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글도 백번 읽으면 뜻을 알게되지요."
"어려운 글도 백번 읽으면 뜻을 알게되지요."
  • 함지윤 기자
  • 승인 2006.1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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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출근과 에너지 절약이 몸에 벤 '에너지 절약 전도사'
'보일러 명장' 정몽석씨

▲ ⓒ 김창기 기자 ckkim@laborplus.co.kr
지난 11월 9일부터 12일까지 4일 동안 열린 ‘2006 대한민국 명장박람회’에서 에너지 절약을 외치고 또 외치는 이가 있었다. 그에게 마련된 조그만 공간은 그가 만든 작품이 아니라 수료증과 상장, 자격증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그는 바로 다소 생소하기도 한 ‘보일러 명장’ 정몽석(63) 씨다.

보일러를 잘 만들기 때문에 보일러 명장이 아니다. 정몽석 명장은 잠깐이라도 보일러 회사에 근무한 적이 없다. 단지 그는 보일러를 ‘잘 알’ 뿐이다. 보일러를 잘 알기에 보일러가 내뿜는 열을 관리할 줄도 안다. 한마디로 그는 ‘에너지 관리 명장’이다.

회사를 내 집처럼 아끼며 38년간 조기출근

5시가 되면 새벽어둠을 뚫고 정몽석 명장은 출근을 한다. 조기출근은 60이 넘은 ‘잠 없는 늙은이’의 변덕이 아니다. 1968년 금호타이어의 전신인 삼양타이어에 입사할 때부터 지금까지 정 명장은 남들보다 일찍 출근했다. 정년퇴직 전까진 회사에서 아침을 먹고 1시간30분에 걸쳐 전 공장을 한바퀴 돌며 불필요한 전등을 끄고 새는 열이 없는지 점검하곤 했다.

그런 그를 어떤 사람들은 ‘윗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그러는 것’이라며 고깝게 보기도 했다. “저도 몸 아프고 그러면 늦게 나오고도 싶죠. 그렇다고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으니까요. 그런데 한번 마음먹은 것을 내 자신이 깰 수 없더라고요.”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자신과의 약속을 깨지 않기 위해 그는 오늘도 이른 새벽 집을 나서고 있다.

주위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은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에너지를 절약해야 한다며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그에게 사람들은 ‘네 돈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러냐’고 오히려 면박을 주거나 화를 냈다. 한번은 동료와 시비가 붙어 안전모에 맞아 코가 찢어지는 상처를 입기도 했다.
“자기 집이라면 함부로 에너지를 낭비하겠어요? 내 것처럼 생각하는 마음만 갖는다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데 남의 것이라고 함부로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실제 정 명장의 에너지 절약 노력은 1백억원 이상의 원가절감과 시너지 효과까지 합하면 1천억원 이상의 절감효과를 냈다. 하지만 그것을 통해 승진이나 보상을 얻고자 한 것은 아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가난 때문에 진학의 꿈도 포기해야 했던 그에게 절약하는데 있어 내 것과 남의 것이 없었을 뿐이다.

이론과 실기 모두 알아야 ‘제대로’ 아는 것
64회에 걸친 수상, 17개 수료증 보유. 정 명장이 정년퇴직 전까지 일궈낸 성과다. 남들은 1개 타기도 힘든 상을 이렇게 많이 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많이 배웠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가난한 어린시절로 인해 겨우 초등학교만을 졸업한 후 중학교 진학을 포기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그는 한때 절에서 만난 고시생이 책표지에 써준 ‘어려운 글도 백번 읽으면 뜻을 알 수 있다’는 말을 평생 되새기며 계속 노력했다. 삼양타이어에 입사했을 땐 ‘보일러 첫걸음’이란 책을 사서 이론 공부를 하고, 잘 이해되지 않은 부분은 고참들에게 물어보며 실기도 쌓았다. 결국 그는 혼자서 보일러 1급 기능사 자격증을 따냈다.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못했다고 무시도 당했었다. 하지만 그는 끊임없는 노력으로 14개의 자격증을 따냈고, 대학을 나온 엔지니어들에게도 거침없이 이론과 실기를 접목시켜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이론만 잘 알아도 안 되고, 실기만 잘 해도 안 돼요. 현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감으로 일을 배우는데 한계가 있죠. 문제점을 찾아내고 제안을 하려면 이론과 실기를 모두 알아야 해요. 그래야만 진정한 전문가가 될 수 있는 거죠.”
‘아이디어 뱅크’라 불리며 수많은 개선 아이디어를 낸 정 명장은 “이론을 알게 되니까 개선아이디어가 나오더라”고 말한다. 그리고 누구나 얼마든지 개선아이디어를 낼 수 있지만 현상파악을 안 하려고 하고 자주 부서를 이동하기 때문에 그러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정 명장은 아이디어를 ‘내 것’이라 주장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 의해 개선 아이디어가 실천에 옮겨질 수만 있다면 그게 더 좋은 일이라는 것.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서슴지 않고 아이디어를 주기도 한다.

