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무효 해프닝 노조선거, 알고보니 은행 개입?
당선무효 해프닝 노조선거, 알고보니 은행 개입?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7.07.24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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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국민은행지부, 은행의 부당노동행위 특별근로감독 요청
▲ 24일 오전 KB국민은행지부는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임원선거에서 은행측의 선거개입이 있었음을 밝히는 녹음파일 등을 공개했다. ⓒ 박종훈 기자 jhpark@laborplus.co.kr

두 번의 선거(?)를 통해 당선되어 지난 4월 취임한 KB국민은행지부 집행부가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이 노동조합 선거에 조직적으로 개입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노조는 은행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특별근로감독 실시를 요구했다.

금융노조 KB국민은행지부(위원장 박홍배)는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본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와 같이 주장하며, 은행측의 선거 개입 증거인 녹음파일 등의 내용을 공개했다.

KB국민은행지부는 지난해 12월 임원선거를 치렀다. 현 위원장인 박홍배 후보의 당선이 확정됐으나, 선거관리위원회가 결과를 번복하고 당선 무효를 결정하기도 했다. 박 위원장 측은 재차 치러진 선거에 출마했으나, 이번에는 후보자 자격을 또 다시 박탈했으며, 선거 하루 전 이를 법원이 뒤집으면서 조합원 58%의 지지를 얻은 박홍배 위원장이 다시 당선되었다.

KB국민은행지부의 새 집행부는 6월 8일 노사관계 적폐청산과 노동조합의 구습타파, 노동조합 주권 조합원 환원을 위해, 집행간부와 외부 변호사 및 노무사, 금융노조 전문위원을 중심으로 KB적폐청산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위원회는 자체조사와 조합원 제보 접수를 통해 그동안 선거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들의 직접적인 원인이 선거관리위원들의 개인 문제가 아니라 노동조합 선거에 대한 은행의 조직적 개입이었음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이날 공개된 녹음 파일에는 이오성 전 경영지원그룹 부행장(현 KB데이터시스템 대표이사)이 전국 부점장 화상회의에서 지점장 등의 노동조합 선거 개입을 직접 지시하는 투의 내용이 담겨 있다. 지부 분회장과 대의원 선거에서 특정 성향의 후보가 당선되어야 한다는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당선무효 이틀 후에는 김철 전 HR본부장(현 부산지역영업그룹 대표)이 낙선자들과 회동을 갖고 당선무효에 따른 차기 선거 일정 등을 논의하며, 비대위 체제 구성 등에 대해 언급하는 내용도 공개됐다. 윤종규 회장은 김 전 본부장이 당선무효 후 비대위 구성이 무산될 경우 무노조 상태로 가게 된다고 보고했더니, 농담으로 '그때 가면 우리 하고 싶은 거 다 해치우자'고 말하기도 했다.

그밖에도 각 지점 단위에서 지점장이 조합원들과 특정 후보에 투표를 독려하는 내용의 대화들도 드러났다. 또한 김진윤 선거관리위원장이 박홍배 위원장과의 전화통화에서 당선무효를 강압하는 은행의 개입으로 인한 어려움을 토로하는 내용도 밝혀졌다.

허권 금융노조 위원장은 “윤종규 회장과 경영진은 KB국민은행 전 직원의 마음을 찢어 놓고, 직장내 민주주의를 파괴한, 국정농단과 매한가지의 범죄를 저질렀다”며 “자율성이 보장된 노조 선거에 은행이 개입하고, 선관위를 겁박하는 등의 행태는 KEB하나은행 경영진과 마찬가지로 적폐청산의 대상”이라며 “즉각 특별근로감독을 시행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연대발언에 나선 사무금융서비스노조 KB국민카드지부 이경 지부장도 “역사와 규모에서 국내 최고 은행을 자부하는 KB국민은행에서 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하는 범죄가 벌어진 점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며 “윤종규 회장의 연임과 실적개선 등으로 연일 용비어천가를 쏟아낼 게 아니라, 노사관계의 회복이 곧 금융의 공공성 회복의 길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KB국민은행지부는 26일 선거과정에서 은행측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특별근로감독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고용노동부 서울남부지청에 접수할 예정이다. 또한 고용노동부의 조사 진행이 미흡할 경우, 전현직 경영진에 대한 고소 및 추가 기자회견 등 투쟁을 계속할 계획이다.

아울러 이번 선거과정을 주도한 노조 선거관리위원회는 최근 회계부정 문제도 드러나 이에 대한 회계감사의 시정조치 및 사법처리 검토까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노동조합의 선거개입 폭로 기자회견 이후, 연임이 기정사실화 되고 있었던 윤종규 회장의 입지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윤 회장은 지난 2014년 11월 취임해, 올해 11월까지가 임기이다.

취임 당시 이른바 ‘KB사태’로 인한 조직 내홍을 추스르고, LIG손보, 현대증권의 인수합병을 진행해 KB금융그룹의 몸집을 키웠다. 2분기에는 9,901억 원의 순이익을 올려 2년 3개월 만에 신한금융지주를 따돌리고 리딩뱅크의 자리를 되찾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노동조합은 이와 같은 성과에 대해 “임기 동안 무리한 실적달성을 위한 과도한 업무추진과 직원들에 대한 실적압박을 통한 상품판매 독촉, 영업비용 감축을 위한 영업점 축소와 인력 감축, 성과연봉제 추진 등을 통해 수익성만 강조하는 쥐어짜기식 경영을 반복해 왔다”고 지적한다.

또한 26일부터 가입대상이 확대되는 개인형퇴직연금(IRP)과 관련해 불완전판매와 실명제 위반 문제 등에도 불구하고 사전예약을 받고 직원별로 실적을 할당하는 등의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발생했다고 밝혔다. 노조는 지난 14일 금융감독원에 IRP에 대한 특별감사를 요구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