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출근길은 편안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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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7.08.14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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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자 지하철, 비싸고 비좁고 위험하고
[리포트]지옥철 9호선

평일 오전 7시부터 9시까지, 그리고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시간대를 ‘러시아워’라고 부른다. 출퇴근길과 등하굣길에 나선 직장인, 학생들이 몰리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시민과 경기도민, 인천시민이 뒤섞이는 수도권 지역의 러시아워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런데 일부 지하철 노선을 바라보는 수도권 지역 시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지하철 탄 시민, 출근 중 호흡곤란 ‘봉변’

출퇴근시간에는 버스나 지하철 할 것 없이 사람들로 붐빈다. 특히 지하철은 버스에 비해 수송량이 월등히 높음에도 불구하고 길이 막히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승객이 몰린다. 지난해 서울지하철 1~9호선의 하루 평균 수송인원은 728만 명에 이른다. 신도림·사당·강남·고속터미널 등 주요 환승역에서는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인파에 떠밀려 갈 정도다. 밀리지 않으려면 밀어야 하고, 열차가 들어오면 한쪽 발이라도 집어넣고 봐야 한다.

서울시에서는 혼잡도라는 개념을 사용해 주기적으로 지하철 이용현황을 측정한다. 혼잡도는 전동차의 승차정원 대비 비율로 나타낸다. 현재 서울지하철 전 노선에서 운행 중인 대형전동차의 경우 한 량당 정원이 160명이다. 일반적으로 전동차의 승차정원은 모든 좌석에 사람이 앉아있고(54명), 복도와 출입문 부근에 다수의 입석 승객(106명)이 탔을 때를 기준으로 한다. 10량짜리 열차인 경우 승차정원은 1,600명이다. 만약 이 열차의 혼잡도가 100%라면, 대략 1,600명의 승객이 탑승했다는 얘기다.

노선별로 보면 출퇴근시간 혼잡도가 가장 높은 곳은 2호선 순환선(성수-신도림-성수, 192%)이다. 두 번째로 혼잡도가 높은 노선은 9호선(개화-종합운동장, 189%)이다. 혼잡도가 190%에 다다르면 더 이상의 승차가 어렵기 때문에 192%든 189%든 순위를 나누는 의미가 없다.

문제는 가장 최근에 개통한 9호선이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9호선 급행열차의 차내 혼잡도는 230%가 넘었다. 서울지하철 1~4호선 열차가 10량이고 5~7호선과 8호선이 각각 8량, 6량인 데 반해, 9호선에는 달랑 4량짜리 열차가 투입됐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서로에게 욕설을 내뱉는가 하면, 차내 이산화탄소 과다로 호흡곤란을 겪으며 병원으로 후송된 승객도 있었다. 9호선을 이용하는 승객들에게 출퇴근이란 ‘각개전투’와 같은 것이었다.

현재의 혼잡도(189%)는 서울시가 지난해 8월 극도로 혼잡한 구간(가양-신논현)에 셔틀 급행열차를 투입하면서 그나마 낮아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4량 1편성 운행으로는 밀려드는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 서울시는 6량짜리 열차를 단계적으로 늘려 혼잡도를 140% 수준으로 대폭 낮추겠다는 계획을 내놨지만, 9호선 전 열차가 6량으로 운행되려면 내년 하반기까지는 기다려야 한다.

▲ 비교적 한산한 시간대인 점심시간 무렵이지만 서울지하철 9호선 급행열차 내부는 발 디딜 틈이 없다.

환승게이트, 너는 누구냐

서울지하철 9호선은 지난 2009년 1단계 구간(개화-신논현) 개통 당시부터 숱한 논란에 시달려야 했다. 극악의 혼잡도는 8~10량에 달하던 기존 전동차의 절반에 불과한 수송량 때문에 충분히 예상된 것이었다. 기존 1~8호선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기계장치는 9호선 개통 초기 승객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서울시 산하 공기업에서 운영하던 1~8호선과 달리 9호선에는 ‘환승게이트’가 설치됐다. 9호선과 타 노선을 갈아타기 위해서는 환승게이트에 교통카드를 반드시 접촉해야 한다. 지하철을 타기 전에 한 번 요금을 지불하고, 내리고 나서 정산하는 데 더해 한 가지 과정을 더 거치게 된 것이다. 이는 단지 지하철 운영기관이 서로 달라서가 아니라 9호선 운영을 사기업이 맡기 때문이다.

9호선 1단계 구간 건설에 드는 총 사업비 3조 5천억 원 중 6천억 원의 민간자본이 투입됐는데, 투자자들이 운영권을 가지면서 9호선은 전국에서 유일한 민영 지하철이 됐다. 공익이 아닌 수익을 추구하는 철도 노선이 생겨난 것이다. 환승게이트 설치는 ‘별도의 요금을 징수한다’는 의미다. 승객이 환승게이트를 거치면 지하철역을 벗어날 때 추가요금을 징수하는 방식이다. 물론 지금까지 9호선 이용에 따른 추가요금을 낸 승객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실제로 추가요금이 생겨날 뻔한 적이 있다. 개통 3년차이던 2012년, 9호선 운영회사인 서울시메트로9호선(주)는 요금을 500원 인상하겠다고 기습 발표했다. 서울시메트로9호선(주)는 성인 기준 900원이던 요금을 1,400원으로 받겠다고 나섰다. 법정 다툼 끝에 서울시가 민자사업 재구조화를 통해 서울시메트로9호선(주)로부터 운임조정권을 회수하면서 추가요금 징수는 없던 일이 됐다.

