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도생의 시대, 노동조합이 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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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7.08.14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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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중에서의 1년 6개월, 그를 만나다
[인터뷰]배태선 민주노총 전 조직실장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혐의로 지난해 1월 구속된 배태선 민주노총 전 조직실장이 1년 6개월 간 수감생활을 마치고 7월 12일 출소했다. 배 전 조직실장은 이른 새벽부터 춘천교도소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민주노총 간부들을 향해 밝게 웃었다.

2015년 11월 14일 서울시청 일대에 모인 13만여 명의 노동자와 농민은 ‘민중총궐기’ 대회를 마치고 광화문광장을 향해 행진을 시작했다. 그러나 몇 걸음 못 가 차벽과 물대포에 막혔다. 참가자들은 경찰버스에 밧줄을 매달아 끌어냈고, 경찰은 물대포 직사로 응수했다. 이른바 ‘폭력시위’와 ‘무리한 진압’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올해 5월 31일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과 배 전 조직실장은 대법원에서 각각 징역 3년과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지 일주일이 지난 무렵 배태선 전 조직실장을 만났다. 배 전 조직실장은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왔을 때 오히려 “홀가분했다”고 말했다. 자유의 몸이 된 그는 조직실장을 맡기 전까지 있던 경북 구미로 돌아가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하는 활동에 전념하겠다고 밝혔다.

출소 후 일주일 동안 어떻게 지냈나?

조합원들과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구미)현장으로 가서 조합원들을 만났다. 계속 사람들을 만나고 인사도 드렸는데, 거의 매일 술을 마신 것 같다.

1년 6개월간의 수감생활이 끝났다. 감회가 어떤지?

(박근혜)정권에 맞서서 정말 잘 싸워야 한다는 각오가 큰 상태로 들어갔다. 중간에 백남기 농민 돌아가셨을 때에는 가슴이 철렁했다. 도저히 감정을 누를 수 없어서 며칠 단식을 했다. 교도소 안에서 할 수 있는 게 너무 없다는 답답함이 있었는데 백남기투쟁본부를 만들고 잘 싸워서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고 나서는 오히려 홀가분했다. 가장 큰 걱정거리는 한상균 위원장이었다. 함께 나오지 못하고 위원장이 계속 남아있는 데 대한 불편함이 있었다. 항소심 재판을 하면서 1년 만에 위원장을 처음 만났다. 둘이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손을 맞대고 눈빛을 봤는데 잊을 수 없다. 한상균 위원장이 변호사를 통해서 ‘춘천 데리고 가고 싶지 않았다. 열심히 공부해서 노동조합 조직률 30%를 위해 최선을 다하자’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나올 때만큼은 같이 손잡고 나오자’고 답했다. 한상균 위원장은 역사적 책임감, 소명의식이 남다른 사람이다. 위원장 형기와 내 형기를 합쳐서 반 나눌 수 있다면 기꺼이 더 살겠다는 말도 했는데, 함께 나오지 못한 답답함은 지금도 있다.

그동안 교도소 바깥에서는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1,600만 개의 촛불이 켜졌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된 후 구속됐다.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나?

최순실 태블릿 PC 보도가 나온 게 10월 24일로 기억한다. 이후 박근혜의 기자회견이 ‘대통령은 내가 아니라 최순실이다’라고 하는 뜻으로 들렸다. 무지 열받았다. 박근혜 물러가라고 4시간 동안 구호 외치다 들어갔는데 ‘최순실 물러가라’고 했어야 하느냐고. 교도관한테 내가 사기 당한 거 아니냐고 묻기까지 했다.

촛불이 타오르고 나서 박근혜가 구속될 거라 확신할 수 있었다. 교도관한테 내 방 비울 테니 이 방에 박근혜를 넣으라고 했는데, 나중에 최순실이 같은 층에 들어왔다. 1상18방(1동 상층 18번째 방)에 내가 있고, 최순실이 1상12방(1동 상층 12번째 방)에 들어왔다. 최순실 구속 뒤에 교도관이 부르더니 ‘혹시 운동장에서 만나더라도 머리끄덩이 잡지 말라’고 해서 엄청 웃었다. 교도소 분위기도 바깥과 크게 안 달랐던 것 같다.

교도소에서는 주말 저녁에 뉴스를 보여주는데 촛불집회 소식이 기다려져서 전날 밤부터 잠도 잘 못 잤다. 박근혜 정권의 민생파탄에 대한 광범위한 분노가 있는 상황에서 쉽게 촛불이 꺼지지는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옥중에서 보통 책을 많이 읽는다고 들었는데, 혹시 기억에 남는 책이 있다면?

