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환경, 연대는 가능하다!
노동과 환경, 연대는 가능하다!
  • 김민경 기자
  • 승인 2017.08.14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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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노동정책 , 재교육 정책·예산 포함해야
[리포트]정의로운 에너지 전환

원전산업 노동자들이 대정부 투쟁을 선언했다. 불과 8개월 전만해도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에 함께하겠다며 먼저 정부에 대화를 제안했던 이들이다.

이 같은 태도 변화는 정부가 신고리 5, 6호기의 건설을 일시 중단 시키고, 공론화 위원회를 꾸려 시민배심원단의 판정으로 원전 가동 여부를 결정한다는 뜻을 밝히면서부터 가시화됐다. 정부를 대하는 태도는 바뀌었지만, 노동자들의 요구는 그대로다. 원전정책 결정에 노동자들의 참여 보장하고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하라는 것이다.

 

원전 종사자들의 반발 당연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탈원전을 공약했다. 당선 후 탈원전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본격화하는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정부의 정책 시행 과정에서 다양한 반대가 예상된다. 그러나 대통령의 시행의지가 분명하다. 향후 한국의 원전 산업의 방향은 현상 유지 후 축소로 나아갈 것이다.

원전산업 노동자들에게 현 정부의 정책 기조는 불편하다. 고용불안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환경 분야 또는 경제 분야의 담론거리이지만, 원전업계 노동자들에게는 당장 생계와 직결되는 일자리 문제다. 관계가 없는 이들과 달리 원전정책에 대한 논의의 폭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박진희 동국대학교 다르마칼리지 교수는 “한국수력원자력 노동자들이 깃발을 들고 거리로 나온 것은 정부가 대안을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기후 변화에 따른 에너지 정책의 변동은 일자리 문제를 동반하는데 노동자의 희생만 강요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신고리 5, 6호기 건설 중단에 따라 한수원과 계약을 맺은 기업들의 피해와 배상에 대한 법적 근거와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 한수원이 감당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며 “정부는 에너지 정책의 공론화와 별도로 일자리 문제를 비롯해 예상되는 문제에 대한 최소한의 해결 방향성이라도 제시하고 설명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 정부의 원전 정책과 관련된 구체적인 준비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한국 전력공급량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30%다. 대표적인 관련 기관은 한국수력원자력을 비롯해 한국전력공사, 한전KPS, 한국전력기술, 원자력연료, 한국원자력연구원 등이다. 대표적인 위 기관 종사자 수만 5만 1,922명에 달한다. 원전 관련 부품을 만드는 등의 민간기업까지 포함하면 그 규모는 상당하다.

환경과 노동의 연대, 해외사례는?

한국보다 앞서 신재생에너지 사회로의 전환을 논의하며 2022년을 목표로 탈핵을 선언한 독일도 원전 관련 산업 종사자들의 반대 과정을 거쳤다.

1986년 체르노빌원전 사고 이후, 독일의 사민당은 원전 줄이기 정책을 공식적으로 채택했다. 사민당의 정치기반이었던 독일노총(DGB)은 해당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박진희 교수는 “당시 독일의 재생에너지 기술력과 성숙도는 원전을 대체할만한 수준이 아니었고, 산업으로 정착되지도 않았을 때”라며 “DGB는 해외 의존적인 독일의 에너지 구조를 탈피하기 위해서 원전이 해야 할 역할이 있는데 이를 간과한 정책은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고 설명했다.

DBG가 입장을 선회한 건 1990년대였다. 재생에너지 시장이 형성되면서 재생에너지가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에 기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주목해야하는 것은 노조가 줄어들 일자리 현장의 노동자들을 위한 재교육 활동을 꾸준히 해 왔다는 점이다. 한국에 비해 독일은 노조가 탄탄하고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자원이 많다. 기업보다 노조가 노동자 재교육에 주도적으로 나설 수 있는 이유다. 이와 함께 독일 정부도 노동정책에 노동자 재교육을 중요한 부분으로 포함시키고 꾸준한 재정적·제도적 뒷받침을 해오고 있다. 변화가 예상되는 산업에 소위 전환 프로그램을 마련함으로써 해당 노동자들이 일자리 문제에서 벗어나 해당 사안에 대해 폭넓게 논의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의 에너지집단 안보체제인 IEA의 2015년 자료(Electricity information)에 따르면, 독일은 1989년도 3%에 그쳤던 신재생에너지는 2014년 기준 25%로 증가했고, 같은 해 29%에 달하던 원전 비중은 14%로 줄었다.

