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 ‘비싸게’ 팔아요~
배추 ‘비싸게’ 팔아요~
  • 현예나 기자
  • 승인 2006.1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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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살리기에 팔 걷고 나선 민주노총 경남본부



▲ ⓒ 김창기 기자 ckkim@laborplus.co.kr


김장의 계절이 돌아왔다. 예로부터 우리의 김장철은 마을 잔치이자 동네 아낙들의 모임 구실이었다. 김장을 위해 모인 아낙들은 나무 도마에 무를 올려놓고 수다의 도마에는 온갖 소문을 올려놓았다. 아낙들의 수다를 온 몸으로 받은 그 해의 김치는 짜거나 싱거워도 그 자체로 ‘맛깔’났다.

그러나 요즘의 김장에는 ‘흥’과 ‘맛’ 대신 농부들의 ‘땀’과 ‘눈물’이 가득하다. “이 가격에 배추를 파느니 밭을 갈아엎고 말겠다”는 농부의 말에는 자식같이 애지중지 키운 배추를 그대로 ‘생매장’해버릴 만큼의 한이 서려 있다.
풍작이면 가격이 폭락해 농민만 한숨이 깊어지고, 흉작이면 가격이 폭등해 소비자만 주름이 늘어가는 구조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유통구조가 기형적으로 왜곡되면서 항상 농민과 소비자만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이런 농부들의 아픔을 덜어주고자 민주노총 경남도본부(본부장 이흥석)는 지난 11월 20일부터 ‘우리농촌 살리기 배추사기 운동’을 실시하고 있다.

농민의 아픔, 그냥 볼 수 없어
“배추는 비장을 튼튼하게 하고 위를 강하게 하며 소화불량, 변비, 해열, 종기, 숙취에 좋습니다”라며 배추를 열심히 홍보하는 사람들이 있다. 배추 판매에 관한 홍보 공문을 팩스로 넣으며 우리 농민의 배추를 사자고 호소하는 이들은 농협 직원도 아니요, 농산물 센터 사람도 아닌 민주노총 경남본부 사람들이다. 전국이 총파업으로 떠들썩한 때, 투쟁의 열기가 한창인 경남본부가 ‘뜬금없이’ 배추팔기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의 농민정책은 농민을 살리는 정책이 아니고 ‘살농’ 즉, 농민을 죽이는 정책이라고 얘기하는 농민이 많다”고 말하는 이흥석 본부장은 “농산물 수입개방, 쌀 수입개방, 한칠레 FTA 등으로 인해서 농민들이 지을 농사가 없었는데 배추마저 가격이 폭락하니 살아갈 방도가 없다고 하더라”며 운동의 시작을 설명한다.

전국농민회 부경연맹의 요청으로 시작하게 된 이 운동은 경남본부 산하 노동조합에 공문을 보내 구매 요청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 됐으며 배추 가격은 현재 시세보다 비싼 포기당 1000원의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다.
그러나 “물량에 따라 가격 조절은 가능하다”고 귀띔하는 김성대 사무처장의 모습에서 ‘장사꾼의 노련함’이 묻어난다.

지역민의 고통은 지역본부의 고통
경남본부가 지역민의 고통을 함께 나눈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농민과는 일상적 연대를 통해 한미 FTA 협상 반대 투쟁을 함께하고 있다. 한국 농촌의, 그리고 농업의 존망이 달린 문제이기에 농민들과 노동자가 손을 맞잡고 나서고 있다.

앞으로는 좀더 구체적인 농촌과의 ‘손잡기’에 나설 계획을 세우고 있다. 2007년 단체협상에서는 우리농촌살리기 운동의 일환으로 민주노총 조합원이 있는 구내식당과 학교, 병원, 공공기관에서 쌀과 김치만이라도 우리 쌀과 우리 김치를 사용할 것을 요구할 생각이다. 또 농민들과의 상시 연대를 위해 1노조 1농민회 결연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밖에도 통일마라톤대회를 6회에 걸쳐 진행하면서 6.15공동선언 실현을 위해 지역민과 유대하고 있으며 얼마 전에는 산업 재해를 당했지만 치료비가 없어 고통 받고 있는 이주노동자 장슈아이씨를 위해 도본부 차원에서 치료비를 모금해 전달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소외계층과의 연대·단결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흥석 본부장은 “비정규직 노동자들, 실업노동자들과 함께하는 빈곤추방 실업극복 걷기대회 등 시민사회단체와의 연대사업에 본부가 중심에 서서 지역사회를 밝고 아름답게 그리고 평등한 사회와 자주민주통일이 꽃피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투쟁하고 연대하고 있다”고 전한다.

