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노동자도 ‘워킹맘·워킹대디’ 할 수 있다!
중소기업 노동자도 ‘워킹맘·워킹대디’ 할 수 있다!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7.07.13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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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단형 직장어린이집, ‘중기 집단복지’ 초석
[리포트]산업단지형 공동직장어린이집

“일자리대통령이 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이 의미하듯 일자리문제는 우리 사회가 꼭 넘어야 할 산이다. 일자리문제와 관련해 단지 실업률을 낮추고 고용률을 끌어올리는 것뿐만이 아니라 일자리의 질 또한 중요하다고 보는 시각이 많아졌다. 중소기업은 ‘사람을 못 구해 걱정’이라지만 구직자의 입장에서 보면 중소기업은 ‘성적 맞춰 들어간 대학’ 같은 느낌이다. 구직자들이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이유 중 하나는 열악한 기업복지다. 

기업규모 따라 복지도 천양지차

한국의 복지 수준이 과거와 달리 크게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국민들이 체감하는 정도는 약하다. 나아진 경제 사정만큼이나 국가가 제공하는 복지에 대한 눈높이 또한 높아졌기 때문이다.

흔히 한국 복지의 특징으로 저소득층 중심, 기업에 맡겨져 있다는 점이 언급된다. 바꿔 말하면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사이의 넓은 영역의 계층은 복지혜택을 받기 어려우며, 기업규모에 따라 누릴 수 있는 혜택이 크게 다르다. 전문가들은 특히 국가가 제공하는 복지의 비중에 비해 기업이 제공하는 복지의 비중이 크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 때문에 대기업에 다니는지, 중소기업에 다니는지에 따라 노동자들이 받을 수 있는 복지혜택 수준도 달라진다. 주요 대기업의 경우 주택자금 지원에서부터 육아 및 학자금 지원, 노후 설계 지원까지 노동자들의 생애주기 전반을 아우르는 복지를 제공하고 있다. 반면 중소기업의 경우 법정 복지인 4대 보험(건강보험·국민연금·고용보험·산재보험) 이외의 혜택을 받지 못할 때가 많다. 그리고 이는 낮은 임금수준과 함께 구직자들이 중소기업 취업을 꺼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중소기업 간 복지 격차는 수치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법정 외 복지 시행률은 항목별로 많게는 46%까지 차이가 있었다. 대기업은 주거·의료·보건·여가·경조사·학자금 등 복지 제공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았지만, 중소기업은 대부분 경조사를 지원하는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우리나라 노동자의 89%가 중소기업에 고용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대다수 노동자들은 기업복지로부터 멀어져 있음을 뜻한다. 이러한 기업복지의 차이는 임금수준과 함께 노동자들이 체감하는 대·중소기업 간 격차를 더 크게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저소득층만을 대상으로 하는 국가 차원의 복지제도에서도 배제돼 있어 이들이 실제 느끼는 부담은 훨씬 커진다. 우리나라 복지제도를 대대적으로 손봐야 한다는 주장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산단형 직장어린이집 주목

노동자들이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복지제도의 분야에는 주거·교육·육아 등이다. 특히 만0세에서 만5세까지 미취학 영유아 자녀를 둔 노동자들에게는 육아가 큰 고민거리다. 맞벌이 부부가 많은 요즘에는 어린 자녀를 맡겨 둘 데가 없어 발을 구르는 사례가 많다. 육아휴직을 다녀오기 어려운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느끼는 부담은 훨씬 커진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려 해도 빈자리를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영유아보육법에 따르면 상시근로자 수 500인 이상이거나 상시여성근로자 수 300인 이상 대기업에는 직장어린이집 설치가 의무화 돼 있다. 사업주가 직접 직장어린이집을 설치·운영하거나 지역 어린이집과 계약을 맺고 위탁보육을 실시해야 한다. 이를 어긴 사업주에게는 소속 지자체장이 이행명령을 내리고, 이에 불응할 때에는 1년에 2회씩, 각 횟수마다 최대 1억 원까지 이행강제금이 부과된다. 고용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직장어린이집 설치의무가 있는 사업장 1,153곳 중 213곳(18.5%)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

직장어린이집 설치 의무를 다하지 않은 기업에 대해 정부가 강하게 제재하고 있으나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직장어린이집 설치 의무가 없다. 절대 다수의 중소기업은 자체적으로 직장어린이집을 설치할 여력이 없는 게 사실이다. 이 때문에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느끼는 육아 부담은 대기업 노동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다.

그런 가운데 ‘산업단지형 공동직장어린이집’(이하 ‘산단형 직장어린이집’)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산단형 직장어린이집은 자체적으로 어린이집을 설치·운영하기 어려운 기업을 위해 산업단지 내 직장어린이집 설치를 국가가 지원해주는 제도다. 법률에 따라 물류단지나 첨단의료복합단지, 산업기술단지 등 산업단지로 분류된 곳 또는 중소기업 밀집 지역이 대상이다.

산단형 직장어린이집 설치를 희망하는 기업 7곳 이상의 사업주가 모여 단체를 구성하고, 근로복지공단을 통해 지원 사업을 신청하면 된다. 국가기관이나 지자체, 사립대학 및 대기업도 부지 또는 건물을 무상 제공하거나 설치·운영비를 지원하는 경우 사업주단체에 참여할 수 있다.