정부, 노동정책에 ‘재교육’ 포함해야

한국의 상황은 어렵다. 독일처럼 노조의 활동이 노동자 교육으로까지 확장되지 못했다. 그렇다고 정부의 노동정책이 앞서가는 것도 아니다. 박진희 교수는 “한국사회의 에너지 전환은 아직은 초기단계이고, 에너지 전환 속도와 방법에 대한 사회적 논의 거치는 과정을 겪고 있다”면서도 “궁극적으로 탈원전과 신재생에너지로 나아가는 방향 자체가 옳다면 정부의 노동자 재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해야할 때”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에너지 분야의 전환기에 노동자가 새로운 일자리로 넘어갈 수 있도록 재교육을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한국의 노동정책에는 재교육 부분이 곁가지로 밀려나 있다. 노동조합의 활동이 고용과 임금 등의 기본적인 부분에 모든 역량이 집중돼 있고, 정부 정책도 이에 맞춰 관리 감독하기에만 급급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에너지 전환기에 대두되는 재교육 논의는 새롭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에너지 분야뿐만이 아니라 디지털로의 전환 시기에도 노동자 교육의 가치가 중요했고, 다가오는 4차 산업 혁명 시기에서도 재조명 되고 있다”며 “큰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라 직종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발생하는 일자리 문제는 사회적 비용이라는 측면에서 당연히 국가가 나서서 지원하고 대응책을 마련해야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에너지 분야의 전환은 기술적으로 연계될 수 있는 지점이 많다고 설명한다. 그는 “기계나 반도체 분야의 노동자들은 태양전지 산업으로, 자동차 공장에서 일하던 기술직 노동자들 중에는 풍력발전의 기술 업무로 넘어갈 수 있는 연관성이 굉장히 크다”고 덧붙였다.

신재생에너지, 원전보다 일자리 창출 많다

정부는 신재생을 2030년까지 20%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지금은 미미한 태양광 등 순수한 재생에너지 분야는 정부의 주도하에 시장이 형성되고 활성화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한국에너지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국내 신재생에너지 전기 생산 비율은 2005년 2.1%에서 2015년 4.6%로 2배 이상 증가했고, 발전량은 3배 가까이 증가했다.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신재생에너지 기술을 감안하면 약 20년 후 20% 목표치도 현실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재생에너지는 일자리 창출 계수가 가장 높은 분야로 꼽힌다. 유럽재생가능에너지 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저탄소 사회로의 전환은 2030년까지 270만 개의 일자리를 증가시킬 것으로 보인다. 이는 화석연료와 연계 산업의 축소로 사라지게 될 일자리를 포함한 수치다. 노동집약적인 재생에너지 산업의 확장과 이에 따르는 에너지 효율 프로그램으로 세계적으로 고용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박 교수도 “태양광의 경우 1kW당 7.2명의 일자리가 생긴다”며 “태양광에너지 발전시스템을 만들고 이를 활용할 전지 공장을 지을 뿐만 아니라 설비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사람들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원전은 1kW당 일자리 창출 계수는 1.1에 그친다. 그는 “재생에너지 시장이 커지면 현재의 에너지 산업 중 화석연료나 원전 관련 산업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전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고 덧붙였다.

노동계 고민 담긴 ‘정의로운 전환’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에너지 분야뿐만 아니라 많은 산업현장이 영향을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놓인 노동자들의 고민을 담아 만들어진 개념이 바로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이다. 지속가능한 녹색 경제로 나아가기 위해 부득이 발생하는 노동자들의 일자리 감소에 정의롭게 대처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우선 환경파괴적인 일자리를 줄이고 환경친화적인 일자리로 나아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야한다. 나아가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감을 줄이면서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고려해 노동자의 노동기간의 손실 없이 고용이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에 대한 논의는 1990년대 초 세계 각국의 정상들이 모이는 환경회의를 중심으로 시작됐다. 2000년대 기후 변화 문제에 대한 접근이 지나치게 생태적이고 경제적인 측면에 치우쳐져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구체화됐다. 국제적인 노조들이 세계 기후변화협상을 적극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다. 기후 변화에 따른 사회적 측면으로 연구가 확대되면서 ‘노동’도 한 담론을 차지했다.

현재 세계 여러 노동조합이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정책을 채택하고 있다. 2006년 국제노총(ITUC)과 유럽노동조합연합(ETUC) 등이 정식 정책으로 발표한 내용은 크게 4가지다. ▲기후변화 정책과 조치들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논의해야한다 ▲기후변화와 관련된 정책 결정에 노동조합의 참여가 보장돼야한다 ▲에너지 및 자원의 소비처이자 폐기물의 생산처로서 작업장에 기후변화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지속가능하고 노동집약적인 에너지 해결책을 향한 에너지 정책의 장기적인 전환을 지원하기 위한 공적 투자가 장려돼야 한다 등이다.

또 ‘정의로운 전환’의 목표 달성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는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에 대한 정당한 보상,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위한 재교육과 재훈련, 새로운 지속가능한 산업으로의 고용연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경호 공공노련 수석부위원장은 “노동조합의 자기반성이 필요하다”며 “한국사회에서 노동조합들은 단견으로 당장 앞의 문제만 보는데 몰두해 왔다”고 고백한다. 이어 “거대한 전환기에 노동조합의 존재 이유를 고민해야한다, 보다 큰 틀에서 정책적 대안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고 실력을 키워 고용이라는 요구를 내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정부가 노동자의 노동과 임금조건의 유지 개선 외에는 모든 노조 활동을 불법으로 여겨 노동운동을 축소시켜온 경향도 있었다”고 덧붙였다.