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필관리사의 죽음, 더는 없어야
마필관리사의 죽음, 더는 없어야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7.07.13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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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구잡이 성과주의 내몰리는 현실
[인터뷰]신동원 전국경마장마필관리사노조 위원장

또 한 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마필관리사로 일하던 박경근 씨는 한 달이 넘도록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있다. 안 그래도 마필관리사는 최악의 산재율로 이름난 직업이다. 다치는 것도 힘든데, 고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비록 상급단체는 달리하고 있지만 고인의 아픔을 이해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한국노총 공공연맹 전국경마장마필관리사노조 신동원 위원장은 “근본적인 문제해결 없이 이와 같은 죽음은 계속 발생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개인마주제 시행, 직접고용 논란의 시작

비단 마필관리사만이 아니라, 말 산업 전반은 복잡한 고용구조를 갖고 있다. 이는 지난 1993년 개인마주제가 시행되면서부터라고 볼 수 있다. 당초 제도의 시행 취지와 무관하게 말이다.

마주는 마사회와 출주계약을 맺는다. 또한 마주는 경주마 관리 및 훈련을 위해 개인사업자인 조교사와 마필위탁관리계약을 맺는다. 조교사는 실제 말 관리와 훈련을 위해 마필관리사들과 고용계약을 맺으며, 마사회와 조교사는 다시마사 대부계약을 맺는다.

개인마주제가 시행되기 이전에는 마사회가 마필관리사들을 직접고용했다. 마필관리사들 상당 수는 마사회의 직접고용을 원하고 있다. 하지만 마사회는 마필관리사를 직접 고용할 경우, 파견법에 위배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마필관리사를 직접고용하는 것은 물론, 이들에 대한 사용자성이 인정되는 것에 대해 마사회가 대단히 경계하고 있다는 것은 올해 초 법무법인의 자문을 통해 시행세칙을 개정한 점을 보면 잘 드러난다.

상실과 좌절 낳는 운영체계

전국의 경마장은 서울과 제주, 부산경남 등 세 곳이다. 서울의 경우, 전국경마장마필관리사노조를 중심으로 조합원들의 고용과 처우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고 박경근 씨가 근무하던 부산경남의 경우, 가장 경쟁적인 시스템이 도입돼 있다. 마필관리사들은 개별고용이며, 근로조건을 지키기 위한 단체협약도 없다.

신동원 위원장은 “마사회가 부산경남과 같은 시스템을 제주와 서울에도 확산시키려고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제주의 경우, 노조의 파트너였던 조교사협회가 해산하고, 조교사들이 단협해지를 통보하기도 했다.

마필관리사들의 고용구조가 복잡한 만큼, 임금이나 처우도 꼬여있다. 서울의 경우, 마사회가 마필관리사들의 기본급과 복지를 위한 부가순위상금을 축소하고 경쟁성 상금을 확대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비록 역사가 오래된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대응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다. 노조는 세 곳의 경마장이 고용체계나 운영 시스템을 동일하게 가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마사회는 경주 상금을 통해 경쟁을 붙이면 마필관리사들도 동기가 부여될 것이라고 말하지만, 현실에서는 상실감과 좌절감만을 가져온다. 마필관리사가 사실상 경주 결과를 좌우할 수 있는 권한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단지 경주 결과에 따라 임금이나 처우, 고용이 크게 좌우될 뿐이다. 전문가로서 자신의 일이나 능력을 인정 받을 수 있는 통로 조차 없다. 이런 부조리한 현실은 11년과 17년, 마필관리사의 자살로 폭발했다.

개선 이뤄졌어도, 여전히 다치는 일 비일비재

마필관리사들이 말을 돌보고 훈련시키다보면 다치는 일이 허다하다. “훈장처럼 몸 어딘가에 다쳤던 흔적을 갖고 산다”고 말한다. 말에게 밟히거나 낙마하는 사고는 비일비재하며, 예민해진 말에게 채이기라도 하면 곧바로 중대재해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을 갖고 있다. 마필관리사들의 산재 발생률은 전체 산업의 평균치보다 25배나 높다.

다쳐도 쉬쉬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매년 11월 말 마사회는 마사 대부계약을 위해 평가를 진행하는데, 심사의 요소 중 하나가 산재율이다. 현장에서는 10월과 11월 중에는 다쳐도 산재 신청을 못하게 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한다.

노동조합의 꾸준한 문제제기를 통해 그나마 과거에 비해 개선된 점도 있다. 기본적인 안전장구의 보급을 통해 부상의 위험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었던 것. 헬멧과 안전조끼, 안전화 등이 그것이다. 물론 이것도 현장에서 받아들여지기까지 노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실제로 사고가 생겼을 때 안전장구의 착용이 큰 도움이 된다는 사례를 직접 접하면서 지금은 많이 적응이 된 상태라고 한다.

“아직도 개선의 요소는 많습니다. 이를테면 발끝 부분만 보호되는 지금의 안전화를 발등 전체를 보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처럼 말이죠. 처음에는 조합원들도 귀찮아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