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법’ 이대로 안 된다
‘강사법’ 이대로 안 된다
  • 김민경 기자
  • 승인 2017.08.14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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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입법 발의 후 3차례 유예… 내년 1월 시행예정
[리포트]누구를 위한 강사법인가

국회의원만 법안을 발의하는 것이 아니다. 정부도 법안을 발의한다. 정부가 강한 의지를 가지고 만든 입법안은 정부 정책이나 진배없다. 시간강사의 신분보장과 처우개선을 위해 정부가 나섰다. 일명 강사법으로 불리는 ‘고등교육법 일부 개정법률안’이다. 지난 5년간 3번의 유예를 거쳐 오는 1월 1일 시행이 예정됐다. 그러나 최근까지도 논란이 잦아들지 않는다. 다행스러운 건 아직 국회 의결 과정이 남아 있다는 점이다.

“나는 당신의 노예가 아닙니다”

2010년 서정민 조선대학교 시간강사(이하 강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열악한 처우와 임용비리를 유서에 남겼다. ‘노예’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교수와 제자 = 종속관계 = 교수 = 개'의 관계를 세상에 알려달라는 말도 있었다. 지도교수를 향해 쓴 대목이었다. 서 강사는 지도 교수 아래에서 석·박사 학위를 따고, 죽기 전까지 10년 동안 대학에서 강의를 했다. 그 기간 동안 서 강사가 대필한 지도교수논문은 54편이다. 1년에 5.4편씩 쓴 셈이다. 서 강사는 영문학과에서 음운론을 전공했다.

서 강사의 죽음은 ‘교원’이 아닌 무자격 신분인 강사가 대학사회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갑질’에 시달리는 현실을 보여줬다. 현실은 ‘교수’로 임용되는 순간 바뀐다.

교수임용은 공개적인 시험을 통해 공무원이 되는 과정과 다르다.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한다. 그 중에서도 지도교수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다음 학기의 강의 확보와, 박사학위 획득에 권한을 행사한다. 지도교수의 말로 학계에서 강사의 평판이 결정된다. 정해진 절차를 거쳐 고용보장을 받으며 조교수에서 부교수, 다시 교수로 승급되는 정규직 전임교수와 달리 강사들은 불안정한 신분과 고용형태로 인해 착취의 대상이 된 실정이다.

차별적이고 낮은 강의료도 문제다. 전임교수가 되고자했던 서 강사가 조선대 영어영문학과에서 1학년 교양필수영어 강의를 하고 받은 시급은 3만 3천 원이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한국 사립대 강사 시급은 3~5만 원 수준이다. 강의를 하는 시간과는 별도로 강의를 준비하는데 배의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턱없이 낮은 금액이다. 심지어 매번 일정한 강의를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다. 강사 중에 추가로 일을 하며 생활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이유다. 학원 강의와 과외, 번역은 물론, 패스트푸드점과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는 경우도 많다. 상대적으로 국립대 강사의 시급은 8~9만 원으로 그나마 나은 편이다.

죽음으로 위험신호 보낸 시간강사들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강사들은 장시간 근무와 낮은 임금, 전임교수의 갑질 등에 시달리며 스스로 죽음을 택해 끊임없이 위험신호를 보내왔다. 2010년 서 강사의 죽음은 사회적으로 반향이 컸다. 그에 앞선 2008년에는 한경선 건국대 강사가, 2003년에는 백준희 서울대 강사가 자살했다.

2010년 대통령직속 사회통합위원회에서 ‘시간강사 교원지위 인정 등 제도개선안’을 발표했고, 강사법이 만들어졌다. 2011년 12월 국회를 통과한 강사법은 고등교육법 제14조2항을 수정해 교원의 범주에 ‘강사’를 포함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와 함께 담긴 주요 내용은 ▲강사 임용계약 시 학칙이나 정관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1년 이상의 기간을 정해 계약을 맺는다(고용안정성) ▲전임교원과 동일한 신규채용절차와 대학인사위원회의 등 전임교원 임용에 관한 사항을 준용한다(강사 임용의 공정성) ▲임용계약 위반과 형의 선고 등을 제외하고는 계약기간 중 의사에 반한 면직을 제한하며 불체포 특권을 보장한다(강사의 신분보장 범위 확대) 등이다.

대학과 강사 모두 반발

대학 측은 ‘법을 시행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강사법을 반대했다. 강사를 선발할 때 인사위원회를 꾸려야 하는 등 행정적 부담이 크고, 4대 보험과 퇴직금 등의 재정적 부담이 증가한다는 이유였다. 1년 이상 계약, 임용과 재임용 절차를 따르게 되면 고용이 경직돼 문제라는 지적도 했다. 대학 구조조정으로 입학 정원이 바뀌고 학과 간 정원 조정 등을 하는 불확실성이 커 고정적으로 강사를 교원으로 두기 어렵다는 논리다.