한편 공항철도(서울역-인천국제공항)와 신분당선(강남-광교)에서는 별도의 요금체계가 운영 중이다. 공항철도의 경우 청라국제도시역에서 인천국제공항역까지 구간을 이용할 때 900원의 추가요금이 붙는다. 신분당선은 강남-정자 구간과 정자-광교 구간에서 각각의 요금이 추가된다. 두 노선 모두 사기업이 운영하지만, 유독 신분당선은 비싼 요금 탓에 연선 주민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강남-정자 구간은 신분당선(주)가, 정자-광교 구간은 경기철도(주)가 운영기관이다.

신분당선에서는 서로 다른 두 회사가 운영하는 구간을 지날 때마다 추가요금이 발생한다. 강남역에서 탄 승객이 광교역까지 31.1km를 이동할 경우 기본요금 1,250원에 더해 구간운임(10km 초과 시 매 5km마다 100원) 500원과 신분당선(주)가 징수하는 요금 900원, 경기철도(주)가 징수하는 요금 300원을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 즉 일반 지하철 요금체계였다면 1,750원만 내면 되지만, 두 개의 민간 운영회사를 거치면서 1,200원의 추가요금을 내야 한다. 서울지하철 9호선의 요금인상 무산 과정을 지켜보면서도 과도한 부가운임을 책정한 민간 운영회사에 시민들의 비난이 쏟아졌지만, 정작 신분당선(주)는 파산 위기에 내몰린 상황이다.

▲ 9호선과 타 노선 사이의 환승통로에는 환승게이트가 설치돼 있다. 환승게이트의 역할은 승객의 이동경로를 파악함으로써 추가요금을 징수하거나, 운영회사 간 운임수입을 배분하기 위한 자료를 남기는 것이다.

민자, 쓸 땐 편해도 갚으려니 골치인 ‘고리대’

결과적으로 서울지하철 9호선은 신분당선에 앞서 한바탕 홍역을 치른 셈이 됐다. 그 과정에서 불거진 높은 혼잡도와 요금인상 추진 등 문제의 원인으로 민자사업이 갖는 구조적 한계가 지목된 바 있다. 특히 최소수입보장제도(Minimum Revenue Guarantee: MRG)는 9호선이 ‘지옥철’이라는 오명을 얻게 된 핵심 원인이다.

MRG는 철도·도로 등 사회간접자본을 민간자본으로 건설 한 후 운영수입이 사전에 예측된 수준에 못 미칠 때 그 차이만큼을 민간 투자자에게 보전해 주는 방식이다. 이영수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9호선의 경우)서울시가 보조금을 줄이기 위해서 수요를 너무 낮게 잡으면서 처음부터 적은 편수의 열차가 투입됐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민간 운영회사가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동차를 적게 구입하고 차량기지 확대에도 소극적으로 나선 점도 작용했다.

예상에 비해 9호선 이용객이 나날이 늘어가고 MRG에 따른 보조금까지 지급됐음에도 서울시메트로9호선(주)는 운영적자를 이유로 일방적으로 요금인상을 발표했다. 그러나 서울시메트로9호선(주)로부터 운영을 위탁받은 서울9호선운영(주)는 해마다 적게는 23억 원에서 많게는 50억 원까지 당기순이익을 올리고 있었다. 이에 더해 서울시메트로9호선(주)는 서울시로부터 2011년까지 총 800억 원이 넘는 MRG를 받았다. 2013년 서울시와 서울시메트로9호선(주)가 민자사업 재구조화 협약을 맺으면서 맥쿼리인프라와 현대로템을 비롯한 주주들은 8천억 원에 달하는 수입을 챙겼다.

민자사업 재구조화를 통해 운임조정권을 회수하고 주주를 교체하였으나, 여전히 서울시메트로9호선(주)는 오는 2039년까지 9호선 관리·운영권을 보장받는다. 게다가 이 회사의 현재 주주 역시 옛 주주들과 마찬가지로 도시철도 운수업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자산운용회사와 보험회사들이다. 지금도 서울지하철 9호선 1단계 구간의 실질적인 운영회사는 서울9호선운영(주)다.

그런데 서울9호선운영(주)는 전동차 정비와 환경미화 등의 업무를 메인트란스(주)에 재위탁하고 있다. 또 메일트란스(주)는 환경미화 업무를 다른 업체에 위탁하고 있다. 무려 4단계에 이르는 위탁구조를 갖고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 철도 운송사업의 다단계 위탁구조는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할 뿐 아니라 노동자들의 처우를 열악하게 한다는 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언뜻 공공시설물을 건설할 때 민간자본을 도입함으로써 중앙정부 또는 지자체 재정을 아낄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서울지하철 9호선 사례는 민자사업이 장기적으로 훨씬 많은 비용부담을 시민들에게 안길 수 있음을 알려준다. 공익사업에서 민간자본은 ‘쓸 땐 편하지만 갚기 어려운 고리대금’과 다를 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