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전통의 섬유 노동운동, 정책역량 키운다
역사와 전통의 섬유 노동운동, 정책역량 키운다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7.07.13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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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구조 변화 물결 속에 적응의 길 모색
[인터뷰]오영봉 전국섬유유통노동조합연맹 위원장

지난 6월 15일 전국섬유유통노동조합연맹은 제29대 임원선거를 치렀다. 3년 전과 마찬가지로 두 후보가 경합했다. 하지만 결과는 3년 전과는 달랐다.

지난 1999년 6월 처음 연맹 위원장에 당선된 이후, 다섯번째 임기를 시작하게 된 오영봉 위원장은 고민이 크다.

한국노총은 물론, 노동계를 선도해 나가던 역사와 전통의 조직이 갈수록 그 위상이 약화되고 있다. 이는 섬유산업 자체가 과거에 비해 부침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상급단체로서의 역량을 어떻게 강화해 나갈 것인가에 대해 고민이 클 수밖에 없다.

섬유노조의 역사는 노동운동사에서도 큰 족적을 남기고 있다.

연맹은 1954년 3월 30일에 창립됐다. 창립 당시 조합원은 18,000명. 1979년 당시에는 조합원이 18만 명에 달하는, 한국노총 내 최대 산별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1/10 수준으로, 창립 당시 조합원 규모와 비슷하게 줄어들었다. 또한 매년 사업장의 폐업도 진행되고 있다.

굳이 하나하나 거론하지 않아도 연맹의 60년 역사는 곧 한국의 노동운동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70년대 동일방직, 국제방직의 투쟁, 유신정권의 몰락을 가져온 YH무역노조 조합원들의 신민당사 점거농성까지, 역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써내려갔다. 1980년에는 산별노조가 해산되고 연맹으로 바뀌었다. 80년대에도 대우어패럴노조로 시작된 구로동맹파업 등 연맹의 노동운동은 계속된다.

하지만 섬유산업은 우리 경제의 패러다임 변화로 사양길에 접어든다. 노동집약적인 산업이기 때문에 해외로 공장이 이전되기 시작한다. 산업구조의 변화라는 큰 물결을 연맹이 가로막을 순 없겠지만, 변화에 적응하고 탈바꿈해야 하는 시도는 분명히 필요하다.

산업구조의 변화를 마주한 연맹의 대책은 무엇인가?

상급단체로서 연맹의 역할은 무엇보다도 정책적인 역량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과거 산별노조 시절에는 타 산업이 따라오지 못할 정도의 정책 역량을 갖추고 있었다. 1959년에는 한국노동조합으로서 최초로 1일 8시간 노동시간 보장을 위한 투쟁을 진행해 이를 관철시키고, 단체협약도 체결했다.

1969년에는 ‘최저생계비 이론모형’을 연구 발표했으며, 이는현재 한국노총의 최저생계비 모형의 기초라고 볼 수 있다. 1970년에는 노동계 최초로 ‘기업경영분석’을 연구발표했으며, 섬유노조의 노동운동에 영향을 받아, 지금의 한국경총과 같은 사용자단체의 설립에 자극을 주기도 했다.

섬유산업의 쇠퇴와 함께 이와 같은 역량이 축소된 게 사실이다. 후발주자인 타 산별이 사용자단체와의 파트너십을 공고히 하는 동안, 섬유산업은 사용자단체인 한국섬유산업연합회와의 교류나 관계설정도 전무하다시피 했다.

중앙단위의 노사단체가 섬유패션산업의 발전방향과 노동자들의 고용안정, 처우개선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토론하며, 윈-윈할 수 있는 방향을 찾아나가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고민은 선거 공약에서도 드러나는데, 섬산련과의 교류확대 및 파트너십 강화, 사무처 간부들의 채용 및 역량 강화, 현장과 연맹 간의 소통강화 등의 내용이 그것이다.

섬유산업이 처한 현실에 대해 설명하자면?

섬유패션산업은 대부분 노동집약적인 산업이다. 타 산업도업황에 연동해 고용이나 임금, 근로조건의 등락이 있지만, 섬유패션산업이야말로 밀접하게 업황과 사슬처럼 연결돼 있다. 우선 현실을 보자면, 한국의 섬유패션산업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중간에 위치한다. 고급화 전략에서는 이탈리아나 미국, 일본에 밀리고, 대중화 전략에는 중국이나 베트남, 인도네시아에 밀리고 있다. 대표적으로 봉제, 의류업체들이 그럴텐데, 일부 대기업 중심의 해외전략 섬유업종을 제외하고는 국내 기반시설 업체들은 사업의 다각화에 실패한 경우가 많다.

섬유패션산업의 구조는 원료, 섬유사를 생산하는 업스트림-직물, 염색을 가공하는 미들스트림-의류 및 기타 섬유 완제품의 다운스트림으로 이어진다. 업스트림은 대기업 위주인 편이고, 미들 및 다운스트림은 대부분 중소기업 내지는 영세기업에 해당한다.

연맹의 주요 단위노조 사업장은 면방, 화섬, 모방 등 업스트림에 집중돼 있는데 65.8% 정도나 된다. 문제는 미들스트림에 해당하는 직물, 염색업체들인데, 근로조건이나 사업장 환경이 연맹 내 타 사업장에 비해 열악하다. 사업장이 영세하다보니 구인난도 심각하다. 이주노동자들을 주로 채용하는 사업장도 이들이다. 연맹이 외국인노동자나 FTA에 대해 독자적인 입장을 내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현실을 반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최저임금에 대한 담론도 연맹 내 사업장들의 현실에 대한 고민이 반드시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고민이 개별 사업장 차원에서 결실을 맺긴 어렵다. 상급단체인 연맹이 역량을 집중하고, 또한 사용자단체와 내용을 공유하며 같이 고민해야 할 문제다.

지난 2000년 초선 연맹 위원장 시절에 유통산업까지연맹 구성원으로 가입을 확대해, 대동백화점, 마산백화점, 삼성그룹 최초로 성남 삼성프라자까지 조직화를 확대하였던 것은 산업구조의 변화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고민했던 결과물이었다. 섬유산업과 섬유 노동운동의 역사가 오래된 만큼 적폐도 많다고 느낀다. 특히 상대적으로 형편이 나은 대기업 사업장들의 경우, 미래에 대한 비전 없이 눈 앞의 이익만을 좇는 경우도 있다. 조직 차원에서는 다소 진통도 예상되지만, 이와 같은 점은 반드시 바꿔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