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을 건 위험한 다이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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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7.07.13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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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한 인력감축에 골병 드는 철도
[리포트]철도공사 인력부족

5월 27일 낮, 경원선 광운대역 구내 선로전환기에서 철도수송원 조 모 씨가 피를 흘리며 쓰러진 채 발견됐다. 그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과다출혈로 결국 숨졌다. 고인은 사고 당시 광운대역 구내에서 입환(열차를 운행하기에 앞서 역 구내의 빈 선로를 활용해 열차를 이동시키거나 연결·분리하는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조 씨의 동료들은 일손이 매우 부족한 가운데 벌어진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1년 전 스크린도어, 이번에는 ‘죽음의 입환’

딱 1년 전이다. 지난해 5월 28일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혼자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김 모 씨가 승강장에 들어오는 열차에 치여 숨졌다. 그의 가방 안에 공구와 뒤섞여있던 컵라면은 그가 얼마나 바쁘게 일했는지 보여주는 상징이 됐다.

사고 후 구의역 참사 시민대책위 진상조사단은 당시 사고가 스크린도어의 부실시공과 공공기관 경영효율화에서 비롯됐다고 결론지었다. 공공기관 경영효율화로 인해 대대적인 인력감축과 외주화가 이루어졌고, 외주업체 또한 수지를 맞추기 위해 가능한 한 사람을 덜 뽑았던 것이다. 옛 서울메트로(현 서울교통공사)는 스크린도어 정비를 외주업체에 맡기고 있었다.

그로부터 1년 뒤, 광운대역 사고의 희생자는 한국철도공사 소속 정규직 노동자였다. 만약 고인의 동료들이 말한 것처럼 부족한 일손이 사고의 원인이라면, 광운대역 사고는 정규직 노동자들도 인력감축의 희생양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 광운대역 입환 업무의 정원은 7명이었으나 지난해 6명으로, 올해 초 5명으로 줄었다.

그런데 광운대역뿐만 아니라 철도현장의 다른 곳에서도 노동자들은 ‘사람이 부족하다’고 일관되게 말한다. 오봉역의 한 수송원은 “입환을 할 때 세 명이 한 조로 작업해야 하지만 컨테이너 같은 경우 세 명이서 작업해 본 적이 거의 없다”고 전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컨테이너 객차 한 량의 길이는 14미터로 열차 한 대에 30량의 객차가 연결되는 게 일반적이다. 400미터를 훌쩍 넘기는 열차에 사람이 두 명만 달라붙어 작업하다보면 시야 확보가 어려워져 사고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광운대역 사고와 관련해, 최소한 사고가 났더라도 조기에 이를 발견해 조치할 수 있었을 거라고 오봉역 수송원은 말한다. 사람이 부족하다보니 수송원들은 서로 멀찌감치 떨어진 채 무전 교신에만 의존해 일해야 하고, 사고가 발생하면 이를 알아채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오봉역 수송원은 광운대역 사고 또한 그러했을 것이라며 조심스럽게 추측했다. 그는 “철도공사에서 인건비 절감을 이유로 휴일 대체근무를 허용하지 않아 다른 작업을 하는 조에서 사람을 빼오거나 인원이 모자란 채로 일한다”고도 지적했다.

전기·통신 분야 ‘허위점검’의 변

인력부족 현상은 수송원들만 겪는 문제가 아니다. 전기·통신 분야에서도 인력부족으로 인한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잘 짜인 하나의 체계로 운행되는 철도의 특성상 통신설비가 잘 갖춰져야 한다. 상당수의 노선에 전철화가 진행된 만큼 전기를 동력으로 하는 열차에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일도 중요해졌다. 전기·통신 시설은 평소에 잘 관리되지 않으면 열차 운행에 큰 지장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전기·통신 분야 역시 인력감출의 칼바람을 피해가지는 못 했다.

철도공사 수도권동부본부 산하 사업소의 전철전력 계통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6년 전에는 5인 1조로 근무했지만 지금은 4인 1조, 심지어 3인 1조로 일하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이 사업소의 전기 분야에 종사하는 직원 수는 지난 6년 동안 30% 가량 줄었다. 인력감축은 뚜렷한 근거를 가지고 진행되지 않았다. 전철전력 노동자는 “본사에서 지역본부로, 다시 사업소 단위로 할당량 내려오고, 각 사업소에서는 그에 맞게 사람을 줄인다”고 설명했다. 현장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방식을 ‘나라시’(평탄화)라고 부른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전철전력 노동자는 올해로 입사 10년차이지만 자신이 사업소에서 막내라고 했다. 그는 “선배 직원이 퇴직해도 신입사원이 들어오지 않고, 신규노선이 개통하면 기존에 있던 사람을 재배치한다”고 말했다. 인원이 부족한 탓에 장비 고장 민원을 해결하러 다니느라 분주하다. 그러다보면 주기적으로 해야 하는 시설물 점검은 때를 놓치기 일쑤다. 이 노동자는 “일주일에 한 번 선로를 걸으며 통신시설을 점검해야 하지만 몇 달째 한 번도 못 했다”고 털어놨다.

상황이 이런 탓에 점검을 하지 않았으면서도 했다고 허위보고를 올리는 일도 잦다. 위에서 감사가 나오는 날이면, 초등학생이 미룬 방학숙제 하듯 부랴부랴 밀린 일지를 쓰기도 한다. 그러다 사건·사고라도 나면 현장 작업자들이 가장 먼저 책임을 져야 한다. 역사 내에서 소매치기가 발생해 CCTV 영상을 확인하려고 봤더니 장비 고장으로 4일 전부터 녹화가 안 된 사례도 있었다. 작업 매뉴얼과 규정이 있지만 제대로 지켜질 리는 만무하다.