법이 시행되어도 정부의 예산 지원이 없는 현 상황에서는 대학들이 많은 강사들을 교원으로 채용할 리 없다. 전임교원이 담당하는 강의 시수를 지금보다 늘려 비용을 줄이고, 강사를 채용하는 대신퇴직금과 각종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되는 겸임교수나 초빙교수 등의 다양한 형태로 비정규 교수를 늘려나갈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강사들이 강사법에 대해 반대하는 지점도 이 대목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시행 논의과정에서 한차례 보완된 강사법이 기존법보다 못하다는 점이다. 임순광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이하 한교조) 위원장은 “보완된 강사법은 입법취지인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은 없으면서 시간강사들을 거리로 내모는 악법”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강사법 시행 시 대량해고 불가피”

임 위원장은 시행을 앞둔 강사법은 대량해고를 초래하는 법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강사들은 대학별로 4~6개월씩 주로 단기계약을 맺고 있다. 강사법이 계약기간을 1년으로 정해 개선된 면이 없진 않지만, 강사가 교원의 범주에 들어가면서 적용받게 된 9시간 책임강의 시수가 발목을 잡는다. 기존 강사들은 대부분 주당 3~4시간 강의를 한다, 그는 “강사법이 시행되면 소수의 강사들은 안정적인 자리를 확보하는 반면, 다수의 기존 강사들은 강의를 뺏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실제로 강사법이 제정되고 시행을 예고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관찰된 현상이다. 임 위원장은 “2011년 국회를 통과한 강사법이 2013년 시행을 앞두고 2012년 비정규교수의 강의담당비율이 대폭 줄었다”며 “강사법 시행을 앞 둔 상황과 대학평가에 전임교원 강의담당비율 지표가 반영이 유지되면서 비정규교수들의 해고의 주요 원인이 됐다”고 말했다. 당시 비율 변경 폭을 추산해 계산하면 최소 1만 명이상의 강사가 일자리를 잃은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임용기간 종료 시 당연 퇴직 ▲방송통신대 출석 강사나 팀티칭, 계절학기 수업, 대체 강사 등은 1년 미만으로 임용 가능 ▲강사 업무에 지도 연구 임무 배제 등이 강사법이 한차례 보완되면서 오히려 후퇴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지점이다.

강사법 시행으로 우려되는 지점은 단순히 강사들 일자리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는 한국 사회의 고등교육의 질 하락으로도 이어진다. 학계에서 학문에 뜻을 둔 뛰어난 역량이 있는 강사들을 내보내는 것은 그 자체로 사회인 낭비다. 임 위원장은 “더 적은 교원으로부터 더 제한적인 강의를 대규모로 들어야 하는 학생들은 교육권을 침해 당한다”며 “이 모든 것은 교육공공성 파괴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시행 절차 남은 가운데 정부 역할 강조돼

교육부 대학정책과 관계자는 “강사 단체에서 폐기 후 새로운 틀을 정해 법을 만들자고 하는 주장을 파악하고 있다”면서도 “관련 법으로 영향을 받을 사람들이 많아 제반 사항을 고려해야한다는 정도의 말씀밖에 드릴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어떤 법률안 하나가 제출됐는데 논의 한지 7년이 지나도록 시행되지 않고 유예된 경우는 강사법 뿐”이라며 “시행은 예정됐지만 국회의 의결 과정이 남아 있으니, 공청회 등을 통해 추가적으로 의견을 취합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강사법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 정부의 역할을 분명히 하고 예산을 투입해야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강낙원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고등교육연구소 소장은 “대학들은 강사의 법적 지위 보장이라는 강사법의 입법취지와 달리 현실에서는 어려움이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며 “대학이 자체적으로 강사들의 처우 개선과 강사료를 올리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부의 역할이나 지원이 동반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고등교육정책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부책임형사립대학’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고용이 안정적인 적정 교원의 확보를 하지 못하는 대학의 경우 고등교육의 질의 문제로 이어진다는 측면에서 공교육을 책임지는 국가가 개입하고 지원해야한다는 것이다.

한편 강사법을 둘러싼 논쟁에서 소수 목소리지만 ‘교원 지위 확보’에 방점을 찍고 우선 강사법을 시행한 후 법안의 부족한 부분을 바꿔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전강노는 “교육노동자인 강사에게 노동자로서의 처우 개선보다 중요한 것은 교육자로서의 신분 보장”이라며 “강사법이 부족하지만 폐기하고 새로운 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두 법률 모두 시행되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강사의 교원지위 회복과 대학정상화를 요구하는 전강노의 국회 앞 천막농성은 지난달 20일 기준 3,600일을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