 것이 바로 노동이라는 것이 여전한 현실이다. 1987년 우리 사회의 노동이 시민권을 획득했다고 하지만, 외환위기와 국제금융위기 등을 거치는 지난 30년 간 노동의 시민권은 제한되었다.

일자리 창출, 비정규직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사회 양극화 해소 등 노동과 연관된 의제들이 넘쳐나는 지금, 새로운 시대 노동의 길을 찾아보고자 한다. 참여와 학습으로 대한민국을 업그레이드 하기 위해서는 노동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인 박태주 박사,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소장 이문호 박사, 한국노동연구소 조성재 박사 등 노동의 곁에서 노동을 연구하는 이들에게 그 길로 가는 이정표를 물었다.

사라진 노동, 새 정부는 다를까

지난 대통령선거의 특징을 여러 가지로 꼽아볼 수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바로 노동 의제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각 후보 진영의 노동정책은 애써 찾아보지 않는 이상 쉽게 드러나지 않았다. 보수 후보가 민주노총과 전교조를 콕 집어 적폐이자 주적이라고 공격한 것 정도가 잠깐 이슈가 됐을 뿐이다.

이에 대해 박태주 박사는 “노동정책이 사회적 의제로 부상되지 못한 ‘최초의 대선’이었다”고 규정했다. 조성재 박사는 노동이 이 시대에서 주변화되었다고 분석했다. 조 박사는 “신자유주의적인 질서 때문에 그렇게 된 측면도 있지만 시장의 힘이 너무 커지다보니 제도의 힘이 작아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우려는 정부 구성 단계에서도 나왔다. 기존의 청와대 노동복지수석실이 일자리수석실로 명칭이 바뀌고 해당 수석에 경제관료 출신이 임명되면서 이전 정부들의 노동 배제 정책이 계속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였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른 해석이 나왔다. 청와대 노동비서관을 지낸 박태주 박사는 역발상이 가능하다는 시각을 내놨다. “이전의 민주개혁 정부에서도 노동복지수석들의 대부분이 노동을 모르는 사람이었다”면서 “오히려 노동비서관이 일자리 문제를 맡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노동에 집중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시각에 대해서는 조성재 박사도 동의했다. 조 박사는 “일자리는 고용노동부 혼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업들이 만들어야 하는데 기재부, 산재부, 국토부의 기업에 대한 영향력을 감안할 때 각 부처들이 일자리 중심으로 재정운용을 하도록 촉진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봤다. 조 박사는 “이 정부에서 진정한 고용노동부 장관은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지금까지 노동문제가 풀리지 않았던 이유가 경제부처들이 노동문제에 대해 문외한이었기 때문인데, 이제는 각 부처들로 하여금 노동문제를 공부하도록, 일자리 문제부터 먼저 생각하도록 강제한 셈”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일자리정책의 방향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 박태주 박사는 “일자리정책이 경제산업정책인 것은 맞지만, 노동을 배제하는 경제산업정책으로 갈 수 있다는 점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인천공항 사례는 공공부문 정규직화 모델돼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직후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하고, 그 자리에서 공사측이 비정규직 1만 명 연내 정규직화 방침을 밝힌 것과 관련해서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다. 이러한 일련의 퍼포먼스는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한 문재인 정부의 정책 방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고, 향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의 모델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이 쏠렸다.

이 과정에서 허둥대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 공통된 지적이었다. 박태주 박사는 “인천공항공사 사례의 경우 공공기관 정규직화의 시범 모델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내부 관계와 바깥 상황을 모두 염두에 두고 해야 한다”면서 “노조 입장에서는 기대가 엄청나게 클 것이고 정규직의 반발도 예상되는데 회사는 어렵다고 할 것이고 대통령은 이미 약속을 했으니 복잡한 방정식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성재 박사는 이번 사례의 경우 정부 주도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 박사는 “기재부가 정원과 예산 문제를, 고용노동부가 지속가능한 프레임을 만들기 위한 노사관계 판짜기의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태주 박사는 “어떤 방식으로 결정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과정을 밟아나가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노조가 참여하는 속에서, 노조의 동의가 이루어지는 형태로 정규직화가 논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박태주 박사는 이와 관련해 “인천공항공사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기업차원이지만 사회적 합의 대화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노사정서울모델위원회를 통해 지방공기업 단위의 노사협의를 이끌어낸 경험이 있는 박태주 박사는 “서울시의 의지가 있다 하더라도 지방공기업의 경우는 인력과 예산이라는 정부의 지원 없이는 한계가 명확했는데, 오히려 이런 한계를 인천공항공사에서 돌파할 수 있다”면서 “노사가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기 위한 공간을, 논의 틀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인천공항공사 사례를 향후 공공기관 비정규직 정규직화의 모델이 될 수 있도록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은 일치했다. 박태주 박사는 “절차에 있어서 하나의 표준안이 나와야 한다”고 했고 조성재 박사는 “당장 급하고 모델을 만들어야 하니까 정부가 끌고 나가는 모양새일 수밖에 없는데, 정부가 어떻게 주도할 것인가에 대한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권력이 노동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한 시그널

노동의 참여, 특히 그중에서도 조직된 노동조합의 참여를 통한 새로운 사회 변화를 강조했지만 노동조합에 대한 비판과 지적도 잊지 않았다.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타협 혹은 사회적 대화를 거부하는 것과 관련해 조성재 박사는 “노동운동이 사회적 존재로서 자기 힘이 남아 있을 때 자기 지분을 가지고 사회적 목소리를 낼 기회를 놓쳤다”고 지적했다.

