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반 논쟁 넘어설 ‘탈핵로드맵’ 없다
찬반 논쟁 넘어설 ‘탈핵로드맵’ 없다
  • 김민경 기자
  • 승인 2017.07.13 17:41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새정부 탈원전 정책 가속도
[리포트]탈핵 로드맵

2017년이 2011년보다 뜨겁다. 원자력발전소 가동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 말이다.

2011년은 일본 대지진의 영향으로 후쿠시마 제1원전사고가 발생한 해다. 거대한 쓰나미가 원전을 덮친 당시 일본 현지 모습은 그 어떤 재난영화보다 충격적이었다. 견고했던 한국사회의 원전신화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6년, 다시 탈핵 논쟁에 불이 붙었다. 고리 1호기의 영구정지와 함께 문재인 정부가 탈핵을 선언한 것이 기폭제였다. 찬반 대립을 넘어 원전 중단 이후에 대한 논의가 절실하다. 국내에는 고리 1호기 외에도 설계수명 만료를 앞둔 원전이 적지 않다. 시기의 문제일 뿐 탈핵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지난 6월 19일 0시. 한국 최초의 상업용 원자력발전소 ‘고리 1호기’가 영구정지 됐다. 설계 당시 수명은 2007년 6월로 30년간 운영될 예정이었지만, 2008년 정부가 10년 수명연장(계속운전)을 승인했다.

영구정지가 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설계수명 30년을 넘기면서 노후화된 설비에서 고장이 잦았다. 한국 원전 사고의 대부분이 고리 1호기에서 발생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시민사회단체는 안전성을 고려하지 않은 수명연장을 했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2012년 2월 블랙아웃(Black out) 사태가 결정적이었다. 외부 전원이 차단됐을 때, 작동해야하는 비상디젤발전기가 가동되지 않아 원자로 냉각수와 사용후핵연료 온도가 상승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만약 원전에 전원공급이 더 늦어졌다면,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같은 결과로 이어질 뻔 한 것이다. 2015년 국가에너지위원회는 고리1호기의 영구정지를 권고했고, 한국수력원자력은 이사회에서 계속운전 신청을 하지 않고 예정된 영구정지 수순을 밟았다.

그러나 영구정지 이후가 더 큰 문제다. 고리 1호기 페로에는 앞으로 15년이 더 걸린다. 핵연료 냉각과 원자로 오염제거, 해체 등을 진행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사능에 오염된 원전과 부지 등의 오염을 제거까지 염두에 두면 완전한 폐로는 2045년 경이 돼야할 것으로 보인다.

‘찬반 논쟁’이라는 블랙홀

한국은 원전 폐로 경험이 없다. 앞서 폐로 경험이 있는 다른 나라로부터 기술과 노하우 등을 배워야 하지만 이도 마땅치 않다. 각 나라마다 원전 기술 방식이 다를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폐로 기술의 발전이 세계적으로 시작단계이기 때문이다. 폐로 과정은 녹록치 않다. 원전 운영 중 생성되는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가 대표적이다. 폐로 작업에 나설 노동자와 전문가는 물론, 사회 전반적으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여전히 탈핵 여부를 놓고, 찬반 논쟁에만 집중하고 있다. 원전에 대한 찬반 입장을 밝히는 것은 중요하다. 대화를 이어나갈 시발점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찬반 대립이 정작 절실한 ‘과정’에 대한 논의를 막는 장애물이 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 6월 8일 원자력학계와 시민사회단체는 새 정부의 탈원전 선언에 대해 각각 반박과 지지 성명을 밝혔다. 하지만 당면한 원전 영구 정지 이후 어떤 고민이 필요하고 무엇을 고려해야하는지에 대한 논의로 이어지진 못했다.

국내 원전 중 2029년까지 설계 수명이 끝나는 원전은 고리 1호기를 제외하고도 10기다. 수명연장 취소 소송 중인 월성 1호기가지 포함하면 사실상 11기다. 한국은 폐로라는 ‘가보지 않은 길’에 이미 발을 들여놓고도, 그 길을 갈 것인지 말 것인지 공방만 벌이고 있다.

정부 신고리 5·6호기 중단, 평가 갈려

정부의 탈핵 정책이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27일 국무회의에서 신고리 5·6호기 건설 공사 일시 중단을 계획을 밝혔다. ‘공론화위원회’를 꾸려 3개월간 여론을 수렴한 뒤 시민배심원단이 건설 재개를 결정토록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른 사회적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당장 원전 관련 업체들이 반발했다. 심지어 탈핵을 주장하는 진영 안에서도 평가가 엇갈린다.

신근정 녹색연합 팀장은 정부의 결정을 지지했다. 그는 “신고리 5·6호기 중단의 상징성에 주목해야한다”며 “정부가 한국 사회와 기업들에게 탈핵으로 나아가겠다는 강력한 정책 일관성의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고리 1호기 영구정지는 문재인 대통령의 결정이 아니다”며 “이미 작년에 결정된 사안이며, 문을 닫는 해 당선이 된 문 대통령이 정해진 기념식에 참석한 것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또 “탈핵을 공약한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내 매몰비용을 감당하며 행정 명령으로서 중단할 수 있는 원전은 신고리 5,6호기 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서 건설 중인 원전은 신고리 4·5·6호기와 신한울 1·2호기 총 5기다. 이중 신한울 1·2호기는 공정률이 93.7%이고, 신고리 4호기의 경우 이미 시운전 중이다. 신고리 5·6호기를 제외하면 사실상 중단할 수 있는 원전은 없는 셈이다.

