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 아닌 눈으로 보는 목소리
귀가 아닌 눈으로 보는 목소리
  • 이동희 기자
  • 승인 2017.07.13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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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몸으로 소통하는 수어통역사
[노동현장 엿보기] 수어통역사 노동현장

곰곰이 생각해보면 수어통역사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존재이다. 이들은 지난 광화문 촛불집회 무대 한 쪽에 서서 국민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이를 손짓과 몸짓을 통해 전달했다. 지난 5·18민주화 운동 기념식에서는 수어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제창하기도 했다.
이번 <노동 현장 엿보기>에서는 조성현 수어통역사와 김철환 수어통역사를 만났다.

두 사람은 수어가 많은 사람들에게는 수화로 알려져 있지만 한국수화언어법 (한국수어법)에서 한국수화언어(한국수어)가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의 고유한 언어임을 밝혔음을 설명하며 이번 기사에서도 수화를 ‘수어’로 명칭 할 것을 당부했다.

수어통역사가 하는 일은?

조성현

농인과 청인의 의사소통에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손짓, 몸짓으로 전달할 뿐만 아니라 얼굴 표정도 함께 움직인다. 또한 말과 함께 상황도 같이 전달한다. 예를 들면 우리는 무슨 소리가 나면 소리가 난 쪽을 쳐다보는데 청각장애인은 들리지 않으니 혼자만 쳐다보지 않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 저쪽에서 무슨 소리가 나서 사람들이 쳐다보고 있다’라는 상황까지 함께 전달하는 것이다.

김철환

일반 통역사와 달리 서비스 측면도 가지고 있다. 언어적인 것, 비언어적인 것을 전달하는데 그치지 않고 복지적인 것까지 포함되어있다. 청각장애인이 정보의 한계로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통역사가 점검하고 연계해주는 역할까지 담당한다.

조성현

보통 수어통역사를 방송에서 많이 볼 텐데 방송은 많은 사람들이 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실제로 방송은 아주 작은 일부분이고 현장에서의 통역이 더 많다.

김철환

전국에 170여 개의 수어통역센터가 있다. 각 센터마다 3~4명, 많으면 5~6명 정도의 수어통역사들이 있다. 그분들은 지역에서 조직적으로 서비스를 하고 있지만 대면 서비스가 주 업무이다 보니 잘 드러나지 않는다.

수어통역사의 노동환경은?

김철환

센터에 소속되어있지 않은 분들은 프리랜서 분들이다. 서울의 경우는 행사도 많고 의무적으로 수어통역사를 배치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어 수어통역사 수요가 많다. 다른 지역은 행사도 많지 않고 수어통역사 배치도 많이 하지 않아 그 지역에 있는 센터 직원들이 그때그때 처리한다. 간혹 복지관에서 수어통역사를 배치하는 경우가 있긴 한데 극히 드물다. 앞서 얘기한 수어통역센터에 소속되어 있는 경우가 제일 많다.

조성현

방송에 나오는 수어통역사들은 프로그램 시간당 계산을 하는데 KBS의 경우는 30분을 기준으로 한다. 표준 계약이나 그런 개념도 전혀 없다. 방송에서 수어 통역을 91년도부터 해왔는데 그때랑 똑같다. 계약이 없으니 지금 고정으로 하고 있는 뉴스 프로그램도 방송사에서 ‘내일부터 다른 통역사가 오게 됐으니 당신은 안와도 됩니다’라고 하면 그걸로 끝이다. 처음부터 계약이 없었으니까.

여기에서 방송사가 외주를 줘서 만드는 프로그램은 더 열악하다. 방송 3사보다 기준단가도 확 떨어지고 외주업체에서 수수료 떼가고 세금도 본인이 내야하고 임금수준도 낮다. 올림픽 개막식 방송을 하다 보면 언어통역사분들하고 일하는 경우가 있는데 같은 통역사여도 통역비가 10배 정도 차이가 나더라.

김철환

요즘 같은 여름에는 햇빛 아래에서 현장 통역을 하게 되면 정말 힘들다. 그런데도 여름이 더 나은 편인 게 겨울에는 손이 얼어서 손이 안 움직일 정도다.