조 박사는 “민주노총은 96년 말의 경험을 토대로 총파업 전술을 지속하는데 옛날 대공장에 어울릴 법한 방식”이라면서 “파업 이외의 투쟁전술을 개발하는데 게으른 모습을 벗어나 새로운 상상력, 새로운 운동방식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태주 박사는 “일자리 정책을 노동조합 아젠다로 삼아본 적이 있는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면서 “권력이 노동을 보는 태도도 문제가 있지만 노동이 권력을 보는 태도도 문제다. 노동조합도 공공성에 협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성재 박사는 좀더 뼈아픈 비판도 내놨다. 90년대까지는 대공장노조가 선도투쟁을 하면 중소기업 노동자에게도 유리했는데 지금은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이나 근로조건이) 아예 못 쫓아온다”면서 “선도투쟁을 해서 앞으로 갈 것이 아니라 뒤를 돌아봐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조 박사는 “노동운동이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사회적으로 고립됐다. 경영상의 위기로 고용문제가 생겼을 때 국민들이 쌍용차 때만큼 지지해주지 않을 것”이라면서 “다급해진 것은 노동조합”이라고 밝혔다.

노동운동의 자기반성도 촉구했지만 한편으로는 노동에 힘을 실어주는 것도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했다. 박태주 박사는 “권력이 노동을 대하는 태도가 굉장히 중요한 시그널이 된다. 힘이 없으면 협조도 못한다”고 강조했다.

이문호 박사는 “노동조합이 일자리위원회 참여 등 긍정적인 신호를 보이고 있는 점은 좋은 신호”라면서 “정부가 진정성 있는 자세를 보인다는 전제 하에 노동조합도 (지금까지의 경우처럼 중도에 나오지 말고) 내부에서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4차 산업혁명 대비도 노사정이 함께 해야

재계의 변화도 촉구했다. 조성재 박사는 “재계는 기존의 양극화 발생요인을 대기업노조 탓만 하면서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정부 뒤에 숨어 있으면서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했다”면서 “이제는 사회통합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기존 모델과 다른 대안을 내놓을 때”라고 비판했다.

이문호 박사는 “재계는 이번 기회에 변화가 필요하다”면서 “노동조합을 파트너로 인정하고 노사관계를 새롭게 접근하면 노사정 대화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성재 박사는 노사 주체의 리더십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운동은 내부의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큰 깃발이 없고, 경영계도 중소기업과 대기업을 아우르지 못한다”면서 “각 주체의 리더십이 종합적으로 돌아가면서 노사간의 세력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조성재 박사는 사용자단체의 재편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조 박사는 “전경련은 해체 수순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상공회의소가 흡수하든 해서 재계의 노동문제 대표성은 상공회의소가 갖고, 경총은 대기업을 대변하고 중기협이 중소기업을 대변하는 식으로 사용자대표를 3주체로 새롭게 꾸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정부의 역할에 대한 주문도 있었다. 박태주 박사는 참여정부의 실패 원인을 초기에 노동과의 관계맺기에 실패한 것에서 찾았다. 박태주 박사는 “촛불에 의해 세워진 이 정부가 아래로부터 올라온 이 힘을 어떻게 위로부터 개혁과 시너지를 낼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노동과의 관계맺기에 신경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문호 박사는 “일자리위원회에 노동계를 참여시키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향후 구성될 4차 산업혁명위원회 등도 노동계와 함께 논의해야 한다”면서 “독일의 경우 사용자단체와 금속노조 간에 ‘산업 4.0에 대비하는 교육과 숙련화’라는 사회파트너협약이 체결됐고, ‘디지털화, 산업 4.0 및 노동 4.0’이라는 공동선언문도 채택했다”고 설명했다. 이 박사는 “독일의 ‘노동 4.0’은 ‘산업 4.0’에 대한 노동정책적 개념으로 새로운 디지털 시대에 ‘좋은 노동’을 만들기 위해 노사정, 학계 및 시민이 참여하는 대화의 플랫폼인데 우리도 4차 산업혁명을 노사정이 함께 논의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갈 길이 멀다. 새로운 대한민국이라는 슬로건은 선거용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업그레이드 하기 위해서는 노동이 그 중심에 있어야 한다. 노동이 협치의 대상조차 되지 못하는 현실에서 너무 앞서 나간 이야기일 수도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어떠한 정권이 들어서든 노동을 연정의 파트너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노동은 특정한 집단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이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시키는 절대다수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서는 노동과 발을 맞춰야 한다. 물론 이 길을 가기 위해서는 각 주체들의 변화가 필요하다. 지금 우리는 그 갈림길에서 길을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