밀리미터의 디테일, 선로유지보수에는 없다

정규직 인원을 줄이면서 외주화를 시켜버린 곳도 있다. 철도공사 수도권서부본부 산하 안산시설팀은 수도권전철 4호선의 안산선(금정-오이도) 구간과 수인선(오이도-인천) 일부구간의 선로유지보수를 담당하던 부서로 20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었다. 2017년 현재 안산시설팀 직원 수는 14명으로 종전에 비해 6명이 줄었다. 대신 올해부터 외주업체 소속 20명의 인원이 들어왔다.

단순히 놓고 보면 외주화 이전 20명이던 전체 인원은 34명으로 늘어난 셈이지만, 노조는 강하게 반발했다. 외주화 이후 오히려 일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임상혁 전국철도노동조합 수원시설지부장은 “현장 작업자의 수는 줄었는데 오히려 관리자의 수는 더 늘어났다”면서 “(관리자들이)울타리 높이가 얼마인지, 레일 침목이 언제 부설됐는지 사소한 사항들을 물어보는 통에 작업자들이 현장에서 일일이 확인하러 다니느라 점검하러 다닐 시간조차 빠듯하다”고 말했다.

안산시설팀의 일이 늘어난 데는 안산선 선로가 노후화된 탓도 크다. 안산선은 1988년 개통 이후 30년 가까이 하루 백 대가 넘는 열차를 소화했다. 임상혁 지부장은 “주간, 월간 단위로 점검 계획을 세워놔도 기관사들이 ‘차가 푹 빠진다’거나 ‘좌우로 요동친다’고 이야기하면 응급처치하기 바쁘다”고 설명했다. 선로가 불과 몇 mm만 어긋나거나 균열되더라도 탈선 위험이 있기 때문에 곧바로 보수에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안산선 시설유지보수 외주화 이후 문제가 더 심각해졌다는 게 임 지부장의 주장이다.

2017년 1월 1일부터 2018년 12월 31일까지 2년간 안산선 시설유지보수 공사를 맡은 유러너스씨앤아이(주)에 대해 노조는 부적격업체로 지목했다. 지난해 1월 한국철도시설공단이 발주한 사업을 수행하는 과정해서 1억 9,300여 만 원의 임금을 체불해 불공정행위 업체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안산선 시설유지보수 공사를 따낸 후에도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제때 지급하지 않아 노동자들이 노무제공을 거부한 일도 있었다.

철도노조는 해당 업체에 소속된 노동자들이 대부분 60세를 훌쩍 넘긴 고령인 데다 선로유지보수 경력이 없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그나마도 열악한 노동조건 탓에 20명 중 5~6명은 항상 자리가 비어있는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무엇을 위한 경영효율화인가

이처럼 인력부족은 철도현장 전반에서 나타나는 모양새다. 운전 분야의 경우 철도공사는 이미 중앙선과 영동선 구간에 기관사 1인 승무를 시행해 오고 있다. 수도권광역전철 승무원(차장) 또한 최근 휴식시간을 대폭 줄이는 방향으로 근무스케줄이 개정되면서 한 차례 홍역을 겪은 바 있다. 바뀐 근무스케줄은 승무원들이 근무점심 먹을 시간조차 없어 빵으로 끼니를 해결한다는 의미로 ‘빵 다이아’라고 불리기도 했다.

현장 노동자들의 말에 의하면 기술 발전으로 인해 사람 손이 덜 필요하게 된 것도 아닌 듯하다. 앞서 철도공사 수도권동부본부의 전기·통신 분야 노동자는 “기존 장비의 안전성을 강화하는 보조 장비가 새로 들어온 것은 맞다”면서도 “우리에게는 정비해야 할 장비가 더 늘어난 셈”이라고 말했다. 이는 시설 분야도 마찬가지다. 임상혁 지부장은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숟가락, 젓가락으로 밥 먹는 문화는 변하지 않은 것처럼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시설 노동자들은 삽, 빠루(쇠지레), 곡괭이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치를 통해 들여다보면 철도공사의 인력부족 문제는 한 눈에 드러난다. 신규노선 개통과 기존노선의 복선·전철화로 우리나라 철도의 총 연장은 10년 전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 2007년 3,391.6km이던 철도 총 연장은 지난해 3917.8km로 약 15.5% 길어졌다. 이중 전기철도의 길이는 2007년 1,817.8km에서 2,812.1km로 무려 1.68배 길어졌다. 반면 같은 기간 철도공사의 정규직 인원은 3만 1,700여 명에서 2만 6,900여 명으로 약 4,800명이나 줄었다.

한편 지난해 6월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제3차 국가철도망구축계획에 따르면 오는 2025년 철도 총 연장은 5,363.5km에 달할 전망이다. 무려 1,400km 가까이 늘리겠다는 계획인데, 현재 인원으로 제대로 된 철도 운영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아울러 철도공사는 정규직 인원을 줄이면서 부족해진 일손을 외주화로 해결해 왔다. 과거 정부에서 공공기관 인건비를 제한하며 외주화를 유도한 면도 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이어진 사고들은 철도교통 분야 외주화의 위험성을 되새기게 만든다. 적어도 사람이 없어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기록하게 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