조성현

통역 시간이 한 시간 넘어가면 우리끼리는 노가다, 막노동이라고 부른다. 수어통역사들 사이에서는 한 시간 이상짜리가 걸리면 막노동하러 간다고 말할 정도로 노동강도가 세다.

이번 대선 토론 때는 수어통역사를 한 명밖에 쓰지 않아서 문제가 됐다. 쉬지 않고 3~4시간을 혼자서, 이번 대선은 토론자 5명에, 사회자까지 6명을 통역해야 했으니 정말 힘들었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말하는 경우도 있고 후보자마다 목소리 톤도 다르고 혼자서 열심히 하려고 해도 부족할 수 있다. 통역사가 더 필요하다고 요구했지만 돈과 장비의 문제로 힘들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김철환

수어통역사들에게는 직업병이 있다. 손짓, 몸짓을 해야 하니 손가락 관절, 손목 터널 증후군, 어깨 통증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복지부가 수어통역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손 관련 보험을 개발했으면 한다. 손을 못쓰면 우리는 밥벌이가 없어지니 정부의 지원이 있었으면 한다.

이러한 열악한 노동환경의 원인을 무엇이라고 보는지?

김철환

수어통역사가 노동자성을 인정받기에는 아직 여러 가지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수어통역 자체가 일반사회복지와 똑같이 사적인 문제에서 출발해 공적인 영역으로 넘어왔다. 처음 장애인 문제를 가정에서 가족들이 돌보고 해결하려고 하다가 공적인 영역으로 넘어간 것처럼, 수어통역도 작은 조직들이 통역을 지원해주다가 공적인 영역으로 넘어갔다.

1997년 수어통역센터가 생기고 자리매김했지만 사회적 인식이 아직도 수어통역을 자원봉사 수준으로 생각하고 수어를 영어, 일본어, 중국어처럼 독립적인 언어로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수화언어법에 수어가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의 고유한 언어라고 명시되어 있다. 독립적인 언어로 봐야 한다.

조성현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수어통역은 장애인복지법 최소 기준에 맞춘 통역들이다. 가이드라인만 지키려고 하고 여기서 어떻게 더 나아가고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없고 시혜나 혜택 정도로만 생각한다. 시혜나 혜택을 넘어서 장애인의 권리를 보호하고 수어통역사를 하나의 직업으로, 노동자로 봐야 한다.

김철환

노동3권을 표출하지 못하는 문제도 있고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가 중요하다. 내부의 문제를 표출하고 필요하면 단결해서 단체행동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환경이 잡혀있지 않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조성현

수화통역사가 가지고 있는 사회복지서비스 부분을 분리해 통역만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사회복지관에서 사회복지사이자 수어통역사로 일을 오래 해왔다. 사회복지사로서 사회복지 서비스를 하고 있지만 이 과정에서 필요한 수어통역이 보조 역할로 들어가다 보니까 서비스를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모든 걸 다 해주기를 바라고 떠맡겨 버린다.

수어통역센터 역시 사회복지사들이 있으면서 수어통역사들이 업무를 해야 하는데 수어통역사밖에 없으니 수어통역사들이 사회복지사 업무를 하게 된다. 수어통역센터에서 행사를 하면 외부에 있는 수어통역사에게 의뢰를 한다. 센터에 있는 수어통역사들은 행사 준비를 하고 있어 통역을 못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런 식이면 사회복지업무도 잘 안되고 심도 있는 서비스 제공이 어렵다.

김철환

통역사 자격증 제도를 보완해서 전문성을 공고히 하는 것도 필요하다. 현대는 수어통역사 자격증 하나로 모든 분야 통역이 가능한데 위험한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의료지식이 없는데 의료통역을 한다거나 법률 지식이 없는데 법률통역을 하게 되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의료나 법률 쪽은 사람의 생명하고도 관련이 있으니 좀 더 전문성을 갖춰 신중한 통역이 필요하다. 기본 통역은 그대로 유지하고 영역별로 세분화된 자격증 제도를 추가해야 한다. 동시에 전문영역은 전문영역이 가진 전문성만큼 단가를 높이고 노동자로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한국수화언어법

제1장 제1조(목적)

이 법은 한국수화언어가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의 고유한 언어임을 밝히고, 한국수화언어의 발전 및 보전의 기반을 마련하여 농인과 한국수화언어사용자의 언어권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