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준공영제 도입 필요성 높지만
버스준공영제 도입 필요성 높지만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7.08.14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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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12월 7개 시·군만… 교착 상태
[리포트]버스준공영제 도입 확산

버스준공영제를 시행 중인 도시는 6곳. 울산을 제외한 모든 특별시·광역시가 버스준공영제를 실시하고 있다. 버스준공영제는 시내버스 운영을 지자체가 맡고, 각 버스회사는 운행과 차량관리 등을 맡는 형태다. 대중교통의 안전성과 편의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올빼미나 다름없는 운전기사들

#1. 7월 9일 경부고속도로 부산방향 양재나들목 부근에서 오산교통 소속 M5332번 광역급행버스가 앞서가던 승용차를 덮쳤다. 이 사고로 주말 나들이를 가던 50대 부부가 즉사하고,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원인은 운전기사의 졸음운전으로 밝혀졌으며, 미처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앞 차를 향해 돌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2. 7월 25일 전남 화순에서는 신호대기 중이던 시내버스 운전기사가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행인이 현장을 목격하고 119구급대에 신고했지만 해당 운전기사는 끝내 숨졌다. 이 버스에는 승객 10여 명이 타고 있었으나 정차 중인 데다 주차브레이크가 채워져 있어 큰 사고로 번지지는 않았다.

최근 일어난 두 사건으로 인해 시내버스 안전이 또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경부고속도로에서 발생한 광역급행버스 사고는 해당 버스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으로까지 번졌다. 운전기사가 졸음운전을 하게 된 경위와 관련해 하루 16시간 30분 동안 운행에 투입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 운전기사는 사고 전날 밤 11시 30분경 운행을 마친 후 자정 무렵에 퇴근해 사고 당일 아침 6시 30분에 다시 출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광역급행버스 사고를 놓고 예견된 인재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출퇴근에 걸린 시간을 고려하면 사고를 낸 운전기사의 실제 수면시간은 5시간 남짓이다. 국토교통부는 올해 2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을 개정해 버스기사의 1일 연속 휴식시간을 8시간으로 의무화 했다. 마지막 운행과 다음 날 첫 운행 사이에 8시간 이상의 휴식을 보장해야 한다는 뜻이다. 여객자동차법 위반이 이번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인 셈이다.

버스운수업은 노동시간이 길기로 악명 높다.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이하 ‘자동차노련’)이 진행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경기도 시내·광역버스의 1일 운전시간은 최대 21시간에 달했다. 1일 2교대제가 정착된 서울 시내버스는 1일 운전시간이 8~10시간 수준으로 그나마 사정이 나았다. 과거 경기도의 한 버스업체에서는 운전기사 한 명이 5일 연속으로 17시간 넘게 운전대를 잡은 사례도 있었다.

긴 노동시간도 문제이지만 근무형태가 기형적인 측면도 있다. 여객자동차법 상 1일 연속 휴식시간이 최소 8시간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격일제 또는 복격일제 근무가 만연해 있다. 격일제는 1일 근무 후 1일 휴무를 반복하는 형태이고, 복격일제는 2일 근무 후 1일 휴무를 반복하는 근무형태다. 이처럼 기형적인 근무형태 속에서는 운전기사들이 충분한 휴식을 보장받기 어려운 게 당연하다.

휴식시간이 부족할수록 사고 위험성은 높아진다.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속도가 느려지고, 도로에서의 돌발 상황에 대처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경부고속도로 사고 당시 운전기사는 아예 졸고 있었다. 유사시 운전기사의 역할은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는 것이지만 본인의 안전은 물론이고 도로를 달리는 다른 차량 탑승자들의 생명마저 위협한 것이다.

경부고속도로 사고 이후 해당 운전기사는 결국 구속됐다. 운전기사를 향한 시선은 비난이 아닌 동정이었다. 남루한 옷차림과 푹 숙인 고개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여론의 따가운 눈초리는 수익을 좇아 적게 자고, 많이 일하게 시킨 버스업체 대표를 향했다.

버스운수업 민간에만 맡겨둘 수 없어

여객자동차법에 따르면 소관 부처인 국토교통부와 각 지방자치단체는 버스업체들의 운영 실태를 관리·감독해야 한다. 하지만 준공영제를 실시하는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버스업체들에 대한 정부·지자체의 감시는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근무형태, 차량관리, 운송수입 관리 등 노선과 배차횟수를 제외한 사항들은 민간업체 자율에 맡겨진 상태다. 결국 버스운수업에 대한 정부·지자체의 감독이 강화될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 같은 이유로 많은 지자체에서 버스준공영제를 도입했거나, 도입을 논의하고 있다. 시내버스 운영에 대한 지자체의 권한을 확대함으로써 안전성과 편의성을 증진하겠다는 의도다. 실제 준공영제 시행 지역에서 시내버스 교통사고 건수는 2003년 4,786건에서 2014년 3,126건으로 34.3% 감소했다. 반면 준공영제를 시행하지 않은 지역에서는 같은 기간 시내버스 교통사고 건수가 3,314건에서 3,289건으로 20.2% 감소하는 데 그쳤다.

