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방송 1분 전 ‘블랙리스트’ 보도 강제로 저지
MBC, 방송 1분 전 ‘블랙리스트’ 보도 강제로 저지
  • 고관혁 기자
  • 승인 2017.08.11 14:06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뉴스M 시작 직전 당담부장이 와서 보도 막아
MBC 보도국 기자 81명 ‘제작 거부’ 선언해
▲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는 '김장겸 퇴진 운동'을 전개 중이다. 김장겸 사장은 보도국장, 보도본부장을 거쳐 올해 2월 취임했다. 고관혁 기자 ⓒ ggh@laborplus.co.kr

문화방송(MBC)이 이른바 ‘MBC 블랙리스트’를 다룬 뉴스 보도를 일방적으로 막았다는 논란이 발생했다. 이에 따라 보도국 기자들이 집단 제작 거부를 선언하며 노사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MBC 블랙리스트’는 지난 9일 전국언론노동조합MBC본부에 의해 발표됐다. 블랙리스트는 카메라 기자들의 파업 참여 여부, 회사에 대한 충성도 등으로 기준삼아 작성된 ‘카메라기자 성향분석표‘를 일컫는 말이다. 발표된 문건에는 노조에 영향력 있는 인물, 지난 파업의 주도계층 등 기자들을 4개 등급으로 분류하고 있었다.

사건의 발단은 10일 어제였다. 당초 뉴스M(평일 오후 4시 뉴스)은 엠빅뉴스에서 제작한 블랙리스트 관련 5분짜리 보도를 내보낼 예정이었다. 하지만 방송 송출 직전, 담당부장이 막았다는 것이다.

뉴스 M을 담당하는 윤효정 주간뉴스부 기자는 “방송 시작 약 1분전 해당 보도가 담긴 테이프를 담당부장이 아무 설명 없이 빼앗아 갔다”며 “혹시라도 다시 테이프에 보도를 녹화해 송출할까봐 방송시간 내내 담당부장과 부국장급인 센터장이 그 자리에서 감시했다”고 전했다.

이날 뉴스M은 블랙리스트 보도가 잘려 본래 편성보다 약 5분 일찍 종료했다. 평상시라면 위중한 방송 사고에 속한다. 윤 기자는 “사측입맛에 맞지 않는 제작물을 내보낸다고 해서 시청자와의 약속을 어긴 것”이라며 “MBC 개국 이래 송출 직전 보도가 담긴 테이프를 빼앗아가고 옆에서 감시하는 행위는 없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이렇게 어떠한 제작물을 만들어도 사측이 마음대로 뺄 수 있다면 제작할 이유가 없다”며 사측의 행태를 비판했다.

▲ MBC 보도국 기자 81명이 11일 MBC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작 거부를 선언했다. 이는 전체 보도국 기자 절반에 해당하는 숫자이다. ⓒ 고관혁 기자 ggh@laborplus.co.kr

결국 오늘 MBC 보도국 취재기자 81명은 MBC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작거부를 선언했다. 시사제작국 기자·PD, 콘텐츠제작국 PD, 영상기자회 소속 카메라기자들에 이어 4번째 제작거부 선언이다.

이들은 “경제부 기자들에겐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무조건 비판하라는 ‘청부 제작’을 강요했다”며 사측의 지속적인 언론 자유 침해 행위를 비판했다. 또한 “지난 9년간 MBC의 저널리즘은 처참하게 부서지고 망가졌다”며 “사실에는 눈을 감았고, 진실에는 입을 닫았다”고 주장했다.

왕종명 MBC기자협회장은 “보도국이 김장겸(현 MBC 사장) 체제에 장악돼 있고 그 안에 81명의 양심 있는 기자들이 노력하고 있다는 의미”라며 “회사 내 제작거부 움직임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지만 (사측은) 우리 요구에 귀 기울일 생각은 하지 않는다”며 사측의 반성을 촉구했다.

왕 협회장의 말대로 MBC 경영진은 협의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계속된 구성원들의 제작 거부사태에 MBC는  대체인력 채용으로 대응했다. 지난 10일 MBC는 공고를 올려 언론사 경력 3년 이상 경력을 가진 취재기자를 뽑기 시작했다. 이에 왕 협회장은 “김장겸 체제 뉴스에 동참하는 보도국 기자와 채용공고에 관심을 보이는 분들, 회사원이 되지 맙시다”라며 진정한 언론인의 자세를 호소했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가 회사 로비에서 피켓팅을 하고 있다. 계속된 제작 거부 사태에 MBC 경영진은 대체인력 채용으로 맞불을 놓고 있다. 이에 MBC 노사갈등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 고관혁 기자 ggh@laborplus.co.kr

일각에서는 MBC노조가 총파업을 실시할 것이라는 예상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과거 2012년에도 MBC 노조는 극심한 노사갈등 끝에 170일 동안 전면 파업을 실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