▲ ⓒ 김창기 기자 ckkim@laborplus.co.kr
40년 개근의 꿈과 에너지 절약 노력
정몽석 명장은 1999년 30여년을 조기출근했던 금호타이어에서 정년퇴직했다. 그리고 2000년부터는 협력사로 옮겨 여전히 금호타이어와 함께 일하고 있다. 성실함으로 평생을 살아온 그는 아직도 5시면 출근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에너지 절감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이가 60이 넘어 체력은 예전보다 많이 약해졌지만 그는 앞으로도 조기출근을 계속해 40년 개근을 하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

또 자신이 현장에서 일할 때 겪었던 어려움을 생각해 더 많은 분야의 기술용어를 정리해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단다. 이젠 장성한 아들조차도 ‘그런 것 정리해서 뭐하냐고. 아버지만 모르지 다 안다’며 핀잔을 주기도 하지만 그는 단 한사람에게라도 도움이 된다면 좋은 것 아니겠냐고 말한다.

“일하면서 모르는 용어와 마주쳤을 때의 그 막막함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지금도 어디선가 예전의 저처럼 용어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겠어요. 그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은 거죠.”

정몽석 명장을 만나고 오는 길, 정 명장은 마지막까지 에너지 절약을 당부했다. 명장박람회에 참가했던 것도, 인터뷰에 응했던 것도 전 국민들이 조금이나마 에너지 절약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고 한다.
더불어 경영진들에게 “생산·품질·원가가 삼위일체 되지 않으면 회사가 성장할 수 없다”며 에너지 관리의 현재 상태를 파악하고 조금만 관심을 갖는다면 몇천억원의 원가를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지난 40여년 동안 주위 동료들의 말처럼 자신에게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절약을 외치는 그의 모습에서 진정한 장인의 모습이 느껴졌다.

『대한민국 명장의 비밀노트』

내용을 입력해 주세요.*관심과 무관심 사이에 아이디어가 있다
“회사 안에 저보다 고학력자인 사람이 수천명 있었지만 개선아이디어는 나오지 않았어요. 무사안일주의와 무관심 때문이었죠. 주인의식을 갖고 자기일과 주변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면 누구든지 좋은 아이디어를 낼 수 있죠. 제가 수많은 아이디어를 낼 수 있었던 것도 꾸준히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에요. 꾸준히 관심을 갖고 견디는 것이 필요해요.”

*문제를 만나면 3번 이상 자문자답하라
“매번 문제를 만나면 ‘왜? 왜? 왜?’라고 3번 이상 제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기술전문인에게 중요한 것은 자격증이 아니라 첫째는 문제의식을 갖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은 현장에 가서 직접 오감을 통해 문제점을 파악하는 것이죠.”


정몽석 명장이 CEO에게 전하는 ‘에너지 관리 10계명’


1. 월단위 관리 목표를 세워 그래프화하여 사용량을 관리할 것


2. 기상대 예상 온·습도를 매일 입수해 예상온도에 따라 냉난방 실온을 관리할 것 (하절기에는 불쾌지수표에 의해서 냉방기를 가동할 것)


3. 트랩의 비상용 바이패스 밸브를 철거하고 대기로 노출하여 눈에 보이는 관리를 할 것


4. 기기의 효율을 매일 체크할 것


5. 에너지 사용 증감 요인 분석을 레포트화 할 것


6. 설비용량안전율이 5%가 초과되지 않도록 할 것


7. 설비관리자는 의자라는 마음을 가질 것


8. 외부누설은 눈에 보이기 때문에 관리가 가능하지만, 내부누설은 발견이 쉽지 않으므로 점검기기를 보유하고 있을 것


9. 설비 설치 시에는 경제성 검토와 영향도 평가 및 효과분석을 비교 관리할 것 (정성분석보다는 정량분석법으로 관리할 것)


10. 꼭 필요한 부분 외에는 국산화 설치에 노력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