더 큰 폭의 사고율 감소 외에도 버스준공영제는 민영제에 비해 몇 가지 이점을 갖는다.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운송수입을 관할 지자체에서 관리한다는 점이다. 민영제는 버스업체들이 운송수입을 개별적으로 결산해 운영손실을 지자체에 보전 받는 방식이다. 반면 준공영제는 지자체가 운송수입을 일괄적으로 걷은 다음 버스 1대당 표준운송원가를 산정해 이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재정적인 부분에서 준공영제가 민영제에 비해 투명하다.

서울시는 지난 2004년 준공영제를 도입하면서 시내버스 운송체계를 대폭 손질했다. 노사정이 함께 준공영제 시행 방안에 관해 수시로 논의를 거치면서 버스운수업 종사자들의 근무여건을 향상시키고, 시민들의 편의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엇보다 1일 9시간 2교대제 근무형태 정착으로 타 지역에 비해 긴 휴식시간을 보장하면서 안전성을 높였다. 서울시가 실시한 만족도 조사에서 안전성 분야 점수(100점 만점)는 2015년 78.86점에서 2016년 80.62점으로 80점대에 진입했다.

경기도 버스준공영제 도입 놓고 ‘잡음’

이처럼 준공영제가 갖는 이점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수도권에서는 유일하게 버스준공영제를 실시하지 않고 있던 경기도가 최근 제도 도입에 착수했다.

경기도는 서울로의 출퇴근 수요 등 유동인구가 많으면서도 운전기사들의 근무환경이 열악한 지역이다. 준공영제를 시행하지 않는 지역 중에서도 경기도는 2003년 대비 2014년 시내버스 교통사고 건수가 8.9% 증가했다. 이에 대해 자동차노련은 “격일제·복격일제 근무형태와 과도한 근로일수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경기도 버스준공영제 도입은 지난 2014년 지방선거에서 남경필 도지사의 공약이었다. 남경필 지사는 7월 19일 도내 31개 시장·군수가 모인 자리에서 버스준공영제 추진을 공식 발표했다. 경기도는 오는 12월부터 직행좌석버스 일부 노선을 준공영제로 운영할 계획이다. 남경필 지사는 “최근 광역버스 사고를 보고 도민들의 불안감이 커졌다”면서 “(버스준공영제는)도민 안전을 위해 반드시 가야 하는 길”이라고 밝혔다.

막상 경기도의 계획은 점점 꼬이고 있다. 당초 김포·파주·포천 등 12개 시·군의 33개 노선이 준공영제 대상으로 선정됐지만, 도와 각 시·군 간 재정분담률을 놓고 엇박자가 나고 있다. 경기도는 도와 시·군이 절반씩 비용을 부담하는 것으로 발표했으나, 기초단체들은 도가 더 많이 부담하라는 입장이다. 광역단체와 기초단체 간 소통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파열음을 낸 끝에 7개 시·군만이 준공영제 실시 대상으로 남아있다.

이 때문에 경기도 버스준공영제 도입은 졸속 추진 논란을 낳고 있다. 현재까지 준공영제를 실시키로 한 지자체는 가평·김포·시흥·안산·안양·파주·포천 등에 불과하다. 인구가 100만 명 규모인 고양·성남·수원 등 대형 기초단체가 모두 빠져있어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경기도가 추진하는 방안을 온전한 버스준공영제로 보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인구 절반 수도권에, 준공영제 확산 계기돼야

한편 경기지역자동차노조·경기도중부지역버스노조·경기도지역버스노조 등 경기지역 3개 버스노동조합은 준공영제의 전면 시행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경기도의 행정을 비판하면서 “대중교통 활성화와 공공성 강화라는 목표는 사라진 채 예산을 높고 지자체 간 책임만 떠넘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준공영제 도입이 차질을 빚으면서 시민의 안전이 위협받고, 서비스와 운행실태는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 3개 버스노조가 도내 버스운수업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달 간 벌인 서명운동에는 1만 2,000여 명이 참여했다.

경기지역 3개 버스노조는 서명운동 대상을 도민 전체로 확대할 예정이다. 이들은 버스준공영제 전면시행을 위해 대대적인 압박에 나서기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공영제 전면시행까지는 숱한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현재 경기도 내 시내버스업체 수는 70여 곳이 넘는데, 이들과 협정서를 맺어야 한다. 또 31개에 달하는 시·군과도 협의를 마쳐야 한다. 졸속 추진 논란을 불러일으킨 원인이었던 재정분담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다.

아울러 경기도에는 1,250만 명이 거주하고 있어 서울(1,000만)과 인천(300만)을 합치면 수도권에 우리나라 인구 절반이 살고 있는 셈이 된다. 경기도 버스준공영제 도입으로 타 지역으로까지 준공영제가 확산될 여지가 생길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금부터라도 논의체계를 갖추고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릴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