박이대승이라는 분이 쓴 <개념 없는 사회를 위한 강의>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 책은 한국이 ‘개념’이 있는 사회냐를 내용으로 다루고 있다. 예를 들어 ‘청년’이라는 단어는 입장에 따라 따르게 활용되는 정치언어라는 거다. 젊은 사람을 일컬을 수도 있고, 사회의 약자라는 뜻을 담기도 한다. 1심 모두진술에서 ‘나는 이 자리에서 당신들이 사용하는 인권, 자유,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내가 쓰는 단어와 의미가 같은지 모르겠다’고 얘기했는데, 이 말이 결국 ‘개념’을 의미한다는 걸 느꼈다.

문재인 정부의 ‘노동이 존중 받는 사회’에 대해 ‘의심스럽다’고 평가했다. 노동존중사회란 어떤 것인가?

문재인 정부가 내건 노동존중은 장사 안 되는 식당이 간판만 갈아 끼운 정도다. 의미를 잘 모르겠다.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다는데 무기계약직이 빠진다고 하면, 이 사람들은 정규직이 아니다. 노동존중의 핵심은 노동조합을 할 권리가 완전하게 보장되는 거다. 누구는 노조 하면 되고, 누구는 안 되는 것부터 누구는 교섭이 되고 또 누구는 교섭창구 단일화 때문에 안 되고, 이런 사회에서 노동존중의 핵심은 ‘노조 할 권리’다.

결국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이 보장돼야 한다. 사회적 대화, 노사정 교섭이 가능한 사회는 노동자들이 자기 삶의 주체로 설 때 가능하다. 한국사회에서 바람직한 사회적 대화, 노사정 교섭은 불가능하다. 그러면 문재인 정권이 할 일은 최소한 노조파괴에 대한 전면적인 재수사여야 한다. 2010년에 기획 노조파괴를 일삼았던 사람들은 처벌 받지 않고 있다. 이것 없이는 노동존중사회란 불가능한 얘기다.

세계적으로도 노동조합 조직률이 떨어지고 있고, 특히 ‘각자도생’이 시대정신이라고들 한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로서 의식을 갖는다는 건 어려운 듯하다. 여기에 대한 고민은 없나?

가장 큰 고민거리다. 노동조합 조직률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소위 시장만능주의 국면에서 노동자들은 언제든 잘릴 수 있다. 1998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이후로 노동조합도 자신을 못 지켜준다고 생각하게 됐다. 각자가 살 길을 찾는다. 대표적으로 정리해고가 없어져야 한다.

구미의 KEC에서 두 번의 정리해고 시도가 있었다. 사측에서 상여금 삭감하고 무급휴직하자고 했는데 실제 문건으로 보니까 재원을 마련해서 관리자 임금을 인상하려고 했었다. 두 번째 정리해고 시도가 있을 때에는 100억이 또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가 싸워서 얻은 결과가 뭐였냐면 임금인상이었다. 비정규직을 늘리고 인건비를 줄이고 싶어서 회계법인을 동원해 사기를 친 거다.

그리고 한국사회에 비정규직이 엄청 많다. 이들을 조직화하기 위해서는 물리적 공간이 가장 필요하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힘들고 어려울 때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상담센터든 쉼터든 그런 곳이 있어야 한다. 조직되지 않은 사람은 삶의 주인이 되기 힘들다. 특히 약자는 서로 손을 잡아야 할 수 있다. 이것이 훈련돼야 하고, 여기에 민주노총이 역할을 다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나서 그간 박근혜 정부에 돌아가던 여론의 화살이 노동조합으로 향한다는 느낌도 받는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보고 있나?

6.30 사회적 총파업 때 민주노총에 항의전화가 엄청 왔다고 들었다. 2015년에는 최저임금 1만 원에 대한 응원전화가 엄청 왔었는데, 정권이 바뀌니까 반작용이 생긴 것 같다. 노무현 정권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데, 민주노총과 사이가 틀어지면서 노무현 정권이 실패했다는 평가다. 이 점에 관해서는 성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광기는 민주주의와 상관없다. 현 정권을 지지하는 것도 좋은데 이성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 문재인 정권의 역할과 민주노총의 역할은 다르다. 민주노총은 정부에 요구를 하는 것이고, 민주노총이 대중조직으로서 자기 역할을 하면 된다.

앞으로 민주노총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되나?

노동자를 조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그러려면 현장으로 가야 한다. 내가 있던 구미지역 사업장들은 죄다 삼성, LG의 하청업체들이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말도 못하게 많다. 87년 노동자대투쟁 때는 이미 현장에 씨앗이 있었다. 대중은 불만만 있다고 해서 튀어나오지 않는다. 불만을 요구로 만들어낼 때 투쟁으로 나오게 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은가. 대중의 불만을 노동조합의 틀로 담아내는 활동이 필요하다. 아마 민주노총 구미지부에서 활동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