지원 사업 대상으로 선정되면 최대 20억 원의 설치비용과 보육인원에 따라 최대 월 520만 원의 운영비가 지원된다. 급식조리원을 포함한 보육교사 1인당 월 60만 원의 인건비가 지원된다. 설치비와 운영비, 인건비는 고용보험기금 중 사업주가 전액 부담하는 고용안정사업기금이 재원이다.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올해 직장어린이집 설치·운영 지원에 493억 원의 예산이 책정됐다.

 

‘서울디지털직장어린이집’을 가다

국내 첫 산단형 직장어린이집 설치 사례는 2013년 4월 문을 연 충남 천안의 백석산업단지어린이집이다. 이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모두 191곳의 산단형 직장어린이집이 설치됐다. 이 중 중소기업 직장어린이집은 30곳으로 아직까지는 미미한 수준이다. 고용노동부는 중소기업의 직장보육 혜택 확대를 위해 중소기업 직장어린이집을 오는 2020년까지 100곳으로 늘릴 계획이다.

산단형 직장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긴 부모들의 만족도는 높다. 산단형 직장어린이집이 실제로는 어떻게 운영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서울 금천구에 위치한 한 어린이집을 찾았다. 2013년 12월에 개원한 서울디지털직장어린이집(원장 채수연)은 가산디지털단지에서 일하는 중소기업 노동자들을 위해 설치됐다. 보육대상은 만1세부터 만5세까지의 영유아이다.

서울디지털직장어린이집의 원아 수는 93명으로 산단형 직장어린이집 중에서는 가장 많은 수준이다. 담임교사의 수는 11명이며, 가장 연령이 어린 만1세의 경우 원아 5명마다 보육교사 1명꼴로 배치돼 있다.

높은 빌딩이 즐비한 가산디지털단지의 삭막한 분위기와 달리 서울디지털직장어린이집 내부는 다채롭게 꾸며져 있었다. 현관을 들어서면 왼쪽에는 책꽂이가, 오른쪽에는 각 교실로 들어가는 문과 더불어 실내 암벽등반 시설이 보였다. 각 교실에는 해, 구름, 나무 등을 주제로 연령대에 맞는 놀이공간이 별도로 마련돼 있었다. 복층 구조의 놀이공간은 업무용 빌딩의 단조로운 내부공간을 지루하지 않게 만들었다. 채수연 원장은 “아이들의 시선을 최대한 자극하면서 활동성을 키울 수 있도록 내부 설계 단계에서부터 많은 고민이 있었다”고 전했다.

교육프로그램 역시 여느 어린이집 못지않게 잘 마련돼 있었다. 정부 지원을 받아 설치되었다고 해서 교육과정이 부실하다거나 일정한 틀에 얽매여 있다고 생각한다면 지나친 편견이다. 서울디지털직장어린이집에서는 연령을 고려하여 영유아의 흥미와 특성, 계절의 변화, 우리나라의 문화적 배경을 토대로 수업 주제를 선정하고 있다. 특히 미리 계획된 일정을 진행하면서도 일과 중 우연히 일어난 사건과 관련해 교사가 자율적으로 선별적 활동을 가미하는 점이 돋보였다.

서울디지털직장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긴 부모들의 반응은 어떨까. 한 중소기업 노동자 A씨는 아침 7시 30분부터 저녁 7시 30분까지 운영되는 점을 언급하면서 “출퇴근시간에 맞춰져 있어 시간적으로 여유 있게 아이를 맡길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노동자 B씨는 “정부 지원을 받아서인지 운영이 투명하게 공개돼 믿음이 간다”고 귀띔했다. 아울러 독서연계 프로그램, 생태 체험활동, 경제·금융교육 등 교육과정에 대해서도 만족스럽다는 의견이 많았다.

중소기업 집단복지로 격차 완화해야

서울디지털직장어린이집 사례에서 보듯 산단형 직장어린이집은 일정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육아지원이라는 본래의 취지에 잘 부합하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큰 역할이 기대된다. 무엇보다 산단형 직장어린이집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기업복지 격차 완화에 기여했다는 점은 호평은 받을 만하다.

물론 제도가 시행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지금, 보완할 부분도 없지는 않다. 정부기관이나 지자체에서 요구하는 행정서류를 처리하느라 원장과 보육교사에게 업무가 몰리는 점은 분명 개선돼야 한다. 또 설립 초기 어린이집 설치 시행기관과 수혜 대상 중소기업 간 협약을 맺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부 사업주의 무관심은 넘어야 할 산이다. 추후 정부 지원 확대를 통해 보육교사의 처우가 보다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산단형 직장어린이집의 사례처럼 자금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 여러 곳을 하나의 집단으로 묶어 노동자들에게 복지혜택을 제공하는 방식을 ‘중소기업 집단복지’로 정의한다. 비단 보육문제에서만이 아니라 주거·교육·여가·보건 등의 영역으로까지 중소기업 집단복지 개념을 확장할 수도 있다. 더구나 우리나라 노동자 열 명 중 아홉 명이 중소기업에 종사한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중소기업 집단복지로 인해 국민 대다수가 복지혜택의 수혜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