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전문가불신시대, 시민참여가 답?!
정부·전문가불신시대, 시민참여가 답?!
  • 김민경 기자
  • 승인 2017.07.13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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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정보 공개’, ‘숙의’ 전제돼야
[리포트]시민배심원제 만병통치약 아니다

“의미 없을 것”. 환경단체 활동가들의 대답은 단호했다. 에너지정책을 결정하기 위해 지역주민, 시민단체, 환경단체, 전문가, 에너지산업 종사자 등 다양한 사회구성원들이 참여하는 거버넌스(협의체)를 만들자는 제안에 대한 생각을 묻자 돌아온 답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설명이 덧붙었다. 애초부터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없는 상황을 비유한 표현을 사용한 바탕에는 정부와 전문가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었다. 지난 40여 년간 정부는 원전 홍보에, 국책연구기관들은 친원전 연구과제에 집중해왔다는 주장이다. 이 같은 정보의 불균형 속에선 에너지 정책 결정과정에 국민들의 참여를 보장한데도 합리적인 판단을 끌어내기 어렵다는 우려다.

정보 비공개 소통 없는 정부

정부와 전문가에 대한 불신은 이미 한국사회에 팽배하다. 국민들은 미세먼지, 지진 등 환경 관련 정보를 이웃나라 앱을 통해 확인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의 환경영향평가나 오염 정보를 믿지 못한다. 비단 환경단체만이 아니다.

이는 불신의 대상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정보의 비공개와 소통 부족이 주 원인이다. 특히 에너지 정책 중 원전 관련 부분으로 좁혀보면, 그동안 정부는 관련 정보를 통제하고, 계획과 운영 결정을 비공개로 진행해왔다. 국민 다수는 정책을 함께 논의해야할 대상이 아니라 단순히 관리의 대상으로 여긴 것이다.

실제로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전기본)은 여론의 변화와 상관없이 정부의 일관된 핵발전 정책이 담겨 있다. 2013년에 발표된 제6차 전기본엔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국내 여론이 나빠지자 신규원전 건설에 대한 내용을 담지 않았을 뿐, 앞서 결정된 핵발전 신규건설 계획은 수정되지 않았다. 2015년 발표된 제7차 전기본에는 신규원전 2기를 추가로 건설한다는 계획을 담았다. 이전 계획 수립과정과 다름없이 비공개로 수립됐다. 산업부의 보도자료를 보면 ▲수급분과위원회 2회 ▲수요계획실무소위원회 5회 ▲설비계획실무소위원회 6회 등 소수 시민단체 추천 위원이 분과위원회에 일부 참여했을 뿐, 몇 차례의 회의만으로 다양한 사회구성원들의 의견이 반영됐다고 보기 어렵다.

정부는 제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이하 에기본)을 통해 핵발전 비중을 2035년까지 발전 설비용량 중 29%로 한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정부는 5년에 한 번씩 에기본을 통해 에너지정책의 방향을 수립하고 2년에 한 번씩 그에 따른 구체안을 전기본을 통해 구체안을 확정한다.

김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장에서 한국사회의 국민 불신 현실을 냉정하게 평가했다. 그는 “공무원과 소수의 전문가들이 만든 정책의 결과가 사회 곳곳에서 환경문제를 일으키고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며 “국민의 삶과 직결된 환경 정보를 정확하고 투명하게 공개하고, 사회적 갈등이 우려되는 정책 수립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를 핵심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낯선 시민배심원제 핵심은 ‘숙의’

지난 6월 고리원전 1호기 영구정지 기념식에서 탈핵선언을 한 문재인 대통령도 ‘사회적 합의’에 방점을 찍었다. 같은 달 27일 정부는 국무회의에서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일단 중단하고, 10명 이내의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해 3개월 동안 여론 수렴을 거쳐 시민배심원단이 건설여부를 결정하도록 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공론화위원회는 공론화 작업을 디자인하고, 시민배심원단이 최종 판단을 하는 주체라는 설명이다.

즉각 수많은 지적이 뒤따랐다. ‘공론화위원회 구성을 원전 관계자를 제외한 중립적인 인사로 하는 것이 옳은가’, ‘전문성이 결여된 시민배심원단의 결정을 국민들이 수용할 건인가’, ‘이해당사자가 결정과정에서 빠지는 것이 바람직한가’, ‘3개월이라는 기간은 충분한가’ 등이다.

한국사회에서 ‘시민배심원제’는 자체가 낯설다. 원론적인 시민배심원제의 형태는 사안의 이해당사자로부터 무관한 30~40명의 인원을 선발해 관련 자료를 충분히 제공을 하고, 의견을 모으는 것이다.

이강원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 소장은 “정부가 정책을 주도적으로 결정했던 방식에서 시민의 참여를 통한 ‘숙의민주주의’ 방식으로 가자는 것”이라며 “선진적 의사결정 기법”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시민배심원제의 핵심은 ‘숙의(熟議)성’이다. 대충 감을 가지고 결정하는 일반 여론조사와 달리,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아 공부하며 ‘깊이 생각하고 충분히 의논한다’는 것이다.

충분한 숙의 위한 전제 보장돼야

이 소장은 “신고리 5,6호기 중단의 경우, 시민들의 의견뿐만 아니라 이해당사자들의 의견도 중요하기 때문에 투트랙을 가야한다”며 “최종 결정은 시민배심원들이 내리더라도 그 과정에서 이해당자들의 의견수렴이 전제돼야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원전 관계자들과 종사자들은 즉각 ‘말도 안 된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시민들의 의사를 반영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원전 관련된 사안은 전문적이고 복잡해 전문가들이 포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시민배심원단의 결정의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 공론화 방식에 대한 설계의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전통적인 시민배심원제는 규모가 작아 대표성의 문제가 뒤 따른다”며 “정부는 100명 정도로 보다 규모를 키운다는 계획인데, 시민참여 의사결정을 통해 문제를 공론화하는데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필렬 방송통신대학 교수는 “정부나 전문가들이 건설 중단 결정하면 원자력업계가, 건설계속을 결정하면 환경단체가 반발하고 나설 것”이라며 현 상황에서 신고리 5,6호기 문제를 시민배심원단이 결정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어 시민배심원단의 구성과 충분히 숙의할 수 있는 여건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이어 “독일은 지난 30년 동안 건설에 실패한 핵폐기물장을 짓기 위해 10명 이내의 위원회를 만들었다”며 “위원회에 들어갈 시민 3명을 결정하기 위해 7만 명을 대상으로 전화설문조사를 실시해 보통 사람 120명을 선정하고, 5개 분과로 나눠 토론을 시킨 뒤 그 안에서 최종 3명을 뽑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충분한 예산을 투입하고, 숙의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중요한 결정을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도록 보상과 지원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김세영 녹색연합 “독일은 핵폐기물장 건립을 위한 공론화 위원회를 꾸리는데 3년을 준비했다”며 에너지기후팀 활동가는 정부가 못박은 3개월이라는 기간이 짧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이어 “정부가 시민사회단체의 이해관계가 반영되지 않도록 한다는 방침인데, 시민배심원제에 참여하지 않은 시민들도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시민공론화 활동을 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