반면 생태주의에너지 전문가로 불리는 이필렬 방송통신대학교 교수의 평가는 달랐다. 그는 “대통령의 건설 중인 원전 중단 공약은 작년 11월 경에 나온 것으로, 이후 한참 건설이 진행됐고 돈도 들어갔다”며 “중단 시 원자력 업계뿐만 아니라 학계 기업체 등 원전산업과 연결돼 있는 사람들 타격이 크다”고 말했다. 타격이 클수록 정부 정책에 대한 반발도 크기 때문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궁극적으로 탈핵을 말하지만, 현재 건설이 계획됐거나 건설 중인 원전은 예정된 대로 운영을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국제, 사회, 경제적인 측면을 고려했을 때 신재생에너지 기반의 사회로 전환해야하지만, 목표 달성을 위해서 장기적인 관점을 가져야 한다”며 “정부는 더 이상 신규 원전은 짓지 않되 국내 원전의 수명이 최종적으로 끝나는 2076년을 탈핵 목표 시점으로 잡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과정에서 전략적으로 정부가 재생가능에너지가 활성화 되도록 노력해, ‘정해진 수명까지 원전을 가동할 필요가 없다’, ‘원전 가동 기간을 줄이자’는 사회적 목소리가 나올 수 있도록 접근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정부, 탈핵로드맵 제시해야

원전 업계 관계자와 종사자, 환경단체, 시민단체, 학계 등의 원전에 가동에 대한 입장은 제각각이다. 친원전과 탈원전으로 나뉘더라도, 그 시기와 방법 등에 따라 또 온도 차이가 난다. 하지만 이들이 공통적으로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 바로 장기적인 탈핵로드맵이다. 정부가 탈핵에 대해 단계별로 명확한 비전을 제시해야하는데 그러지 못해 논란만 키운다는 비판이다.

구체적으로는 ▲원전 중단 대체할 전기생산 방식 ▲에너지 산업 재편 ▲전기 요금 구조 ▲폐로 계획 등에 대한 충분한 논의와 정보 제공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찬반 대립 양상으로 고착화되는 국민들의 에너지 정책에 대한 논의를 보다 폭넓게 이뤄지게 하고, 불필요한 사회 갈등을 줄이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이전 정부의 에너지 관련 정보 제공이 일방적이고 폐쇄적이었다는 문제 제기와 함께 문재인 정부가 이를 개선해야한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이에 대해선 다양한 환경단체와 에너지 산업 노동조합들의 조직인 에너지정책연대의 비판이 거셌다. 에너지 분야의 정보 공유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 에너지 정책 결정과정에서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렸다.

탈원전-재생에너지 뿌리 내린 독일은?

독일의 경우 1980년대부터 협동조합의 형태로 모인 개인들이 태양광발전소와 작은 풍력발전기를 세우기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40년 전의 일이다. 처음에는 크게 주목하지 않던 정부가 관심을 두기 시작한 건 1990년대다. 재생가능에너지 생산을 지원하기 위해 ‘재생에너지 매입에 관한 법(Stromeinspeisungs-gesetz)’을 만들었다. 법의 핵심 내용은 풍력과 태양광, 수력 등의 재생가능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를 반드시 전력회사가 사도록 한 것이다. 원가와 일정 추가 금액을 보장해주는 고정가격구매제를 동시에 시행했다. 정부가 재생에너지 설비를 설치해 관리만 잘하면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후 재생에너지 전기를 생산해 판매하는 규모 있는 산업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독일의 탈원전 정책 기조가 흔들린 적도 있었다. 2009년 독일의 사민당과 녹생당 연정이 기민기사당과 자유당 연정으로 즉, 정권이 바뀌었을 때다. 정권을 잡은 앙겔라 메르켈은 설계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원전 발전회사들에 10년 수명연장을 통해 2030년까지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사민당을 비롯한 에너지전환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반발이 거셌다. 반대 시위가 벌어진 베를린에는 10만 명의 사람들이 모일 정도였다.

상황을 반전시킨 건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였다. 앞서 메르켈의 수명연장에 찬성하던 여론도 등을 돌렸다. 원자력발전소는 절대로 안 된다는 분위기가 확산돼, 자신의 정치적지지 기반이 흔들리자 메르켈도 기존 입장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원전 가동을 일시 중지하고, 원전의 안전성을 점검했다. 이와 함께 윤리위원회를 만들어 원전 가동 여부를 결정하도록 했다. 2022년까지 독일 내 모든 원전 완전 폐쇄 법안이 상원을 통과한 것이 바로 그 해다.

이 대목에서 이 교수는 “재생가능에너지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만이 독일처럼 원자력발전을 없애는 길”이며 “동시에 원전을 가동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재생가능에너지 전기 생산 기반이 갖춰져야 한다. 한국과 단순하게 비교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신근정 녹색연합 팀장도 일반 사람들이 중심이 된 독일의 경우가 특수하다는 점에 동의했다. 그러면서 1986년 러시아에서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독일이 겪은 낙진 피해 경험도 주요했다고 덧붙였다. 역사상 최악의 사고로 분류되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인해 방사성 물질이 상공에 유출돼 유럽전역으로 펴졌다. 당시 독일에서는 기형아 출산을 우려해 많은 산모가 낙태를 감행했다. 낙농업과 축산업도 낙진의 영향을 받아 우유 등의 많은 제품에서 방사능이 검출돼 폐기됐다. 이 같은 원전사고 피해 경험이 독일 국민들이 신재생에너지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활용하는 원동력이 됐다는 설명이다. 그는 “독일 국민들은 자국의 핵발전만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옆 나라인 프랑스, 나아가 유럽 전체의 핵 발전을 없애는데 관심을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한국 사람들은 에너지 정책이 자신의 삶과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가까운 일본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한 적도 있지만, 남의 나라 일로만 여길 뿐 내 문제로 여기는 경우가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