 ▲ ⓒ 김창기 기자 ckkim@laborplus.co.kr
나눔은 또 다른 나눔이 되어
민주노총 경남본부의 배추사기운동은 또 다른 나눔활동으로 퍼져 가고 있다. 경남본부를 통해 배추를 구입한 노동조합이 그 배추로 어려운 이웃을 돕고 있는 것.
일례로 경남본부를 통해 130포기의 배추를 구입한 동서식품노동조합 창원지회 하진완 지회장은 “고향이 시골이라 농민들 어려운 것은 당연히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도본부가 나서서 우리 농민들을 도와주니 기쁘다”며 “구입한 배추는 보육원이나 어려운 시설에 기증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거제 대우조선노동조합과 진해 STX노동조합, 공무원노조 창원지부와 대공장 노조 등에서 구매를 진행 중에 있으며 운동의 중심인 경남본부 사무처 또한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하나의 나눔이 다른 나눔으로 이어져, 노동조합 모두가 함께 하는 거대한 나눔으로 커져 가고 있는 것이다.

김장철이 되면 비싼 배추 값에 김장하기가 무섭다던 어머니의 한숨이 그립기까지 한 요즘이다. 물량에 대한 정부의 수요공급계획이 없어서, 가격이 싼 중국산 수입김치 때문에, 한 없이 떨어진다는 배추 가격이 농민이 수고한 땀방울의 가치만큼 만이라도 농민들이 손에 전해져 농민들은 농사지을 ‘맛’이 나고 어머니들은 김장할 ‘맛’이 나는 ‘맛깔 난’ 김장철을 기다려본다.
 ▲ ⓒ 김창기 기자 ckkim@laborplus.co.kr

▲ 민주노총 경남본부
이흥석 본부장
“열심히 투쟁하는 것이 진정한 나눔”

활동을 진행하면서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
운동을 시작한 시기가 총파업 기간과 겹쳐 실질적으로 많이 활동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김장이 때가 있는 것이라 운동 시기를 옮길 수도 없어 공문을 보내놓고 들어오는 주문만 처리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래도 다들 호응을 잘 해주셔서 주문이 끊이지 않고 있어서 당초 11월 30일까지로 예정했던 활동 기간을 12월 초까지로 연장할 계획입니다.

지역본부 차원에서 진행 중인 나눔 활동은?
단위 노동조합 차원에서는 취약계층 돕기 사업 등을 상시적으로 진행하고 있지만 도본부 차원에서는 진행 중인 나눔 활동이 아직 없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노동계급이 사회를 개혁하고 선도하기 위해서 모범적인 나눔 활동 등을 힘 있게 벌여나갈 생각입니다.

다양한 나눔 활동을 생각 중에 있는데 우선 제도를 바꾸기 위한 방법이 있습니다. 비정규권리보장입법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사업이 하나의 예시가 될 수 있을 거고요. 그렇지만 진정한 나눔 활동이란 무상의료와 무상교육 등을 통해 사회공공성을 더욱 강화할 수 있도록 더욱 열심히 투쟁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노동이 아름다운 세상,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일상적으로 주변의 소외계층을 돌아보고 나누는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지요.

향후 노동운동이 시민들과 어떤 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노동운동이 지역사회에 대한 개입력을 더욱 높여 지역사회 변화의 중심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장애인, 여성, 이주노동자, 농민 등 소외계층의 이해와 요구를 적극 대변하거나 후원해야 합니다. 또한 시민사회에서 노력하고 있는 환경, 교통, 세금, 복지, 교육, 의료 등 사회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 실천하고 투쟁하는 것에 적극 결합해야 합니다.

또한 시민사회의 요구를 반영하여 무수히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참여하고 있는 한미 FTA 반대운동에 함께하는 것도 노동운동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